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운종가에서 우리 홍위는 (1)
추석 직전의 운종가는 서로 몸을 스치고 지나가지 않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아직 상업을 농업과 동등하게 중요시하며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겠다는 시책이 명시적으로 공표된 것은 아니었지만 운종가와 마포 나루에서 남대문까지 이르는 거리, 동대문과 서소문 등지의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재에 해박한 자산가들은 공납의 점진적인 폐지가 가져올 기회를 염두에 두고 벌써 사대문 안팎의 시장과 지방 주요 거점 지역에 공격적으로 점포를 세우고 있다. 현물로 거둬들이던 공납이 없어지면 왕실과 관청에서 돈을 주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거대한 시장이 생겨날 것이고, 이 유통망을 선점하는 자가 향후 조선의 부를 걸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 장려의 분위기가 확산되자 자산가뿐 아니라 일반 서민도 꼬물거리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소소한 마음으로 땅 한 떼기 가진 거 없는 날품팔이 아낙네들은 짬을 만들어 길가 지천인 나물이라도 뜯고, 사철 누런 코 질질 흘리는 꼬맹이들까지 도랑에 사는 미꾸라지라도 잡고 우렁이라도 주워 사람 오가는 길가에 앉아 쌀 한 줌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고 있다.
돈맛을 본 자들은 결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느니.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자본주의 광풍이 십오 세기 조선에 막 시작되고 있었다.
“상업의 발달을 방치하면 온 나라가 사치 풍조에 망할 것이란 상소가 매일 올라오고 있다고 들었어요, 서방님.”
윤서가 금똥이를 안고 있는 이향에게 몸을 기울이며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추석 제례를 지낼 제기와 촛대 등을 파는 세물전에서 시작된 운종가 잠행은 어느새 닭을 파는 생치전, 달걀을 파는 계아전을 지나 비단을 파는 면주전, 면포와 은붙이를 함께 팔며 환전 역할도 하는 면포전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희아는 홍위 손을 잡고 매금이와 자선이의 보호를 받으며 노리개와 술띠 용의 색색 실이 화려한 진사전 앞을 기웃거리고 있고, 그 뒤를 윤서가 이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있다.
왕 일가의 잠행이기에 앞뒤 옆을 걷는 이들 태반이 서민 복장을 한 호위 내관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염의 사람처럼 흥성거리는 거리에 나와 거니는 것이 중전이 된 후 처음인지라 윤서는 꽤 흥분한 상태였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비트 강한 음악에 맞춰 착착 달리는 것은 이제 영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들 속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날로 다양한 물품이 시전에 나오고 있으니 상소가 산더미처럼 쌓이겠네요. 우리 임금님 정말 고단하시겠네.”
평소와 달리 애교가 듬뿍 섞인 톤 높은 윤서의 목소리에 이향과 금똥이는 물론 앞서 걷던 홍위와 희아, 매금이와 자선이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서를 바라보았다.
“엄마아!”
금똥이가 손을 뻗어 엄마가 맞는지 확인하듯 윤서 얼굴을 훑어보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오가는 사람들 틈으로 보이는 색색의 물건을 유심히 눈에 담았다.
이향이 나지막하게 웃었다.
“홍아, 희아야. 앞에 봐. 사람들 부딪친다.”
쑥스러워진 윤서는 홍위와 희아에게 손을 내저었다.
희아가 방긋 웃더니, 길 건너편 작은 칼과 장신구를 파는 도자전을 가리켜 보였다.
“어머니, 저기 산호 달린 삼작 노리개가 어머니 입으신 그 진남색 치마에 잘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하나 사드릴까요?”
“누나! 나도! 금이랑 나는, 지남반 달린 걸로 사줘!”
“골라 봐.”
“으히히, 이리 와, 금똥아! 누나가 지남반 사준대.”
얼결에 동생을 온전한 아명으로 부른 줄도 모르고 신이 난 홍위가 이향의 도포 자락을 잡고 잡아끌었다.
몇 년 후에 있을 달단과 명나라 사이의 전쟁을 이용해 골칫거리가 되는 건주 여진 부락을 복속하기 위해, 이향은 북방에 사람을 보내 지형을 정확하게 반영한 지도를 제작하게 하고 있었다.
그간 그려진 지도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전제에 따라 그려져서 실제 거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와 고도를 측량하는 측량기가 새로 발명되고 방위를 정하는 나침반인 지남반도 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어졌다. 그중 은으로 틀을 만들고 뒷면에 정교한 문양을 금으로 입사한 휴대용 나침반이 요새 한양의 사내들 사이에서 한참 유행이었다.
