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김포 농장 순행 (2)
웃음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 눈가까지 웃음이 미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위로 치켜 올라갔지만 눈꼬리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가짜 웃음이다.
‘눈가 주름까지 접어 웃고 있다!’
구더기가 끼어 있는 냄새 나는 거름에 모두 눈을 찌푸릴 때, 혹여 가시는 썩지 않고 남아 백성의 발에 상처를 낼까를 염려하시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군주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는 걸 바로 배우고 반성하는 어린 조카 세자를 보며, 수양 대군이 눈을 휘어 웃고 있다!
“나와 조선을 위해 어디까지 헌신하는지 지켜볼 것이오.”
왕조의 틀이 잡히기까지 한신을 중용했던 한 무제 유방처럼, 장차의 해양 조선을 위해 수양을 쓸 것이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수양에게 여러 임무를 맡기는 이향과, 세종께서 내린 명을 기억하며 윤서는 금똥이를 안고 수양 대군에게 향했다.
이틀 전, 세종께서는 소리를 듣지 못해 입술을 읽지 못하면 완벽한 고요 속에 살고 있는 천 상궁마저 천추전 밖으로 물리시고 윤서에게 명하셨다.
“노비를 서른 구 넘게 뇌물로 착복한 조말생조차, 온갖 파렴치한 짓으로 왕실을 수치에 몰아넣는 양녕조차 죽이지 않았는데, 내가, 내 아들이······. 윤서야. 네가 수양을, 아직은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은 수양을, 대비를 치유했듯 치유하여 바른길로 나가게 하거라!”
내 아들을 위태롭게 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셨던 세종은 이제 아들을 살릴 방도를 찾아내라고 명하고 계셨다. 수양이 그릇된 행동의 조짐을 보이는 순간 이향이 그를 죽일 것이란 사실을 아시기 때문이다.
일평생 일궈온 업적을 후대에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군주로서의 욕심, 양녕 대군조차 살려두었던 그 마음으로 아들을 모두 살리고 싶은 아비로서의 절절한 부정을 알기에, 그리고 그런 세종의 노력을 이향도 고스란히 물려받았기에,
윤서는 금똥이를 안고 수양 대군 옆에 다가섰다.
“대군 자가.”
윤서가 수양 대군을 이리 가까이서 직접 부른 것은 혜민국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처음 대면하는 순간부터 윤씨가 왈패를 보내 윤서를 욕보이려 한 일이 있었고, 그 이후 윤서가 도원군을 구하고 또 윤서가 윤씨를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둘 사이에는 산처럼 지대한 은원(恩怨)이 쌓여 있다.
“중전 마마.”
수양 대군은 윤서가 단오제에서 도원군을 구해준 직후 유구국에서 보냈던 서신,
[나의 목숨과도 같은 도원군까지 구해내셨고, 숨까지 불어넣어 살려내셨다니,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썼던 서신의 내용처럼 은(恩)만을 기억하기로 작심한 듯 윤서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진심은, 서로, 끝까지 알 수 없다!’
역사를 알고 있는 윤서는 어떤 모습을 보이든 수양을 끝내 신뢰할 수 없고, 그리하여 언제든 수양과 한명회는 죽여 없앨 수 있게 판을 짜 둘 것이고.
아직 역사를 살지 않은 수양 대군도 자신이 끝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 채로 현실과 야망 사이에서 현실을 살게 될 것이니.
“대군 자가, 자가의 옥피리 소리가 귀신도 못 당할 정도로 빼어나다 들었습니다.”
윤서는 인간의 무의식까지 단숨에 파고들 수 있는 그 힘 때문에 종종 교화와 타락의 수단이 동시에 되는 음악을 골라 수양 대군의 교화에 한 발을 내딛었다.
“오, 제가 요새 한강진 양녕 백부님의 별장에서 옥피를 분단 소문을 중전 마마께도 들으셨군요. 백부님의 빼어난 비파 음률에 심금을 울리는 저의 옥피리 가락 때문에 담장 밖으로 밤이슬을 맞고 서 있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침 챙겨왔으니, 이따 들려드리지요.”
“기대 하겠습니다. 제가 마침 이곳 저의 농장에서 저녁 만찬을 대접할 것이니 답례로 들려주시어요.”
웃으며 대화를 나눈 후 홍위에게로 향하며, 윤서는 수양 대군이 정말로 달라졌음을 실감하였다.
가야금도 제법 타기로 명성이 높은데도 옥피리를 입에 담은 것은 일종의 암시였다. 네가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내 다 알고 있다는 윤서의 경고를 단숨에 읽은 수양 대군은 오히려 먼저 양녕 대군과의 만남을 과시하여 윤서의 의심이 기우라고 고하고 있었다.
정말로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본심을 완벽히 숨긴 고도의 책략인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다.
