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윤서의 미래 평판
“윤서야, 내 생각해 둔 바를 말할 터이니 너의 의견을 고하거라.”
새해가 되기 이틀 전, 궁궐 모두 새해 맞이와, 2월 초하루 있을 새 국왕의 즉위식 준비로 정신없이 들썩이는데 아침 수라를 물린 세종께서 윤서를 천추전으로 따로 부르셨다.
새해가 밝기 전 확인하고 정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서가 뜬금없이 중전을 안 하겠다는 말을 한 다음 날, 곧 공주가 될 평창 군주 희아가 따로 세종을 찾아 간곡히 고한 바가 있었다.
사내아이면서도 윤서 품에 커서인지 다정다감한 애정 표현이 스스럼없는 홍위와 달리 희아는 희로애락의 표현이 많지 않았다.
포악한 폐빈 봉씨 치하에서 어미가 양원으로 연일 고초를 겪었던 시기에 희아가 생겨났고,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책봉된 후 짧은 평온을 누리다 곧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사가에 홀로 나가 살게 되었다. 어린 아이로 겪어온 고단한 세월 속에서 희아는 때 이르게 조숙하며 표정이 적어졌다고, 을 읽으신 후 세종은 늘 손녀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리게 생각했다.
그런 희아가 홀로 천추전에 들어 아뢴 바는 세종도, 왕실의 어른 그 누구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었다.
“곧 어마마마가 되실 권 승휘가 돌아가신 어마마마의 본방 나인 출신이라 하여 업수이 여기며 참소를 지어내는 무리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모신 자로 의리도 없이 아바마마를 유혹하였다는 말에서부터, 심지어 권 승휘가 세자빈이 되기 위해 뱃속의 제 자식도 돌보지 않고 홍위를 구하러 나서 기어이 소원을 이루었는데, 금똥이가 무사히 태어났으니 그 권력 욕심이 장차 어찌 되겠냐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희아의 말은 에두름 없이 노골적이었다.
“사람 셋의 혀는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내는 법이오니, 권 승휘를 저의 외가 권문의 양딸로 입적하여 이런 잡말을 없애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할바마마.”
희아는 열 살이 되면 슬슬 자신의 혼인 말이 나올 것이란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자신마저 궐을 떠나게 되면 ‘천한’ 출신으로 중전이 된 권 승휘가 여러 뒷말에 시달리다가 어제 같은 일이 생길까 하는 우려에 미리 뒷배를 만들어줄 생각을 해낸 것이었다.
“권 승휘가 네게 그리 고하라고······.”
오해한 세종께서 불쾌한 어조로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빤히 응시하는 투명한 희아의 시선 속에서 불현듯 켕기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서는 진실로 아이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구나.’
어제 중전이 희아까지 윤서 손을 꼭 잡고 놓칠까 두려워하더라는 말과, 나중에 은밀히 부른 엄자치가,
“협경당 밖까지 자가께서 ‘어머니도 안 해줄 거면서, 왜 어머니처럼 사랑을 준 건데. 왜! 주었다가 도로 가져가려는 건데! 왜!’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궁인이 많습니다.”
하고 고한 말도 떠올랐다.
“그래, 알겠다. 희아 네가 참으로 기특하구나.”
“권 승휘에게서 고금의 역사를 배운 덕분입니다.”
‘할바마마께서는 같은 내용을 들으시고도 왜 권 승휘의 처지를 살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하는 어조가 분명한 말을 남기고 희아가 물러난 후,
세종께선 장차 변화에 핵심 지식을 제공하는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셨다.
그러다 문득 “제가 아바마마처럼 오래 살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오니,”하고 자신을 안심시키던 세자의 말을 떠올리셨다.
‘향이를 상대로가 아니었나!?’
향이가 일찍 죽어서 홍위에게 밀어닥치는 비극을 보아서 권윤서가 그리 처음부터 홍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인가.
조금 더 선명하게 미래를 알고 싶으시면서도, 다른 아들들을 위해 차마 아시고 싶지 않은 애끓는 부정(父情) 사이에서 세종이 홀로 깊게 생각하신 끝에 내린 결론은 이향이 내렸던 결론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미래 지식으로 이미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니, 변화가 없었을 때 생겨났을 미래를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제 할 일을 다 해야 천명을 감동시켜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이니.’
당장 현안에 분주할 새로운 왕을 위해서라도 상왕으로 물러앉을 자신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한다.
그리 결론 지으신 세종께서 사흘 동안 대략의 안을 촘촘히 세우신 후 윤서를 천추전으로 부르신 것이었다.
