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동상이몽의 동맹 (2)
“한 공이 첫 항해를 오기 직전 어여쁜 여식을 보지 않았소? 마침 내게도 그 즈음 태어난 아들이 있으니 참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니겠소?”
“참으로 그러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자손을 낳는 기쁨을 함께 누렸는데, 또 그 귀한 아이들 재롱도 못 보는 안타까움까지 함께 느끼고 있으니······.”
무슨 의도로 수양 대군이 자손을 거론하는지 알면서도 한명회가 딴청을 부렸다.
한확의 서신을 받기 전이라면 당장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정하자고 달려들었을 혼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특히 중전께서 면포 공장에 따로 숙련된 직공을 보낼 정도로 각별하신데, 마침 그 즈음에 태어난 대군이 계시다.
그에 비해 수양 대군 측은 첫째도 아닌 둘째의 혼인을 제안했다.
천기가 다시 변해 수양 대군이 대업을 이룬다고 해도, 둘째면 거기서 한고비 더 넘어야 하니.
“초석만 무사히 구하면 저도 한양으로 돌아가 딸아이를 안아볼 수 있겠지요.”
한명회가 느물느물 혼약 동맹을 거절할 때였다.
“대군 자가, 부사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고하는 소리와 함께 안색이 파리한 신숙주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아이고, 신 수찬!”
습관처럼 집현전의 직책으로 신숙주를 부르며, 수양 대군은 진심으로 반갑게 신숙주를 맞이하혔다.
이번 초석 무역에서 수양 대군은 사신단의 수장인 정사, 신숙주는 실무 총괄의 부사의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신숙주가 사신단을 이끌면 자신의 공은 전혀 주장할 수 없을 것을 우려한 한명회는 마침 여송에서 학질에 걸린 신숙주를 떼어놓기 위해 함선의 출발을 서둘렀다.
이에 신숙주는 고열에 시달리는 몸을 이끌고 함선에 올랐지만, 천축국 대륙 남부 마두라이에 도착했을 땐 때로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의원 하나와 함께 남게 되었던 것이다.
신숙주의 호전을 기다려도 되련만 한명회가 굳이 항해를 서두르는 이유를 알고도 모른 척했던 수양 대군은 이날만큼은 신숙주가 무척 반가웠다.
아무런 벼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배려로 해외 무역에서 큰 역할을 얻게된 주제에 감히 혼인 제의를 거절하는 한명회가 괘씸했기 때문이다.
수양 대군은 신숙주의 손을 반가이 잡으며 물었다.
“학질은 다 나으신 것이오? 내 신 수찬을 마두라이에 두고 오면서 내내 여래불께 경의 회복을 빌었는데, 과연 부처께서 내 정성에 무심하지 않으셨구려.”
“혜민국에서 딸려 보낸 의원이 학질에 해박해 여러 약제를 잘 달여주었습니다. 덕분에 마두라이에서 나흘만에 털고 일어나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지요. 하온데 자가, 왜 저를 기다리시지 않고 저들을 만나신 것입니까? 그것도 모자라 오히려 굽신거리며 부탁하는 모양새를 취하신 것입니까?”
“아니, 거,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오, 부사 나리!”
캘리컷에 와서 모든 만남을 주동한 한명회가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지금 막 지방관이 우리 화포 방포 시범을 본 후,”
“왜 우리 수군이 저들 앞에서 잔나비마냥 재주를 부려야 한단 말이오? 그런 것은 초석 무역을 확정 짓고 축하하는 의미로나 보여주는 것이오.”
“유 첨사 말로는 금상 전하께서!”
“어허! 유 첨사는 무관이라 외교의 섬세한 절차를 모르오. 우리 전하께서 저들에게 화포의 위력을 보여주라 하신 것은 이번 거래 이후로 장차 여러 핑계로 거절하고자 할 때를 대비하여 위력을 미리 보여두고, 또한 화포 기술을 조금 전수하여 친화의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란······. 하! 한 공은 조정의 관료도 아닌 것을, 내가 왜 이런 설명을 공에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출항하기 전, 강녕전으로 신숙주를 부르신 전하께서는 중전마마와 함께 여기 천축국이라 뭉뚱그려 부르는 큰 땅덩이가 실은 무수히 많은 토호의 세력권으로 나누어진 나라이고, 토착 힌두교를 믿는 중남부의 비자야나가라 제국 세력과 북쪽 회회교를 믿는 술탄의 여러 왕국과 치열한 다툼이 있는 곳이라 말씀하셨다.
부모님과 비자야나가르 힌두 왕국의 수도 함피를 여행해 본 적 있는 윤서에게서 나온 개략적 지식이었다.
“왕조는 바뀌어도 토착 세력은 늘 여전히 강성하다 하니, 초석 무역지를 결정할 때 해외 무역 상인이 많이 오가는 국제 도시이자 중앙 왕국의 지배권이 약한 곳을 골라 협약을 맺으시오.”
전하의 명을 받자와 대마도에서부터 여송과 그 너머를 오간 왜의 해외 무역 상인들을 수소문하고 외교 절차를 구상해온 신숙주였다.
