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여진족과 조선의 세자 홍위 (2)
“···음, 격구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홍위의 말에 따라 재구성한 상황은 이러하였다.
학당에서는 세계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기초 산학과 과학 분야의 신지식과 더불어 신체 단련도 아주 중시하였다. 이들도 수양 대군을 이어 국외 개척을 담당할 귀한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신체 단련의 기본 과목은 무과에서처럼 궁술과 기마술이 중심이 되고, 검술과 창술도 조금씩 익혔다.
일은 격구 중에 일어났다.
모래 위에서 말을 달리며 채를 휘둘러 작은 공을 쳐서 상대의 문에 넣는 마상 무예의 일종인 격구는 그 특성상 말과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이에게 유리했다.
그 조건에 따라 격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것이 오도리 족 족장의 아들, 열세 살 송로가무였다.
그러나 일단 공만 잡았다 하면 틀림 없이 상대 문에 휙휙 잘 쳐 넣는다고 해도 격구는 여럿이 함께 하는 협동 경기,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호흡을 맞출 동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날 송로가무에게 불행하게도 공을 넘겨줄 친우가 하나도 없었다. 북방에서 함께 한양으로 유학을 온 골간 족의 유다롱개(劉多弄介), 올량합의 이질개(李叱介)가 모두 상대편 무리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이름 대신 ‘비루한 오랑캐 새끼 일(一)’이라 불리며 알게 모르게 온갖 수모를 다 당하는 송로가무에게 (오랑캐 새끼 이(二)는 유다롱개, 이질개는 오랑캐 새끼 삼(三)이었다.) 격구 시합은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공을 주지 않고, 또 어렵게 공을 낚아채 상대 문대로 날리려면 같은 편의 조선 왕자들까지 노골적으로 방해 수작을 놓았다.
격구를 할 때 홍위는 그저 뒤에서 따라다니는 형편이었다. 거의 모두 열 살이 훌쩍 넘는 왕자와 종친에 비해, 여섯 살 홍위는 덩치가 작고 그러면서도 아바마마께 받은 큰 말을 타고 있어 채가 땅에 닿지 않아서 공을 치지 못했다.
뒤에서 열심히 공만 따라 달리기에 홍위는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러 개입하지 않은 것은 사내아이끼리 갈등에 제삼자가 개입했을 때 반발심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진족이란 이질성 때문에 생겨나는 갈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없어지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개입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계속 무시당하고 공을 빼앗기던 송로가무가 화가 나 영응 대군이 탄 말을 부딪치며 공을 빼앗아서 상대의 문으로 질주했다. 막아서는 이들을 사정없이 밀치며 자신이 쳐낸 공을 또 쳐 내며 홀로 독주한 끝에 득점은 하였지만.
영응 대군의 말을 부딪친 것이 문제였다.
영응 대군은 자신의 말을 밀친 송로가무를 언짢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다른 왕자와 종친은 달랐다.
정씨와 혼인할 때 상왕께선 주변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창덕궁 못지않게 큰 궁을 지어 하사할 정도로 유달리 영응 대군을 아끼셨다. 그러니 상왕의 지극한 총애를 등에 업고 학당의 실세로 군림 중인 대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새끼 이거, 천한 오랑캐 새끼가, 감히! 어서 내려서 머리 박고 사죄하지 못해?”
신빈 김씨의 아들 영해군이 먼저 나서고,
“형님, 괜찮으십니까? 저 천한 놈 때문에 혹여 다리 뼈라도 상한 거 아니십니까?”
담양군은 이복형을 살피고,
“왕실 학당에서 공부할 은혜를 베풀었는데, 원수로 갚는 금수 같은 놈이로다!”
“야, 너! 가! 돌아가! 한겨울엔 개가죽 둘러쓰고 산다는 네 그 오랑캐 땅으로 돌아가라고!”
평소 여진족 따위가 귀한 신분의 자신들과 책상을 나란히 하고 공부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벼르고 있던 이들 모두 나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자 다른 때는 묵묵히 참던 송로가무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소리쳤다.
“니기미! 누군 여기 있고 싶어 있음매? 내래, 인질이오, 인질! 강제로 잡힌, 인질!”
그러자 유다롱개(劉多弄介)와 이질개(李叱介)도 말 등에서 훌쩍이며 소리쳤다.
“같은 조선 백성이라 아이 하였소? 기런데 왜 만날 천한 아새끼라 천시해대오?”