“왕이 양위를 할 때 통상 전위 교서를 내리느니라. 나 또한 태종께서 내리신 양위 교서를 받아 보위에 올랐는데, 그 교서는 급하게 지어져 미흡함이 많았다. 이번에 세자가 보위에 오르면 거의 조선을 재창업하는 수준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 그에 걸맞은 양위 교서를 내려야 하는데, 그 내용이 네가 가진 지식에 기반해야 하는 측면이 크다. 그런데, 윤서야.”
세종은 천 상궁에게 윤서 앞에 기운을 북돋는 보양차 한 잔을 놓게 하신 후, 다시 물으셨다.
“중전으로서 네게 치명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전하.”
그렇지 않아도 지난 사흘간 홍위와 희아에게 상처 준 것을 자책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얻은 자신감으로 ‘새엄마라서 이러한 것인가’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검열하던 마음을 멈추고 나서야 얻은 심리적 여유에서, 윤서는 왜 자신이 갑자기 예정된 중전의 책봉을 거부하고 싶었는지 진정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윤서는 깨달은 바를 세종께 고하였다.
“중전이 될 자로서 제가 가진 가장 큰 결함은 남들 앞에 서는 삶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옵니다.”
그것은 소수의 인간과 마음을 나누고 대개의 시간을 홀로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거나, 홀로 오래 달리거나 연구를 하거나 하는 극도의 내향적 기질을 지니고 일평생 살아온 자가 갑자기 만백성의 어머니인 국모가 되어 모두의 시선에 노출되고 판단 받은 공인(公人)의 삶을 살게 된 데서 오는 극도의 ‘버거움’이었다.
타고나고 살아온 기질과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살아야 미래에 대해, 조선에 온 후 온갖 당면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외면하며 억압해 온 심리적 압박감에 무의식이 내지른 절규 같은 것이었다.
이틀 전 오랜만에 서로를 아낌없이 탐하는 노곤함 끝에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을 윤서가 털어놓았을 때, 이향은
“그렇지 않아도 요새 부인을 보면 옷깃 한 번 마음 놓고 풀어놓지 못하던 지난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소. 내 마음은 그리 잘 읽어주면서 왜 자신의 마음은 그리 외면하는 거요? 그렇게 무리하다가 내가 단명하였듯 부인이 단명하면 나는 어찌하고 우리 애들은, 그리고 아바마마와 우리 조선은 또 어찌하라고, 응? 이따금 몸과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과 행위를 적극적으로 찾으시오. 내 아낌없이 뒷받침할 터이니.”
하고 말하며 마치 그중 하나가 뜨거운 밤의 행위라는 듯 다시금 거리낌 없이 파고들었던 것이었다.
농밀했던 밤의 기억이 떠올라 귓불을 새빨갛게 붉히며 윤서는 원인을 파악했으니 달라진 환경에 맞춰 기질을 바꾸기로 한 결심을 세종께 상세히 고하였다.
“하오나 이제 중전이 될 것이오니, 다양한 사람을 두루 만나 일을 처리함에 무리가 없도록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다, 윤서야. 틀렸다.”
“···예? 그럼, 무엇인지 가르쳐 주옵소서. 힘껏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세종께옵서 전에 그리하셨듯 “또! 또!” 외치시며 흡족한 답변이 나올 때까지 밀어붙이실까 봐 윤서는 서둘러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렇게 청하여도 가차 없이 답을 내라 요구하시던 세종께서 이날은 먼저 답을 일러주셨다.
“최고의 권력자는, 그리고 언제든 최고 권력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위치인 중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평판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하다.
희아의 말을 들으신 후 윤서의 처지에 대해 깊게 짚어보시던 세종은 문득 “제가 아바마마처럼 오래 살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오니,”라는 세자의 말까지 떠올린 참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말에 맞춰 중전이 된 윤서의 처지뿐 아니라 장차 조선의 처지를 주역의 궤의 이치에 기대 다각도로 짚어보신 바였다.
‘개혁의 혁(革)은 64괘 중 49번째 택화혁(澤火革)으로, 쓰임새를 다한 우물의 물을 아래의 불이 타올라 말리는 형상, 즉 세상이 근원적으로 바뀜을 의미한다. 그러나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니 불이 물을 태울 수 있도록 절묘하게 시기를 잡아야 하고, 이 시기를 정하기가 지극히 어려워 개혁의 성공에는 천명(天命)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또한 개혁이 생겨났다 하여도 시일이 지나야만 그 변화가 안착하니, 이 점을 공자께선 ’혁은 하루가 지나야 마침내 미더움이 생겨나니‘라 하셨느니.’