그런데 자신이 아픈 틈을 타 한명회의 말만 듣고 국가의 중대 외교를 이리 어설프게 진행하다니!
오자마자 유응부에게 그간 있었던 일부터 상세히 들은 신숙주는 분노하고 있었다.
“대군 자가, 저는 이번 초석 구매 협약을 맺고 돌아가면 여기 캘리컷에도 그리고 여송에도 외교와 무역을 주관할 조정 인사를 체계를 갖추어 파견해야 한다고 우리 전하께 고할 예정입니다. 초석 이만 근의 무역이 단발성이 아닌데 일을 이리 허술하게 하시다니요. 이 일로 얕보이게 되면 앞으로 무수히 몰려올 우리 조선 상단은 이들 좋은 일만 시키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
“자가, 저와 함께 지방관을 만나러 가시지요. 제가 여기 언어를 벌써 배워두었으니 아주 전문적인 말 외에는 외교적 수사를 나누기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외교의 형식과 내용을 보시고 장차 자가께서 저 남쪽 새로운 섬을 개척하실 때 그 중간에 있는 여러 섬의 부족의 왕과 어찌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할지 배우시기 바랍니다!”
신숙주의 말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 아니. 신 수찬! 그 이야기를 왜 지금!”
“남쪽 새로운 섬이라니요, 대군 자가!”
한명회의 표정이 한 박자 늦게 일그러졌다.
“자가께서는 천축국과 여송의 개척만으로 끝나지 않고 또 더 먼 곳으로 가셔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
수양 대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신숙주가 대신 말했다.
“한 공은 아직 모르시었소? 평원 대군이 유구 서북쪽 대만이란 섬을 개척하고 계시듯, 수양 대군께서도 몇 년 내로 저 남쪽 큰 섬을 개척하러 떠나실 예정이오. 한 공은 대군 자가의 대리인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당연히 함께 가시는 것 아니오? 금상 전하께서도 그리 알고 계시었소.”
“!”
“!”
수양 대군은 한명회를 바라보았다.
가장 데리고 가고 싶은 인재이자 동시에 두려울 정도의 야심가인 한명회가 수양 대군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한양에 돌아가 화려하게 중앙의 정치에 한 발 들여놓으리라는 꿈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좌절당한 한명회는 이글이글 눈빛을 불태우고 있었다.
“한 공은 예서 기다리시오. 나는 신 부사와 지방관을 만나고 올 터이니.”
수양 대군은 부러 싸늘하게 명하였다.
갈 곳을 잃은 들개는 엄히 기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고깃덩이 하나라도 얻어먹으려면 공손히 엎드려 꼬리를 홰홰 흔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터이니.
불안하던 마음이 오히려 후련해져서 수양 대군은 신숙주와 함께 캘리컷의 지방관을 만나기 위해 거처를 나섰다.
홀로 남은 한명회는 머리에 길게 늘인 터번을 잡아 뜯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중앙에 등용될 가능성이 없단 말인가!’
구촌 당숙 한확의 서신으로 부풀었던 가슴이 반나절이 가기도 전에 처참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러자 두창 예방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음에도 자신을 향한 시선이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갑기만 했던 금상 전하의 용안도 떠올랐다.
“왜! 대체, 왜!”
외교적 절차의 섬세함은 부족했을지언정 빠르게 성과를 얻어내게 일을 꾸몄는데, 그 공은 다 어디로 가고 대체, 왜 자신은 이렇게 불운하게 외면을 당해야 하는가.
터지는 울분 속에서 다시금 확실한 것은, 자신의 운명이 결국 수양 대군의 흥망과 엮여 있다는 운명의 재확인이었다.
‘흥. 혼인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순식간에 싸늘하게 돌변하던 수양 대군의 눈빛을 떠올리며 한명회는 온 힘을 다해 보필한 수양 대군에게 장차 토사구팽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양 대군의 후계는 딸아이의 정혼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벌써 다짐했다.
그리고 장차 미지의 섬에서 개척지를 조성한다고 하면 그 안에서 수양 대군은 얼마나 강대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은 또 얼마나 큰 권력을 걸머쥘 수 있을지, 여기 천축국에서 여송, 그리고 그 사이 점점이 뿌려진 여러 섬 사이의 세력 판도를 홀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
연일 추위가 매섭게 몰아치다가 어른 종아리까지 눈이 쌓인 동짓달 하순.
금동이는 광평 대군의 아들 수복이와 함께 자선당에서 사정전, 강녕전으로 통하는 좁은 골목에 커다란 눈사람을 하나 세우고 그 옆으로 눈덩이를 단단히 뭉쳐 수북하게 쌓는 중이다.
“헝님이 학당져 오디면 나 차지어 오딜 거야. 그러 때 여기 이 눈자람 뒤에 숨어 있다가 막 던져야 대.”
(형님이 학당서 오시면 나 찾으러 오실 거야. 그럴 때 여기 이 눈사람 뒤에 숨어 있다가 막 던져야 돼.)
