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Quit Being A Wicked Mother-in-law, Everyone Became Obsessed With Me RAW novel - Chapter (99)
악녀 시어머니를 그만뒀더니, 다들 내게 집착한다 (99)화(99/180)
<99화>
또한 케이트도 델피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 어머.”
릴리아나의 공격을 파훼한 케이트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릴리아나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우리 릴리아나 아가씨. 공작님께서 제자로 삼을 만하시네요.”
“하아, 하아, 과찬이십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릴리아나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처럼 활짝 미소 지었다.
“과찬은 무슨. 만약 공작님만 아니었더라면 제가 직접 끼고 가르쳤을 거예요.”
“아, 그래 주신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안 돼요. 만약 그랬다가는 공작님께 무슨 타박을 들으려고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던 케이트가, 저 멀리 서 있는 델피나를 발견했다.
케이트는 내심 아차 싶었다.
‘아, 이런.’
공작 대부인께서는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었으나, 다소 고루한 면이 있는 분이셨다.
여자와 남자가 배워야 하는 공부가 따로 있다고 믿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부인께서는 기사의 길을 택한 케이트를 다소 특이하게 여기고는 했는데…….
‘내가 릴리아나 아가씨와 대련하는 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지.’
케이트는 속으로 혀를 차며, 델피나를 향해 절도 있게 인사를 올렸다.
“케이트 뮐러, 발루아 공작 대부인을 뵙습니다.”
“오랜만일세, 뮐러 경.”
우아하게 인사를 받아 준 델피나가, 흘끔 릴리아나를 돌아보았다.
델피나의 시선을 받은 릴리아나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격한 움직임으로 발그레하게 물든 뺨, 땀으로 젖은 이마, 가쁘게 몰아쉬는 숨.
그럼에도 릴리아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이번에 뮐러 경과 릴리아나가 대련하는 모습을 봤는데.”
“네, 큰 마님.”
케이트도 조금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굉장히 멋있더군.”
“그, 릴리아나 아가씨께서는 안주인으로서 익혀야 할 과목들도 충실히 배우고 계시다고…… 네?”
허겁지겁 변명을 늘어놓던 케이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큰 마님께서 지금 뭐라고 하셨지?’
하지만 케이트의 귀는 제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델피나는 다소 멋쩍은 얼굴이 되어 말을 이은 것이다.
“앞으로도 릴리아나를 잘 부탁하네.”
“아, 네…….”
“그럼 아이를 좀 데려가도 될까? 혹여 아직 대련이 끝난 게 아니라면 기다림세.”
“아닙니다, 편하실 대로 하시지요.”
살짝 묵례를 한 케이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델피나가 엘리엇과 릴리아나에게 말을 붙였다.
“얘들아, 이 할미랑 같이 간식이라도 먹지 않으련?”
“…….”
“…….”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그럼 전 몸을 좀 씻고 가도 될까요? 땀이 나서요.”
“그래, 그럼 한 시간 뒤에 만날까?”
“네, 그러겠습니다.”
릴리아나는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두 아이와 공작성으로 돌아온 후.
델피나는 몸을 씻겠노라며 종종걸음을 치는 릴리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릴리아나가 정말로 공작가의 안주인이 될 교육도 착실히 받고 있다면.’
그렇다면 검술을 배운다 한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엘리엇은 그림이고, 릴리아나는 검술이라.’
아이들이 재능이 있는 영역을 확실히 알아채고, 그쪽을 지원해 주다니.
안리체가 정말로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생각해내지 못했을 법한, 적절한 교육방침이었다.
델피나는 미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 *
약 한 시간 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릴리아나는, 엘리엇과 함께 나란히 티 룸에 앉아 있었다.
그 티 룸은, 델피나가 정성껏 가꾼 온실에 딸려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델피나는 제 앞의 두 아이를 바라보며…….
‘정말 귀엽군. 내가 가꾼 꽃들보다도 저 아이들이 훨씬 예뻐.’
……속으로 주접을 떨고 있었다.
엘리엇이야 뭐,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미남인 알렉세이를 쏙 빼닮았지 않은가.
엘리엇의 어머니인 안리체 또한, 델피나의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는 청순한 미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릴리아나는, 그런 엘리엇 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귀여움을 자랑했다.
‘고급 도자기 인형 같아.’
연한 금발을 곱슬곱슬하게 말아서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도톰한 재질의 드레스를 입은 릴리아나.
훈련 끝이라 배가 고팠는지, 오물오물 간식을 먹는 조그만 입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릴리아나, 이 마들렌을 좀 들어 보겠니?”
“아, 감사합니다.”
릴리아나는 델피나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문 릴리아나가, 아이답지 않게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완벽해.’
델피나는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델피나 폰 발루아가 누구인가.
처녀 시절에는 사교계를 휘어잡는 레이디였고, 결혼 후에는 발루아 공작가의 안주인으로 살아온 귀부인 아닌가.
그런 그녀의 눈에도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이라면…….
