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선천적 왕족과 후천적 왕족의 격돌 (2)
“지성미 넘치는 어린 것이, 그 색다른 면을 부두다각하여 유혹하면 늘 문자깨나 안다고 자부하길 좋아하는 사대부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너무 나가는데.
말은 ‘사대부’라 하였지만 ‘문자깨나 안다’는 대목이 ‘지성미’랑 결합하면 누구와 누구를 가리키고자 하는지 그 의도가 너무 적나라했다.
윤서는 대체 누가 저리 겁도 없이 혀를 놀리는가 고개를 돌렸다.
중전과 곧 중전이 될 윤서가 중앙에 앉고, 그 양옆으로는 경정 공주, 정순 공주, 그리고 정의 공주가 앉아 있다. 그리고 옹주들은 그보다 한 뼘가량 낮은 단에 좌우로 벌려 중전마마의 옥안을 삼가 우러러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삼십 대 중반께 되어서 술기운에 눈빛이 흐려진 옹주가 입꼬리를 불온하게 움찔거리며 중전마마께 고하고 있었다.
“선왕 후궁 선빈 안씨 소생 경신 옹주야. 왜 그, 애들 놀다 말다툼한 것으로 자기 아들 젖어미이기도 했던 노비 매를 쳐 죽게 한 일로 시끄러웠던.”
“!”
아직 궐의 내외명부 인사의 얼굴이 낯선 윤서를 위해 정의 공주가 설명해 주었다.
“그 모친 되시는 선빈도 정신 옹주 부군인 영평군과 집을 두고 송사를 벌이고 해서, 모녀가 다 시끄럽고 사나워요.”
정의 공주가 귀에 속삭이는데, 윤서의 시선에 옹주 자리 말석에 앉아 있는 낯익은 옹주가 잡혔다. 옹주 중 유일하게 세종의 소생인 정현 옹주로, 죽은 윤씨와 가까운 일족인 파평 윤씨 가문의 며느리였다.
‘그리고 남편인 윤사로와 더불어 훗날 한명회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면서, 세조의 부인 윤씨와 더불어 조선 전기 거의 왕비 자리를 독식하는 파평 윤씨 세력의 중추가 되었지.’
조선 후기가 왕비 자리를 독식하며 왕권을 농단한 안동 김씨의 천하였다면, 조선 전기는 파평 윤씨 가문의 입김이 막강하였으니, 그 시대가 좋았던가.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시야도 달라진다.
나인이나 후궁 시절 같으면 우리 홍위가 죽어갈 때 세조 편에 섰던 이들을 맹렬하게 적대시하였겠지만, 중전이 될 자리에 서자 이제 그자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저들이 우리 이향의 치세에, 그리하여 먼 훗날 우리 홍위의 치세에 도움이 될 세력인가.
아무리 전제 군주 국가라도 통치는 국왕의 권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나라를 배경으로 국왕이 막강한 토지와 인구를 점유한 권문세족과 손을 잡고 권력을 유지하던 것이 고려라면,
조선은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옹주들, 대군과 군의 부인들 및 그들과 어지러이 혼맥으로 묶인 소수의 몇몇 가문이 관직과 부를 나눠 갖는 형태로 권력이 유지되고 있다.
‘당장 옆에 앉아 있는 정의 공주도 우리 홍위의 위기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세조 즉위 후 정인지와 한확의 자녀와 혼맥을 맺으며 변함없이 부귀영화를 누렸고, 우리 홍위를 위해 애쓰다가 교형을 당하셨던 저기 귀인 양씨는 사육신 중 하나인 박팽년을 사위로 두었다.’
누구와 혼인 관계에 있었느냐가 역사에서 계속 부귀영화를 누렸느냐 아니면 본인은 거열형 후 팔도에 조리 돌림을 당하고 처자식은 어제까지 혼맥과 친분을 나누던 가문에 노비로 분배되는가에 하나의 중요 변수로 작용하였으니.
물론 혼인 관계도 없이 끝까지 충성을 다한 우리 홍위 스승님 성삼문을 비롯해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도 계셨으니. 과연 극한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까지 잊게 만드는 충성심이란 무엇인가.
이런 두서없는 생각을 하느라 등롱 불빛 아래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현 옹주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더니, 시선을 느낀 정현 옹주도 고개를 돌려 윤서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경신 옹주의 불경한 말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가진 건 젊은 몸뚱아리 밖에 없는 천한 것들이 얼마나 처절하겠습니까? 그 필사적인 수완에 안 넘어갈 사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궐에서도 천한 나인이며 무수리까지, 지존을 꿈꾸며 얼마나 수들을 써댈지 앞날이 훤합니다!”
“!”
선을 넘어도 너무 넘어 더는 들어줄 수가 없다.
윤서는 정현 옹주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고정한 채 중전마마 쪽으로 몸을 기울여 고하였다.