홍위가 그걸 보고 누나에게 사달라 하는 것이었다.
잠행을 나왔기에 비단이 아닌 면포로 지은 옷을 입고 있어도 귀한 티는 나는 법. 시종 둘을 호위로 데리고 들어서는 열 살 남짓의 소녀와, 아장거리며 걷는 꼬마의 손을 잡은 대여섯 사내아이를 손님으로 맞이한 도자전 주인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었다.
“저어, 도련님. 아기씨. 이, 이쪽이 귀, 귀한 것들이옵니다. 이, 이 영롱한 산호는 거시기 그, 남방 산 산호로 맹근 것인디, 저기, 그, 수양 대군을 따라갔던 사, 상인이 여송이란 데서 사 온 것이옵니다.”
“삼작노리개는 궁중에서나 사용하는 귀한 것인데, 어찌 민간에서 만들어 판매한단 말인가? 산호가 진품이 맞는가?”
희아가 특유의 그 싸늘한 표정으로 묻자 도자전 주인이 밖에 서 있는 윤서와 이향의 차림새를 다시 한번 살피고 공손하게 고하였다.
“그, 궁중 연회에 초대받으시는 귀부인들께서 패용하시는 것이옵니다. 그러니만큼 산호, 밀화(호박), 백옥 모두 최상급 진품이 맞습니다요. 보증서도 함께 드리니, 가짜면 제가 언제든 틀림없이 보상해 드릴 것이구먼요. 그리고 이 삼작노리개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상의원의 주부 나리께서 특별히 이 매듭법을 전수해주신 것으로서, 여기 보소서, 아기씨.”
주인은 노리개를 들고 열성적으로 설명을 시작하고, 노리개에 관심이 없는 홍위와 금똥이는 다른 점원을 따라 장식 화려한 은장도를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다. 그 옆에서 매금이와 자선이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 보이는 이가 허튼짓을 벌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점원과 홍위 사이에 서서 손을 주시하고 있다.
‘칼을 파는 줄은 몰랐는데.’
밖에서 보이는 매대에는 노리개와 머리꽂이, 가락지 종류만 보이기에 들어가 보도록 허락했던 윤서는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매금이의 반사 신경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똥도 손으로 쳐낼 정도이지만, 그래도.
“이미 다 사전에 조사를 마친 이들입니다.”
긴장한 티가 났는지 집사처럼 차리고 옆을 지키는 호위 내관의 우두머리 천가가 윤서에게 나지막히 고하였다.
“부인, 염려하지 마시오. 전하께서 거하시는 궐이 지척인 곳인데.”
이향도 어깨를 토닥이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예. 새로 보위에 오르신 전하의 용안이 그리 수려하시다는데.”
“!”
“저도 그 용안 한 번 뵈었으면 좋겠네요.”
“···그건, 아니 됩니다.”
“예? 왜요?”
“부인이 너무 예뻐서 왕이 보면 틀림없이 욕심을 낼 것이기 때문이오.”
“크으으으흠!”
천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머나, 우리 전하께서 얼마나 성군이신데 그리 불경한 말씀을 하십니까?”
“아무리 성군이라 해도 부인의 미모 앞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 틀림없어요.”
“크흐으으흠. 나리! 마님! 그 불경한 말씀들은 그만 좀 하시지요. 누가 들을까 무섭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다정한 농담을 주고받는 국왕 부부를 보다 못한 천가가 기어이 한마디를 하고서야 이향과 윤서는 피식피식 새어나던 웃음을 멈추고 다시 도자전 안과 면포와 은을 파는 면포점, 국산 비단을 파는 면주점, 중국 비단을 파는 선전 등을 살폈다.
“물건값을 여전히 면포나 쌀로 지불하는 이들이 거의네요.”
이향이 즉위하면서 새로이 만든 화폐를 유통하기 시작했는데도 물건을 사는 이들 거의가 다 포를 잘라서 지불하고 있었다.
다시 본격적으로 재유통을 시작한 조선통보는 은화 조선통보, 동화 조선통보, 철전 조선통보, 세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성분과 색만 다른 세 화폐는 모두 동일한 틀에서 주조된다.
기존의 저화와 병행하여 쓰이는 조선통보 은화는 쌀 두 말, 5승포 면포 1필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데, 실제 은 함량은 1할이고 나머지는 주석과 백동이다.
