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매금이와 비밀 조직 (1)
“그분들이 가장 필요한 걸 말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데요. 어머니?”
“자, 홍위. 맞춰봐. 그분들은 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여인들로, 거대한 곡간 열쇠를 허리에 차랑차랑 차고 다니겠지?”
“아하! 알겠어요, 어머니!”
영민한 우리 홍위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곡간을 가득 채울 방법을 말씀해 주시니까, 가장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환호했군요. 아하! 그래서 반송방 보육원에 언제든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주먹밥을 놓아두게 하신 거예요?”
“보육원에, 갔었어?”
“···으응.”
굶어가면서 돕던 고아 아이들이 크고 있는 보육원 이야기가 나오자 홍위는 슬쩍 윤서의 눈치를 살폈다.
아바마마께 들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끼니는 잘 챙겨 먹자, 아들. 너 굶었다는 거 알고 어머니 많이 우셨다.”
어머니가 우셨다니, 나 때문에!
중전 안 하시겠다고 했다가 누나한테 험한 소리 듣고 너무 심하게 우셔서, 나는 절대 우리 어머니 안 울리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른들이 때때로 어린애인 내 앞에서 울지만 거의 다 스스로를 위해서거나 또는 ‘세자’를 위해서라는 걸 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 ‘이홍위’ 때문에 즐거울 때도, 슬프실 때도 이따금 눈물을 흘리시고, 그걸 감추기 위해 속눈썹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심호흡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홍위는 가슴에 나비가 팔랑거리듯 기쁘면서도 또 마음이 아파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애들이 인제 절 봐도 밥 달라고 안 해요. 왜 그런가 했는데, 웅이가 말해줬어요. 언제든 부엌 부뚜막 위에 놓아둔 주먹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애들이 먹는 거에 관심이 없어졌다고요. 참, 웅이는 그, 어머니가 혜민국에서 치료받게 해주신 그 아이에요.”
추석 때 운종가에서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달려들었던 아이가 웅이라는 걸 윤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어멈니를 구해 주스어서 점말 감사함니다, 중전 마마.] 라고 쓴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응, 알아. 웅이가 편지를 보냈었어. 어머니가 이제 다 나아서 보육원에서 밥 짓는 일을 하고 월봉을 받게 되었다고.”
실은 윤서가 박 상궁을 통해 주선한 일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 홍위가 백성에게 무엇인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제시해야 좋은지 배우는 것으로 족하다.
“응, 웅이랑 웅이 친구들이 나중에 저를 지켜주는 무사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매금이한테 배우고 있어요.”
“으응?!”
처음 듣는 말이었다.
“매금이가 그 아이들한테 무술을 가르치니?”
“응. 저번에 같이 갔을 때 거기 친구들끼리 주먹질하며 막 개처럼 싸웠는데, 매금이가 그거 보고 엄청나게 화를 내고는 배워서 때리라고 했어요.”
“배워서 때리라고 했다고?”
“응. 그렇게 때리면, 상대는 하나도 안 아프고 자기 주먹 뼈만 부서진다고.”
“하아!”
윤서는 홍위의 어깨에 턱을 얹고 한숨을 숨겼다.
지난번 운종가 일 이후 윤서는 홍위 안위가 걱정되어서 홍위가 왕실 어른 없이 자선이 일행하고만 외출할 때 매금이를 붙여주었다.
그랬더니 매금이가!
‘매금이는 박 상궁 마마님 비밀 조직 출신인데. 그런 매금이가 나와 박 상궁이 함께 운영하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친다라.’
정신 한구석이 심하게 부서졌던 매금이가 윤서 곁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점점 사람다워지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매금이의 출신을 알아내 지금 행동과 연결 짓는다면 큰 문제로 부풀릴 수 있다.
윤서의 경고등이 요란스럽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웅이도, 웅이 친구들도 엄청 잘 배운대요. 매금이가 몇 년만 가르치면 사람 노릇 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매난국죽 금은동 대신 뭘로 매겨주나 했는데. 어머니, 매난국죽 금은동이 뭐래요?”
매난국죽 금은동까지!
“평가 기준일 거야. 그런데 매금이보단 천 내관에게 아이들 가르칠 이를 찾아보라고 해야겠네. 주로 사내아이들이니.”
“응. 애들도 매금이가 너무 무섭다고 울었어. 그런데 어머니, 우리 또 김포 농장 언제 가요?”
