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이 불러온 나비효과 (2)
음력으로 가장 추울 시기인 12월 초였다.
푸르게 시린 공기 속으로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 듯 강하게 불어, 돈의문까지 마차를 타고 간 후 거기서 내려 반송방 일대를 돌아보기로 결정하였다.
호위를 할 금군 스무 명은 평복 차림으로 먼저 달려가 주변을 살피고, 호위 내관 넷과 금군 여섯이 앞뒤로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춰 걸으면서 근접 시위를 한다.
“하아, 춥구나. 여기도 이리 추운데 북방은 또 얼마나 추울꼬.”
광화문 앞에서 광평 대군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오르시면서, 전하는 모피 도포 안까지 파고드는 겨울 추위에 근심스러운 얼굴로 북서쪽을 바라보셨다.
북방에 순행 중인 세자를 걱정하시는 것이었다.
윤서는 준비해 두라 명령한 뜨끈한 물주머니가 제대로 놓여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먼저 마차에 올라 있었다.
그 덕에 세종께서 마차에 오르셨을 땐 안의 공기가 제법 따뜻했다.
며느리의 세심함에 감동 받으신 세종은 또 세자 생각을 하셨다.
“이리 훌륭한 마차가 있는데도 길이 험해서 우리 세자는 말을 타고 움직여야 하니, 얼마나 뼈가 시려울꼬.”
이향은 지난달 하순 금성 대군과 김종서, 신숙주 등을 거느리고 개성을 시작으로 숙천, 정주, 의주를 거쳐 여연 무창 등지의 서북 4군 지역과 온성, 회령 등지의 동북 6진을 거쳐 함흥으로 내려오는 순행을 떠났다.
작년 겨울 구휼미 배급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조선 백성 오백여 명과 무수히 많은 여진인이 굶어 죽은 일이 올해부터 되풀이되지 않도록 감독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구휼미 현황을 점검하는 것과 더불어 요동 너머 탈탈불화(오이라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미리 여진족을 회유, 포섭하고 동시에 지형을 자세히 살펴 그에 알맞은 화포를 개발하려는 목적도 겸하고 있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여진족에게 두창 예방 침을 제공하고, 또 그 자제들을 한양으로 불러 교육을 제공하고 장차 조선에 복속해오게 만들겠다는 계획은 참으로 좋은데.’
날이 이렇게 차가운데 한뎃잠을 자면서 말을 타고 강행군을 할 세자와 금성 대군을 생각하니 자식을 끔찍하게 아끼는 세종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그득하게 드시는 것이었다.
윤서는 빙긋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향이 순행을 떠날 때 그 며칠 전 편전에서 윤서를 잠재적 표적으로 삼은 일로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고 효성스러운 모습으로 인사를 올렸지만 눈빛이 냉랭했었다.
이를 당연히 눈치채신 세종께서도 서운한 낯빛이셨는데, 따스한 마차에 타자마자 추운 아들 생각에 저리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보니 참으로 다정이 병인 ‘아들 바보’ 시라고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제가 담비 털과 토끼 털 안감을 댄 옷과 토시, 모자와 신발을 지어 올렸으니, 너무 심려 마옵소서.”
“그래, 잘했다. 세심하게 마음 써줘 고맙구나.”
아내가 되어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도 윤서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세종껜 장성한 아들들도 여전히 어린아이인 듯했다.
돈의문 안에서 광평 대군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린 후 성문을 나가신 세종께서 놀라신 듯 걸음을 우뚝 멈추셨다.
“아니, 여기가 언제 이렇게 변했더냐?”
몸이 불편하단 구실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 맞이는 모두 세자가 도맡아서 행했기에, 세종께서 돈의문 밖 모화관에 온 것은 근 일 년만이었다.
그 일 년 사이 반송방 일대가 다른 세상처럼 달라져 있었다.
번듯한 건물이라고는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모화관뿐, 허허벌판에 마포 나루에 이르는 길 옆으로 움집처럼 낮은 초가집들만 떠듬떠듬 따개비처럼 붙어 있던 곳이었다.
그런 궁벽하고 가난하던 곳이 지붕 높은 초가집과 간간이 벽돌로 지은 집들까지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다.
“어허, 이곳이 도성 안보다 더 단정합니다, 아바마마.”
