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택현(擇賢)의 군주 (3)
“택현은 없을 거야, 홍위야. 두 분 전하께서 택현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고 중전인 나도 택현에 절대 반대할 것이지만, 그렇지만 홍위야.”
윤서는 힘주어 선언하였다.
“설사 택현이 있다고 해도 우리 홍위는 이미 세자가 될 자격을 넘치게 증명했어. 세자 저하와 세자빈 마노라의 적장자로 태어난 완벽한 태생 요건과 어린 나이에 벌써 주변의 신망을 얻는 자질에 이르기까지, 조선 건국 이래 우리 홍위만큼 완벽한 세자의 요건을 가진 이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거야.”
감싸 쥔 작은 손에서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현대로 치면 고작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는 꼬마는 생의 많은 시기를 알게 모르게 세손으로, 세자로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중전인 자신에게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다.
‘저를 세자로 지지하십니까.’
금동이와 새벽이가 영민하게 성장한다고 해도 저를 계속 지지하실 것입니까.
조선 왕실에서 중전은 조정의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없으나 국왕이 승하하고 차기 왕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대보를 전할 자격을 가진다.
그 권력을 이용해 먼저 존재하는 세자를 견제하여 뒤늦게 태어난 자신의 친자를 왕위에 올리고자 한 왕비는 동서고금의 역사에 차고도 넘침을, 윤서도 알고 그리고 홍위도 잘 알았다.
그래서 홍위는 금동이를 뱃속에 품고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강 깊은 물 속에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던 ‘어머니’에게 마음 깊이 품고 있는 의문을 물었다.
“···어머니. 제가 왕가의 장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이, 옳다고 믿으십니까?”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노비로 사는 것이 옳지 않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 어머님이시라면, 왕의 장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십니까.
인간은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는 존재이다.
어머니는 노비 세습 제도가 옳지 않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고,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한에서 이미 그 세습제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홍위는 어머니의 신념에 의거해서도 자신이 세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아들로서의 본능이자, 내명부의 권력자인 중전에게 진정한 지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꼬마 군주로서의 요구이기도 하였다.
‘많이 컸네, 진짜. 우리 홍위.’
이제는 품 안의 아이가 아니다.
습관처럼 뭉클하게 드는 감동을 억누르며, 윤서는 홍위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머리의 장신구를 더듬었다. 진주와 홍옥으로 장식한 백옥 봉황 비녀가 단정히 꽂혀 있는지 확인하고, 길게 늘여 입은 보라색 장삼의 고름도 제대로 매어 있는지 확인한 후 윤서는 등을 위엄 있게 세웠다.
“세자로 물으시니, 중전으로 답하겠습니다.”
“예, 중전마마.”
손을 맞잡느라 허리를 굽혔던 홍위도 등을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윤서는 홍위의 시선을 어른처럼 마주하고 또박또박 믿는 바를 밝혔다.
“왕조 체제에서 택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중전으로서 내가 가진 신념입니다. 그것은 왕실 적장자로 태어난 태생의 존귀를 믿는다기보단 왕위 승계 과정을 둘러싸고 왕실 내의 여러 세력 간의 정쟁이 국력을 소모하게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름의 신념이 확고한 중전 개인으로서도 홍위와, 홍위의 왕위 계승을 확고히 지지한다는 선언이었다.
“······.”
홍위는 아무 대답도 없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나 윤서의 대답이 얼마나 어린 홍위에게 든든한 지지가 되었는지는 꽉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윤서는 다시 한번 확언하였다.
“나는 언제까지나 가장 강력한 지지자로 네 등 뒤에 서 있을 거야.”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지지와 인정을 필요로 한다.
특히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이의 지지와 인정을.
그리고 이제 처단의 시간이다.
윤서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누가 감히 우리 저하의 귀에 택현 운운하는 불온한 말을 속삭인 것이야?”
“어!? 그것이.”
홍위는 당황해서 금동이가 한 말을 옮겼다.
이번에 당황한 이는 윤서였다.
“아, 아니! 금동이가?”
한 달 전 안평 대군, 그리고 일본의 황실에서 보낸 사신과 함께 반송방의 공장에 간 일이 있었다.
실권에서는 막부에 밀리나 문화와 예술 방면에서는 일본의 전역을 선도하는 황실에서 차 도구를 올려놓을 다탁(茶卓)과 그에 어울리는 다기 일체를 주문하고 싶어하였기 때문이다.
자개를 붙인 후 옷나무 액을 이용한 흙칠 염료를 여러 번 칠해 정교한 무늬를 내는 화려한 가구와, 이에 대비되도록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색조의 차 도구 색을 논의한 후 공장 밖으로 나와보니 금동이가 손을 벌벌 떨면서 정교하게 세공된 청옥 연적을 양녕 대군의 손에 도로 건네고 있었다.