‘……뭐, 릴리아나는 객관적으로 잘 교육받은 게 맞군.’
그래도 혹시나 해서, 델피나가 은근슬쩍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봤지만.
“요새는 무엇을 배우고 있니?”
“피아노 연주와 사교댄스, 시문학이요. 아, 요새는 통계도 배우고 있어요.”
“통계?”
“네. 영지의 예산안을 살펴보려면 통계 쪽도 조금 알아야 한다고 해서요.”
릴리아나가 차기 발루아의 안주인으로서 착실하게 교육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됐을 뿐이었다.
“물론, 통계는 아직 좀 어렵지만요…….”
시무룩한 얼굴이 된 릴리아나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저 애는 어째, 시무룩한 모습까지 귀여운 거지?’
저 뺨을 한 번만 쿡 찔러 보면 소원이 없겠는데.
델피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릴리아나의 통통한 볼 대신, 애꿎은 찻잔만 만지작거리던 델피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검술 공부가 힘들지는 않고?”
“아니요, 전혀요!”
검술이 화제로 오르자마자, 릴리아나의 두 눈은 별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엄청 재밌어요. 실컷 움직이고 나면 온몸이 상쾌해져요!”
“하지만 얘야, 아무래도 격한 운동이잖니? 땀도 많이 나고, 몸도 힘들고…….”
그런데 그때.
한창 간식에 심취해 있던 엘리엇이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할머니, 그 말은 저도 이미 해 봤어요.”
“응?”
“릴리는 땀이 많이 나고, 몸이 힘든 것까지 다 좋대요.”
그런 릴리아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엘리엇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그래도 뭐, 황립 아카데미의 상급생도 꺾을 정도니까요.”
“……릴리아나가 황립 아카데미의 상급생을 꺾었다고?”
순간 델피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하게 커졌다.
아무리 지금은 발루아 공작령에서만 머무르는 그녀라지만, 황립 아카데미의 위명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립 아카데미의 검술부 생도들은, 예비 황실 기사라고도 불린다던데.’
델피나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릴리아나를 응시했다.
엘리엇은 마치 자신이 승리를 따내기라도 한 양, 어깨를 우쭐거렸다.
“릴리, 진짜 대단하죠?”
“벼, 별것도 아니에요. 아이참, 엘리엇은 왜 그런 소리를 해서…….”
릴리아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엘리엇을 타박했다.
“글쎄, 네가 그렇게 말하면 토르니안 영식이 분해서 밤잠도 못 이룰걸?”
“엘리엇!”
“아, 내가 뭐 없는 말 했나?”
엘리엇의 얄미운 대답에, 릴리아나가 두 눈에 바짝 힘을 주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릴리아나.”
“가, 감사합니다.”
델피나의 진심이 담긴 칭찬에, 릴리아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른 의문에, 델피나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는 어떻게 들어갔니?”
“아, 어머님께서 아카데미 견학 형식으로 데려가 주셨어요.”
“……안리체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견학이라는 번거로운 방법까지 동원할 줄이야…….
‘역시, 내가 알던 안리체가 아닌데.’
델피나가 오묘한 표정을 짓던 그때.
엘리엇이 포크를 입에 문 채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엄마를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아, 요새 일이 좀 바쁜 것 같더구나.”
안리체는 최근, 공작 부인의 집무실에 한창 틀어박혀 있었다,
집사장에게서 뜯어낸 예산 자료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엘리엇이 질색을 했다.
“으엑, 엄마는 또 일하는 거예요? 맨날 일만 해.”
“……안리체가 평소에 일을 많이 하니?”
“그럼요. ‘한 가문의 안주인은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라면서, 매일 집무실에만 있는다고요.”
안리체의 목소리를 흉내 내던 엘리엇이, 포르르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성에 내려오면, 엄마 얼굴도 좀 더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한 엘리엇이, 힐끔 델피나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도 휴식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할머니도 엄마랑 자주 안 만나시잖아요.”
엘리엇은 그렇게, 델피나를 마구 조르기 시작했다.
“이참에 같이 차도 마시면 좋지 않을까요? 네?”
심지어는 릴리아나도 내심 엘리엇의 제안을 반기는 눈치였다.
비록 말을 얹지는 않았지만, 간절한 시선으로 델피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예전의 델피나였더라면 분명, 저 제안을 듣고 질색을 했을 테지만…….
“……그럴까?”
어쩐지 지금은 그럴 마음이 났다.
그러자 잔뜩 신이 난 엘리엇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호! 그럼 제가 엄마 데리고 올게요!”
“에, 엘리엇! 같이 가!”
릴리아나도 황급히 엘리엇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두 아이가 쪼르르 밖으로 뛰쳐나간 후.
홀로 남겨진 델피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혹시 바쁘게 일하고 있는 안리체를 방해하게 되는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델피나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얘, 얘들아! 잠깐만 기다려 보렴!”
그렇게, 델피나도 허둥지둥 아이들을 따라 밖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