광평 대군도 사방을 둘러보며 새로 지어져 깨끗한 집들과, 오가는 사람들의 넉넉한 옷차림,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전조에 문익점이 붓 통에 목화씨를 숨겨 귀국한 이래 목화로 만드는 면포가 대량 생산되고 있지만, 가난한 이들까지 이렇게 많이 보급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반송방의 사람들은 솜까지 넣은 도포로 몸을 감싸고 아이들도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겨울의 해는 짧았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거리를 종종걸음을 치며 집으로 달려가는 이들은 성문에서 천천히 거리를 돌아보는 부유한 차림의 일행을 힐긋거렸다. 그래도 감히 임금이라고는 생각 못하고, 요새 부쩍 이 일대 땅을 구입하기 위해 찾아오는 지체 높으신 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럼 없이 옆을 지나쳤다.
“이 일대가 박 상궁 마마님 소유의 토지가 많았고, 또 제가 책봉될 때 받은 토지가 있어서 계획에 따라 공장 지역과 거주 지역, 그리고 저쪽 상점 지역으로 나눠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윤서가 손을 들어 마차와 수레가 오가는 길 건너편의 상점 골목을 가리켰다.
세종께서는 윤서의 장갑 낀 손가락을 따라 시끌벅적한 상가 거리를 보며 문득 물으셨다.
“계획에 따라라. 그럼 네 머릿속에는 이미 이 개발 계획이 다 들어 있었단 말이로구나?”
“!”
얼핏 듣기에는 무심한 어조셨지만, 그 말씀 속에 ‘어찌하여 너는 나와 함께 나라를 경영하며 늙어온 대신들도 가지지 못한 통찰을 가지게 된 것이냐?’란 감탄과, 그리고 의문이 들어 있었다.
윤서는 반짝 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변명을 지어냈다.
“송나라 그림 가 있지 않습니까? 그 그림에 나온 것처럼 이 지역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응? 청명상하도?”
조선에는 안 알려진 그림인가. 인터넷으로 본 그림인데.
송나라 수도 카이펑(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정교하게 그린 풍속화로, 그 옛날에도 송나라가 얼마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부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서 아주 인상이 깊었다.
“어디에서 본 것이냐? 난 본 적이 없는데? 나도 보고 싶구나.”
일단 호기심을 가지시면 포기할 줄 모르시는 세종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 글쎄요. 어디서 본 것인지 잘 기억이······.”
“아핫, 형님 저, 아니지, 잠행이니까.”
광평 대군이 부러 누가 들을까 경계하듯 수선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낮춰 다시 고하였다.
“형님께서 보여주셨겠지요. 형님 돌아오시면 잘 여쭤보십시오, 형수님.”
“아, 예. 맞아요. 여러 진귀한 설계도나 아라비아 산학 책 등도 많이 가지고 계시니까요.”
윤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에 사람을 보내 모사라도 해오라고 해야 하나 근심하느라고 자신이 무심코 ‘아라비아’라는 말을 썼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 윤서는 참으로 아는 것이 많아. 너도 잘 배우거라.”
세종께서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다.
“저쪽 상가 거리로 가시지요. 운종가의 시전과 사뭇 다릅니다.”
윤서는 세종의 의문을 알아채지 못하고 서둘러 상가 거리로 안내했다.
여기 반송방의 상가 거리는 운종가의 시전 거리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다. 그렇지만 판매하는 물품을 건물 안에 쌓아 놓고 행인에게 노출하지 않는 시전과 달리, 여기 상점들은 물품을 보기 좋게 전시하여 절로 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였다.
“여기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도성의 아녀자들, 그리고 저 멀리 파주에서도 물건을 사러 옵니다. 대금은 동전으로 내게 되어 있는데, 일반 백성은 동전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면포나 쌀을 가져오면 저기서 동전으로 바꿔줍니다.”
윤서가 라 쓰인 간판이 달린 곳을 가리켜 보였다.
“오호! 그렇게 법을 지킬 방도를 마련해주고 있던 것이냐?”
“예, 전, 흐음.”
‘전하’라고 하려던 윤서는 마침 호위 옆을 지나치는 행인 무리를 의식하고 큼큼 목을 가다듬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예, 아버님. 그런데 동전 하나로는 작은 금액과 큰 금액을 모두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윤서가 ‘아버님’이라고 살갑게 부르자 세종께선 흰 눈썹을 가볍게 치켜뜨시며 계속 말하라고 토시 낀 손을 휘저으셨다.
