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두창과 동궁의 아이들 (1)
“상궁과 나인, 수모 등 궁인들은 팔월에 사흘에 걸쳐 혜민국에서 두창 예방 침을 맞았고, 그때 맞지 못한 이들은 이번 기회에 맞으려고 합니다. 만약 궁인 중 두창 증상을 보이는 이가 있으면,”
요동 지역에서 시작된 두창이 점점 남하하고 있단 파발이 연이어 내려오면서 궐 안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전마마께서는 상궁과 후궁을 모두 모아놓고 각 궁과 전각에서 두창 예방 침을 접종한 현황과 대비책을 물으셨고, 제조상궁 조가이가 궁인의 접종 현황을 답하고 있다.
윤서는 동궁 내궁을 총괄하는 자격으로 정 승휘와 함께 들어 있었다.
신빈 김씨의 희락당과 귀인 양씨의 양화당까지 보고가 끝나자 윤서의 동궁 내궁 차례가 되었다.
“저희 동궁에서는 정 승휘를 비롯한 후궁 모두와 궁인들 모두 팔 월에 건춘문 밖 마방에 차려진 접종소에서 모두 침을 접종받았습니다. 세손 각하와 평창 군주 자가, 금아 아기씨와 선아 아기씨도 모두 맞았습니다만, 당시 저는 수유 중이고, 저의 금똥 아기씨는 너무 어린지라 접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권 승휘는 당장 맞아야겠구나. 아기는?”
“광평 대군께서 말씀하길 6개월이 지나면 가능하다니, 광평 대군 아기씨와 저의 아기씨가 함께 저의 처소에서 맞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추가로 접종하면 좋다는 보고가 많아 세손 각하와 군주 자가를 비롯해 동궁의 아기씨들은 한 번 더 맞추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세손이 가장 중요하니, 홍위의 안전에 만반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여라.”
보고와 점검이 끝나고 중궁전에서 나왔을 때, 정 승휘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아까 끼어들 수 없어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양 사직과 선아 아기씨는 그때 두창 침을 맞지 않았어요.”
“아니, 왜요?”
“얼굴에 흉이 질까 두렵다고 한사코 거부하더군요. 내 말은 듣지 않으려는 눈치니 권 승휘께서 불러 타이르세요. 이제 새해가 되면 빈이 되시니, 제 말은 안 들어도 권 승휘 말씀은 들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윤서는 동궁 입구에서 헤어져 금똥이를 낳고 받은 거처인 협경당(協慶堂)으로 돌아왔다. 협경당은 기존의 거처에 전각 두 채를 더한 것으로, 새로 받은 전각에는 각각 평창 군주 희아와 홍위가 살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 곁에서 커야 정서가 안정된다는 육아서의 가르침에 따라 이향이 결정한 사안이었다.
거처로 돌아오니 광평 대군과 그의 처 영가부부인 신씨가 아들 수복(훗날의 영순군)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형수님. 우리 부인과 수복이 잘 부탁합니다.”
광평 대군은 두창을 피해 내려오는 여진족과 북방 사민을 평양 이북에서 억류하고 예방과 치료 효과가 함께 확인된 마두창 예방 침을 접종하는 업무 총책임을 맡아 박팽년과 함께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집현전에서 주로 연구 업무만 맡았던 박팽년이 광평 대군과 함께 두창 예방의 현업에 나서게 된 것은 이향의 지시였다.
윤서가 말해준 계유정난의 원인에 대해 깊게 고심한 이향은 세종 조에 집현전 학사들의 정치 참여를 배제한 것이 나이 많은 신하들의 권력 독점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집현전 출신 젊은 신료들이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젊은 학사들의 현업 참여를 적극 실행하고 있었다.
맞는 분석이라고 윤서도 동의했다. 지금의 조정은 너무 늙어 있다.
“날도 추워지는데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더구나 박팽년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행정 업무를 해본 경험이 일천해서.”
윤서가 소곤거리자 광평 대군이 하핫, 입을 크게 벌리고 웃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체찰사로 나가 계신 황보인 대감이 있고, 또 제게 아주 일머리가 좋은 이가 생겼습니다. 이번에 한양 거주민들 접종할 때 한양의 요처마다 접종소를 세우고 구획을 나눠 체계적으로 접종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광평 대군이 한참을 칭찬하는데, 찬바람이 휘잉 불었다. 그러자 부부인 신씨 품에 안긴 수복이 추운지 찡얼거렸다.
“아유, 들어가요.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조 상궁, 부부인 먼저 안으로 드시게 하게.”
