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98)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98)화(98/180)
<98화>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
“네.”
안리체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는 매그에 대해 아무런 사감이 없습니다. 매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적법한 처벌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방금 전까지 매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그것부터가 어머님의 오해세요. 저희는 매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러자 집사장이 냉큼 대화에 끼어들었다.
“작은 마님께서 예산안을 가져오라 명령하신 것 자체가, 매그 때문에 저를 의심하시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와, 얘기를 이렇게 엮네?
집사장의 노회한 수법에, 안리체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집사장은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말을 이었다.
“저를 의심하시는 게 아니라면, 잘 진행되고 있는 예산안을 굳이 살펴보실 이유가 없으니까요.”
“아니, 집사장의 말에는 어폐가 있네.”
안리체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사장을 의심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공작령의 예산은 내가 살펴봐야 하는 일이 맞아.”
“아니, 그건…….”
“난 발루아 공작 부인이니 말일세.”
그렇게 말을 맺은 안리체가 델피나를 돌아보았다.
“어머님.”
저를 부르는 차분한 목소리에, 델피나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어머님께서 저를 못 미더워하시는 것, 모두 이해합니다.”
“…….”
델피나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저 아이가 웬일이지?’
사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상대방이 날 싫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특히 안리체처럼 성정 자체가 오만불손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더더욱 예산안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어머님께 믿음을 드리고, 공작성 사람들이 제게 갖고 있는 불신을 해소하려면.”
그러나 지금의 안리체는, 자신이 왜 예산안을 봐야 하는지를 조곤조곤 설득할 따름이었다.
분노도, 협박도, 눈물도 없었다.
그저 앞뒤가 분명한 논리만이 있을 뿐.
“제가 제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편이 가장 좋지 않을까요?”
안리체는 곧은 시선으로 델피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었다.
“…….”
잠시 침묵하던 델피나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집사장.”
“예, 큰 마님.”
“공작 부인께 자료들을 넘겨 드리게.”
“……예?”
순간 집사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델피나가 언짢은 표정으로 집사장을 돌아보았다.
“무엇 하고 있나? 어서 자료들을 넘겨 드리지 않고.”
아니, 여기서 자료를 주라고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집사장은 하마터면 그렇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는 금세 마음을 다독였다.
‘아니야, 그래봤자 공작 부인 아닌가.’
집사장이 아는 안리체는, 일머리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자료를 본다 한들, 뭐가 뭔지 알아볼 수조차 없을 터.
조금 켕기는 서류가 있다면, 적당히 걸러서 갖다 주면 그만이다.
게다가…….
‘예산안에 대한 근거는 완벽하게 조작해 뒀어.’
공작 부인뿐 아니라, 매사에 꼼꼼한 공작의 눈까지 속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 어디 실컷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 봐라.’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면서, 집사장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안리체가 집사장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니, 왜 갑자기 이쪽으로 오는 거지?’
그런 뜻을 담아서, 집사장은 떨떠름한 시선으로 안리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리체는 그대로 집사장을 스쳐 지났다.
애초에 그녀의 시선은 집사장이 아니라, 집사장 등 뒤에 서 있던 행정관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행정관.”
“예, 예! 작은 마님.”
“서류들은 어디에 있지?”
“그, 집사장님의 집무실에 옮겨 두었습니다. 한 번 서류를 살펴보신다 하여…….”
흐응.
안리체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영지의 내정에 관련한 서류인데, 그걸 집사장의 집무실에 보관하다니.’
역시 조금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리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가지.”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어디긴 어디겠어? 집사장의 집무실로 가야지.”
안리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동시에, 집사장이 허겁지겁 안리체를 불렀다.
“자, 작은 마님!”
“왜 그러나?”
“작은 마님께서 직접 제 집무실까지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가져다드리면 되니까…….”
“아니, 아랫사람에게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는 악덕 안주인이 될 수는 없잖은가?”
안리체는 그렇게, 아까 집사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바쁜 자네를 방해할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게.”
“아니, 그게…….”
“다만 혹시라도 누락되는 서류가 있으면 곤란하니, 저 행정관만 내가 빌려 가겠네.”
턱짓으로 행정관을 가리킨 안리체가, 그대로 씨익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야 그들이 서류를 확인해 줄 것 아닌가?”
