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수양 대군의 무녀
“두려울 때 양팔로 자신을 안듯이 하고 눈동자를 굴리면 마음이 진정되는 것은 무슨 이치입니까?”
전 부인 윤씨를 죽게 한 가책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막막할 때, 수양 대군은 부왕께서 당시 나인이었던 권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일러주셨던 자기 위안법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정말로 부왕이 보여 주신대로 양팔을 교차하여 스스로를 힘껏 안고 감은 눈꺼풀 아래 눈동자를 굴리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였다.
신기하게도 그 우스꽝스러운 동작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
아바마마나 형님 전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주역의 쾌를 뽑아 일의 순리를 통찰하신다. 그래서 수양 대군도 따로 주역을 익혀 산가지를 뽑아 얻은 괘로 자신의 처지와 앞날을 짚었다.
‘하필 곤(困)괘가 나왔지.’
아침에 산가지를 뽑아보았더니 택수곤(澤水困)의 곤괘가 나왔다.
곤괘의 맨 아래 음효는 주공의 풀이에 따르면 ‘둔곤우주목 입우유곡 삼세 불적(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 不覿)’ 즉, ‘엉덩이가 나뭇등걸에서 힘든 상황이니,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서 삼 년이 지나도록 볼 수가 없다.’로, 자칫하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곤경에 처하게 됨을 나타내는 괘이다.
이 괘 때문에 수양 대군은 원래 대체 ‘커피’라는 회회국의 음료 씨앗을 어디에서 알게 되었는지 물으려던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대신 배를 타고 저 먼 여송으로 가란 어명을 듣고 명례궁에 돌아왔던 날의 밤이나, 거친 파도에 삐걱거리는 배 위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때에 행한 행위의 원리를 묻게 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윤서는 수양 대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양 대군이 자신을 뵙고자 한다는 말을 이향에게 듣는 순간, 청령포가 떠올랐다. 잘 꾸며놓은 현대에서조차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던 그 외딴 섬을.
그래서 다 까발리고 싶었다.
수양 대군 네놈이 세종과 문종의 믿음을 배반하고 어떻게 조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그 결과 세종과 문종의 치하에서 번영의 기틀을 닦아나가던 조선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리고 네놈도 문둥병으로 고통받고 아들 둘도 결국 다 요절하고, 특히 예종은 즉위한 지 고작 일 년 만에 급서하였는데 그 배후로 네 그 죽은 부인 윤씨와 한명회가 의심된다는 말을, 다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아우성을 쳐댔다.
그러나 아들을 지극히 아끼는 세종과 소헌 대비의 애정과, 분노로 미간을 찌푸렸으면서도 “부인의 심리학이란 것으로 유의 그릇된 야망을 고칠 순 없는 것이오?” 끝내 안타까운 어조로 묻던 이향의 동기애와,
그리고 아직 저지르지 않은 죄를 단죄할 수 없다는 이십일 세기 법적 윤리에서, 윤서는 수양 대군에게 이번 한 번만은 역사 속 세조가 아닌 개인 이유(李瑈)로서 독대하기로 굳게 마음을 다진 참이었다.
그러자 인간 이유가 보였다.
빈과 후손이 탄탄하지 않다는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완벽한 세자 형님과, 중국의 사신들마저 그 식견 높은 글씨 한 장을 얻고자 애를 쓰는 당대의 최고 서예가이자 예술 후원가 안평 대군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여 왕이 되고자 하는 은밀한 야망으로 비틀려가는 사내의 모습이 비로소 보였다.
“태어나기 전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좁은 뱃속에서 꽉 끼인 상태로 보냈지요. 자신을 꽉 안는 행위는 그때의 안정감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진 초본 속 모순적으로 순후해 보이던 얼굴과 달리 지금의 수양 대군은 동남아의 뜨거운 햇살과 거친 바닷바람으로 뱃사람처럼 거칠게 변해 있었다.
“또한 두려움을 느낄 때 인간은 눈동자조차 두려움의 대상에게 고착 당한 채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무기력의 상태에 놓이기 쉽습니다. 그럴 때 눈동자를 굴리는 일견 사소하고도 작은 행위가 우리 정신을 일깨울 수 있지요. ‘지금 당면한 두려움은 지금이 것이 아니야, 혹은 지금의 것이라도 도망쳐 벗어나거나 맞서 싸워 극복 가능해!’ 이렇게 얼어붙은 정신을 일깨우는 행위입니다.”