*******
왕과 세자의 비나 후궁이 되면 막대한 토지를 하사받게 된다. 보통 왕의 후궁은 팔백 결을 하사받고, 세자의 후궁은 사백 결 가량을 하사받는다.
윤서는 승휘로 책봉되면서 월곶 평야 일대의 내수사 토지 오백 결과, 반송방 일대의 땅을 추가로 더 받았다. 그리고 이제 중전이 되면서 충청도 홍주 일대, 전라도 신안 일대, 평안도 정주 일대의 토지 일천 결을 추가로 받았다.
왕비와 후궁은 보통 친정에 서제소(書題所)를 세우고 차지(次知)를 두어 막대한 재산을 관리한다.
친정이 없느니만도 못한 권가 나인이었던 윤서는 서제소를 친정어머니로 생각하는 반송방의 박 상궁 마마님 댁에 두고 차지로는 박 상궁 마마님의 재산관리인 노산대와 윤서의 비서 격인 내관 강인구를 공동으로 세웠다.
오백 결이 대체 얼마나 되는 땅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윤서를 위해서 박 상궁 마마님이 붓으로 글씨를 써 정리해 주신 적이 있다.
산출량을 기준으로 하기에 결의 크기는 각각 다르지만, 1결당 삼십 섬의 쌀이 나오니, 승휘 때 일만오천 석, 왕비로 책봉되며 삼만 석의 소출이 나는 토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 이래서 승은, 승은 하였구나!”
박 상궁 마마님이 쩝쩝 입을 다실 정도로, 윤서는 조선에서 손꼽히는 땅 부자가 되었다.
물론 토지를 완전히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 결당 최대 스물세 말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수조권을 갖는 것이지만, 그것만 따져도 연간 삼천사백 석이 넘는 곡식과 토지에 딸린 노비 오백여 명을 소유하게 되었다!
‘모두 홍위와 금똥이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재산이니!’
승휘로 책봉되었을 때 윤서는 공장을 운영하는 일은 상업에 밝은 노산대에게 위임하고, 이곳 월곶 평야와 이후 받은 토지의 관리는 내관 강인구에게 맡겼다.
지금 여기 월곶 평야 일대엔 서른아홉 가구, 총 일백팔십칠 명의 노비가 기거하고 있다.
윤서가 강인구를 보내 처음으로 한 일은 닭을 쳐 거름 밭을 만들고 장차 인삼을 심을 밭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논에는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벼를 심고, 겨울에서 봄까지 보리를 심는 이모작을 시행하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반송방 일대 공장에서 행하는 것처럼 이곳에 소속된 노비들도 신역을 바칠 때 일 년에 쌀 한 섬씩을 더 바치면 이십 년 후 양민으로 속량해주겠다고 약속한 일이었다.
또한 세종께서 정음을 반포하신 직후에는 글을 가르칠 선생 하나를 보내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글을 배우게 하고 있다.
여기 월곶 마을의 촌장이자 내수사 공노비였던 이각주는 윤서가 주인이 된 이후 자신과 후손, 그리고 같은 노비 신분의 주민들의 밝은 미래를 확신했다.
그래서 원래 막개였던 이름을 스스로 ‘깨달은 주체’를 뜻하는 각주(覺主)라 고쳐 짓고 성은 주인인 이씨 왕족의 성을 따서 ‘이’라 붙인 후 광영의 미래를 위해 불철주야 미친 사람처럼 일하고 있다고, 강 내관이 여러 번 귀띔한 적이 있다.
그 이각주는 마을 여인들과 함께 지금 윤서를 도와 닭요리를 하고 있다.
이곳이 전하께 처음으로 하사받은 땅이기에 경복궁의 수라간에서 데려온 숙수 일행이 준비하는 일상의 궐 음식과 별개로 윤서는 독특한 음식을 세종과 소헌 왕후 등 귀빈께 대접할 계획을 일주일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주, 중전 마마, 분부하신 대로, 저기, 지, 지름이랑,”
“이 촌장. 떨지 말고 말하게. 나, 나까지, 떠, 떨려! 기름 다루는 일이라 집중이 필요한데.”
“아, 송구합니다요. 귀하신 분들은 으레 저희 같은 천것들은 벌벌 떨기를 바라시길래 부러 그리하였습니다.”
“······!”
윤서는 검게 그을린 주름진 얼굴 속에 영민하게 빛을 내는 늙은 촌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딱이네요.”
윤서 옆에서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고 큰 앞치마를 두르고 거드는 시늉을 하며 막개와 동네 아낙을 관찰하고 있던 유 소용이 윤서 귀에 속삭이며 싱긋싱긋 웃었다. 닭 칠 때는 천한 노비 노릇을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당당하게 늠름해지는 ‘쌀 찧는 돌쇠’의 전형을 발견했다는 듯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인가.’
