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반동의 물결 (3)
윤서의 일갈에 윤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끅끅,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윤서는 더 이상 윤씨를 봐주지 않았다.
“그 제웅이 이 나라 조선의 중전인 나와, 장차 대군이 될 왕손을 저주하는 데 쓰였네!”
“주, 중전마마!”
별 존재감 없이 방치된 여식으로 자라나 갑작스럽게 대군의 정부인으로 신분 상승하면서 마음껏 껴입었던 오만과 과시의 보호막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재종고모님도 왕손을 해하려 했단 죄목으로 자진을 강요당하시고 그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무관심하게 너그러운 중전이 아이들 문제에 있어서만은 한치의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도원군마저 살피는 것을 보면, 정말로!
‘죽는다!’
죽음의 공포가 윤씨의 나태했던 정신을 들쑤셔 단숨에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 순간 사무치게 떠오르는 존재는 늘 입으로 부르짖던 ‘우리 자가’가 아니었다.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요새야 겨우 새카만 눈동자를 맞춰오는 내 아들.
자꾸 안고 흔들라고 으앙으앙 온몸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벼락처럼 가슴을 찔러왔다.
그 순간 윤씨는 화살에 꿰뚫린 짐승같은 비명을 토하며 이마를 쾅, 바닥에 찧었다.
“중전마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모르고 한 것이나, 죽을죄입니다.”
쿵쿵.
내가 죽으면 내 아들도 도원군처럼 된다. 비루먹은 개처럼 풀이 죽어 눈치나 살피는 도원군처럼, 남들 보기에 좋은 의붓엄마 노릇을 하는 척하였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던 자신과 같은 여인을 계모로 둔 아이가 된다, 내 아들이.
아직 목도 못 가누는 그 어린것이!
사무치는 모정으로 윤씨는 힘껏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
“남들 다하는 액막이라고 속아 한 것도 죄입니다. 하오나, 중전마마!”
저러다 정말로 뇌진탕으로 죽을 수 있다.
너무 과격한 움직임에 놀라 “어어!” 손을 내젓는 소헌 대비의 손을 놓고 윤서는 바로 몸을 일으켜 윤씨 앞으로 달려갔다.
“정말 죽을 작정인가? 그만두시게!”
“중전마마, 살려만 주십시오.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제 어린 아들을 봐서, 살려만 주십시오!”
과시용으로 흘리는 말간 눈물이 아닌, 실핏줄이 터져 벌건 눈에 핏빛 눈물을 담고 벌써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이마로 윤씨가 윤서 버선발을 잡고 다시 애원하였다.
“정말로 몰랐습니다. 몰랐다고 저지른 죄가 없어지진 않으나, 중전마마. 잘못하였습니다. 잘못하였습니다, 중전마마.”
“······!”
다행이다.
끝까지 벽창호면 어찌하나 걱정하였는데.
안도하는 윤서에게 소헌 대비가 말씀하셨다.
“중전, 저주 제웅을 만들었다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소. 그러나, 액막이 제웅을 만들어 태우는 것은 여염에서 흔히들 하는 짓이오.”
소헌 대비는 왕실 여인들조차 큰 재물을 들여 굿을 하고 비방을 쓰는 흔한 관행을 넌지시 지적하셨다.
멀리 나가 있는 둘째 유를 위하는 모정이었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한 중전이 저 아이마저 내치고자 한다면, 그러면 저 미련한 것도 부인이라고 애정을 주며 겨우 마음 추슬러 항해에 나선 둘째는 어이할꼬.
얻는 족족 내쳐지는 며느리를 둔 왕실의 체면은 또 어찌하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 막내의 처도 말썽이라 전하의 노여움이 크신데.
“명례궁 새아가는 무지하고 경솔하여 왕실에 큰 죄를 지었다.”
소헌 대비는 왕실의 큰 어른의 권위를 내세우며 서둘러 윤씨 문제를 정리하고자 하셨다.
“본방의 어머님께서 편치 않으신 까닭에 내 저 어린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내일부터 매일 훈육 상궁을 보낼 터이니 궐의 예법을 똑바로 익히고 배워, 왕실 여인으로서의 부덕을 갖추거라. 또한 허락이 있을 때까지 명례궁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종의 가택 유폐 형이었다.
오늘 입궁하기 전이었다면 실수로 벌어진 일에 너무 과한 처사이시라고, 답답해서 그리는 살 수 없다고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윤씨에게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비로소 어른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 윤씨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무섭게 부푼 이마에 두 손을 올렸다.
“베풀어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대비마마.”
그리고 앞에 태산처럼 서 계신 중전께도 두 손을 올려 절을 올렸다.