신씨가 조 상궁의 안내에 따라 부부인 처소로 마련된 전각으로 향하는데, 광평 대군은 몸을 물렸다.
“아, 저는 이만 가봐야 합니다. 혜민국에서 한명회가 기다려서요.”
“!”
순간 윤서는 귀를 의심했다.
“누구, 라, 하셨습니까?”
“저를 도와주는 이가 한명회입니다. 일 처리가 아주 빼어난데다 백두산이고 두만강이고 안 가 본 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수님, 안색이 왜 갑자기······?”
“······!!!”
한명회가 한양에 돌아왔다는데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양 대군과 한명회가 힘을 합칠까 경계하느라, 수양 대군의 호종 반인 다섯 명을 모두 호위 내관 천가가 키워낸 이향의 충복으로 채웠는데 그들은 지금 면포 삼만 필, 인삼, 도자기 등을 싣고 황동과 유황과 초석, 각궁 등을 사 오기 위해 유구국에 가 있다.
“그자는 개국 공신 가문의 후손이면서 어째서 벼슬도 변변치 않은 혜민국의 일을 본답니까?”
“아, 형수님도 한명회를 아시는군요. 그자는 과거엔 뜻이 없어 팔도를 유람하다가, 장차 전염병이 돌 것을 예측하고 한양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이번 한양 접종과, 전국 전역에 접종 계획을 세우는 데 그자의 계책이 큰 도움이 되어서, 제가 아바마마께 말단 참봉직 하나 내려주십사 청하였습니다.”
“···그럼, 저하도 알고 계시나요?”
“아마, 곧 아시겠지요?”
윤서는 광평 대군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제 11월 하순. 원래 역사에서 광평 대군은 12월에 죽었다.
수양 대군, 아니 지금은 대군 직을 박탈당한 이유의 부인 윤씨가 죽었으니, 개개의 운명이 뒤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역사도 뒤바뀔 것인가.
한명회는 왜 다른 이도 아닌 가장 소박하고 선량한 광평 대군에게 몸을 붙인 것인가. 수양 대군이 영영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인가.
여러 가지 복잡한 실마리를 풀어보며 윤서는 직접 한명회를 만나볼까 하다가 일단 사람만 붙이기로 결론을 내었다.
지금의 그자는 윤서가 만나기에 너무 일천하고, 아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윤서는 매금이를 불렀다.
매금이는 표정 없이 다가와 광평 대군의 수려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의 호위 나인에게 동무가 하나 있는데 무예도 아주 빼어나고 재치가 있습니다. 북방의 치안이 한양처럼 좋지는 않다고 하여 걱정이니, 호위를 하나 붙여드리겠습니다. 내일 혜민국으로 보낼 터이니, 받아주시어요.”
“하핫핫!”
광평 대군이 수려한 얼굴을 활짝 펴며 호쾌하게 웃었다.
“형수님 호위 나인의 명성은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동무라면 비슷한 실력일 터이지요?”
“아냐! 요!”
매금이가 택도 없다는 듯 턱을 오만하게 치켜들었다.
******
그날 오후.
두창 예방 침을 맞아도 되는지 살피기 위해 전순의가 작은 권 승휘, 의녀 순덕과 다른 의녀 넷이 함께 왔다.
마침 홍위도, 희아도, 그리고 금아와 선아 등 이향의 소생 모두와 정의 공주와 그의 아들 여달까지 모두 윤서의 거처에 와 있었다.
안전하게 추가로 한 번 더 두창 예방 침을 맞기 위해서였다.
아홉 살부터 생후 육 개월의 금똥이와 수복이까지 한 방에 있자니 혼이 나갈 만큼 요란하였다.
희아는 먼저 의녀 순덕에게 몸 상태를 보이고 정의 공주와 머리를 맞대고 산학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홍위와 여달은 전순의의 손을 벗어나자마자 이제 막 기기 시작한 금똥이 옆에서 함께 바닥을 기어 다니며
“금똥아, 힘을 내! 수복아, 너도 기어 바바! 인루 와, 헝님 옆으로 와!”
손뼉 치며 부르고.
금아와 선아는 유 승휘와 양 사칙 품에 안겨 새침하게 작은 권 승휘의 손에 몸을 맡겼다.
이 아이들과 또 이 아이들을 시중드는 유모들까지 앞으로 사흘을 여기 협경당에 함께 있으면서 접종 후 몸 상태를 살펴야 한다.
평소라면 정신이 나갈 만큼 혼돈스러운 상황이겠지만, 아까 들은 한명회란 이름이 불러온 생각 때문에 윤서는 차라리 이 소란이 반가웠다.
