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홍위와 희아와 금똥이
경회루 연회를 마치고 전각으로 돌아오니 희아와 홍위의 목소리가 뜰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여기 봐, 여기 봐, 금똥아. 여기 봐.”
“금똥아, 헝아 봐, 헝아. 여기, 여기!”
윤서는 안에 권 승휘가 왔음을 고하려는 한 상궁에게 손가락을 입에 대어 보이고, 대청마루에 올라서서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안의 풍광이 훤히 그려졌다.
요새 목을 제대로 가눌 힘을 길러주기 위해 엎어 놓은 금똥이 앞에 희아와 홍위가 앉아 있을 것이다.
“금똥아, 고개 들어야지!”
소리치며 솜으로 속을 채운 면포 딸랑이를 흔드는 것은 희아일 것이고,
“헝아야, 헝아. 헝아 봐.”
손뼉을 치는 것은 홍위다.
“나 봤쪄, 눈나, 금똥이가 나 봤쪄!”
“그건 네가 고개 들면 바로 보이는 데 앉아 있으니까 그렇지. 비켜 봐봐. 내가 거기 앉으면 날 볼 걸.”
“안냐. 금똥이는 남자니까 헝아인 난(날) 더 좋아하지.”
“우리 금똥이한테 올챙이 노래 보여줄까?”
“눈나, 부으지 마. 금똥이 얼구 다 빠개졌져! 채가야, 우니 금똥이 안아져.”
(눈나, 부르지 마. 금똥이 얼굴 다 빨개졌어! 최가야, 우리 금똥이 안아줘.)
“정말요. 두 분이 부르시니 우리 아기씨가 고개 드시느라, 아이고 얼굴이 온통 새빨가시네요. 아이고 힘드셔서, 이 침 좀 봐. 아이구, 아기씨. 그렇게 좋으세요? 누님과 형님이 그렇게 좋으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듣고 서 있자니 코끝이 찡해지면서 방금 전 경회루의 풍경이 생각났다.
하나 같이 출중한 아들들을 굽어보며 세종께서는 내내 무척 흐뭇한 얼굴이셨다.
왜 아니 그러하시랴.
윤서도 금똥이를 낳아보니 알게 되었다.
우리 홍위가 애처롭게 어여쁜 만큼 금똥이도 어여쁘다는 것을. 게다가 금똥이는 젖을 물려 키우니 본능적인 유대감이 더 강렬했다.
나중에 희아와 홍위, 금똥이가 장성하여 오늘처럼 앞에 앉아 있다면 윤서 자신도 내내 흐뭇한 웃음을 감출 수 없으리라.
“웃었떠, 금똥이가 웃었떠!”
“네가 발바닥 간지럽히니까 반사 작용으로 웃는 거야. 권 승휘가 그러는데 이맘 때 아가는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극 때문에 웃는 거래.”
“아이고, 우리 자가께선 모르시는 게 없으시네요.”
“우리 눈나는 천재야, 수학 천재!”
아이들이 또 까르르 웃었다.
이향도 어릴 적에 수양 대군과 저렇게 사이 좋게 놀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홍위가 다정하고 세심한 것이 다 아버지 이향을 닮아서 그러한 것이니.
권력은 그러했던 형제 사이에도 너무나 깊은 골을 만든다.
착잡한 마음으로 서 있는 윤서에게 내수사에 심부름을 다녀온 조 상궁이 은밀하게 고하였다.
“박 상궁 마마님께서 내일 일찍 드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모지리’란 자는 잘 알아볼 터이니 염려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래. 알겠네.”
윤씨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한명회’가 아니라 ‘모지리’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모지리(毛知里)는 노비에게 흔히 붙이는 이름인데 이런 중차대한 일을 맡긴다는 것이 의아해 물었더니 윤씨는 “우리 형부의 가족과 가까운 자로 한확 대감의 사행길에 따라다니면서 명과의 무역에서 아주 빼어난 장사 수완을 보인 자일세. 만나 보면 마음에 드실 걸세.” 하고 답하였다.
뒤늦게야 장사와 무역은 조선에서 천시되는 일인지라 개국 공신의 후예인 한명회가 전면에 나서서 맡을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윤씨의 형부라면 한계미고, 한계미는 한확과도 가깝지만 한명회와는 더 가까운 일족이니 연결점이 충분하였다.
