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김포 농장 순행 (3)
“어마마마! 아앙, 어먼니이!”
머리에 쓴 건을 나풀거리며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홍위의 뒤를,
“세자 저하, 세자 저하. 슬슬 달리시옵소서!”
외치며 홍위의 내관 자선이가 뒤따르고, 금똥이를 안은 매금이가 깔깔 웃으며 쫓아왔다.
그리고 함께 놀던 동네 꼬마들도 “와아아! 세자 저하! 저하!” 소리치며 줄줄이 따라왔다.
홍위의 고함 소리에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던 세종과 소헌 왕후도 나오시고, 그리고 수양 대군과 광평 대군도 달려 나왔다.
윤서는 홍위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가며 빠른 눈으로 사태를 가늠했다. 홍위가 놀라 비명은 지르지만 날래게 움직이고, 홍위를 제 피붙이처럼 아끼는 매금이가 깔깔 웃고 있는 점으로 보아 큰 문제는 아니란 결론을 내리며 홍위를 번쩍 안아올렸다.
“무슨 일이에요?”
“다리에, 거머리가, 으아아앙!”
홍위는 윤서 품에서 몸을 비틀며 울먹거렸다.
“!”
세상에,
홍위를 내려놓고 무릎 꿇고 살피니 정말로 흙탕물이 잔뜩 묻은 작은 종아리에 손가락 두 마디 만하게 큰 놈, 실 같이 가느다란 놈 등 크기가 다양한 거머리가 다섯 마리나 붙어 피를 빨고 있다.
윤서도 어릴 적 미나리 밭에 들어갔다가 거머리에 물려 한참 운 적이 있었는데.
“뜯어, 요!”
뒤따라온 매금이가 금똥이를 내려놓고 철퍼덕 땅에 엎드려 거머리를 뜯어내려고 하였다.
“안 돼. 큰 거 그냥 뜯어내면 다리에 흉져요. 홍위야. 소금 뿌리면 저절로 떨어져.”
윤서는 다리에 붙어 있는 거머리를 쳐다보며 울먹이는 홍위의 눈을 손으로 부드럽게 가리고, 이각주에게 “소금 좀 가져오게.” 명하였다.
“어먼니, 거머이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해요. 으아앙.”
홍위는 윤서의 손바닥이 흥건하게 젖도록 울고, 형이 울자 금똥이도 “엉아, 버에, 버에에.” 하며 홍위를 잡고 울었다.
얼른 달래야 하는데.
윤서는 두 꼬마를 내려다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윤서만 웃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되어 버선 발로 달려오신 소헌 왕후도 입을 가리고 어깨를 떨며 웃으셨고, 세종도 “허허” 성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지막히 웃으셨다.
모두 다, 심지어 세자 저하의 옥안을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농장 노비들까지 허리를 숙인 채 입을 막고 쿡쿡 웃었다.
얼굴에도 흙을 잔뜩 묻힌 다섯 살짜리 꼬마 세자 형님과 이등신 두 살짜리 젖살 통통한 꼬마 왕자 동생이 서로 붙잡고 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수양 대군도 무심코 함께 웃다가 문득 자신의 어린 새 부인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치자, 수양 대군은 성큼성큼 걸어 부인 옆으로 갔다.
“우리 현동이와 장차 태어날 동생도 저리 사이가 좋을 것이오.”
“···예, 자가.”
과연 그러할까.
정중하나 쌀쌀맞게 거리를 두는 도원군이 저렇게 스스럼없이 중전에게 안겨 우는 세자처럼 배다른 동생을 아껴줄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중전을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자신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금똥 아기씨처럼 귀여운 사내아이를 어서 가질 수 있길 바라며 윤씨는 수줍게 웃어 보였다.
윤서는 후우, 웃음을 지우고 홍위와 금똥이를 안고 속삭였다.
“홍위, 금똥이. 소금 뿌리면 떨어지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이 어머니도 어렸을 적에 미나리 뜯다가 물려보았어. 그때 아,”
부르던 대로 ‘아빠’라 하려던 윤서는 큼, 침과 함께 그리움을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님께서 소금을 뿌렸더니 저절로 떨어졌어요. 그리고 거머리는 파고들 때 마취 성분을 내서 아프지 않게 만들거든. 쉬이, 소금을 묻히면 금방 떨어지니까, 쉬이. 울지 말고 기다리자.”
윤서가 차분하게 설명하자 홍위는 점차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가린 윤서 손을 치우게 하고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진짜, 아프진 않아요······. 그래도.”
홍위가 울음을 그치자 금똥이도 뚝 울음을 그치고 매금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신기한 듯 거머리를 검지로 꾹 찔렀다가 그 물컹한 느낌에 놀라 화다닥 손가락을 떼고 홍위를 올려 보며 아프냐는 듯 “엉아아?” 하고 울먹거렸다.
