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세종의 지식욕
정말이지, 세종의 지식 욕구는 상상 이상이셨다.
첫 수업을 시작할 때 윤서는 기억을 더듬어 세계 지도를 그리고 (여섯 개 대륙의 위치만 대략 그린 조악한 지도였다), 4대 문명의 발상지를 생각나는 대로 표기했다 (정확한 위치는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아 중국과 인도, 아라비아 반도와 이집트 중앙 부분을 문명의 발상지로 잡았다).
그리고 잘 모르는 고대사는 건너뛰고 15세기 무렵에 각 대륙에 있는 나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설명드리려 하였다.
그러나 전하께선 윤서가 빼놓으려 하는 부분을 바로 파고들으셨다.
“문명을 따로 뽑은 서책을 읽었다면 그 지역엔 분명히 고도로 발달한 기록 체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록 체계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한 정치 체제가 잡혀 있었다는 것이지. 그러니 어서 꿈을 더듬어 보거라. 중국의 하, 은, 주, 수, 당에 해당하는 시기에 여기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냐?”
하고 지도를 짚으시며 ‘어서 아는 것을 털어놓지 못할까’ 하는 눈빛으로 쏘아보셨다.
그래서 윤서는 하는 수 없이 더듬더듬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그리스의 여러 도시 국가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페리클레스, 도편추방법, 로마의 공화정과 카이사르, 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과정 등을 생각나는 대로 상세히 말씀드려야 했다.
세종께서는 특히 그리스의 도시 국가와, 로마의 공화정에 대해서 유심히 들으시고, 투표권이 무엇인지 상세히 물으셨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정치 체제와 플라톤의 를 유심히 들으시고는
“그자가 성인이 아님을 알겠다. 일찍이 공자께서 유교무류(有敎無類)라 하시며 누구나 배우고 수양하면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지 따로 타고난 부류는 없다고 하셨거늘.”
하고 혀를 차셨으면서도, 꼬치꼬치 물어서 이데아라는 개념까지 더듬더듬 설명하게 만드셨다.
“보편적인 진리 개념을 이데아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진짜 실재하는 진리이고 우리가 보는 것은 그것의 파편, 혹은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동굴 속에 산다고 하면 우리가 보는 것은 원래 존재하는 것을 비춘 그림자인데, 그림자의 원래의 것, 원형을 이데아라 하는 것 같습니다. 철인이란 이런 이데아를 볼 수 있거나 지각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 같은데 저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전문적인 내용까지 들어가면 의자에 앉아 있던 홍위는 지루해 몸을 꼬다 못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그러면 희아가 나서서 “할바마마, 이건 홍위에게 너무 어렵고, 저는 재미가 없습니다. 이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고 냉정하게 고했다.
그럼 홍위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애처로운 표정으로 세종께 고했다.
“함바마마, 우니 금똥이가 어먼니 보고 싶어서 우꺼 같아요.”
윤서를 구해주려는 홍위 나름의 노력이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가까스로 되살려 겨우 말씀드리면 날카로운 질문을 연거푸 던지시는 전하 때문에 윤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홍위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첫 수업 후 정한 수업 방식이 시대별로 한정 지어서 각 지역의 역사를 정치 체제와 전쟁사 위주로 개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서는 미리 다음날 가르쳐 드릴 내용을 작성해 세종께 먼저 드렸다.
그러면 세종께서는 집현전에 소장된 책 중 역사서와 각종 고대 기담류 서적까지 다 가져오게 하셔서, 천 상궁으로 하여금 윤서가 말한 내용과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 기록을 샅샅이 찾아내게 하셨다.
이러시느라 세종께서는 칙사를 영접하는 중차대한 일도 모두 광평 대군과 평안 대군, 예조에 맡겨버리셨다. 그리고 천추전 안에서 거의 밤을 새우시며 새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셨다.
그리고 첫날 윤서가 그린 지도를 보자마자 세종께서는 함구령을 내리셨다.
“일단 이 지도의 내용은 당분간 나와 향이, 홍위와 희아만 알도록 하자. 왜 그리해야 하는지는 이 지도를 보면 짐작할 것이다.”