“데자 헝님 눈 맞지면, 어떡하지? 아버님이 또 눈덩이 사암한테 던지면 혼 내딘다고 했는데.”
(세자 형님 눈 맞으면, 어떡하지? 아버님이 또 눈덩이 사람한테 던지면 혼 내신다고 했는데.)
어제 금동이와 눈 내린 궐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물동이 이고 가는 무수리한테 눈덩이를 던져 놀라게 한 일로 광평 대군에게 한참 혼이 난 수복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떼자 헝님은 젓때 그언 거 안 일여. 그이구, 게동이 헝님이 또 더 무접게 눈덩이 던지 꺼야. 그어니까 빠이빠이 비!축!해야 대.”
(세자 형님은 절대 그런 거 안 일러. 그리고, 계동이 형님이 또 더 무섭게 눈덩이 던질 거야. 그러니까 빨리빨리 비!축! 해야 돼.)”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 ‘비축’이란 단어를 배운 금동이가 뻐기면서 그 말을 써먹을 때였다.
“금동아, 수복아! 너네 거기서 눈사람 만드니?”
예상한 대로 협경당 안에서 세자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계동 형님의 목소리도 들렸다.
“쟤들 또 눈사람 크게 만들어 그 뒤에 숨어 있겠지. 세자 저하, 우리도 여기서 눈 뭉쳐서 가지고 가요!”
“아유, 계동이 넌 어째 아가들하고 똑같이 놀려고 그러니!”
“헐, 아가라니! 새총 쏘는 족족 참새 잡는 아가들도 있어요? 세자 저하는 어째서 이렇게 동생들한테 마음이 무른지. 어이구.”
“새벽아, 너는 들어가서 어머니랑 있어. 매금아, 새벽이 좀 안고 들어가. 금동이랑 수복이랑 던진 눈덩이 맞으면,”
“눈탱이가 밤탱이 되지!”
계동이가 낄낄거리며 살금살금 협경당 서쪽 문으로 상체만 쏙 내밀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금동이와 수복이는
“방뽀하라!”
(방포하라)
목청껏 외치며 슝슝 눈덩이를 날리기 시작했다.
팔을 뻗어 그 중 하나를 척 받아낸 계동이 오호, 감탄하며 홍위에게 내밀었다.
“보세요, 저하. 진짜 돌덩이처럼 뭉쳐놨어요. 그렇지만, 다 방법이 있지!”
계동이는 연일 내리는 눈을 치우기 위해 행각 광에 구비해 둔 커다란 넉가래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눈덩이 여섯 개를 단단히 뭉치고, 네 개는 도포 주머니에 넣은 후, 한 손으로는 넉가래 판으로 머리와 가슴을 가리고 골목에 뛰쳐나가 눈덩이를 던지며 소리쳤다.
“방패군이 빼어난 투설(投雪) 솜씨까지 갖출 때의 위력을 너희가 아느냐? 음핫핫핫!”
그 모습을 보던 홍위가 매금이의 품에 안긴 새벽이의 뺨을 스윽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요새 왕족들이 연일 모화관 벌판에서 전투 훈련을 받으니, 애들도 다들 참.”
“헝님, 조딤하세요.”
(형님, 조심하세요.)
새벽이는 금동이보다도 더 또렷한 말로 대답하고는, 매금이 품에 고개를 묻으며 칭얼거렸다.
“곶감 져. 추워뎌, 단 거 먹고 싶다.”
(곶감 줘. 추워서, 단 거 먹고 싶다.)
“와, 아기씨! 우리 박 상궁님 같아.”
매금이는 새벽이를 안은 채 통통 뛰어 협경당 안 중전마마의 전각으로 향하였다.
새벽이를 보낸 후 홍위는 씨익 웃으면서 머리의 수달피 이엄을 단단히 쓰고 토끼 가죽으로 만든 털장갑을 단단히 꼈다. 그리고 재빨리 눈덩이 네 개를 단단히 뭉친 후, 골목에 몸을 던지며 소리쳤다.
“자식들! 눈싸움이 무엇인지, 내 오늘 단단히 알려주마!”
와아아아!
금동이와 수복이는 수북하게 쌓아둔 눈덩이를 마구 던지고,
계동이와 홍위는 동생들이 눈사람 옆으로 머리를 내밀 때를 노려 정확히 맞췄다.
서너 번 얼굴에 눈덩이를 맞은 금동이와 수복이는 더는 못 견디고 사정전 쪽으로 도망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아, 아쁘다. 너무해.”
(아아, 아프다. 너무해.)
“와아, 떼자앙 게동이가 사암 잡는다!”
(와아, 세자랑 계동이가 사람 잡는다!)
그렇게 소리치며 도망친 사정전 뜨락에는 조정의 대신들이 거적 위에 꿇어앉아 천추전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외치고 있었다.
“상왕 전하! 신성한 훈련장에 기생을 끼고 술판을 벌이다니요!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음이옵니다!”
“상왕 전하! 태종의 유훈을 받들어, 부디 국법을 지엄함을 보이소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