“아프지 않아, 금똥아. 헝아, 하나도 안 아파.”
홍위가 걱정하는 동생을 씩씩하게 안심시키는데, 이각주가 소금 주발을 들고 왔다.
윤서는 소금을 집어 붙어 있는 거머리 위에 듬뿍듬뿍 발랐다.
거머리들이 꿈틀꿈틀 몸부림치더니 뚝뚝 떨어졌다.
“오호, 이렇게 떼는 것이구먼요. 소인들은 매일 물려도 몰랐습니다.”
“큰 거머리들은 억지로 떼면 살에 이빨이 박혀 있는 채로 몸통만 나올 수 있다고 하네. 그러니 큰 거는 소금을 문질러 떼게.”
“예에. 명심하겠습니다요.”
한낱 거머리 물린 데에 어찌 귀한 소금을 바를 수 있을까만은, 이각주는 허리를 공손하게 접어 답을 올렸다. 자신들을 생각하는 중전마마의 마음 씀씀이가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중전마마, 거머리 물린 곳은 지혈이 쉬지 되지 않으니, 이걸 바르셔야 하옵니다.”
어느새 의원 순덕이 홍위의 다리를 씻길 물과 수건, 그리고 상처에 바를 연고를 들고 서 있었다.
“아, 순덕 의원. 거머리를 보니 내 생각이 난 것이 있는데.”
윤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부상병의 곪은 상처를 거머리를 이용해 치료했었다는 책의 내용을 기억해내고, 얼마 전 이향의 등에 잡혔던 화농성 종기에 거머리를 이용할 수 있는지 의논할 계획을 세우고 홍위 다리부터 씻기려 하였다.
그런데,
우리 홍위는 벌써 피가 흐르는 다리 상처는 까맣게 잊고 소금 때문에 꿈틀거리는 거머리에 정신을 홀딱 빼앗겼다.
“금똥아, 이거 봐. 이거 되게 꿈틀거려.”
“엉아, 버에! 꾸우 꾸우!”
“응, 여기 제일 큰 놈에 소금 뿌려 봐. 소금 뿌리니까 더 빨리빨리 꿈틀 꿈틀 한다!”
두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쪼그려 앉아 가장 큰 거머리에 소금을 뿌리며 깔깔거렸다.
홍위와 금똥이가 소금이 잔뜩 묻은 거머리를 쿡쿡 찌르며 즐거워하자 멀리서 지켜보던 동네 꼬마 대여섯이 슬금슬금 다가와 홍위에게 말했다.
“저기, 세자 저하. 제가 거머리 장가가는 거 보여드릴까요?”
“으응? 장가?”
같이 놀면서 어린 세자가 친근하게 느껴졌는지 여섯 살 정도 된 꼬마가 훙위 앞에 무릎 꿇고 말하였다.
“거머리가, 장가 가?”
홍위가 묻자 다른 꼬마도 무릎 꿇고 앉아 옆에 있는 지푸라기 하나 집으며 소리쳤다.
“예, 세자 저하. 이걸로 여기 똥꼬에 쑥 넣으면 쑥쑥 들어가는데, 그걸 장가 간다 하옵니다!”
“세자 저하! 똥꼬에 밀짚이나 풀 넣은 다음에 홀랑 뒤집을 수도 있어요!”
“뒤집은 거머리에 흙가루 묻히면 소금 뿌린 것처럼 팔닥팔닥 거려요.”
“그으래? 한 번 해보거라!”
홍위의 허락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홍위 피를 빨아먹어 통통해진 거머리를 집어 들고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홍위는 생전 처음 보는 놀이가 신기해 목을 길게 빼고 보다가 금똥이를 슬쩍 앞으로 세웠다.
“금똥아, 거머리 장가가는 거 봐봐.”
“엉아, 버에. 버에.”
‘아이들이 노는 양태는 시대를 초월해 비슷하구나.’
어릴 적 동네 개구쟁이 아이들이 개구리 잡아서 노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윤서가 피식 웃는데, 홍위를 모시는 내관 자선이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함을 치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내관!”
홍위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천민 계급의 아이들과 어울려 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
윤서는 “무엄하다” 외치며 아이들을 쫓아내려는 자선에게 입 다물라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이날 닭튀김 요리는 대성공이었다.
수라간의 숙수는 윤서의 닭튀김을 응용해 여러 제철 채소도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고, 그래서 온통 바삭거리는 음식이 주종을 이루는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어둠이 내린 후, 쉬나무 기름 횃불이 천막 주변을 훤히 밝히는 가운데,
이각주를 비롯한 농장의 노비들은 상왕 전하 내외와 중전 마마께 밤잠을 줄여 연습한 춤과 노래를 바쳤다.