“중전마마, 옹주 자가께서 심히 불효하니 엄벌하옵소서.”
“응?”
“옹주 자가들께옵선 낳아주신 모친의 혈통을 아예 무시함으로써 천륜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
이제껏 험한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시어 끓어오르는 노여움을 참고 계시던 소헌 왕후께서 입매를 팽팽하게 굳혔다. 태종의 옹주들을 상대로 화장품과 비누를 파는 상점의 출입을 금한다거나 혜민국의 이용을 금지하는 등의 처벌은 자칫 편파적인 보복의 처사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방금 윤서가 말한 것엔 명분이 차고 넘쳤다.
윤서는 정현 옹주를 향해 싱긋 웃어보며 소헌 왕후께 또 고하였다.
“옹주의 발언 속에 담긴 패륜적 모순은 같은 처지의 옹주가 발언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정현 옹주에게 하문하소서.”
같은 항렬의 태종의 소생보다 딸뻘의 정현 옹주에게 하문하게 하는 편이 낫다는 윤서의 말에 소헌 왕후께서도 정현 옹주에게 시선을 돌리셨다.
“······!”
갑자기 현 중전과 차기 중전의 시선을 함께 받은 정현 옹주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죽은 윤씨에게서 원손의 보모 나인 권가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현 옹주는 ‘그깟 나인 나부랭이가 뭘 할 수 있다고. 호들갑은.’ 하고 무시했었다.
그러나 기어이 목석으로 정평이 난 세자 오라버니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아이, 그것도 손 귀한 왕실에 아들을 턱 낳고도 여전히 소녀처럼 앳된 외양인 권 승휘가 의중을 알 수 없는 의뭉한 눈빛으로 자신을 직시하며 중전께 무어라 고하는 모습을 보자니 일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듣자 하니 아바마마께서 연일 천추전으로 불러들여 학당 교재를 만들고 계시다던데. 그렇다는 소리는 정의 공주 언니처럼 총명하다는 말인가. 아까 내가 무어라 했었지?’
[그렇지요. 무엇보다 지엄한 왕실과 한낱 여염의 가문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닌데도, 앞으로 첩년에게 홀린 자들이 정실 부인을 몰아낸다고 할까 근심들이 크더이다.]이 정도면, 이 정도면 그저 항간의 말을 옮겼을 뿐이니 설마 이 말을 꼬투리잡진 못할 것이다.
정현 옹주가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랠 때였다.
“경신 옹주 말씀은 참,”
중전마마께서 시선을 돌려 방금까지 선 세게 넘은 발언을 뱉은 후 또 술잔을 들고 있는 경신 옹주를 보며 싸늘하게 일갈하셨다.
“언제 들어도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군요.”
“!”
“!”
“!”
관람석에 앉은 여인의 눈이 모두 중전마마께 쏠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한 수위를 타는 경신 옹주의 발언에 그 당사자인 애송이 권가가 어찌 나올까 모두 눈은 방금 화르르륵 한 자는 되게 입에서 불을 내뿜는 재인에게 두고 귀는 모두 최상단의 관람석에 초집중해 있던 여인들이었다.
“악공과 재인은 잠시 공연을 중단하라.”
중전마마의 명이 떨어지자 공연 중이던 이들이 모두 언 땅 위에 납작 엎드렸다. 어둠처럼 짙게 내린 침묵 사이로 저 앞 근정전에서 흥성스러운 풍악 소리와 “와아” 하는 감탄음이 담벼락을 넘어왔다.
“왕가의 혼사를 두고 여염에 나가 있는 옹주가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불경하고 불온한 일이나 선왕의 혈육으로 굳이 말을 보태고자 한다면 들어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말에 큰 어폐가 담겨 있느니. 정현 옹주, 말하거라.”
“예? 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갑자기 지목당한 정현 옹주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까 네가 무어라 하였느냐?”
소헌 왕후께서 하문하시자, 정현 옹주는 구원을 청하듯 중전마마 뒤쪽에 시립해 있는 생모 상침 송씨를 바라보았다.
송씨는 승은을 입어 옹주를 낳고도 후궁의 작위를 받지 못하고 여전히 정5품 상침의 궁관 직에 머물러 오늘 제석 나례의 귀빈을 모시는 일을 총괄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입조심 하라 그리 손짓을 하였거늘.’
오랫동안 임금과 중전을 모셔온 송씨는 실은 아까부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른 옹주의 말을 거들지 말라 딸에게 주의를 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중전께서 말씀을 하시고야 딸의 시선을 잡은 송씨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
고개를 갸웃하던 정현 옹주는 거듭하여 자신을 가리키는 생모의 손짓을 보고서야 중전마마의 하문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정현 옹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를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중전마마 앞으로 가, 차가운 나무판자 위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완전하고도 온전한 사죄의 자세이자 복종의 자세였다.