“중전마마, 명례궁으로 신지식을 가르칠 이들을 보내주시면 성심을 다하여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뜰 한구석에 채마밭도 꾸며 씨앗을 심고 키우는 법도 몸소 익히겠습니다.”
“···나중에 시험을 볼 것이니, 제대로 익혀야 할 것이네.”
“···예, 중전마마.”
‘시험’이라는 말에 어깨를 움찔하면서도 윤씨는 성실하게 답을 하였다.
망둥이처럼 철없이 날뛰던 십 대 청소년이 드디어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된 것이다.
윤서는 참았던 말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거든 먼저 세 번 생각한 후에 입을 열게. 내가 자네더러 ‘반반한 얼굴과 어린 나이만 믿고 대군 자가의 애정을 받는 것을 그리 자랑해대니, 나이 들고 주름 깊어지면 어찌하려 하시는가?’ 하고 묻는다면, 듣는 기분이 어떠하신가? 역지사지, 상대가 이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떠할지 살핀 후에 입을 여는 것이 윗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이네.”
******
다음날.
창덕궁 인정전에도 설치된 괘종시계가 아홉 번을 울려 사시(오전 9시)를 알리자, 고요하던 희정당 앞뜰이 여인의 외침으로 가득찼다.
“저희가 어리고 미욱하여 부처님을 모신 사찰에서 경우 없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깊게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옵소서, 대비마마!”
영응 대군의 부인 송씨, 그리고 익현군의 처 조씨 등 회암사에서 광대패를 불러 놀았던 왕실의 며느리들이 외치는 사죄의 음성이었다.
혼인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모두 열다섯 살 내외의 어린 왕가 며느리들은 모두 모두 짚으로 짠 멍석 위에 꿇어앉아 희정당 안에 들어 계신 대비마마를 향해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청하였다.
그리고 준비된 벼루에서 붓을 들고 앞에 놓인 종이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윤서가 계획한 일이었다.
전날 윤씨를 내보낸 후 윤서는 대비께 회암사에서 있던 일을 말씀드렸다.
왕실 며느리들이 회암사에서 광대 패까지 끼고 놀았다는 소리에 대노하신 대비마마는 철부지 며느리들 모두에게 윤씨처럼 금족령을 내리고자 하셨다.
그러나 윤서는 다른 안을 제시하였다.
“대비마마, 그 일을 빌미로 여인들의 바깥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말이 올라오고 급기야 여학당까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상소까지 빗발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되면 여인들이 무지 속에서 저 부부인처럼 무당의 말에 속아 넘어가고, 또아이를 낳다 죽는 여인들 수가 다시 늘어날 것이며, 또,”
윤서는 유 소용을 슬쩍 보았다.
유 소용이 고개를 조아리며 고하였다.
“세우 작가 등 빼어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작가들도, 그들이 지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도 모두 금지당할 것입니다.”
“그건 안 되지!”
세우 작가의 열렬한 독자이자 후원가인 소헌 대비는 윤서와 유 소용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말로 여학당도 없어지고 다양하게 쏟아져나오는 이야기도 사라지고, 그리하여 유학 중에서도 불교와 도교와 다른 다양한 것들 모두 이단으로 몰아가는 편벽한 주자학적 주장만 강하던 고루한 예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한 삼 년 사이 세상이 몰라보게 변화하고 있다.
괘종 시계가 댕댕 시간을 알리는 조선, 그리고 마차가 달리는 조선, 오물이 가득하던 한양 거리가 깨끗해지며 곡식이 더 풍요로워 굶주리는 백성이 줄어드는 조선, 한층 발전된 위생 관념과 두창 침으로 쉽게 죽지 않는 조선.
“대비마마,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윤서는 상소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전 먼저 대비마마께서 공개적으로 이 일을 처리하는 법을 말씀드렸다.
그 결과가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된궁가 여인들의 공개 반성 행위였다.
앞으로 유폐령이 내려진 윤씨를 제외하고 송씨와 조씨 등 다른 참가자들은 백 일 동안 대비마마께서 거하시는 희정당 앞뜰에 사시(오전 9시)까지 나와 꿇어앉아 사죄의 말을 크게 외친 후, 한 시진 동안 여훈(女訓)과 유 소용이 정음으로 번역한 을 필사한다.
그리고 은화 백 냥(쌀 오십 섬)을 속전(贖錢, 형벌을 받는 대신 바치는 돈)으로 내어 굶주리는 백성과 유민을 위한 구휼 자금으로 쓴다.
이리되면 왕실 며느리들의 일탈을 빙자해 세태의 변화를 비판하는 규탄 상소가 올라오더라도 그 화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논의의 초점이 성리학을 국시로 선택한 나라에서 불법(佛法)을 허용해도 되는지로 옮겨가게 된다.
윤서의 예상은 맞았다.