윤서는 길도 미끄럽고, 또 오가는 사람들도 신경이 쓰여 아예 세종 곁에 바짝 다가서서 가볍게 팔을 부축하고 속삭였다.
“동전 한 종류로는 다양한 거래를 충족하기 어려우니 작은 금액은 철전, 중간 금액은 동전, 더 큰 금액은 은전으로 하고 아주 큰 금액은 저화로 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저화의 지급을 보증하도록 하는 것이 장차 설립하려는 ‘은행’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화폐가 유통되려면 여기처럼 일단 팔고 살 물품이 있어야 하겠구나. 살 것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으흠.”
세종은 윤서가 왜 광평 대군을 움직여 자신을 이곳으로 오게 하였는지 그 의도를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선왕 태종과 자신이 가혹할 정도로 무리하며 유통시키려 하였던 화폐는 실은 상공업의 발전 없이는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시고 실감하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윤서가 어디 수를 하나만 놓는 아이더냐.’
세종은 윤서가 선왕부터 숙원 사업인 화폐 유통 방법 하나만 보여주고자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 아님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악할 정도로 영민하고, 대개는 관대하고 선량하나 홍위와 세자의 자식들 안위에 관련해서는 가차 없이 손을 쓰는 냉철한 며느리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설득하려 할지 기대 반 우려 반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긴 저와 내수사에서 관리하는 좁은 지역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민간에서 규모가 커지면 자연히 여러 가지 이권에 얽힌 어지러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버님. 돈과 재물은 늘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을 자극하여 폭주하게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윤서가 슬쩍 상공업 발전을 꺼리는 이들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흘렸을 때는, 마침 작은 서점 다섯 개가 줄지어 선 거리에 들어선 참이었다.
그리고 그 서점 거리의 끝에 이라 간판을 내건 찻집 하나가 제법 큰 규모로 영업하고 있었다.
오늘 윤서의 목적은 에서 열리는 시화 모임과, 그 가게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하께서 아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칙서에 대한 대응책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아버님, 저기 찻집에 가보시겠습니까? 차가 우리 집의 것만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마실만하고, 특히 함께 내는 유밀과가 맛이 좋다고 합니다.”
윤서가 고하자, 세종께서는 윤서를 지긋이 보시더니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저기로 가보자, 새아가야.”
“!”
“!”
윤서야 잠행이니까, 그리고 또 아들 바보 면모가 지극하시면서도 며느리에 대해선 유난히 박정하신 전하를 반쯤 놀리는 마음으로 콧소리까지 섞어 ‘아버님’이라 애교 있게 불렀던 것인데.
‘새아가라니!’
놀라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찌르르 울렸다.
깊게 생각해 보면 군주란 자리는 참으로 고독으로 점철된 자리였다.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이들을 견제하여 무사히 왕국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온갖 미사여구로 고하는 이들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 늘 의심해야 하고, 때로는 친밀하게 가까이한 이들을 제거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해야 한다.
연민을 가지고 윤서는 세종께서 가리키신 서점으로 들어갔다.
이란 간판이 아주 멋드러진 작은 서점이었다.
서점 안은 질이 그닥 좋지 않은 종이를 어설프게 엮은 서적이 가득하였는데, 제목이 주로 등, 한눈에 보기에도······.
“전, 아니, 아버님. 아니, 이런 서점이 언제 생겼지? 나가셔서,”
당황한 윤서가 세종의 팔을 잡아끌려 하는데, 세종께선 벌써 를 꺼내 들으셨다.
“하이고, 노야께선 역시 안목이 참으로 높으십니다요, 예예.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온 조선을 울린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을 이어 아주 절절하고, 간장이 찢어질 듯 섬세한 문체로 요새 조선 팔도를 들썩거리게 하는 연애담입지요. 그 집현전의 콧대 높으신 학사님들도 몰래 읽으시면서 우리 말로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이야 놀라시며 필사할 정도입습죠, 예, 참말로. 문체가, 아주, 읽다 보면 소인 놈도 눈물 콧물 다 빠집지요, 예예.”
어느새 다가온 산도적처럼 생긴 서점 주인이 임금도 몰라보고 무람없이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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