윤서의 우려를 짐작하지 못하는 홍위는 오랜만에 윤서의 애정을 독점하는 시간이 즐거운지 통통 튀기듯 발랄하게 화제를 돌렸다.
“으응? 김포에 또 가고 싶어?”
“응, 거기 춘삼이가 서신을 보냈는데요, 어머니. 벼 베고 나면 논바닥에 우렁이가 뒹궁뒹굴 굴러다니고 참새도 많이 온대요. 그거 같이 잡아서 구워 먹자고, 놀러 오래요.”
지난봄에 며칠 같이 지냈던 김포 농장의 아이들은 세자이면서도 격의 없이 함께 논 홍위가 무척 신기했는지 이따금 홍위에게 한글로 문안 편지를 썼다. 농장 관리인 이각주가 그걸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윤서에게 농장 운영 현황을 보고하러 입궐할 때 홍위에게 전달했다.
‘우리 홍위, 아이긴 아이구나.’
대군의 아들이나 명문가 자손인 배동과 있을 때 홍위는 놀 때조차 암암리에 세자다움을 신경 썼다.
그와 달리 내수사의 공노비에서 윤서의 명으로 양민으로 속량 된 농장 아이들과 있을 땐 부담 없이 물고기나 방아깨비를 잡으며 놀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가자! 너무 추워지기 전에 가자.”
“계동이도 같이 가요, 어머니!”
또래 중 가장 친한 임영 대군의 아들 이준도 같이 가자고 조르는 홍위를 보며 윤서는 홍위가 보통의 아이들처럼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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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궁전과 대비전에서 쓸 물품만 우리 예서 상단을 통해 들여오고, 나머지는 다른 상단을 통해 상의원으로 들어간단 말이지요?”
“맞아요. 우리 상단은 앞으로 사치품의 수입은 줄이고 대신 생필품과 우리 조선 발달에 기여할 수 있는 물품 위주로 수입해야 해요. 대신 필요하면 마마님이 따로 상단을 하나 내세요.”
윤서는 박 상궁과 상단 운영 계획과 궁중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어떻게 확보할지 논의 중에 있었다.
공납이 폐지되기 전에는 전국 각지에서 진상된 물품을 상의원이나 사옹원 등에서 쓰게 하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관아에 명해 추가로 바치도록 하였다. 또 왕실의 의례에서 쓰이는 고급 물품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신단이 북경으로 들어갈 때 상의원의 인사 하나를 딸려 보내 구입해 오게 하였다.
그런데 올해 말부터 경기 지역을 시작으로 공물이 폐지되기 시작하니, 궁중에서 입고 먹는 일상에 필요한 고급 필단이며, 갖가지 음식 재료 등이며, 신하에게 하사할 모피 등을 모두 상단을 통해 사들여야 한다.
비단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되는 생사가 있으나 아직 다양하지 않고 수량도 부족하여 중국에서 들여와야 할 양이 적지 않고, 짐승의 모피는 북방에서 확보해야 하는데 고급 물품은 값이 많이 나가는지라 이를 두고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일전에 모의 수전에서 정 귀인을 통해 오천 명분의 주먹밥을 내놓으며 윤서에게 줄을 대고자 하였던 마포 상단 주 가이내의 처도 나중에 알현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청을 올렸다.
“중전 마마. 지금 동전과 은전이 유통되면서 화폐 노릇을 하던 면포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습니까? 그로 인해 세간의 민심이 어지러운데, 중전 마마께서 소유한 공장에서 그 면포를 시세대로 사들여 옷감이나 이불 용도로 재가공해 판매하고자 하신다는 계획을 들었습니다. 중전 마마께서 우리 같은 백성을 위해 이문 없이 하시는 일이니, 저희 상단도 면포 가공 공장을 세워 함께 참여하고자 합니다. 대신, 청이 있사옵니다.”
가이내가 소유한 마포 상단 뒤에는 조선 최고의 부자 윤사로와 그의 처 정현 옹주가 있다는 걸 윤서는 박 상궁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저희 상단이 세곡선을 운행하면서 쌓인 항해 비법이 많습니다. 하여 저 절강 쪽에 배를 보내 고급 비단을 들여올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고급 비단을 상의원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이었다.