“…….”
“그럼 난 이만. 어머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델피나에게 예를 갖춘 안리체는, 행정관을 끌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집사장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언제부터 공작 부인이 저렇게 꼼꼼하게 일 처리를 했었지?’
그런데 그때.
델피나가 서늘한 목소리로 집사장을 불렀다.
“집사장.”
“예, 큰 마님.”
“방금 안리체가 자신을 두고, ‘아랫사람에게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는 악덕 안주인’이라고 하던데.”
아차.
집사장은 혀끝을 지그시 깨물었다.
델피나의 두 눈은 어느새, 가느스름해져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 그건 말입니다.”
“설마, 사용인들이 안리체를 두고 뒤에서 쑥덕거리나?”
델피나의 싸늘한 표정에, 집사장은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델피나는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안리체는 발루아 공작 부인일세. 자네는 도대체 아랫사람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게야?”
“아니, 그게…….”
집사장은 한바탕 변명을 늘어놓은 후에야, 델피나의 사나운 눈초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 *
그 후 며칠간, 델피나는 내내 복잡한 기분이었다.
‘내가 안리체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안리체는 발루아의 적법한 공작 부인이야.’
그 말은 즉, 안리체는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집사장과 안리체 사이에서 있었던 다툼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공작성 사람들이, 안리체를 두고 뒤에서 이래저래 떠들어대는 거라면.’
델피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게다가, 안리체가 최근 아이들을 잘 챙기는 모습도 유난히 눈에 밟혔다.
‘릴리는 검술뿐 아니라, 발루아의 안주인이 될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릴리를 조금만 믿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안리체의 간절한 목소리가 귓속에 맴돌았다.
예전의 그녀였더라면, 아이들을 돌보는 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텐데…….
“후우.”
델피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릴리아나, 그리고 검술.
안리체가 릴리아나의 교육을 방관해서가 아니라, 깊은 고민 끝에 검술을 배우게 한 거라면.
또한 릴리아나가 정말로, 발루아 공작 부인이 되는 데 무리 없을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면…….
‘좋아. 일단 릴리아나의 이야기부터 먼저 들어보도록 하자.’
격렬한 고민 끝에 델피나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바로, 릴리아나가 검술 훈련을 받고 있을 연무장이었다.
* * *
연무장에 도착한 델피나는,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어머나, 엘리엇?”
“아, 할머니!”
그 사람은 바로 엘리엇이었다.
무릎 위에 크로키 북을 올려 놓고 연필을 틀어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크로키를 하고 있었나 보다.
무심결에 크로키 북을 건너다본 델피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세상에, 이거 모두 엘리엇이 그린 그림이니?”
“네, 맞아요.”
엘리엇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종이 위에는, 케이트와 릴리아나가 대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비록 가벼운 선이었으나, 인물들의 동세는 물론이고 외양의 특징까지 모조리 잡았다.
“이번에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더니, 확실히 상을 받을 만한 실력이구나.”
“하, 할머니는 그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엘리엇이 화르륵 얼굴을 붉혔다.
델피나는 짓궂게 눈매를 접어 보였다.
“우리 귀한 손주가 상을 받았다는데, 할미가 그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으면 어떡하니?”
“……헤헤.”
엘리엇은 대답 대신, 수줍게 웃어 보였다.
델피나는 허리를 굽혀 엘리엇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보다 용케 대회에 나갈 생각을 다 했구나.”
“네?”
“예전에는 그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 했잖느냐?”
“아, 그거요.”
엘리엇이 말끄러미 델피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한번 나가 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안리체가?”
델피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하게 커졌다.
‘그 애가 권유한 거라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런 권유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예전의 안리체만 봐도…….
그 순간.
앳된 기합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이야압!”
릴리아나였다.
날래게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른 릴리아나가, 목검을 커다랗게 휘둘렀다.
캉!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아이의 등 뒤로, 길게 묶어 올린 금발이 흩날렸다.
연녹색 눈동자는 투지로 가득 차 반짝거렸다.
‘세상에.’
순간, 델피나의 시선에 이채가 서렸다.
델피나는 사실, 검술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그럼에도…….
‘저 나이대에, 저렇게 엄청난 실력을 가질 수 있다고?’
문외한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압도적인 실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