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우리는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
지식의 출처를 다른 이로 위장하자는 말씀이 윤서를 현덕 왕후의 동생으로 입적하자는 희아의 말에서 시작되었단 사실을 듣고 난 후 천추전을 나왔을 때.
사정전 뜰은 오후부터 있을 각종 나례 의식으로 분주하였다.
화려한 산 모양 사이사이 사찰과 석탑, 백학 등의 새와 사슴 등의 산짐승을 만들어 붙인 침향산 조각이 우뚝하니 서 있고, 그 옆에서 학춤 등 각종 동물 춤과 접시돌리기와 물구나무서기, 줄타기 등 각종 재주를 공연할 재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 오후에 여기 사정전과 근정전 뜰에서 각종 나례가 열리고 밤에는 불운과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붉은 옷을 입고 무서운 가면을 쓴 십대 아이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궐 곳곳을 다닌 후, 방상시 가면을 쓴 무리가 방패와 창을 휘두르며 싸움을 벌이고, 또 여악이 처용무를 춘 후 마지막으로 총포를 세 번 쏘는 제석 나례가 열리게 된다.
이를 보기 위해 오후부터는 왕족과 고위 신료의 가족들이 모두 입궐할 예정이었다.
윤서가 예비 중전으로서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서는 날이기도 하였다.
윤서가 뜰에 내려서자 분주하게 일을 보던 궁인과 재인 모두 땅에 엎드리고, 대기하고 있던 조 상궁이 나인 스무 명과 함께 재빨리 윤서의 사방을 에워쌌다.
혹여 있을지 모를 신변 위협의 사태에 대비하고 천한 무리에게서 윤서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윤서는 정교하게 꾸며진 침향산 조각과, 무희가 숨어 있다가 나와 춤을 출 커다란 연꽃 무대 등을 둘러보며, 또 조아린 사람들의 등을 훑어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며.
협경당에 돌아온 윤서는 희아부터 찾았다.
번잡스러움을 싫어하는 희아는 윤서의 서재 전각에서 서책을······. 아니, 윤서가 요전 날 정신없이 써놓았던 종이 뭉치를 읽고 있었다.
“······.”
“······.”
시선이 부딪치고, 윤서는 빠르게 걸어가 희아가 앉은 의자 뒤에 서서, 희아의 어깨를 안았다.
너무 친밀한 접촉에 희아는 몸을 굳히면서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제가 이상한 사람인 거, 알고 있죠?”
“···응.”
“그런데도 부부인 댁에 양녀로 들어갈 수 있게 말씀 올려줘서, 고마워요.”
“어마마마가 되실 거니까요.”
“전 사실 제 출신이 한미한 것은 그닥 신경 쓰이지 않아요.”
신분이 없던 사회에서 왔기에 천한 나인 출신이라고 숙덕거리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은 다른 말들이었어요.”
계모라서 금똥이를 위해 홍위를 해치려 들 것이란 말이 가장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제부턴 신경 쓰지 않으려고요. 제가 두 분 아기씨의 친모였어도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니까.”
“응.”
그것이 왕실의 숙명이다.
“돌아가신 빈 마노라의 동생으로 입적하게 되면 우리가 모녀 관계와 더불어 또 아주 가까운 혈족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진실로 기뻐요. 언제 빈께서 태어나신 합덕의 사가에도 함께 가요.”
“응!”
현덕왕후가 태어난 사가가 충청도 합덕에 있었다. 합덕은 윤서가 현대에서 자란 홍성과 바로 지척이기도 하였다.
19대 조상 현덕왕후의 여동생이 되는 것은 이제 과거의 삶을 잊고 온전히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하라는 신의 계시 같았다. 19대 남과 같은 먼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이제 정말로 이 시대 인간으로 이 조선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라는 계시와도 같은 제안이 다른 이도 아닌 딸 희아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윤서를 지극히 기쁘게 했다.
이곳의 삶을 버거워하며 일종의 해리 증상처럼 온전한 정신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자아의 한 조각을 보살피는데 오롯하게 보냈던 지난 며칠을 이제 종료해도 된다는 격려의 손짓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윤서는 희아의 어깨를 단단히 안으며 다짐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야지, 어린 자식이 부모 걱정하게 하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정말로, 미안해요. 이제부터는 잘할 수 있을 거에요.”
“···이제까지도 넘치게 잘하셨어요, 어마마마.”
“······!”
“······.”
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따스한 체온의 교감이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채웠다.
이윽고 윤서는 몸을 떼어내고, 희아의 곁에 앉아 눈을 맞추며 좀 짓궂게 물었다.