“중전 마마께서 소유하신 상단에서 상선을 건조하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배를 지은 경험이 풍부하니, 도움을 드리며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런 제안은 정현 옹주와 손잡은 가이내 쪽에서뿐 아니라 다른 후궁과 손잡은 상단에서도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공신 부인께서 중전 마마께 보내온 선물이옵니다. 마음 같아서는 훨씬 더 귀한 걸로 바치고 싶다고 하셨으나, 중전 마마께서 워낙 소박하신 성품이신지라 제가 고모님께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그러지 마시라 말리느라 아주 진땀이 났습니다.”
시어머니인 신빈과 함께 교태전으로 찾아온 계양군의 부인 한씨가 짐짓 겸양을 가장하며 내놓은 것은 중국 황태후나 쓴다는 최고급 옥과 진주, 눈처럼 새하얀 흰여우 털, 흑요석처럼 새까만 담비 털 등이었다.
“새해가 되면 왕실에서 여러 왕족, 종친, 신하들에게 여러 모피며 최고급 비단 등을 선물로 내려주지 않습니까? 일반 백성들이야 우리 사냥꾼이나 여진의 여러 부족이 잡는 짐승 모피를 쓰고, 또 우리 조선에서 만든 비단을 쓴다지만, 공이 많은 신하들에게 어찌 그런 것을 하사할까요?”
그러니까 계양군의 부인 한씨는 북경에 있는 공신 부인이 가진 연줄과 한확이 가진 재력을 이용해 저 북방에서 진상하는 모피와 중국 전역에서 바쳐진 최고급 직물을 확보할 수 있으니, 그것을 왕실에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이었다.
세종께서 상왕으로 물러나시며 혜빈으로 봉작된 양씨는 아들 한남군을 통해 일본의 향신료인 호초(후추)를 대량으로 들어오고자 한다고 하였다.
“호초는 각종 음식에 넣어 풍미를 더하는 것이니 사치품이 아니지요. 그러나 중전 마마께서 꺼리신다면, 뭐, 할 수 없고요.”
한남군이 대내전이 세를 가진 다다량포에 무역관을 세우고 일본으로부터 은과 동을 대량으로 수입해오는 일을 주관하면서 제법 많은 부를 쌓아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혜빈 양씨는 다른 왕실 여인과 달리 상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려 하진 않았다.
윤서 또한 한남군을 통해 화폐로 쓰이던 면포를 가공해 일본으로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혜빈 양씨와 한남군의 부인 권씨와는 마음 편하게 여러 계획을 논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이었기 때문에, 윤서는 박 상궁에게 사치품의 수입에서는 손을 떼자고 제의한 것이었다.
“당장은 여러 상단이 주로 사치품을 수입해와 가공해 판매하는 것으로 우리 조선의 상업이 시작될 수밖에 없어요. 그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니까요. 그러나 중전인 저는 그리해서는 아니 됩니다.”
윤서의 말에 박 상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평생 재산을 일구는 재미가 가장 큰 박 상궁이었지만, 아니 아직도 노산대를 통해 북경에까지 비누와 목 공장을 내어 북경의 은자를 쏠쏠하게 긁어 담는 재미가 지대하지만.
‘우리 권가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지.’
내심 딸로 생각하는 중전이 아니라고 할 때엔 그만한 이유가 근거가 있다고 납득을 한 박 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중전 마마께선 앞으로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될 것들 위주로 사업을 넓혀가시겠다는 것이군요.”
“예, 외국에 가지고 가서 팔 물품들, 면직물, 인삼, 대나무에 넣고 구워서 쓴맛을 없앤 고급 소금, 그리고 우리 조선에서만 만들 수 있는 발전된 기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다른 축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물품에 집중해야 해요.”
윤서는 어릴 적 이웃집 창고에 쳐박혀 있던 수동 탈곡기를 친구들과 함께 발로 밟으며 놀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 모양을 그려서 이향에게 넘긴 참이었다.
고무가 없어서 발로 판을 밟을 때 생겨나는 동력을 위의 둥근 탈곡용 상판에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가 문제인데, 희아가 튼튼한 줄을 여러 방향으로 엮어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거라며 신무문 앞에 차려진 공장에 가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 옆을 장래의 정혼자 정종이 함께 지킨다지.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고도 열심히 이리저리 기물을 만들어보는 경혜 공주 희아와, 그 옆에서 묵묵히 함께 고민하다가 (희아 말로 별 도움은 안 된다고 한다.) 흰 명주 수건으로 희아 얼굴을 닦아주던 정종을 생각하자 어쩐지 마음이 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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