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정 귀인과 양 숙원 (2)
“글쎄 우리 전하께서 장 숙원에게 이렇게 하문하셨지요. ‘선아만 봉작하고 자네를 그냥 궁인으로 놓아두면 함께 기거하기가 불편한 상황이 되니 자네도 숙원으로 봉작하여 어머니와 딸이 함께 지낼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 이가 누구일 것 같은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 전하께서 그렇게 하문하시자, 글쎄 장 숙원이,”
“쉿! 그 이야기는 이따가요.”
상왕 세종과 함께 월곶 평야 일대의 농장과 그 밑 평택 쪽 내수사 농장과 염전까지 돌아보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앞으로도 순행이 잦을 것이니 번잡한 환영 행사는 하지 말라 세종께서 이르셨음에도 신왕 이향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한강진 배 다리 앞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악공의 연주에 맞춰 장악원 소속 기생 여섯이 종이꽃을 뿌리며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윤서를 발견한 박 상궁이 뛰듯 달려와 장 숙원과 이향 사이에 있던 일을 보고한 참이다.
“지금은 환영 의례를 치러야 하니, 이따가요.”
윤서는 신하들과 함께 세종과 소헌 왕후께 절을 올리는 융복 차림의 이향을 눈에 담으며 박 상궁이 숨도 안 쉬고 보고하는 양 숙원의 간계를 중간에서 잘랐다.
‘얼굴이 저리 수척해진 것을 보니 잠도 거의 안 자고 일만 하셨네.’
그래도 낯빛이 환한 것을 보니 건강이 상한 것은 아니어서 윤서는 적이 마음을 놓았다.
순행은 윤서의 농장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 날엔 평택에 있는 내수사 농장으로 내려가 세종께서 농민의 고충을 보고받고 가뭄에 대비할 수 있는 작은 웅덩이의 축조, 퇴비법, 이앙법, 닭 사육 등 새로운 농법의 시행을 독려하고,
다음 날은 평택 해안가에 조성된 내수사 소유 염전을 돌아보는 것으로 이루어졌었다.
이향과 신하들이 몸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빗방울이었다.
“하늘도 상왕 전하의 성덕을 알아 이제야 비를 뿌리옵니다.”
“경은 무릎도 쑤실 것인데 뭘 여기까지 나오셨는가. 어서 돌아가서 일 보시게.”
반갑게 문후 여쭙는 영의정 황희를 어서 의정부로 돌아가 일을 하라고 재촉하신 세종께서 소헌 왕후와 함께 어차(御車)에 오르시자, 이향은 비로소 몸을 돌려 홍위와 금똥이 손을 잡고 서 있는 윤서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바마마!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홍위는 윤서 손을 놓고 이향에게 달려가 덥석 안기며 소리치고,
“아바! 아바!”
아직 자유롭게 뛰지 못하는 금똥이는 두 팔을 높이 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성큼 다가온 이향은 한팔로 홍위를 안은 채 다른 팔로 금똥이를 힘주어 안고 두 아이의 머리에 번갈아 입술을 대며
“너희가 없으니 궐이 텅 빈 것 같이 쓸쓸했다.”
속삭였다.
“아바마마, 거머리가 다리를 물었는데 어마마마께서 소금을 문질러 주셨어요.”
“아바! 아바아아!”
즐겁게 다리를 동동거리며 순행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는 두 아이를 다시 단단히 추켜 안으며 이향이 비로소 윤서를 내려다보았다.
윤서 뒤에 서 있던 궁인들이 후다닥 서너 걸음 물러서 허리를 굽히며 얼굴을 붉혔다.
어린 중전을 내려다보는 임금의 눈빛이 너무 격의 없이 은근해서였다.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안겨드는 우리 꼬맹이들도 없고, 또 머리 빗겨주는 우리 부인도 없어서, 밤낮 정무만 보았소.”
“······.”
어쩜 이리 다정하게 말씀을 하시는지, 우리 전하.
윤서도 보고 싶었다고, 싸르락 싸르락 우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전하도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생각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귀 때문에 배시시 웃기만 하는데, 도승지 성삼문이 다가왔다.
“전하, 상왕 전하께서 어차(御車)에서 기다리십니다.”
“아! 부인, 나는 아바마마께 몇 가지 긴히 보고를 드려야 하오.”
“예, 이따 협경당에서 뵙겠습니다.”
이향은 세종께 현안을 보고하고, 신하들과 함께 연회를 올릴 것이다.
윤서는 팔을 내밀어 금똥이를 받았다.
홍위는 오랜만에 뵌 스승 성삼문을 향해 팔을 뻗었다.
“스승님, 강녕하셨습니까?”
“세자 저하, 어이쿠. 키가 또 크신 것 같습니다.”
홍위를 받아안고 몇 번 허공에 들썩거리며 성삼문이 격의 없이 애정을 표했다.
