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경혜 공주 하가 (1)
“나이도 지긋한 부족장 여럿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는데, 가슴이 찡했어요, 어머니.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있어요.”
사정전에서 여진의 여러 부족장을 알현하고 돌아온 홍위가 겹겹이 갖춰 입은 옷을 하나씩 벗으며 윤서에게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오도리 족과 골간 족, 그리고 올량합 족 족장은 자신들의 자제를 조선의 백성으로 환대해 준 홍위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검은 담비 가죽, 호랑이 가죽, 그믐날의 밤처럼 검은 명마 한 마리, 그리고 담수 진주 등 여러 가지 선물도 함께 바쳤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우리 세자 저하?”
윤서는 붉은색의 곤룡포를 조심스럽게 벗겨 한 상궁에게 건네며 물었다.
어젯밤 이향이 홍위가 학당에서 여진의 유학생을 위해 한 일을 들려주었을 때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감동했었다.
세상에 우리 홍위가 언제 이렇게 컸나. 물론 세 살 때도 혀짤배기 소리로 여간 똑똑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송로가무, 유다롱개 등이 놀림을 받는 건 그 이름이 낯선 것도 있고 또 머리 모양이 달라서도 있어요. 그래서 소자가 조선 이름을 지어주고, 또 평상복도 하사하려고요.”
사려 깊기도 하지, 우리 홍위.
윤서는 익선관을 쓰느라 상투를 틀었던 머리를 풀어 빗질해주며 말하였다.
“의복은 내가 벌써 상의원에 명해 놓았어. 그런데 이름과 머리 모양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보자꾸나.”
윤서는 홍위에게 여진 발음을 음차해 부르는 이름과 또 정수리만 남기고 박박 미는 변발의 머리 모양이 여진족의 주요 정체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스스로 바꾸고자 할 때야 바꾸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었다.
“대신 지금 학당에 쓰는 이름 한자가 음차하는 과정에서 너무 막 쓴 경향이 있더라. 우리 홍위는 한자에도 조예가 깊으니, 뜻이 더 좋은 한자로 바꿔주면 의미가 깊을 거야.”
“아, 어머니! 와! 소자 그건 생각 못 했어요.”
동송로가무(童松老加茂)에서 성 동씨는 중국에서 하사받은 성이고, 송로가무는 그들의 언어를 적당한 한자로 음차해 적은 것인데, 노비 이름을 음차해 적을 때처럼 아무 한자나 가져다 적은 것이었다.
홍위가 평상시에 입는 솜옷과 흰 토끼털로 안감을 댄 쾌자를 걸쳐 입을 때였다.
협경당 홍위 전각의 대청마루가 쿵쿵쿵 울리며 “헝님, 헝님, 헝님!” 야단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세자 저,”
나인이 고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고 금동이가 도도도 달려와 홍위의 허리를 덥석 안았다.
“헝님, 하아, 헝님, 엄청 까매. 엄청 까만데 너무 머짓다아! 헝님, 나 딱 한 번만! 한 번만 태어져요.”
“벌써 마방에 가서 보았어?”
“응! 두복이가 잇거하는데에 멍무처엄 새카만데, 또 막 웅끼가 반짝한다고 해서 갔떠떠요. (응! 수복이가 입궐하는데에 먹물처럼 새카만데, 또 막 윤기가 반짝한다고 해서 갔었어요.)”
그제야 열린 문 사이로 광평 대군의 아들 수복이가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둘이서 홍위가 오도리 족 족장에게 선물 받은 까만색 준마를 건춘문 쪽에 있는 마방에 가서 구경하고 온 모양이었다.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어 안달을 하는 금동이는 세자 형을 졸라 한번 타보기라도 하고 싶어 했다.
“금동아. 그 말 아직 다 완전히 길들지 않은 것 같아. 형님이 몇 번 타고 나서 순하게 말 잘 들을 때 태워줄게.”
“덩말이지? 아았떠요. 두복아, 가다. 헝님이 디금은 아니애. (정말이지? 알았어요. 수복아, 가자. 형님이 지금은 아니래.)”
“아니, 금동아, 잠깐. 수복이도 들어와.”