“이따가 나례가 열릴 때 한성부윤과 중추원 부사를 지낸 정충경의 식솔들도 올 거에요. 한번 인사 나누시겠어요?”
“으응? 왜?”
왜냐하면 정충경의 아들이 바로 정종, 당신을 지극히 아꼈던 미래의 반려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과 딸이 모두 자가 또래에 수려하고 재예가 빼어나다고 해서, 좋은 친우가 될 듯해서요.”
“······.”
다른 때 같으면 번잡한 만남이 싫다면서 거절했을 희아가 맑은 눈동자로 윤서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앞에 수북하게 쌓인 종이 뭉치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기이한 안목을 가지신 어머니께서 권하시니, 만나보겠어요.”
“···그럼 이 종이 뭉치 그만 보고 어서 건너가 차비를 해야지요.”
채근하며 윤서는 ‘아휴. 세종의 핏줄은 하나같이 쉽지가 않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세자 저하, 권 승휘 마마님 드셨습니다.”
희아를 만난 후 홍위 옷을 점검해주기 위해 윤서가 비현각에 왔다. 홍위가 이향과 함께 비현각에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관이 고하자 “드시라 하라.”는 이향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
안에는 이향과 홍위와 함께 광평 대군과 성삼문과 신숙주가 들어 있었다.
“저, 세손 각하 의대 때문에 왔습니다.”
뜻밖의 인물들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고하자, 신숙주가 바쁘게 앞으로 걸어와 허리를 깊게 굽혔다.
“북방의 여러 여진족 무리가 두창 예방 침을 맞게 되어 우리 조선에 크나큰 은덕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에는 하사품이나 바라며 마지못해 입조하였는데 올해는 지역 특산품을 정성스럽게 마련하여 상경하여 전하를 알현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신숙주가 이리 반갑게 와 고하는 것은 한참 전 혜민국에서 종기 시술을 받고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부러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게 하였던 윤서로는 적이 찔리는 일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윤서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추운 지역에서 전하의 은덕을 전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술하신 해동제국기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하하, 보셨습니까? 졸저이긴 하오나 수,”
‘수양 대군’이라 말하던 신숙주는 재빨리 말을 삼키고 다시 고하였다.
“대군 자가의 유구국과 더 먼 항해에 도움이 되었기에 아주 기쁩니다. 장차 우리 조선이 더욱 해양 경영에 힘쓸 것이란 세자 저하의 말씀이 있으시어 자료를 더 구체적으로 보강하고 있습니다. 완성되는 대로 승휘 마마님께도 한 부 올리겠습니다.”
신숙주는 확실히 권력의 향방에 기민했다. 그리고 그 야망을 빼어난 성과를 통해 실현하는 데 능했다.
“잠시 들어오겠소?”
앞에 큰 지도를 펼치고 무릎에 홍위를 앉히고 있는 이향이 손짓하였다.
윤서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이향을 오롯하게 시선 안에 담았다. 아까 천추전에서 세종께서 하셨던 말씀, 이향이 역사에서처럼 사라질 경우를 염두에 둔 말씀이 머릿속을 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똥이가 태어났고, 내가 중전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역사의 궤적을 타기 시작했다는 뜻. 만기친람(萬機親覽)하시며 아주 작은 가능성까지 미리 대비하시는 전하의 치밀함이 빚어내시는 우려이실 뿐이다.’
윤서가 들어오지도 않고 입구에 서서 자신만 열심히 바라보자, 이향은 싱긋 웃고는 의자에서 일어서 홍위를 안고 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홍위를 넘기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터럭 하나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수려한 내 외모에 새삼 또 반한 것이오?”
“!”
우리 홍위도 듣는데.
윤서는 화라락 얼굴을 붉히며 얼른 홍위를 받아안았다.
“세손 각하 모시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윤서가 말하자 홍위가 윤서 목을 안고 성삼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까 스승님이 내가 논어 푸이(풀이)를 아주 자한다고 칭찬하셨어요.”
홍위는 자랑이 하고 싶은 것이었다.
윤서는 홍위를 단단히 안고 성삼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리 세손 각하를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상 앞에 서 있던 성삼문도 마주 읍하고 윤서에게 답례하였다.
“아유, 아닙니다. 우리 세손 각하께서는 아주 창의적으로 해석을 잘하셔서 소신이 오히려 배울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언영색(巧言令色) 선의인(鮮矣仁)’의 어구를 바르게 풀이하신 후 각하께서 또 덧붙이시길 ‘우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화를 내 버릇하면 별것 아닌 일에도 자꾸 노여워하는 화쟁이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속일 의도가 있어 낯빛을 꾸미는 아첨을 경계하신 말씀이지 평소에 부드러운 말과 표정을 짓는 것을 경계한 성현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셨습니다.”