‘허튼짓을 하는 순간 급소에 침을 박아넣을 것이니.’
그렇게 다짐하면서 연회가 파하고 누각의 계단을 내려왔을 때 수양 대군이 술기운이 불콰한 얼굴로 다가와 두 손까지 모으고 말했었다.
“내년에 큰 경사를 맞이하신다 들었습니다. 경하드립니다, 형수님. 우리 도원군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공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남방의 진주와 청옥 등 보석 선물을 마련하였으니 꼭 받아주소서. 그리고 무역에 있어서는 형수님의 인재가 아주 빼어나다니, 우리 쪽 사람들도 잘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태도가 서신의 내용처럼 진실해 보이기만 하였다.
그래서 윤서도 일단 성실하게 답을 하였다.
“도조 가문을 통해 일본 본토에 팔 수 있는 물품 목록을 상세히 알려주세요. 일단 면포와 도자기가 가장 많이 팔릴 것으로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 형님 저하께서 화폐 유통을 준비하신다고 하여, 저는 다시 도조 가문과 유구국에 사람을 보내 동을 먼저 들여올 생각입니다. 그에 맞춰 준비해 주시지요.”
유구국에 다녀온 수양 대군은 확실히 달라졌다.
겉모습만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역사의 궤적에서 벗어나기로 한 것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윤서는 큰 숨을 내쉬어 근심을 털어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먼니!”
우리 홍위는 두 팔을 벌려 뛰어오고, 희아는 언제나 그렇듯 새침하게 “오셨어요?” 고개를 까딱하고.
그리고 윤서의 목소리를 들은 금똥이는 보모 나인인 최가의 품에서 짧은 다리를 동동거렸다.
무슨 짓을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지킬 내 새끼들이 여기서, 나를 보면서 웃는다.
윤서는 홍위을 성큼 안아 품에 가두며, 바깥의 근심을 잊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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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리란 자는 허안석의 얼자인데, 그 어미가 본래 한계미 가문의 가노였다. 한계미의 아비가 친우인 허안석이 놀러 왔다가 마음에 들어 해서 선물로 주었다고 하더라. 허안석에게 다른 아들이 없어 아비의 지원을 상당히 받았는데, 수완이 좋아서 한확의 사행길을 따라다니며 재산을 솔찬히 불렸다고 하더라.”
“그럼, 한명회와는요?”
“한명회가 골패놀이를 아주 잘하는데 같이 어울려 패 떼는 사이라고 한다. 그자도 골패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니 머리가 비상한 게지.”
다음날 일찍 윤서의 전각에 박 상궁이 들어와 말해주었다.
결국 윤씨의 대리인인 모지리는 한명회와 관련이 있긴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뚜렷하게 뭘 함께 꾸미는 점은 찾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이 났다.
“결국 이번 수양 대군의 무역에 모지리를 통해 한씨 가문과 윤씨 가문도 한몫 끼어들겠다는 것이로군요.”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지금 화폐가 유통되면 방납을 통해 재산을 불리는 것이 영영 불가능해지는 것이니, 재산 있는 자들 대부분이 다 공업과 상업에 눈을 돌리려고 애쓰는 중이다.”
“······.”
“나쁘지만은 않다.”
“예?”
윤서가 되묻는데, 박 상궁은 윤서 품에서 눈을 깜빡깜빡하며 열심히 젖을 빨고 있는 금똥이의 뺨을 살짝 건드리며 엉뚱한 말씀을 하였다.
“궐에 살면서 나는 생전 아기들이 예쁜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우리 금똥 아기씨 보고 나서부터는, 매일 이렇게 오물오물 젖 먹는 얼굴이 눈앞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나도!”
옆에서 넋을 빼고 금똥이 젖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매금이도 불쑥 말했다.
“예뻐!”
“그렇지? 이렇게 예쁜 아기를 보니, 전하께서 다른 대군들을 어찌하지 못하시는 마음이 좀 이해가 가. 그러니 그 야심 많은 수양 대군이 무역에라도 재미를 붙이면 우리 세손 아기씨도, 우리 금똥이도 얼마나 좋겠냐. 그러니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걸로 만족할까요?”
“모르지. 사람 마음이란 게 자기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참, 말이 나온 김에.”