홍위가 돌아서려는 금동이의 어깨를 잡고 수복이를 불러들였다.
수복이는 조심조심 발꿈치를 들고 들어와 윤서에게 “둥던마마, 강넝하딥니까? (중전마마, 강녕하십니까?)” 하고 배꼽 인사를 하였다.
“응, 수복이. 간식 먹을래? 뭐, 줄까?”
윤서의 물음에 수복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얼핏 보면 광평 대군을 닮아 무척 조용해 보이지만,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요사이 금동이와 수복이가 짝을 지어 온통 사고를 쳐대는 통에 경복궁의 기와가 남아나질 않았다.
“금동이 수복이 너희 둘, 누나가 시킨 공부는 다 했어?”
“!!!”
“!!!”
“천자문 쓰기 시험 본다고 했잖아.”
“헝님, 우이 여기 안 았떠요. 두복아, 가다! 빠이 가다! (형님, 우리 여기 안 왔어요. 수복아, 가자! 빨리 가자!)”
“둥던마마, 더하, 이맘 무너가옵니다. (중전마마, 저하, 이만 물러가옵니다.)”
“헝님, 어먼니, 나 못 밨떠요. 응? 꼭! (형님, 어머니, 나 못 봤어요. 응? 꼭!)”
신신당부를 한 두 아이는 뭐라 답할 새도 없이 다다다 달려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아휴, 개구쟁이들.”
혹시 윤서가 나중에 금동이를 혼낼까 봐 홍위는 먼저 나서서 어른처럼 과장되게 한숨까지 쉬었다.
좀 있으면 작업장에서 돌아온 희아가 둘을 불러 앉히고 천자문을 가르쳐주고, 전날 배운 것을 복습하였는지 시험을 볼 것이다.
금동이와 수복이는 정음은 쉽게 깨쳤지만 한자는 통 외우길 싫어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누나 경혜 공주를 피해 다녔다.
용케 피한 수복이야 퇴궐하는 아버지 광평 대군과 함께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금동이는 달랐다.
저녁을 먹기 전 희아에게 꼼짝없이 붙잡혀서 “형님은 세 살 때 문무대신 앞에서 천자문을 다 외웠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아직 절반도 못 외웠으니!” 엄히 꾸짖음을 들으며 못 외운 부분을 스무 번씩 쓸 때까지 절대 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금동이는 “눈나, 배 고파요. 등가둑이 뱃가둑하구 드어붙었떠요. (누나, 배 고파요. 등가죽이 뱃가죽하고 들러붙었어요.)” 칭얼거리고, 보다 못한 홍위는 “누님, 아직 어린애인데요. 먹어야 크지요.” 하고 편을 들어 줄 것이다.
거의 매일 협경당에서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희아는 금동과 수복에게 천자문과 함께 세 자릿수 사칙연산과 비례식까지, 학당에서 가르치는 기초 산학을 모두 가르친 후 하가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무뚝뚝한 성품의 희아가 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 방식이었다.
“새벽이 깰 시간이다. 새벽이 데리고 누나 작업장에 갈 건데, 같이 갈까?”
“예, 어머니! 누나가 목화씨 빼는 거 어떻게 하고 있는지 소자도 보고 싶어요.”
윤서는 홍위와 함께 협경당의 침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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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아는 요새 말린 목화솜에서 씨앗 빼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물레방아를 이용해 방적기부터 만들려고 하였는데, 일본과 여진의 여러 부락에서 무섭게 늘고 있는 면포 수요를 대기 위해서는 일단 목화솜에서 씨앗을 쉽고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공장 직원들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전마마, 세자 저하, 오셨습니까?”
새벽이를 안은 채 경복궁 서북쪽 군기시 분원에 있는 희아 작업실에 갔더니 정종이 먼저 나와 인사를 하였다.
“궁은 잘 지어지고 있지? 대목수와 여러 직공이 잘하겠지만, 자네가 종종 들러 살펴야 하네.”
“예, 중전마마. 저희 집 청지기가 가서 내내 지키고 있고 저 또한 아침저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정종이 의젓하게 답을 올렸다.
