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세종과 커피 (1)
화포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그날 이향은 화포 개발에 참여한 이들 모두에게 연회를 베풀고 은자 이십 냥에서 백 냥까지 기여에 따라 차등 포상을 내리고 기분 좋게 취해 협경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린 홍위를 안아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눴다. 왕과 세자로서가 아니라 늦게 퇴근하는 아버지를 눈 비비며 기다린 어린 아들 사이의 친밀한 대화였다.
“아버님, 신기전이 활보다 명중률은 많이 낮았어요. 혹여 큰 소리가 목적이옵니까?”
“맞다, 홍위야. 진천뢰와 신기전의 일차 목표는 거대한 폭음이다. 북방 달단이나 여진이 위협적인 것은 한 몸처럼 달리는 말을 타고 기습적으로 들이닥치는 기병의 존재인데, 우리 화포의 폭음이 말을 놀라게 하여 날뛰게 할 수 있거든. 물론 곧 파괴력과 살상력을 더 보강할 것이다.”
이향의 말처럼 조선의 화포도 그리고 조선 사회 전반도 빠르게 진보하였다.
가장 큰 변화는 외교에서 먼저 일어났다.
1447년 무진년 새해 첫날.
문무백관과 여러 이민족 사절이 경복궁에 들어 임금께 예를 올리는 망궐례에 다른 어느 해보다 많은 여진의 부족장이 자제와 수하를 이끌고 입조하였다.
특히 올량합, 골적 등 두만강 이북의 여진뿐 아니라 그간 거의 교류가 없던 수빈강 쪽의 올적합과 흑룡강 쪽 와르카 부족 중 일부까지 입조하였다.
이들은 근정전에 들어 조선 국왕을 뵙기 전 숙소인 북평관에 머물면서, 접대하는 통사를 통해 근정전에서 국왕을 알현할 때 어리신 세자 저하까지 함께 뵈올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청하였다.
“어리신 세자께서 그 옛날 태조 대왕처럼 우리 무리를 진심으로 대하신다 하여, 뵙고 예를 표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새해 첫날, 윤서는 홍위에게 여진인들이 선물했던 호피로 지은 도포를 겉에 입혀 보냈다. 머리에는 이들이 선물한 검은 곰 가죽 이엄도 씌워서였다.
“아이고, 뵙디는 못했디만, 조부께서 늘상 뫼시고 저 북방을 함께 달리셨다 하신 태조 대왕이 생각나기요.”
홍위의 차림새를 본 여진족 추장들이 기쁜 음성으로 고하며 자신들의 자제들도 한양의 학당에서 유학할 기회를 청했다고 하였다. 또 영민한 젊은이들을 뽑아 보낼 터이니, 그들에게 두창 예방 침과 등창 치료용 연고 제조법을 가르쳐 주길 청하였다.
건주 여진의 이만주, 건주좌지휘사 범찰, 건주우지휘사 충샨도 수하를 보내 진상품을 바쳤다. 건주 여진의 사절은 근정전에 세워진 거대한 괘종시계에 먼저 놀라고, 또 비슷한 말을 쓰나 자신들과 적대 관계인 동쪽 야인 여진의 많은 부족이 젊은이들을 한양에 올려보내길 소망하는 것에 더 놀랐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이향은 기꺼워하면서도 군주답게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이전에는 여진의 여러 부족장 자제를 한양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주고 시위를 서게 하였는데, 함부로 준동하지 못하게 막기 위한 볼모 성격이 강하였소. 그래서 집도 주고 혼인도 시켜주었어도 늘 돌아가고 싶어하였지. 하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부족 내 가장 영민한 젊은이들을 보내 유학하게 하고자 하니, 그만큼 우리 조선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맞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건주 여진의 이만주가 날로 강성해지면서 명나라와의 교류를 방해하니, 대신 태조 때에 인연이 있던 우리 조선에 의탁하려 하는 것이오.”
조선과 한양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은 동평관에 든 일본 사신의 숫자로도 증명되었다.
늘 오는 대마도의 종씨와 대내전의 사절, 그리고 일지도의 소이전뿐 아니라 한동안 뜸했던 관서도 도진 가문에서도 유황 1천 5백 근, 사탕 1백 근, 연철(鉛鐵) 15근 등을 바치고 면포와 도자기를 하사받기를 간곡히 청하였다.
특히 특히 대마도와 대내전, 그리고 일지도의 소이전은 자신들도 여진의 여러 부락처럼 자제를 한양에 유학시키고, 여러 의술을 익힐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래서 연초부터 조선의 조정은 오랑캐라 부르는 이들 무리의 젊은이들이 학당에 유학오는 것을 허용할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간악하고 교활한 오랑캐 무리와 교류하여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는 의견에서부터, 우리 조선도 이제 함단을 띄워 저 먼 천축국까지 왕래하게 된 이 시점에 옛날 신라나 고려에서처럼 교류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까지.