전순의와 작은 권 승휘는 일단 모두 두창 예방 침을 맞을 수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순덕과 다른 의녀들이 도자기 함에 담아온 농포와, 소독용으로 만든 작은 등잔과 침을 꺼내 들 때, 윤서는 전순의에게 우려되는 사안을 다시 확인하였다.
“육 개월 아기들한테 맞춘 적이 있다고?”
“예, 의원과 의녀 소생의 아이들 사십여 명에게 맞췄습니다. 처음 사나흘은 열이 올라 보채지만 나흘 지나 농포가 올라오면서 편안해집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 두 꼬맹이들도 괜찮겠지.”
윤서가 부부인 신씨를 보며 떨리는 웃음을 지어보는데, 금아가 유 승휘 품을 파고들며 울기 시작했다.
“시져! 침 무셔워!”
침으로 먼저 팔에 상처를 낸 후 말의 두창에서 채취한 농을 발라야 하는 것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금아가 울자 한 번도 예방 침을 맞아 보지 않은 선아는 더욱 서럽게 울며 양 사칙 품을 파고 들고, 누나들이 울자 육 개월 꼬맹이들도 영문도 모르면서 입술을 비쭉거리며 울까 말까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이런.”
윤서가 금똥이를 안아 들려 팔을 뻗는데, 홍위가 먼저 금똥이를 안고는 끙끙대며 윤서에게 왔다.
“우리 금똥이는 헝아가 안아 주까? 내가 먼저 맞는 거 금똥이한테 보여 주까? 여달 헝님. 헝님 먼저 맞을래?”
그러자 일곱 살 안여달은 고개를 흔들고, 저쪽에 앉아 있던 희아가 몸을 일으키며 금아와 선아에게 훈계했다.
“균이 들어가서 약하게 앓아야 진짜 두창 균이 들어와도 무사한 거야. 두창이 얼마나 무서운 전염병인데. 나부터 맞을게.”
가장 연장자인 희아부터 작은 권 승휘에게 두창 침을 맞기 시작했다.
금똥이는 홍위 품에서 응애응애 울면서 두 번째로 침을 맞았고, 홍위는 윤서에게 금똥이를 넘긴 후 희아 누나처럼 의젓하게 침을 맞았다.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인 양 사칙까지 맞고, 윤서가 마지막으로 침을 맞았다.
윤서가 면포 조각을 침 자국에 대었을 때 문득 홍위가 말했다.
“도언군은(도원군은)?”
“!”
윤서와 정의 공주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도언군이 둥궁전(중궁전)에 있는데?”
윤씨가 죽고 수양 대군이 직위를 박탈당해 한양을 떠나자 중전께서 거두셨음에도 도원군은 처지가 아주 딱해졌다. 세손 강서원에서도 한확의 아들 한치례와 함께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눈치였다.
그런 두 사람을 챙기는 것은 뜻밖에도 전에 가장 많이 괴롭힘을 당했던 우리 세손 홍위 각하라고 홍위를 모시는 내관 자선이 아주 뿌듯한 얼굴로 고한 적이 여러 번이다. 홍위도 어머니가 없었기에, 이제 어머니를 잃게 되고 고아나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된 도원군이 딱한 모양이었다.
우리 홍위의 관대한 배포를 도원군이 알아주면 좋으련만.
“도원군은 오늘 열이 있어서 내일 열 내리면 따로 맞기로 하였어요.”
윤서는 아까 중전마마께서 하신 말씀을 홍위에게 전했다.
“그리고 도원군은 요새 희락당에서 담양군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훨씬 덜 쓸쓸할 거에요.”
윤서는 며칠 전 양 귀인과 함께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윤서가 양 귀인에게 우리 홍위가 무사히 큰 것이 다 양 귀인과 아지 이씨 부인의 덕이라고 새삼 감사를 올리자,
(윤서는 홍 승휘의 일을 겪고 나서, 홍위가 살뜰한 애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양 귀인이 없었더라면 금아처럼 윤씨의 마수에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약을 너무 치밀하게 썼기 때문이다.)
양 귀인은 “다들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거지. 신빈은 여전히 수양 대군이나 도원군에게 거는 것이고.” 하고 말했었다.
윤서의 말에 홍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아. 강서언(강서원)에서도 치예랑(치례랑) 셋이 같이 다녀.”
“역시, 우리 세손 각하시네. 두루두루 다 챙길 줄 아시고.”
정의 공주가 멀리서 홍위를 칭찬했다.
“난, 세손이니까.”
우리 홍위가 가슴을 쑥 내밀며 의젓하게 말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