세종께서 천 상궁에게 명해 가져오라 하신 지도는 태종 때 그려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 지도였다. 아프리카가 그려진 것은 놀라웠지만 지도의 절반 이상이 오로지 중국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조선이 거대하게 그려지고 (모양은 사뭇 정확했다) 일본과 다른 나라는 너무 작게 그려져 있어, 왜 세종께서 함구령을 내리시는지 짐작이 갔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중국 다음의 문명국이란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난 지도였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당대의 조선인들에게 근거도 없이 윤서가 그린 지도를 당장 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밤낮으로 연일 무리를 하시니, 중전마마께서 걱정이 대단하셨다.
윤서가 세종께 지식을 전수하기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중전마마께서 윤서를 중궁전으로 부르셨다.
소헌 왕후는 윤서를 보시고 눈을 휘둥그레 뜨셨다.
“아니, 윤서야. 너 어째 이리 살이 내린 것이냐? 얼굴도 너무 창백하고 눈이 퀭하다.”
그러하다.
윤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세종의 끝없는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뇌를 혹사하느라 사흘 새 살이 느낌상 삼 킬로그램도 넘게 빠졌다.
금똥이 낳으면서 붙어 있던 군살이 모두 사라진 것은 기쁜 일이나 기운이 달리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최 상궁에게 어의더러 윤서를 진맥해 보약을 지어 먹이라 명을 내리신 후 소헌 왕후께서 본론으로 들어가셨다.
“아니 전하께선 눈도 침침하시고 소갈증도 심해지셔서 정무를 다 세자에게 넘기셨으면서 왜 갑자기 광인처럼 서책만 파고드시는 것이냐? 하아, 저러다 큰일 나신다 정말! 그리고 윤서, 너도!”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세자빈 책봉례에 대비해 윤서도 배워두어야 할 것이 산더미라고도 염려하셨다.
“공식적인 연회야 모두 예조에서 주관한다고 하지만, 내명부의 수장 또한 궐 내 연회가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지 살피고 배워야 한다. 사옹원에서 연회 재료를 확보하는데 다른 어려움이 없는지, 연회에서 춤을 선보일 악공이나 여악(女樂)에겐 다른 사정이 없는지 전반적으로 감독해야 나중에 전하의 생신 진연 등궐의 각종 연회를 빈틈없이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배워두어야 하는데, 하! 네가 천추전에만 붙잡혀 있으니.”
탄식하신 소헌 왕후께선 윤서를 가까이 다가오게 한 후 은밀하게 속삭이셨다.
“대체 무슨 내용을 탐구하시길래 여인까지 마다하시는 것이냐?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않으려 하여 내 이번 칙사의 환영 연회에서 춤을 추기로 되어 있는 기생 중 아직 사내를 모르는 예쁜 아이 하나를 골라 전하의 침수 시중을 들게 하였는데,”
세종께서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쓰러지듯 누워 잠깐 눈을 붙이신 후 다시 천추전으로 건너가셨다고 크게 걱정하셨다.
윤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성군의 치세를 실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으신데, 그리고 앞으로의 일은 이향에게 맡기고 여생을 편히 지내셔도 되는데, 세종께선 집요할 정도로 새 지식을 탐구하고 계셨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응용해 더 나은 조선을 만들 방도를 고심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세종께서 이렇듯 진지하게 배움에 임하시니 윤서도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배웠던 모든 지식을 기억해내기 위해 빈 종이에 생각나는 것을 적고 또 적었다.
미래에서 온 영혼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우려는 벌써 잊었다.
윤서는 소헌 왕후를 부드럽게 위로했다.
“그리 오래 무리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제가 옆에서 뵈니 한 달 정도면 전하께서 아시고 싶으신 내용을 완성하실 듯합니다.”
윤서가 세종께 전수하기로 한 과목은 지금 진행하는 역사와 지리, 그리고 기본 과목인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이었다. 여기에 국어와 수학은 이미 세종께서 윤서보다 더 나은 경지에 올라 계시고, (수학에서 기본 방정식과 확률, 통계 등 생각나는 대로 다 가르쳐 드리겠지만 암기한 공식을 가르쳐 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는 사상사 위주로, 그리고 과학도 기초 과학 정도일 터였다. 더 가르쳐 드리고 싶어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전하께서 저렇게 열심히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시니, 세손께서도 배우시는 바가 많습니다.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깊고 넓게 학문을 익히고 세상을 보아야 하는지 바로 곁에서 배우고 계시니까요.”
홍위 이야기가 나오자 근심으로 굳어져 있던 소헌 왕후의 얼굴이 스스르 풀렸다.