“!”
수양 대군은 놀라 중전을 바라보았다.
‘중전이 이렇게 정연하게 자신의 통찰을 설득할 수 있는 여인이었던가.’
고금의 서적이라면 형님 못지않게 다 읽고 이해하려 애써온 자신이다.
조선의 어지간한 이들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졌고, 또 두 번의 항해를 통해 저 먼 세계에서 온 여러 이방인을 만나본 자신이 듣도보도 못한 지식을, 저 여인은 어디에서 알아 말한단 말인가.
가문이랄 것도 없는 보모 나인 출신이. 문자를 아는 것만도 기이할진대.
‘이래서 한미한 출신에도 중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새로운 지식이라면 침식을 잊고 탐하시는 아바마마시니 세자를 구한 공을 구실로 중전으로 올리시는 것 또한 망설이지 않으신 것인가.
‘이 여인은 대체 이런 지식을 어디에서······?’
혜민국에서 한눈에 보기 좋은 표를 만들 때부터 커피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여왔던 의문이 더욱 짙어지는데, 중전이 물었다.
“대군 자가,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쌍계사 인근 야생 차나무에서 채취한 명전차여서 향이 좋습니다.”
윤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화로 위에서 보글보글 김을 무쇠 주전자를 들어 숙우 그릇에 따랐다.
차 물이 적당히 식어가는 도안 차호에서 돌돌 말린 연초록 찻잎을 덜어내 다관에 담고, 이윽고 찻물도 다관에 넣어 차를 우리고, 적당히 우러난 찻물을 용을 새겨 장식한 옥배잔에 따르기까지,
형님 전하께서 가지신 고아한 다례(茶禮) 의식을 한층 더 우아하게 손끝으로 피워내며 중전이 말했다.
“제가 읽은 저 먼 서역의 서적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군 자가. 사촌인 왕을 반역의 무리를 물리치고 왕의 절대적 신임과 치하를 받은 후 자신의 영지로 돌아오던 장군이 깊은 숲에서 무녀 셋을 만납니다. 비밀스러운 의식을 행하고 있던 무녀는 왕과 왕의 소생만 없다면 그 자신이 왕이 될수 있는 장군에게 하늘의 징조를 들려주지요. 장차 왕이 될,”
“이 무슨, 경솔한 말씀이시오?”
수양 대군이 왈칵 분노를 쏟아내며 중전의 말을 잘랐다.
‘설마, 성수청의 국무 무가이 일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 무가이가 어찌 되었던가.
죽은 부인의 말에 따르면 살(煞)을 날리던 칼로 목을 그어 자결하였다지.
자신이 저 여인 권가에게 날린 살은 자신이 안고 가니, 부인이 날린 살은 부인이 감당하란 말을 저주처럼 외치며 목을 그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자 수양 대군은 ‘이 요물이 오늘 나까지 죽이고자 덫을 놓는구나’ 분노하고 말았다.
“아무리 권세 대단한 중전이라 해도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군. 이따위 불경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저의가 무엇이오?”
“저의라니요, 자가. 그저 저 먼 서역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일을 전하는 것뿐이에요. 역사를 아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새파랗게 질려가는 얼굴로 분노하는 수양 대군에게 윤서는 자비롭게 말했다.
‘수양, 당신은 아마 한명회와 비슷한 예언을 믿으며 역모를 일으켰겠지. 그리고 결국 당신의 궁극의 운명도 세익스피어 비극 속 맥베스와 그리 다르지 않았어.’
왕이 될 것이란 마녀의 예언을 듣고 사촌 던컨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맥베스는 결국 어찌 되었던가.
자신을 변함없이 신뢰해온 사촌을 죽여서라도 왕이 될 야망은 있었으나 알량한 양심의 가책으로 죽인 자들의 망령에 시달리다 파멸에 이르게 된 맥베스처럼.
세종과 문종이 중용한 빼어난 신하들을 척살한 후 조카와 동복 형제들까지 죽여 왕이 된 당신은 말년에 가장 큰 공신인 한명회와 신숙주조차 믿지 못해 종친을 중용했지. 이십 대 중반의 남이를 병조 판서로, 또 스물일곱 살의 구성군을 영의정으로 봉하였으니.
그리고 둘째 예종마저 보위에 오른 지 일 년 남짓 만에 급서하니.