“예, 스승님. 말을 많이 탔더니 다리가 쑥쑥 길어졌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이제 돌아오셨으니 다시 시강원을 열어 동무들과 열심히 학문을 닦으셔야지요. 다리 힘이 좋아지셨으니 활쏘기도 잘하시겠습니다.”
“예! 관중(貫中)할 것입니다!”
홍위가 활쏘기 과녁의 중심을 맞출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성삼문의 팔에서 내렸다.
성삼문은 윤서에게 깊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이향과 함께 전하께서 타고 계신 어차로 향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고 있다.
윤서도 금똥이를 안고, 홍위는 매금이 손을 잡고 마차로 향했다.
중궁전 전용으로 부려지는 왕실 마차에는 윤서와 홍위, 금똥이와 매금, 그리고 박 상궁이 탔다.
비가 새어들지 않게 꼼꼼하게 기름종이를 천막처럼 두른 마차가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매금이와 함께 나란히 앉은 홍위와 금똥이는 가위 바위 보를 내어 주먹을 잡는 보자기 놀이를 시작하고, 윤서는 박 상궁에게 낮게 물었다.
“우리 희아도 잘 있었지요?”
“예, 공주님은 매일 학당에 나갔다가 정의 공주님과 함께 산술 교재를 만드시느라 바쁘셨고요. 오후에 협경당에서 금아 옹주님과 잘 놀아주셨습니다.”
“금아는 어떤가요?”
“발음이 제법 좋아지셨습니다. 홍 상궁에게서 서신이 와서 읽어드렸더니, ‘소용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하셨어요.”
박 상궁은 “친어머니보다 어째 양어머니가 더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고 작게 덧붙였다.
윤서와 박 상궁은 잠시 침묵하며 앞자리에서 깔깔거리고 웃는 꼬마 둘을 바라보았다.
양 숙원의 일에 대해 윤서는 묻지 않았고, 박 상궁도 들썩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작년 말에 소헌 왕후를 모시고 탄 마차에서 아이들이 잠든 줄 알고 고했던 대화 때문에 희아와 홍위를 서럽게 울린 후, 윤서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어른의 사정을 입에 담지 않았다.
“두 분은 어찌 이렇게 사이가 좋으신지.”
금똥이는 매번 가위, 바위, 보를 순서대로 내는데 그에 맞춰 부러 져주는 홍위를 보는 박 상궁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개구쟁이!”
매금이가 홍위와 금똥이를 가리키며 귀엽게 소리쳤다.
광화문 안에 들어섰을 땐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자 협경당 소속의 상궁과 나인이 지우산을 기울여 홍위와 금똥이, 윤서에게 비를 가렸다.
“세자 저하! 궐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하옵니다!”
“중전마마, 환궁을 감축드리옵니다!”
흥례문 앞뜰에 정 귀인을 비롯해 후궁이 줄지어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올렸다.
그중 제일 앞에 선 정 귀인은 허리를 펴자마자 옆에서 지우산을 받힌 상궁도 따라오지 못할 재빠른 걸음으로 종종종 걸어와 윤서 앞에 또 허리를 굽혔다.
“중전 마마. 환영 만찬을 정성껏 준비하였습니다. 교태전으로 올릴까요?”
그 때 협경당으로 향하는 문에서 “어마마마!” 부르는 희아의 음성이 들렸다.
희아는 유모 백씨가 씌워주는 우산을 받고 빠르게 윤서 앞으로 걸어와, 문득 윤서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윤서는 희아를 꽉 안은 채로, 정 귀인에게 말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내내 마차에서 흔들렸더니 힘이 드네요. 내일 교태전에서 오찬을 베풀 터이니, 다들 그리로 오세요.”
“···예, 중전마마. 그럼 소첩이 수라간에 일러 오시 정각까지 교태전 서온돌에 만찬을 준비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어서 쉬시옵소서.”
정 귀인은 세찬 빗속에서 허리까지 내려오게 깊게 머리를 숙였다.
“정 귀인 마마님, 무슨 일을 저지르셨기에 평소 비라면 질색하시던 분께서 어깨가 흠뻑 젖도록 예를 다하십니까?”
뒤늦게 마차에서 내린 유 소용이 정 귀인과 저 뒤에 서 있는 문 소용, 권 소용, 그리고 양 숙원을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니요? 중전 마마께서 오래 궐을 비우셨다가 환궁하셨는데 저희 후궁들이 당연히 예를 갖추는 것을요.”
정 귀인은 몸을 빳빳하게 세우고 유 소용을 노려보며 턱을 치켜들었다.
아이들 보기 썩 좋은 광경이 아니다.
“비가 많이 내리니 돌아들 가세요.”