조선통보 동화는 구리 함량은 3할이고 나머지는 값싼 주석과 철 등으로 주조되는데, 교환 가치는 쌀 1되에 해당한다.
조선통보 철전은 철과 주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동화의 일 할의 가치를 가진다.
이렇게 은화와 동화라 부르면서도 실제 은과 구리 함량을 대폭 낮춰 주조한 것은 세종과 이향이 화폐는 지불을 보증하는 상징적인 교환 수단이지 그 자체로 지불 가치를 지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교환 가치를 지불 보증하기 위해 이향은 한양의 사섬서나 지방 관아의 사섬서 분원에서 백성이 가지고 온 화폐의 가치에 해당하는 쌀이나 포목을 언제든 내주도록 정하였다. 왕실에서 화폐의 가치를 쌀과 연동하여 지불 보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향은 사섬서의 기능을 확대하여 은행을 설립할 준비도 하고 있었다. 저축을 받아 자본을 조성하여 여러 국책 사업을 진행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근대적 의미의 은행을 내수사의 자금과 박종우, 윤사로, 한확, 정인지, 권윤서, 박말예 (박 상궁 마마님) 등의 자산가의 출자금으로 설립을 준비 중이다.
“우리 비누와 화장품 가게에서는 제법 동화가 들어온다고 하던데. 아마 값비싼 사치품이어서 그런가 봐요.”
“시일이 제법 걸릴 것이오. 그래도 지불 보증을 해주니 큰 단위 거래에서는 은자가 제법 쓰인다고들 합니다. 참, 희아는 돈이 있나?”
“아까 주머니에 은화와 동전을 넉넉히 넣어주었어요.”
“어머니!”
윤서의 말이 끝나기 전에 희아가 호박과 산호와 백옥이 달린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세 가지 술의 삼작노리개를 흔들어 보이며 도자전을 나왔다.
그 뒤를 싱글벙글 기분이 좋은 홍위가 은제 나침반이 달린 은장도 하나를 흔들어 보이며 따라나왔다.
매금이 품에 안겨나오는 금똥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은장도를 살피고 있었다. 이게 정말 은화 스무 개, 면포 스무 필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 물건인지 진지하게 따져보는 표정이어서 윤서는 그만 풋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머니, 이 삼작노리개는 참 좋은 옥을 썼네요. 은화 40개 주었어요. 아버지 것은 청옥으로 테를 두른 금 관자를 샀어요. 이따가 보여드릴게요.”
“이거만 있으면 어딜 가든 궈, 아니, 집으로 찾아올 수 있어요.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니까, 지도 위에 방위를 정해서요.”
희아는 윤서 가슴께에 노리개를 달아주고, 홍위는 ‘지남반’이라 불리는 나침반을 이향에게 보이며 재잘거렸다.
일행은 이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 지전과 포전 등을 지나 광통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통교 너머에 비누와 화장품을 파는 윤서와 박 상궁의 공동 소유 매분구 점이 있기 때문이다.
윤서는 종이를 파는 지전에서 종이보다 더 열심히 팔고 있는 유 소용의 책을 보았다. 가 주인공을 아주 멋지게 그린 커다란 그림 밑에 열 권씩도 넘게 쌓여 있었다.
윤서는 이향을 보고 말없이 웃었다. 이향도 그림을 보고 윤서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는 전에 없던 가게가 생겼다. 이란 간판이 달린 가게는 놀랍게도 치수를 재어 옷을 만들어주는 의상실이었다.
“봐요, 서방님. 기존엔 다들 천으로 끊어가서 사람을 불러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상업이 활발해지자 옷을 만들어 파는 가게도 생기잖아요. 저 가게에서 운영하는 공장이 저기 청계천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어요. 솜씨 좋은 여인들이 서른 명도 넘게 직원으로 고용되어 있대요. 그런데 저 가게의 숨겨진 주인이 누구냐면요.”
윤서가 목소리를 낮추자 이향이 윤서 품에서 금똥이를 받아 안으며 윤서에게 고개를 숙였다.
희아에게 무어라 종알거리며 앞서 걷는 홍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서는 속삭였다.
“한명회의 부인이에요. 제가 저 가게를 내라고 노산대를 통해서 부추겼지요. 한명회는 지금,”
“한명회는 지금 오녀 산성 부근에 있소. 박팽년이 말하길 두창 접종을 하면서 여진의 여러 부족과 제법 친교를 맺어, 천가야!”
“매금아!”
이향과 윤서가 동시에 소리쳤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