결국 당신의 역모는 한명회와, 한명회와 손잡은 당신의 부인 윤씨 일가 좋은 일만 시키고 끝이 난 것이 아니었나.
수양 대군이 점점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는데도 윤서는 차분하게 맥베스의 이야기를 다 해 주었다.
던컨 왕을 살해하도록 부추겨 남편을 기어이 왕으로 만든 레이디 맥베스는 손에 묻었던 왕의 혈흔이 끝내 지워지지 않는 환각 속에서 미쳐 죽어가고, 양심의 가책에 폭정을 일삼던 맥베스가 자신이 죽였던 친우 뱅코의 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이야기를.
“······!”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도 수양 대군은 무서운 눈으로 윤서를 쏘아보며 묵묵히 침묵만 지켰다.
“맥베스는 장차 왕이 될 것이란 무녀의 예언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함께 자신의 후손이 왕이 될 것이란 예언을 들은 맥베스의 친우 뱅코는 무녀의 예언이 한 조각 진실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악한 길로 유혹하는 부추김이라며 물리쳤어요. 그러니까 무녀의 예언은 맥베스의 은밀한 야망을 그대로 비춘 거울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교훈입니다.”
“······!”
수양 대군은 한참을 침묵했다.
맥베스란 자의 이야기로 중전이 자신을 어찌 바라보고 있는지, 왜 부인을 죽이기까지 하였는지가 너무도 분명해졌다.
‘정말로 곤(困)괘였군.’
곤괘에서 ‘삼 년이 지나도록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임금을 알현할 수 없다는 뜻이라 하였다.
그러니 저 여인으로 인해 아바마마와 형님 전하의 마음을 잃었구나, 내가.
창자 깊숙이 숨겨두었던 본심을 들켜 등골이 다 서늘해졌지만, 수양 대군은 점괘로 자신의 속내를 숨겼다.
“아침에 산가지로 주역점을 쳤더니 곤괘가 나왔습니다, 중전마마. ‘가시나무에 찔려 앉아 있는 것은 굳셈을 올라탔기 때문이요,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니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란 풀이로 지극히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함을 의미합니다.”
“······!”
자신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다고 둘러 말하는 뜻이란 걸 윤서는 제대로 알아들었다.
“언젠가 전하께서 길괘 다음에 반드시 흉괘가 나오고 또 흉괘 다음에 길괘가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승승장구할 때에 일의 그릇됨에 대비하여야 하고, 곤경에 처했으나 한결같이 도리를 다하면 전화위복이라 반드시 좋은 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지요.”
그래서 윤서는 언젠가 이향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수양 대군에게 옮겼다.
주역점을 칠 줄 안다니, 전후 괘의 풀이에서 미래의 길을 찾길 바라는 마지막 호의였다.
“···과연!”
수양 대군은 뜻 모를 감탄사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물러가옵니다, 중전마마. 도원군을 한결같이 살펴주신 것에 아비로서 감사드립니다.”
“대군, 한마디만 더 해도 되겠습니까?”
윤서는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하는 수양 대군의 등에 경고하였다.
“곁에 있는 자를 조심하십시오. 그자가 바로 맥베스 이야기 속 무녀와 같은 자이옵니다.”
수양 대군이 팽 몸을 돌렸다. 예를 갖춰 입은 단령 자락이 차락 원을 그렸다.
“누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누구긴.
한명회지.
그러나 윤서는 차분히 말하였다.
“누구든, 대군을 시험에 들게 할 자이겠지요.”
“···이만 물러갑니다.”
수양 대군은 더 묻지 않고 물러났다.
물러나는 등이 견고했다. 저 견고함이 무엇일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것이다.
부디 이 세계에서는 세조의 길을 걷지 말길.
끝까지 지켜주려 애쓰는 형님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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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이 강녕전에서 윤서를 알현하고 있을 때.
국왕 이향은 상황 세종, 영의정 황희, 병조 판서 김종서, 그리고 최윤덕의 아들이자 평안도 판창성 대도호부사 최숙손과 함께 다음날 있을 여진족과의 알현을 논의 중이었다.
“내일 사정전에 들 오도리 만호 동야오대(童也吾大)가 최근 범찰과 이만주가 우리 경내의 야인들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만들고자 회유 중이라 하옵니다.”
“하온데, 왜 동야오대가 우리 어리신 세자 저하도 뵙고 꼭 알현 인사를 올려야 한다고 고집하는 겐가?”
세종이 의아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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