며칠 후 집현전의 학사들이 연명하여 올린 상소문은 다음과 같았다.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상왕 전하께서 신성(神聖)한 자질로서 정성을 다해 다스리기에 힘쓰시사 태평 시대를 이룩하시고 마침내 교화가 이루어져 풍속이 아름다워진 조선을 우리 금상 전하께 물려주셨습니다.하오나 근년 이래로 풍속이 박하고 사나워져 강상(綱常)의 죄를 범하는 자가 많으며, 사족(士族) 여인의 행실이 참담해짐은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 등은 모두 못난 재주로 시종(侍從)의 벼슬에 있으면서, 이를 개탄(慨嘆)하여 되풀이해 헤아려서 감히 좁은 소견으로서 아뢰옵니다.
공자가 말씀하기를, ‘부(富)한 뒤에 가르친다.’ 하고, 맹자는 말씀하기를, ‘백성의 하는 도(道)는 일정한 직업이 있는 자라야 일정한 마음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제왕(帝王)의 정치는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동쪽 나라는 산천이 많아서 전토를 만들 만한 땅이 본래 적고, 토질(土質)이 나빠서 생산하는 이익이 또한 적사옵니다. 비록 풍년이 들지라도 백성들이 오히려 부족하거늘, 승도(僧徒) 무리는 사(士)·농(農)·공(工)·상(商) 사민(四民)의 밖에 있으면서 그 허황한 말을 고취(鼓吹)하여 조정과 민간을 속이고 유혹하니, 실로 국가의 좀벌레이오며 생민의 해충(害蟲)입니다. 또한 유독 몇몇 여인이 불법(佛法)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승도의 무리를 스승이라 칭하며 재물을 바치고 도리를 벗어난 유희를 탐하니, 이를 두고 보다가는 전조 고려의 타락이 다시 일어날까 신 등은 근심일 따름입니다. (중략)
전하께서는 석씨(부처)의 망령됨을 밝게 살피시사 진실로 숭상하고 믿는 마음은 없으실 것이오나, 왕실과 사족 여인이 일간 회암사에서 벌인 행위만 보아도 국가에서 혼몽의 석씨를 신봉(信俸)하지 아니한다고 하겠습니까. 원컨대, 공장(工匠)의 만드는 일과 탐심을 부추기는 상업을 확대하는 일, 그리고 가업을 늘린다는 구실로 여인들이 주도하여 산천 개발에 나서는 일 등을 줄이게 하시고, 반면에 저축을 넓히며 사치를 금하고 검약을 숭상하는 것은 장려해야 할 것이옵니다. (중략)
(최만리의 상소문(1439년 4월 19일) 상소 부분 발췌, 일부 변형)]
원래의 상소 목적은 왕실 여인의 일탈을 구실로 상공업의 무분별한 확대와 여성의 경제적 행위를 금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비마마께서 방종한 왕실 여인들을 이미 징치하신 바, 상소를 통한 논의의 초점은 이전처럼 불교와 승려 무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무당을 빙자하여 저주 제웅을 던지게 한 자는 추적 중이었다.
윤씨가 고하길 제웅을 만든 목멱산 중턱 굿당의 무당은 영험한 신께 기도를 올린 후 태워야 제대로 효력을 본다면서 금강산으로 떠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윤씨에게 받은 용모 파기를 가지고 명례궁의 사람 몇과 노산대의 수하 등이 해당 무당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
‘집현전의 학사들이 상소를 주도하였다.’
윤서는 그들과 손잡은 이를 짐작하였지만, 정확한 증거를 손에 쥘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
여러 신하들이 연명해 올린 상소가 승정원을 통해 상왕 전하 세종께 전달된 것을 확인한 날.
드디어 이향이 돌아왔다.
전하께서 순행에서 돌아오시어 창덕궁에서 상왕 전하 내외께 문후 여쭙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온 오후.
세자 홍위, 금똥이 손을 잡은 경혜 공주 희아, 선아 옹주와 금아 옹주, 그리고 정 귀인부터 유 소용, 문 소용, 양 소용까지 후궁 모두는 국왕의 공식 침전인 강녕전 뜰에 서서 이향을 기다렸다.
윤서는 이제 생후 이십 일이 된 새벽이를 품에 안고 강녕전 대청마루 그늘에 서서 이향을 기다렸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속에 마침내 아청색 융복을 빈틈없이 차려입은 이향이 향오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바마마,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아바마마, 어서 오세요. 어머니가 무척 기다리셨습니다.”
“아밤마아! 아밤마아!”
아이들이 제비처럼 입을 벌려 이향을 부르는데,
불현듯 무릎이 꺾이도록 반가움이 치밀었다.
윤서는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막내에게 속삭였다.
“아버지 오셨다, 새벽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