마음의 오랜 상처를 직시할 용기를 가까스로 낸 후 실은 그 상처마저도 ‘오늘의 나’를 이루는 밑거름이란 사실을 어렵게 수용하고, 그리하여 모든 일에 자책하던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 자신도 꽤 괜찮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할 때 내담자들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걸음걸이부터 달라졌다.
이각주도 마찬가지다. 노비가 아닌 촌장의 모습을 요구하자마자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최선의 모습을 서슴없이 내보인다. 좋다. 아, 정말 좋다!
“그래. 그리 말하게. 인삼 재배가 성공하면 전국에 흩어진 내수사의 토지 중 적당한 곳에 재배법을 가르치러 다녀야 할 것인데.”
“제, 제가요?”
“응. 자네가. 그리고 여기 사는 우리 월곶 평야 주민들이.”
“······.”
“······.”
격의 없이 말하는 윤서의 태도에 저쪽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들던 수랏간 숙수와 나인들은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윤서 곁에서 시중을 들던 촌장 이가와 동네 아낙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내수사 노비들이라 오는 길에 엎드려 있던 양인들보다 차림새도 영양 상태도 훨씬 낫다.’
노량진 쪽을 지나올 때 보니 석기 시대에나 있는 줄 알았던 움집이 많이 보였다. 한양에서 가까운 곳도 이러하니 지방은 어떠할지.
동전을 만들고 은화를 만들어도 지방에서까지 사용되려면 십 년도 훨씬 더 걸릴 거라 말한 이향의 예측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화려한 궐과 사대문 안에서 살다 이곳에 와보고서야 비로소 실감하였다.
‘갈 길이 아주 멀지만.’
우리가 누군가.
6.25 폐허의 잿더미에서 반 세기만에 세계 경제 규모 10위 권을 만들어낸 저력의 한민족이 아닌가.
때아닌 국뽕에 심취하며 윤서는 미리 준비하라 일러두었던 쌀 반죽에 토막 낸 닭고기 덩어리를 묻힌 후 거칠게 빻은 쌀가루를 튀김옷으로 입히고 설설 끓는 쉬나무 기름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치이익 하는 그리운 튀김 소리가 나면서 닭이 튀겨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윤서는 오늘 세종과 소헌 왕후께 올릴 특식으로 한번 맛보던 결코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후라이드 치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순행을 나오기 닷새 전 강 내관을 보내 닭 삼백 마리와 한 섬의 쌀가루와 식용으로 쓸 수 있게 쉬나무 기름 한 항아리를 정제해 준비해 두라고 이르면서, 수양 대군이 무역해 온 후추와 울금(카레)도 함께 보냈었다.
윤서가 적어 보낸 요리법에 따라 동네 사람들은 새벽에 닭을 잡아 손질한 후 후추와 울금 가루에 각각 재워놓았다.
윤서가 닭 튀기는 시범을 보이고 난 후 본격적인 요리는 숙수 둘과 상궁 둘, 나인 다섯과 함께 마을 아낙들이 맡았다.
“제 궁방은 저기 파주 너머 개성 가는 쪽 어디에 있다는데, 외사촌 오라버니를 차지로 삼아 보내 쌀만 거둬들였지 그 곳에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거처로 마련된 천막으로 향하는데, 함께 옆에서 걷던 유 소용이 문득 말했다.
“중전마마 궁방전에 와 보니, 저도 그곳에 닭도 치고 인삼도 심고, 대동강 가까워 물 걱정 없을 것이니 이모작도 하라고 해야겠습니다.”
“대동강 아니고 임진강.”
“예?”
“대동강은 평양에 있고, 파주 너머 있는 것은 임진강이에요. 이야기 지을 때 실수할까 봐.”
“아! 저 휘리릭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마을 촌장이 딱 삼십 년만 젊었다고 생각하고,”
노비들이 사는 집은 누추한지라 상왕 전하 내외분과 왕족, 그리고 그 수행원들이 기거할 곳은 보리를 막 걷어낸 빈 밭이었다. 밭에 풀을 깔고 그 위에 천막을 세워 임시 거처를 세우고, 조금 떨어진 곳에 솥을 여러 개 걸고 지금 저녁 수라를 준비 중이었다.
유 승휘가 바싹 붙어서 청상과부가 된 아씨의 가을걷이를 돕기 위해 친정에서 돌쇠가 오면서 시작되는 연애담을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벤 지 오래 되지 않아 싱그럽게 코를 간질이는 풀 내음에, 모기를 쫓기 위해 태우는 쑥 내음에, 또 닭을 튀기는 고소한 향과 밥 짓는 구수한 냄새까지.
온갖 강렬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저 멀리 서해 바다는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데,
모내기를 위해 물을 채워놓은 논에서 동네 꼬마들과 붕어와 우렁이와 미꾸라지를 잡으며 놀던 홍위가
“으아아아! 어마마마! 어마마마!”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