각자 가진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서로를 논박하며 설득하려 하였다.
원 역사와 달리 조선은 바깥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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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 네가 왕실 학당에서 송로가무 등을 위해 한 일이 퍼진 것이다. ‘조선의 어린 세자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하니, 입조하여 은택을 입을 만하다.’ 는 말이 두만강 이북의 여진 사이에 돌고 있다고 하더구나.”
세종은 두만강 이북의 야인 여진 무리가 적극적으로 조선에 의탁하길 청해온 것이 모두 홍위 덕분이라고 칭찬하셨다.
연초의 정교하고 복잡한 왕실 행사가 모두 끝이 난 새해 정월 초이레 날이었다.
창덕궁 희정당에서 상왕 전하 내외와 국왕의 직계 가족만 모여 다과를 즐기는 자리에서였다.
그간 무겁게 갖춰 입었던 예복을 벗고 여염의 가족들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옷을 입고, 또 시중 드는 궁인을 모두 물리고 여염의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속내를 나누는 드문 오후였다.
“우리 태조께서 함경도 이북의 여진족 추장을 수하로 거느렸는데, 조선 건국 후 여러 일을 거치면서 아쉽게도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더냐? 여진은 뭉치면 큰일을 내는 부류니, 두만강 이북의 야인 세력이 홍위 덕에 다시 태조께 하듯 우리 조선에 귀부하길 희망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그간은 국경 내에 터를 잡고 살던 무리들까지 자꾸 강을 넘어 파저강 유역이나 저 위 영고탑까지 이주하려 해서 그들을 감시하고 회유하는 일도 큰일이었습니다. 홍위를 보니, 이방인의 마음을 사는 것은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향까지 나서 칭찬을 했다.
그러자 단정하게 앉아 있던 홍위 얼굴이 홍시처럼 발개졌다. 그러면서도 또 우리 홍위는 대 여진 정책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자신의 당당하게 밝혔다.
“두만강 이북엔 없는 것이 많다고 오드리나 올량합 사람들이 제게 말하였어요. 소금이 없어서 제일 힘들다고 하옵니다. 그냥 주는 것은 거지에게 하는 것이니 북방에 운종가처럼 시장을 열어 소금과 면포를 판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으아, 우이 떼자 헝님 멋지다. (으아, 우리 세자 형님 멋지다.)”
갓 튀겨낸 약과를 오물거리던 금동이가 눈을 반짝이며 홍위를 칭송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만 하여튼 멋진 말이라는 소리였다.
“우리 금동이는 형님이 그렇게 좋으냐?”
“녜에, 하바마, 헝님은 느 조존을 보다펴 주옵니다. (예에, 할바마마. 형님은 늘 소손을 보살펴 주옵니다.)”
“그런데 왜 얼마 전에는 홍위가 야인 여진 무리에게서 받은 큰곰 가죽을 가지고 싶다고 졸랐느냐?”
“그, 그거는······.”
좋은 것은 무엇이든 욕심낸다고 온 궐에 소문이 난 것을 놀리는 말씀에 금동이는 부끄러운지 두 손으로 뺨을 가렸다.
희정당 안에 흐뭇한 웃음이 번졌다.
왕가에서 형제간에 진실로 우애 있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양녕 대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세종이나, 수양 대군을 천축국에 보내는 이향이나 모두 절감하는 일이다.
“한 지붕 아래, 매일 복닥거리면서 함께 커서 저리 서로 애틋한가 보옵니다. 우리는, 전하. 향이도 또 유도, 막내 염이도 모두 유모한테 맡겨두고 아침저녁으로 잠깐씩만 보거나 아니면 며칠 건너서 보곤 하였지요. 형제들 간에도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났으니 친척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어요?”
둘째 수양 대군을 자꾸 멀리 내보내는 데에 꺼림칙한 맥락이 숨어 있음을 눈치챈 소헌 대비께서 안타깝게 말씀하셨다.
“저, 우리는 부용지에 가서 썰매를 타고 싶습니다!”
어른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희아가 눈치껏 동생들과 함께 나가 놀길 원하였다.
경복궁의 경회루는 흘러나가는 연못이라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는데,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지는 고인 연못이라 썰매 타기 좋게 얼음이 매끄럽게 얼었다.
윤서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 겨울 들어 털신 아래에 뾰족한 쇠를 달게 한 스케이트 신발을 만들어 주고 어떻게 스케이트를 타는지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홍위와 금동이, 그리고 이제 한 달 뒤면 혼인을 할 희아까지 ‘발썰매’에 푹 빠져 오후 내내 썰매를 즐겼다.