윤서는 금똥이를 안고 홍위 손을 잡고, 희아를 옆에 세우고 협경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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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그 음흉한 정 귀인이 부추겼을 게요. 양 숙원은 요새 사치하는 재미에 혼이 다 빠져 있어서 그런 수를 궁리할 여력이 있을 리가 없소..”
홍위와 금똥이는 온종일 말과 마차에서 흔들리느라 고단했는지 씻기고 나자 해삼과 전복을 넣어 끓인 죽을 훌훌 마시고 잠이 들었다.
윤서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박 상궁과 함께 차를 마시며 드디어 양 숙원이 이향을 유혹하려다 실패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원래는 받을 수 없는 봉작을 받게 된 것도, 또 경복궁의 후궁 거처 중 가장 넓고 화려한 희락당에서 경숙 옹주와 함께 거하게 된 것도 모두 어린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중전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들은 양 숙원은 도톰한 입술을 ‘해삼처럼’ – 이것은 박 상궁 마마님의 표현이었다. – 내밀고 울먹울먹 거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첩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하. 하오나 소첩, 다른 것을 바란 것이 아니오라 전에 자선당에서 하던 것처럼 전하의 긴 머리카락을 빗겨드리고 의대 시중을 들어드리고 싶었을 따름이옵니다.”
하고 애처롭게 말하였다고 한다.
그 자태가 제법 어여뻐서, “여느 사내들이라면 열 번도 더 자빠트렸을 것이오. 우리 전하가 워낙 심지가 굳으셔서 소 닭 보듯 하신 게지.” 하고 박 상궁은 ‘우리’에 특별히 힘을 주며 윤서에게 말하였다.
이향은
“이젠 중전께서 내 머리를 빗겨주고, 의대 시중을 드시네. 나도 익숙해져서 중전의 손길만 편하고. 그러니 자네는 중전 덕분에 누리게 된 신분을 감사히 생각하고, 선아를 잘 키우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야.”
친절하게 우는 양 숙원을 달래 돌려보냈다고 하였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들었으니 오늘 정 귀인이 비를 쫄딱 맞으면서 저리 굽신거린 것이 아닙니까? 이 기회에 그 음흉한 것을 쳐내십시다. 왕손도 생산하지 못했는데 귀인이라니요. 애초 과한 작위였어요.”
“부러 그리한 것이에요.”
윤서는 박 상궁이 내려주신 명전차, 청명 전에 딴 첫 잎 차의 향을 음미하며 답을 하였다.
“정 귀인은 앞으로도 여러 가지 수를 쓰려고 들 거에요. 그러나 전하의 관심을 받지 못하니 자신이 나서진 못하고 양 숙원이나 또 다른 어여쁜 이들을 찾아내 들이밀겠지요. 그러면서도 궐의 여러 일은 또 잘 해낼 것입니다. 그것이 위신과 세력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니까. 제게 필요한 것은 내명부 일을 잘해 낼 수 있는 그 능력입니다. 여인 문제는 전하께서 해결하실 일이고요. 그리고 또.”
윤서는 찻물을 한 모금 호록 마셨다. 입 안에 향긋한 풀 내음이 가득 퍼졌다.
···역시.
커피가 몹시 그립구나.
수양 대군에게 필리핀 쪽에 온다는 페르시아 상인에게 커피를 좀 구해봐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나무를 구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정 귀인을 중심으로 불순한 이들이 모이겠지요. 그만한 가문이 되는 이가 후궁 중에서 정 귀인이 유일하니까. 그러면 저는 전하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다른 기회를 엿보는 세력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어요. 그래서 정 귀인이 필요합니다.”
두려운 것은 정체를 감추고 숨어 있는 자들이지, 정체를 드러내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다.
정 귀인은 중전보다 한 단계만 낮은 자리에서 루어 낚시의 화려한 찌처럼 요란스럽게 펄럭거리며 불순분자들을 유혹할 것이다.
“그러니 정 귀인이 더 의기양양 날뛰게 놓아두어야 합니다.”
“!”
윤서가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박 상궁이 입을 떡 벌렸다.
몇 번이나 주름진 입을 벙싯거린 박 상궁이 이윽고 윤서의 손을 꼭 잡으며 간절한 어조로 소리쳤다.
“정말로 그 다식, 기억 안 나십니까? 제가 여러 가지 독약이 든 것을 만들어 올려봐 드릴 터이니 눈곱 만큼씩만 맛보시고, 좀 찾아내 보십시오! 상왕 전하께서 돈 많이 벌어야 한다고 하셨다면서요! 이거 진짜, 조선 팔도 돈 다 쓸어 담을 것이라니까! 아니, 명나라 은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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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가 어찌나 뻐기면서 전하께 염전의 원리를 설명하던지요.”
사시(밤 9시)가 넘어서야 협경당으로 돌아온 이향의 목욕 시중을 들며, 윤서는 내수사가 관리하는 평택의 염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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