희아가 하가해 정종과 함께 살 공주 궁은 영추문 쪽 의통방에 지어지고 있었다.
이향은 원래 역사에서처럼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양덕방에 희아 궁을 크게 지어주려 하였다.
하지만 계유정난이 있던 날 밤 홍위가 누이의 양덕방 궁에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서를 통해 알고 있는 윤서는 그곳이 꺼림칙했다.
희아도 싫다고 하였다.
“양덕방은 작업장과 너무 멀어요, 아바마마. 혼인해서도 저는 여기 궐내 작업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걸어서도 편히 다닐 수 있는 의통방에 민가 열다섯 채를 사들여서 희아의 궁을 짓게 된 것이다.
“공주께선 지금 한창 궁리 중인지라, 아마 부르셔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정종이 부드러운 어조로, 그러나 공주 하시는 일에 방해하지 말라는 듯 단호히 말했다.
홍위는 윤서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누나 편만 드는 거 아닙니까?’
불만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홍위는 또 장차 매형이 될 정종이 누나를 몹시 아끼는 것이 좋은 듯 윤서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좀 보기만 할 것이야. 일전에 보니 목화솜에서 씨앗을 빼내는 것이 워낙 고단하고 더딘 일이라 마음이 쓰였어. 어머니, 새벽이가 시끄럽지 않을까요?”
“괜찮을 거야. 새벽이는 워낙 조용하게 살피기만 하잖니.”
새벽이는 좀처럼 놀라는 일도, 우는 일도 없이 방싯거리기만 하였다.
애들이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까꿍놀이도 빙긋 웃기만 하고, 옹알이도 거의 안 해서 걱정이 된 가족들이 틈이 날 때마다 안고
“새벽아, 엄마 해 봐. 엄! 마!”
“안 되겠어요, 어머니. 한 음절씩 가르쳐야겠어요. 새벽아, 아, 해봐, 이렇게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아!”
“헝아, 헝아! 헝! 아! 바부아 (바보야) 헝! 아!”
“어머니, 혹시······?”
말을 아예 못 하는 것이 아닌지 홍위가 울상을 하고 윤서에게 걱정을 표한 적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향이 말했다.
“그냥 두어라. 내가 말을 늦게 하였다.”
이향도 돌이 지날 때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 금동이는 삼 개월부터 온갖 참견을 다하며 쉴 새 없이 옹알이를 해서 귀가 아플 정도였는데. 새벽이는 똥 눴을 때만 ‘아!’ 하다니.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찌 이렇게 다르지요?”
윤서가 신기해하며 이향에게 말하자, 이향은 새벽이를 안고 어르면서 말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배고파요.’ 하고 온 문장으로 말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자신이 그러하였단 말이었다.
작업장 안에 들어가 보니 커다란 나무통이 꽉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완성 직전에 있었다.
지름이 삼십 센티미터 정도의 물푸레나무 통 두 개가 꽉 붙어서 돌아가는 구조로, 민간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둥근 나무통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솜을 넣어 씨앗을 빼내는 씨앗기의 확대형 기물이었다.
새벽이까지 넷이 들어서자 종이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던 희아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홍위도, 새벽이도 왔네?”
“누나, 여기에 솜을 넣으면 씨앗은 뒤로 밀리고 솜만 빠져나가는 원리구나?”
“응, 맞아. 이걸 물레방아에 연결하면 저절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낙차가 큰물이 어디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연자방아처럼 소가 저쪽에서 바퀴를 돌리면, 여기 이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각각 축으로 동력이 연결되게 할 수 있어.”
“서로 꽉 맞물려야 할 텐데. 그리고 맞물리는 힘도 강해야 하고. 목화씨가 굉장히 단단하게 솜에 붙어 있던데?”
홍위가 걱정스럽게 말하였다.
그러자 희아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정종이 나무 통을 쓸어 보이며 고하였다.
“그래서 공주께서 무거운 물푸레나무를 깎아 통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또 모래로 표면을 매끈하게 긁어서 서로 어긋나는 틈이 없게도 하였고요.”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하여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홍위가 윤서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하였다.
‘참, 저리 좋을까요, 어머니?’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