한숨을 내쉰 박 상궁이 주섬주섬 치마 속에서 긴 봉투 하나를 윤서 앞에 내어놓았다.
“이게, 뭐에요?”
“이거, 뭐, 우리 아기씨한테는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겠지만······.”
생전 말에 거침이 없던 양반이 어째 머뭇거리시더니 숨을 쉴 때마다 볼록해졌다 홀쭉해졌다 하는 금똥이 배 위에 봉투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금똥이 얼굴을 다시 한번 톡 건드리시고,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손을 비비며 말씀하셨다.
“돈의문 밖 집문서다. 좀 있으면 우리 금똥 아기씨 백일 아니냐? 할미가 되어서 그래도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아니, 이걸, 왜요? 금똥이 좀 있으면 정식으로 이름 받으면서 전하께 받을 땅이 얼마인데.”
“그거랑 이거랑 같니? 내 마음이야. 거기 집터 사고부터 재물이 끊이질 않아. 좋은 기운을 가진 땅이니 우리 금똥 아기씨한테 드려야지.”
“···마마님.”
“내가 금똥 아기씨 이 오물거리는 입술만 생각하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이쁜 존재가 있을 수가 있다니? 그러니, 받아줘.”
재물 모으는 재미로 평생 사신 양반이 피 같은 문서를 내놓으시다니.
“어디 아프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마마님!”
여긴 건강검진도 없어서 시한부 선고도 없는데 왜 이러시지.
윤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박 상궁은 윤서 뺨도 톡 건드리셨다.
“그냥. 뭔가 큰일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그래. 너 세자빈 되면 정말로 이렇게 편하게 말을 해서도 아니 되고. 그래서 그런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는 그게 더 좋아요.”
윤서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아직도 엄혹한 신분제 사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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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대군이 방박량진의 도조 가문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고 유구국과 대규모로 무역을 하기로 약조하고 돌아온 일은 조선 관직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왔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맡은 후 유학에 실용 학문과 과학도 함께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듯 보였던 국시가 공업과 상업까지 공식적으로 장려하는 쪽으로 선회하였음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유학계에서 일던 반대 움직임은 벼락의 유도와 함께 두창 예방 침의 접종으로 무마되었다. 상소를 올려 중앙에 불려왔던 사대부들이 각자 지방으로 돌아가 피뢰침과 마두 예방 침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종께서는 정무에서 손을 떼고 조선에 여러 기초 학문을 도입하는 교육에만 관여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이면서도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정무에 바쁜 왕이 전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늙고 병든 내가 짬짬이 그간의 경험으로 조선의 교육 방향을 개선하고자 한다. 마침 내게는 함께 할 든든한 동지도 있고.”
조회에서 이리 말씀하시자 신하들 사이에서 ‘든든한 동지’가 누구냐는 물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내 든든한 동지가 누구겠느냐, 윤서야.”
8월에 들어선 날 세종께서 윤서를 부르셔서 짓궂게 물으셨다.
“금똥이 키우면서 차차 하자꾸나. 나도 당분간은 좀 쉬고 싶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세종께서는 정말로 막내 영응 대군과 희아와 홍위를 불러 여러 경서도 직접 가르쳐주시면서 매일 온천욕을 하시는 유유자적한 생활로 들어서셨다.
윤서는 윤씨 부인과 함께 내수사에서 모지리란 대리인을 직접 만났다.
막 삼십 대에 들어선 모지리는 윤씨 말대로 아주 일머리가 빼어나 보였다.
한확을 대리해 북경에서 명의 상인들과 무역을 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어서 해외 거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곳에서 만났던 여러 나라의 상인들을 통해 어떤 물품이 해외에 팔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양 대군과 윤씨 가문의 이익을 확실하게 챙길 줄 아는 자였다.
“무역로를 개척하신 분이 우리 수양 대군 자가시니, 모든 무역 이익의 이 할은 우리 자가께서 가지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지리는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 꿈틀거리면서 조건을 제안했다.
“대신 먼 바닷길에 왜구와 남방 해적이 많으니, 그들과 맞서 싸우며 무역품을 보호할 수 있는 선원과 화포 등은 저희 자가께서 다 책임지고 준비하실 것입니다.”
“!”
윤서는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는 윤씨 부인과, 그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조 전언을 훑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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