“행님요, 내래 서러버서 몬 살겠다 아이요. 좀 있으믄 아바이들 입조한다 하이, 데려가 달라 하입시더! 머슬 마이 배운다 해도, 내는 여서, 조선서 더는 몬 살겠소!”
그러자 조선의 왕자와 종친들은 달래기는커녕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까지 주는데 은혜를 모르는 오랑캐 새끼들이라 더 화를 내며 욕을 해대었다.
뒤에 서 있던 홍위는 생각했다.
‘할바마마께서 겨우 넓히신 국토인데, 어찌하여!’
그리하여 어린 홍위는 배에 힘을 꽉 주고 소리쳤다.
“멈추어라!”
그러나 어린 홍위의 가는 목소리는 점점 더 흥분해 떠드는 목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홍위는 격구 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스승인 무관 연채진에게 향했다.
“무얼 하시는 게요. 당장 멈추게 하시오!”
그제서야 연채진이 옆에 서 있는 병사에게 나각을 불게 하여 주의를 끈 후 엄히 소리쳤다.
“멈추시오! 다들 욕설을 멈추고 말에서 내리시오!”
학당의 규율은 엄했다.
영응 대군을 비롯한 학생들 모두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섰다.
송로가무와 유다롱개, 이질개도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지만, 분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홍위는 말을 탄 채 천천히 앞으로 가 섰다.
“······?”
“······!”
이제까지 세자인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임영 대군의 아들 계동과 함께 그저 막내로 착실하게 학당 생활을 하던 세자였다.
그러던 세자가 말 위에 높이 앉은 채 자신들을 내려다보자, 영응 대군을 비롯한 왕자들은 대체 무어라 말하려고 꼬맹이가 저러는가 싶어 빙긋거리며 홍위를 올려다보았다.
“태조께서 조선을 세우실 때 이지란 장군을 비롯 여러 여진의 장수가 힘을 합하였다!”
“!”
“!”
“또한 상왕 전하께서 두만강의 경원, 경흥 등지와 압록강의 여연, 자성 등까지 국토를 넓히실 때, 많은 여진인이 우리 조선의 백성으로 남길 소망하였으니, 그들이 머물러 있기에 우리 변경이 유지되는 것이다!”
“!”
“!”
“태조 때부터 금상 전하에 이르기까지, 역대 임금께서 모두 일관되게 여진을 우리 백성으로 포용하며 아껴오셨거늘, 너희가! 왕실의 자제가 되어서 너희는!”
“!”
“!”
“상왕 전하의 백성이자, 금상 전하께서 친히 신지식을 배울 기회를 하사하시어 장차 우리 조선의 동량으로 쓰고자 하는 귀한 인재들에게,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황당한 당황 속에서 영응 대군은 재빨리 따져보았다.
‘이 일이 아바마마 귀에 들어가면! 형님 전하 귀에 닿게 되면!’
삼촌인 자신에게 ‘너희’라고 하대한 세자 조카를 꾸짖으실까, 아니면······.
영응 대군이 따져보는 새에,
먼저 사태 파악을 끝낸 이들은 송로가무 등에게 별다른 말 없이 뒤로 빠져 서 있던 수양 대군의 아들 도원군과 혜빈 양씨의 아들 영풍군이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세자 저하. 너희에게 미안하구나.”
“송구하옵니다, 세자 저하. 미안하다, 송로가무, 유다롱개, 이질개.”
평소 학당에서 모범 학생인 도원군과 영풍군이 나서 사과하자, 좀 전까지 목소리를 높여 욕을 하던 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사과까지 하지는 않았다. 사과의 말을 내뱉기에는 자신들의 신분이 너무 높았다.
그러자 홍위는 커다란 말 위에서 영응 대군을 비롯하여 평소 여진의 유학생을 괴롭힌 이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
어린 세자의 시선은 엄격했다.
주먹으로 한 대 때리거나 어깨를 휙 밀치면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릴 꼬마의 눈빛이 아니었다.
시선을 받은 자들마다 모두 저절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영응 대군마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는데, 세자의 음성이 들렸다.
“조선의 세자로서 나는 전하의 백성을 함부로 대하는 자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올 나의 치하에서 너희 자리는 없으리라!
장차 보위에 오를 자의 선언이었다.
그 이후로 홍위가 보는 앞에서 여진의 유학생을 괴롭히려 드는 간 큰 왕자와 종친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송로가무와 유다롱개, 이질개 등은 홍위에게 아주 극진히 대하며, 이제까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던 공부에 갑자기 열의를 불태웠다.