변변한 악기가 없어서 나무통을 파내 텅텅 울리게 만든 타악기로 박자를 맞추고, 촌장 이각주와 다른 이 셋이 대나무 대금을 불고, 가진 바로 최대한 어여쁘게 단장한 아낙들이 손에 들풀을 쥐고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불렀다.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만회회인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점 밖에 나고들면]
쌍화점을 부르는 시골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의외로 구성지고 청아하였다.
가사가 낯 뜨거워 혹여 세종께서 노여워하실까 봐 윤서가 슬쩍 눈치를 살폈더니
“백성들이야 자신들이 재미난 노래를 부르지 않겠느냐?”
하고 오히려 흥겹게 어깨를 들썩거리셨다.
노래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가만히 앉아 있던 사내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초요갱을 비롯해 장악원에서 솜씨를 갈고닦은 미모의 여악이 궁중 악공이 연주하는 고아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도 물론 멋들어지지만,
이렇게 소박하게 이어지는 공연도 흥겹고 신이 났다.
윤서 무릎을 한 쪽씩 차지하고 앉은 홍위와 금똥이도 재미나는지 까닥까닥 조그마한 발로 박자를 맞추었다.
“우리 조선 백성들이 여기 사는 이들만큼만 산다고 해도 참으로 소원이 없겠소.”
“차차 그리되지 않겠습니까?”
흐뭇한 표정으로 세종과 소헌 왕후가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수양 대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종께 고하였다.
“백성들의 정성이 갸륵하니, 소자도 음률을 보탤까 합니다.”
“그리하여라.”
수양 대군은 대금을 부는 이각주 옆에 서더니, 마침 만전춘이 시작되었다.
[얼음 위에 댓잎 자리 펴서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펴서
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정든 오늘 밤 더디 새오소서, 더디 새오소서.]
눈웃음을 치며 구성지게 노랫가락을 뽑는 아낙들 목소리에 옥피리의 고아한 선율이 실렸다.
수양 대군은 대담하게 앞에 다가서서 꽃을 흔들어 보이는 젊은 아낙에게 빙긋 웃어 보이면서도 호흡을 놓치지 않고 빼어난 연주를 이어갔다. 확실히 ‘귀신도 울고 갈’ 솜씨이긴 하였다.
“노래가, 제 이야기는 저리 가라입니다. 다들 참 이렇게 대담하게 표현하고들 있었네요. 저도 앞으로 이야기에 노래도 좀 넣어야겠어요.”
옆에 앉아 있는 유 소용이 윤서 귀에 속닥거렸다.
윤서는 한참 신을 내다가 고단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홍위와 금똥이를 당겨 품에 안고 머지않아 양인이 될 이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농장과, 저 너머 검은 보석처럼 빛을 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이향도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새벽 인시 반각(새벽 네시)을 알리는 괘종 소리에 눈을 떠 밤 오시 (11시)나 되어야 겨우 협경당 침전에 눕는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이향도 여기 함께 와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못 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벌써 윤서가 몹시 그리워하는 이향은 이때 경복궁 신무문 앞 화포 공장에서 임영 대군, 금성 대군과 함께 화포 제작을 논의하고 있었다.
경복궁엔 원래 이매가 들끓는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태종은 이복 동생이 죽은 경복궁을 아주 싫어하여 주로 창덕궁에 머물렀고, 세종도 서른 즈음에 대조전에서 풍을 맞은 듯 한기로 고생한 후 경복궁엔 이매가 많다는 말씀을 자주 하였다.
밤엔 북악에서 흰 안개가 띠를 이뤄 자욱하게 내려오고, 낮에도 한기가 드는 그늘에 꾸물꾸물 흰 형상이 보인다고 말하는 궁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향은 세종께서 창덕궁으로 이어하신 후 경복궁 북쪽에 화포를 제작하는 공장을 세웠다.
원래 이매가 날뛸 때 양기 가득한 화포를 쏘아 쫓아버리는 것이 관행이다.
윤서에게 아주 먼 훗날 이곳에서 왕비가 일본군에게 시해되는 일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던 이향은 경복궁에 깃든 불길한 조짐을 화포로 분쇄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물론 화포의 제작 비법을 극비리에 유지해야 하는 실질적인 필요도 감안한 조치였다.
한창 제작 중인 다연발 화차에 들어갈 포를 논의한 후,
방포 실험은 한강의 백사장에서 밝은 날 해보기로 하고 다시 강녕전으로 돌아가는 길.
후궁의 전각이 연이어 있는 곳을 지날 때였다.
“전하, 흐윽, 전하.”
갑자기 굽은 골목에서 여인 하나가 뛰어나왔다.
“누구냐? 물러서라!”
호위 내관 천가가 매섭게 소리치는데, 여인은 흐흑 울며 무릎을 꿇었다.
“저 곱단이옵니다, 전하.”
가엾게 눈물을 쏟는 여인은 내내 이향에게 다가설 기회를 노리던 양 숙원, 전날의 양 사칙이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