“중전마마, 제가 잠시 분수를 잊고 실언을 하였나이다. 용서하시옵소서.”
“?”
“?”
“?”
당대의 거부 윤사로 가문에 하가(下嫁)하였기에 고작 이십 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고모뻘의 선대 왕 소생 옹주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거들먹거리길 즐기던 정현 옹주였다.
공주 앞에서마저 당당하기만 하던 옹주가 납작 머리를 조아리자, 방금 내키는 대로 말을 했던 경신 옹주와 신빈 신씨 소생의 옹주들까지 모두 의아하고도 불안한 마음으로 조카 옹주를 주시했다.
“무엇을 잘못하였느냐? 경신 옹주와 네가 한 발언을 그대로 읊고, 그 발언에서 무엇이 패륜적 모순을 넘어 내 묻고자 하면 강상의 죄까지 물을 수 있는지, 고하거라!”
강상의 죄라니. 패륜적 불효에 대해 당사자는 사형에 처하고 가족은 변방으로 쫓아내는 강상죄를 중전마마께서 입에 담으시다니.
옹주들은 수군거리고, 네 명의 공주는 피식 입을 비틀었다. 특히 정의 공주는 윤서에게 슬쩍 몸을 기울이고 “속이 다 시원하네요.” 속삭였다.
“고하라는데도!”
“‘첩년에게 홀린 자들이 정실 부인을 몰아낸다고 할까 근심들이 크더이다’ 한 저의 발언은, 저를 낳아주신 분께서 정실의 처지가 아님을 망각하여 뱉은 지극히 불효하고 무도한 발언이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
“!”
그제야 태종의 후궁 소생 옹주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특히 신빈 신씨 소생의 옹주들은, 자신의 생모야말로 원경 왕후를 모시던 몸종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기억해내고 후다닥 몸을 일으켜 정현 옹주의 옆에 가 머리를 조아렸다.
뒤늦게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세게 선을 넘은 발언을 한 경신 옹주가 철퍼덕 엎드리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중전마마.” 외쳤다.
소헌 왕후께서는 오래도록 엎드린 옹주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권위를 세웠어도 되련만.
“지엄하신 주상 전하께서 왕실의 대통을 이을 세손의 목숨을 구하고 또한 세손을 보필할 왕손을 낳았음을 어여삐 여겨 안타까이 돌아간 고 현덕 빈의 동생 권 승휘를 장차의 중전으로 책봉하기로 정하신 바이다. 그런데 공적으로는 이 나라 국왕이시고 사적으로는 조선 왕가의 최고 어른이신 임금께서 정하신 바에 대해 사사로이 불만을 표하는 것을 넘어서 낳아준 생모의 신분까지 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다니, 너희가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송구하옵니다. 실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용서하여 주옵소서, 중전마마.”
불효는 조선에서 역모와 더불어 가장 큰 죄, 오만하던 옹주들은 지존 중전마마의 노여움 앞에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하게 용서를 구하였다.
“패륜적 발언을 한 옹주 모두 전하께서 새로이 만드신 정음 문자로 반성의 글을 지어내고, 특히 경신 옹주.”
“예, 중전마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경신 옹주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옹주는 앞으로 일 년간 궐에 들어오지 못한다. 또한 여기 장차의 중전이 소유한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못할 것이며, 왕실에서 운영하는 혜민국을 이용할 수 없다! 옹주의 여식과 손녀 또한 학당에서 배우는 것을 일 년간 금한다!”
“중전마마, 중전마마!”
“경신 옹주를 궐 밖으로 모시어라!”
경신 옹주는 나인들에 둘러싸여 궐 밖으로 끌려 나가야 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외치는 경신 옹주의 울음섞인 애원이 길게 꼬리를 물고 울리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중전마마께서 옹주들의 무례함을 꾸짖으신 후, 재인의 공연은 곧 재개되었다가 짧게 막을 내렸다. 이어 탈을 쓴 아이들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궐 곳곳을 돌아다니는 벽사 의식이 진행되었다.
옹주와 공주, 공신과 왕실의 부인들이 모두 중전마마께 준비한 선물을 바치고 또 왕실을 선물을 받는 순서도 함께 진행되었다.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하고 공손하였다.
모두 잘못 말을 하면 여인의 아름다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화장품과 비누를 구입할 수 없고, 또 날로 치료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혜민국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될뿐더러, 명문가 사이의 교류의 중추가 되고 있는 왕실 여학당에 여식과 손녀를 보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군주 자가, 이리 오셔요.”
훗날 평창 군주 희아의 배필이 될 정종의 모친 정경부인 민씨가 중전마마께 문후를 여쭙기 위해 왔을 때, 윤서는 저 아래 앉아 있는 희아를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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