*****
“오호, 홍위 네가 정녕 그리 말했단 말이냐?”
“예, 할바마마. 할바마마께서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까지 영토를 넓히신 후 그곳에 사는 여진인들을 포용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신 것을 소손이 아옵니다.”
“···어허. 어찌 그리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느냐?”
“할바마마. 이슬람의 술탄이 빠르게 영토를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정복지의 주민을 평등하게 포용했기 때문이라고 어머니가 가르쳐주셨어요. 이슬람 종교로 개종하지 않더라도 세금만 내면 평등하게 대하고, 음, 학당을 세워 가르치고 또 음, 군인이 되어서 벼슬할 수 있게도 해주었더니 오히려 기꺼이 복속해 왔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중전이 그리 가르쳐주었다고? 그럼 또 무엇이라 가르쳐 주시더냐?”
“···으음.”
홍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머니가 학당에서 돌아오는 자신을 마중 나와서 손을 잡고 걸으면서 들려주셨던 여러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로마란 제국도 비슷했다고 하옵니다. 옛날옛날에 저기 먼 서역에서 우리 조선만한 나라에서 시작한 로마가 중국보다 더 큰 영토를 얻게 된 것도 모두 다 정복지의 백성을 평등하게 대하고, 학당을 세워 가르치고, 또 음. 하여간 자비롭게 보호해서 강대해졌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할바마마.”
“그으래? 우리 홍위가 역사를 참으로 폭넓게, 깊게 배웠구나.”
세종은 기특한 손주를 흐뭇하게 토닥이면서도
‘윤서는 왜 내게는 이리 상세하게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일꼬? 정말로 로마란 나라가 학당을 세워가며 정복지를 평등하게 대한 것인가? 그럼 여진의 땅에도 학당을 세우라고 내게 조언한 이유가, 언어가 같아지면 동화가 빠르게 된다는 것 외에도 또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인가?’
곰곰이 따져보며 자신의 대에서 넓힌 북방의 영토가 진실로 조선의 것으로 안착하려면 홍위의 말대로 좀 더 적극적인 포용 정책을 펴야 하는가 짚어보기 시작했다.
‘부인은 홍위에게 별별 지식을 다 가르쳐주는군.’
이향은 윤서가 자신에게는 늘 홍위를 아이답게 놀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온갖 지식을 다 전수하고 있는 것을 흐뭇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이향은 평화롭다는 저 먼 미래인의 시각에서 홍위에게 전해진 지식을 십오 세기 조선의 현실에 맞게 약간 보완했다.
“허나 홍위야. 이미 얻은 땅에서는 조화로운 평화를 추구해야 하나, 그 땅을 얻기까지, 그리고 그 땅을 유지하는 데에도 강한 권력과 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명심하거라, 홍위야. 너그럽기 위해서 그리고 자비롭게 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압도적인 강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예, 아바마마. 강자만이 오히려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을 소자 명심하겠사옵니다.”
편전이 갑자기 상왕에서 세자에 이르는 세 군주의 가르침의 장으로 변했다.
황희와 김종서, 그리고 최숙손은 신하로서 목격하기 어려운 이 귀한 광경을 황공한 마음으로, 그리고 동시에 조금은 반성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자신들도 늘 여진족을 ‘천한 오랑캐 족속’이라 부르며 내심 천시해 왔기 때문이다.
“하오나 오랑캐는 오랑캐이지 않습니다, 세자 저하?”
짐짓 황희가 묻자 홍위는 작은 머리통을 귀엽게 흔들었다.
“우리도 명나라에서 동이(東夷)라고 부른대요. 원래 중국은 자신들 외의 모든 이들을 다 오랑캐가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영의정 대감.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비하하는 말을 받아서 여진이나 왜를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이고, 상왕 전하. 주상 전하. 우리 조선의 미래가 어찌나 밝을지. 소신 이미 늙어 그날을 보지 못함이 한일 뿐이옵니다!”
황희는 지금처럼 일을 많이 해도 좋으니 오래, 아주 오래 살아서 저 어린 세자가 장차 통치할 조선이 몹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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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저하, 우리 아해들이 한양에서 이리 따숩게 환대를 받은 것이 처음이기요. 저하의 은혜가 참으로 황공 또 황공 하옵네다!”
다음날 편전에 든 여진족 부족장 십여 인은 붉은 곤룡포를 앙증맞게 차려입은 어린 세자 앞에 엎드려 감읍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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