“하긴, 전하께서는 나와 혼인하셨을 때에도 밤을 새우다시피 하시기 일쑤였다. 그래서 성군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이야. 향이도 그러하였으니, 홍위도 응당 그래야겠지.”
****
마침내 명에서 보낸 칙사가 모화관에 도착했다. 이향은 사흘 후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모화관에서 칙사를 맞이하는 절차는 광평 대군이 주관하기로 하고, 태평관에서 열리는 하마연은 세종께서 직접 주관하기로 하셨다.
그런데 이날도 세종께서는 윤서를 천추전으로 불러들여 배움에 여념이 없으셨다. 다루는 시기가 마침 15세기 당대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전하, 칙사 함평준이 돈의문을 들어와 종각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의대를 갖추셔야······.”
“그래, 알았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세종께서는 밖에서 벌써 다섯 번째 고하는 대전 내관의 재촉을 무시하고 다시 윤서에게 물으셨다.
“그러니까 윤서야. 교황이라는 자가 카톨릭이란 종교로 여기 이 넓은 유럽을 정신적으로 다스리고, 그리고 각자 왕과 제후가 조금씩 땅을 나눠 가지고 서로 싸우며 합병과 분할을 연속하다 다른 대륙까지 진출한다는 거지? 그중 하나인 스페인이란 왕국의 여왕이 지금으로부터 약 오십 년 후 콜럼버스란 사악한 자를 여기, 이 아메리카로 보내 속국으로 삼았고. 맞게 요약했느냐?”
“예, 맞습니다.”
“겨우 배 두 척이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큰 땅덩어리를 속국으로 삼을 수 있었다더냐? 거기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서?”
“그것은,”
“할바마마. 칙사 일행이 돈의문에서 광화문까지 천천히 와도 삼각(45분) 후엔 당도할 것입니다.”
여전히 일어서실 생각이 없이 윤서에게 다다다 질문을 퍼붓고 계신 전하를 보다 못한 희아가 나섰다.
며칠 있으면 이제 열 살이 되는 희아가 봉두난발이 된 세종의 머리칼과 분명 눈을 뜨시자마자 시중도 안 받고 대충 걸쳐 입으셔서 삐뚜름하게 매어진 도포의 옷고름을 훑었다.
“할바마마께서 의대 갖춰 입으시는데 최소 이각(30분)은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정전으로 악공 행렬까지 갖춰 행차하셔야 하고요.”
“그, 그렇지? 아아, 그렇구나.”
세종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책상 위에 윤서가 개발새발 그린 세계 지도를 아쉬운 눈으로 보시며 “아니 그깟 이야기 하나 도는 것이 뭔 대수라고 칙사까지 보내고 지랄이야, 지랄이.” 나지막하게 욕을 하셨다.
“!”
윤서는 놀라 세종을 바라보았다.
세계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세종께서는 중국을 벗어난 세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 세기에 본격화되는 유럽 여러 국가의 해양 진출을 맛보기로 들으신 것만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외교 관계를 고민하기 시작하셨다.
나아가 직접 명하여 확립하신 칙사 맞이 사대 절차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시는 눈치셨다.
“홍위야, 이따가 나는 명의 칙사를 향해 절을 올리는 예를 갖출 것이다. 그것은 정교한 외교 의례로, 명나라와 불필요한 분쟁을 막기 위해 행하는 예법이니라. 너도 동석해 보아두거라.”
“예, 함바마마. 언젠간 소손도 할 것이옵니다.”
“그래, 그런데 네가 세자가 되고 또 왕이 될 때엔, 으흠, 지금과 형식은 같더라도 내용은 달라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형식도 내용에 맞춰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혼잣말처럼 허공을 보며 말씀하신 세종께서, 홍위에게 손짓하셨다.
조르르 달려가 덥석 품에 안기는 우리 홍위의 손을 꼭 잡으시고 문으로 향하시며 세종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홍위야, 군주는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항해 때의 나침반처럼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할 수 있는 지식과 통찰을 갖추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 함바마마. 소손 할바마마처엄 부지언히 학문으 익히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야 한다. 그리고 윤서야.”
“예, 전하.”
“한확이 와 있다고?”
“예, 전하. 세자 저하께서 한확에게 먼저 사람을 보내셨답니다.”
“그래. 그럼 가서 칙사를 만나보자꾸나.”
전하께서 홍위와 함께 드디어 천추전 밖으로 나서셨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