의외로 운동 신경이 좋은 희아는 벌써 붉은 치맛자락을 우아하게 날리며 얼음 위를 미끌어져 다니고, 홍위도 거침없이 전손력으로 질주하는데.
아직 걸음걸이가 완전하지 않은 금동이는 매금이의 손을 잡고 살살 탄다.
매금이는 윤서에게 첫날 스케이트를 능숙하게 배워, 아이들 선생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엄, 하바마, 하마마, 안넝히 게세요. (그럼, 할바마마, 할마마마, 안녕히 계세요.)”
‘썰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금동이는 허락도 안 받고 엉덩이부터 쭉 올려 일어나 방문으로 향하고.
“소손, 이만 물러가 썰매로 심신을 단련하겠습니다.”
홍위도 공손히 고하고 몸을 일으켰다.
희아도 우아하게 절을 올리고 총총 밖을 향했다.
“저리 어린데······.”
이향이 벌써 백 번도 더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희아의 하가 일이 다가올수록 새록새록 마음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영추문을 나서면 바로인데 무얼 그리 안타까워하느냐. 그리고 희아야 제 궁가보단 아무래도 군기시 작업장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더 길 것 같은데. 그보다도, 홍주의 땅을 정종에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느냐?”
세종이 윤서에게 물으셨다.
“왜 하필 홍주와 그 밑의 서천 염전인 것이냐?”
공주의 남편인 부마가 되면 일백 결이 넘는 궁방전을 받게된다.
윤서는 내수사가 소유한 삼백 개가 넘는 거대한 농장 가운데에 홍주의 땅을 정종에게 주길 주장하였다.
‘홍주는 홍성 옆 당진의 옛 지명이다. 당진은 우리 엄마의 집이 있던 곳.’
현대에서 윤서의 외가가 당진에 있었다.
홍성 출신인 아빠와 바로 옆 동네인 당진 출신의 엄마가 대학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윤서를 낳게 되었다.
어릴 적 방학 때 외가에 놀러 가면 인상적인 것이 널따란 우강 평야였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우렁이와 붕어를 잡아먹는 백로 떼가 끼룩끼룩 날던 곳.
그 평야에 외가도 백 마지기가 넘는 논을 가지고 있었는데 토지가 비옥해 쌀 맛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삽교천이 있으니 배를 대 수송해 오기도 좋다.
‘서천에는 새조개와 낙지도 많이 나고 염전 만들기도 좋으니까.’
이번 생의 정종에게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주고 싶다.
우리 희아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다.
조상님. 현덕빈을 대신하는 모정이 내수사 소유 농장 중 가장 알짜배기를 골라 사위에게 주고 싶게 만든다는 것을 설명할 바가 없다. 그래서 윤서는,
“현덕 빈께서 고향이 합덕이 아니옵니까? 바로 옆이 당진의 평야니, 이 다음에 우리 희아와 함께 가보기도 좋고 하여, 그래서 거길 골랐습니다.”
“그으래?”
세종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미심장하게 윤서를 바라보았다.
내수사가 소유한 농장의 전체 목록을 처음으로 중전에게 보여주었는데, 중전이 조선 팔도 지리에까지 훤했다. 합덕에서 태어났다고는 하나 그 직후 한양에 온 현덕 빈과 함께 줄곧 한양에만 살다가 일곱 살에 본방 나인으로 궐에 들어와 내내 산 중전이다.
그런 중전이 농장이 들어선 곳마다 주변에 무슨 강이 있고, 그래서 토질은 어떤 작물을 짓기에 적합한지, 그 바닷가는 진흙 개펄이 있는지 없는지와 조수간만의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그래서 염전을 짓는 것이 가능한지 안 한 지 등을 마치 직접 돌아보고 본 것처럼 훤했다.
모두 다 초중고 내내 지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찰 여행을 즐기는 엄마 아빠와 함께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다녀서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세종께서는,
‘대체 윤서는 기이한 지식에 이어 전국 지리뿐 아니라, 심지어 두만강 동북쪽으로 강이 흐르고 토지가 비옥하고, 또 석탄도 많이 묻혀 있으니 야인 여진 지역에 학당을 세우고 우리 조선인도 그리로 가서 섞여 살게 하자는 말을, 어찌 할 수 있을까?’
의구심 어린 눈초리로 윤서를 지그시 보셨다.
“전하, 커피 드시겠습니까? 우유 데워서 거품 낼까요?”
뜨끔해진 윤서는 서둘러 요사이 세종의 최애 기호품이 된 커피로 세종의 관심을 돌리고자 하였다.
“윤서야, 커피 나무가 우리 조선에서는 자라지 않는단다.”
에라 모르겠다.
세종은 늘 수수께끼인 중전의 정체를 캐기보다는, 그저 쿡 물으면 답을 내는 해결사로 생각하시기로 결론을 짓고 요새 가장 고민인 커피 나무 재배를 논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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