세상에, 우리 홍위!
내 앞에선 늘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아기이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의젓하고 총명한 왕재를 아낌없이 내보이는구나.
윤서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광대 저 위까지 쭉 끌어올린 채 함박웃음을 짓고 뿌듯함과 감격에 촉촉하게 젖어오는 눈망울로 “아, 우리 세손 각하께서 워낙 총명하십니다.”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
“!”
비현각에 든 모든 이들이 일시에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권 승휘의 자랑과 기쁨이 예법에 안 맞게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인.”
이향은 못 말린다는 듯 윤서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가 놓고, 광평 대군은 고개를 흔들며 놀렸다.
“아유, 형수님. 그럴 땐 ‘스승님께서 워낙 잘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하셔야지, 어찌 그리 대책 없이 자랑이십니까? 우리 형수님 가만 보면 눈치가 참 없으십니다.”
와하하하.
비현각이 젊은 사내들의 웃음소리로 들썩였다. 이들의 웃음에는 벌써 세간에서 수군거리는 ‘장차 중전이 될 후궁이 보통이 아니어서 염려’라는 말이 별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오는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거짓으로 애정을 표한다고 하기에는 단정하였던 여인의 얼굴 전체가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어지며 기쁨과 애정으로 강렬하게 빛을 내었기 때문이다.
윤서는 다른 의미로 더욱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성삼문과 신숙주, 그리고 광평 대군이 이향과 홍위와 보기 좋게 국정을 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앞으로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그리고 홍위가 보위를 이어받기에 딱 좋을 삼십 년 후에도 이렇게 함께 모여 그때는 훨씬 더 강대하고 부유할 조선의 국정을 논하고 있으리란 기대로 심장이 벅차게 두근거렸다.
*****
은사로 정교하게 용을 수 놓은 용보가 달린 아청색 곤룡포를 입히고 머리에 익선관을 씌워 홍위를 근정전으로 보낸 후.
윤서도 본격적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복(福) 수(壽) 등의 문자가 석류, 여지 등의 화초 모양과 함께 금실로 정교하게 수 놓인 붉은색 스란치마에 연두빛 장삼을 입고, 원래의 머리카락에 가채를 두 단이나 얹어 둥그렇게 어여머리를 하고 중전마마께 받은 떨잠과, 이향에게서 받은 청옥 비녀를 하였다.
“이렇게 마구 꽂다간 목 부러지겠는데.”
조 상궁이 산호가 달린 뒤꽂이를 벌써 네 개째 꽂길래 윤서가 걱정스럽게 말했더니, 늘 공손한 조 상궁이 눈을 부릅떴다.
“어허, 마마. 오늘이 무슨 날인데 그리 순진한 말씀을 하십니까?”
“좀 있으면 어두워져서 보이기나······.”
“어두워진 후 빼시면 됩니다!”
옆에서 금똥이를 어르며 지켜보던 매금이가 딱 한 마디 하였다.
“닭 벼슬!”
“!”
“!”
조 상궁과 시녀들의 눈이 매섭게 매금이를 흘겼다.
조 상궁과 협경당의 꾸밈 담당 나인들이 심혈을 기울인 어마어마한 꾸밈을 마친 후, 윤서는 뜰에서 기다리고 있던 희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사정전으로 나아갔다.
화려한 차일이 드리우고 온갖 종이꽃과 음식이 화려하게 차려진 상석에 중전마마와 전하의 후궁은 아직 도착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동쪽 편, 동궁의 후궁이 자리하는 곳에 정 승휘, 문 승휘, 양 승휘, 작은 권 승휘, 양 사칙과 종친의 부인들이 모두 화려하게 성장을 한 채 앉아 있었다. 또 서쪽 편으로는 벼슬 높은 반가의 부인과 여식들이 성장을 한 채 눈을 빛내고 있었다.
오늘 윤서의 자리는 후궁들 쪽이 아닌, 중전마마와 정의 공주 옆에 마련되어 있다. 장차 중전의 책봉이 예정된 예비 중전에 대한 예우였다.
윤서가 스물이 넘는 상궁과 궁인을 뒤에 거느리고 희아의 손을 잡은 채 뜰을 가로질러 관람석으로 오를 때.
곧 공연을 선보일 재인과 여악과 악공과 귀한 신분의 여인들까지.
모두의 눈이 고작 보모 나인이었으나 곧 가장 고귀해질 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따랐다.
빛나는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