양위를 통해 새로 임금을 세워 가열차게 개혁을 추진하던 와중 신왕이 때 이르게 훙(薨)하기라도 하면!
성급하게 개혁의 칼날을 빼들었다가 감당하지 못하여 망한 왕조가 사기와 역사서에 차고 넘친다.
그렇게 중도에 멈추게 되어 대혼란에 빠지게 될 바엔 차라리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유지하면서 향이 오래 사는 것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아니 윤서의 지식을 모를 때 세종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한 자신의 우애 깊은 아들들이 세자와 세손을 보필해 자신이 개혁을 통해 일궈낸 치세를 이어가리라고 굳게 믿어온 바였다.
‘하지만 군주가 되어 백성을 더 윤택하게, 나라를 더 부강하게 할 방도를 알면서 어찌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희아의 말로 촉발된 세종의 고뇌였다.
그리하여 세종께서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결국 유사시 홍위와 보위를 함께 지켜야 할 권윤서에게 이 점을 단단히 각인하고자 불러들이신 것이었다.
좀 전에 답을 친절하게 일러주셨던 세종께서 윤서에게 다시 물으시기 시작하셨다.
“새 왕이 네가 가진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을 바꿔가면서도 동시에 네가 그 지식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감춰야 중전으로서 네 평판을 유지할 수 있다. 왜 감춰야 하는지 말하거라.”
“!”
그렇다면 왜 전에 화폐 개혁안이 제 머리에서 나왔단 사실을 신료들 앞에 보이셨습니까.
반사적으로 여쭈려던 윤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은 세종께서 미래를 짐작하시기 전에 벌어졌던 일이란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기필코 성공적인 중전이 되기로 굳세게 마음 먹은 윤서는 가진 지식과 지혜를 모두 짜내기 시작했다.
“개혁에는 필연적으로 반발이 따르는데, 그 반발과 원망이 자칫 저에게 향할 수 있어서입니다.”
“왜 중전인 네게 반발과 원망이 향하면 아니 되는 것이냐?”
“······!”
윤서는 문득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세종과 지내는 시간이 길수록, 가진 지식을 나눠드리면 드릴수록 윤서도 세종처럼 휙휙휙 요점을 짚어 몇 단계 앞을 보는 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오늘 세종께서 내놓으라 하는 답의 정체를 읽어내게 되었다.
윤서의 얼굴에서 대번에 핏기가 사라졌다.
“전하!”
“고하거라!”
“싫습니다.”
“윤서야!”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네, 감히!” 진노하셨을 전하는 그저 물끄러미 며느리를 바라보셨고,
벌써 이미 납작 엎드려 벌벌 떨며 바라시는 답을 고했을 윤서도 불경하게 입을 꾹 다문 채 허공만 쏘아보았다.
“······.”
“······.”
한참의 침묵 후 깊은 한숨을 내쉰 세종께서 윤서에게 굽혀주셨다.
“언령(言靈)의 힘이라도 깃들까 두려워 말하지 않으려 하는 네 마음을 내 이해한다. 그렇지만 네 지식의 출처가 너인 것이 알려지면 아니 되는 것은 이미 이해하였으니, 누굴 대리로 내세울지 말하거라.”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을 입 밖에 내라 하신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던 윤서도, 깊은 한숨으로 불안을 날리고 다시 공손히 답을 올렸다.
“고금을 통틀어 천재로 꼽히시는 전하께서 이미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오래 산다더냐?”
“······!”
세종께선 자신의 사후 원래의 역사에서처럼 이향이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의 일을 가정해 말씀하시는 바였다.
한창 벌어질 개혁의 와중에 신왕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간 쌓인 기득권의 분노는 당연히 그 개혁의 근원인 중전에게 향할 것이고, 그건 홍위의 입지를 약화시킬 강력한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을 우려하시는 바였다.
‘임금의 일이란, 왕업이란 이토록 치밀해야 하는가.’
눈을 감고 생각을 더듬던 윤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전이 되기로 한 바, 중전의 길을 가야 할 때였다.
“광평 대군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목숨을 빚진 자였으므로, 이만큼은 요구해도 될 터였다.
“좋다! 새해 초이틀부터 광평 대군이 여기 와, 향이의 즉위 교서에 담길 개혁안의 이론 기반을 함께 만들 것이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