“이언 건 우이 떼자 헝님한테 어우이는 거에요.” (이런 건 우리 세자 형님한테 어울리는 거에요.)
일개 왕자에겐 너무 과분한 선물이기에 받을 수 없다는 꼬맹이의 말에 양녕 대군은 핫핫핫 허리를 비틀며 웃더니 윤서를 힐끗 보며 들으란 듯 말하였다.
“왜? 택현을 한다면 너도 얼마든지 이런 것 따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갈 수 있는데! 그러니까 받거라, 꼬맹아.”
중전으로 윤서가 무슨 야망을 품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그리고 그 야망을 자신이 뒷받침해주겠다는 은근한 아부였다.
옆에서 흠칫 몸을 굳히는 안평 대군이 느껴졌다.
윤서는 역사에서 양녕 대군이 어떻게 수양 대군을 부추겼을지가 눈에 그려졌다.
윤서는 당장이라도 저 늙은이의 뺨을 올려붙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지만 옆에는 일본의 사신단이 있었다.
“대군 자가, 사신단을 부탁드립니다.”
윤서의 말에 안평 대군은 이제 왕실 도요에 가서 도자기 문양과 모양을 정하자고 제안하고 일본 황궁 사신단을 인솔하여 떠났다.
화려한 왕실 마차 세 대가 공장의 너른 마당을 빠져나간 후, 윤서는 매금이를 불렀다.
매금이는 눈치 빠르게 금동이를 안고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금동이가 어른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을 듣지 못할 정도로 멀어진 후, 윤서는 이제까지 깍듯하게 대하던 예법을 버리고 성큼성큼 양녕 대군에게 다가섰다.
“상왕 전하께서 천하의 성군이심을 오늘 새삼 깨닫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닥 인품이 훌륭하지 못한지라, 다시 한번 이런 황당한 말씀을 듣게 될 때엔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양녕 대군이 얼마나 흉흉하게 윤서를 노려보았는지.
가장 귀한 자리에서 밀려난 분노와, 한미한 출신의 계집 따위에게 받는 모욕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수염까지 떨던 양녕 대군은 침을 뱉듯 한 마디를 남기고 흉흉히 떠나갔다.
“흥, 언제든 폐해질 계집 따위가!”
그런데 그 어려운 단어 ‘택현’을 금동이가 기억했다가 홍위에게 일렀단 말이지.
그 말을 듣고 여러 가지 불안이 든 홍위가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이 일은 그냥 넘길 수 없다.
좀 전에 세종께서 석탄과 석회 채취가 활발한 강원도 일대를 순행 중인 이향에게 금선패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급히 돌아오라는 호출을 의미하는 금선패를 보내신 것은 의금부에 하옥된 양녕 대군과 그의 아들의 처분을 논하시기 위해서일 터.
세종께서 양녕 대군의 죄를 정확하게 따지기로 마음을 정하셨다면, 이 발언까지를 아셔야 한다.
그래야 감히 택현 운운하며 홍위의 위상을 흔들고 더불어 윤서, 그리고 금동이와 새벽이를 함께 위태롭게 할 자들이 생겨나지 않을 터였다.
*****
홍위를 협경당으로 보낸 후 윤서는 천추전에 가 상왕께 독대를 청하였다.
천 상궁만이 배석한 자리에서 양녕 대군의 발언을 들으신 세종께서는 눈을 꾹 감고 오랫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침묵의 밀도가 점점 짙어져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로 변하였을 때.
“너는 정말로 그런 뜻이 없는 것이냐?”
세종은 뜻밖의 질문을 하셨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력에 대한 갈망이 있게 마련이 아니냐. 네가 낳은 금동이보다 홍위가 왕이 되는 것을 너는 진실로 기꺼이 바라느냐?”
지친 듯 발음마저 어눌해지신 전하의 음성에는 기어이 형제를 처벌을 결단해야 하는 괴로움과, 그 처벌을 더욱 무겁게 만들 언행을 고발한 윤서에 대한 노여움이 함께 스며 있었다.
‘이향도, 홍위도 모두 이런 무게를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겠지.’
형제를 결단하고, 모후의 의도마저 의심하고. 자식을 경계하고.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원래 권력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저에게는 왕위가 그닥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홍위도 세자의 무게를 벗고 하루라도 더 아이답게, 또래의 아이로서 누려야 할 삶을 더 많이 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러 금동이가 재물과 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게냐?”
“!”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 말씀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윤서는 이향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금동이가 정치가 아니라 상업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 많은 공을 기울여왔다.
안고 어를 때마다 ‘신밧드의 모험’ 등 보물을 찾아 떠난 이들을 담은 동화를 이야기해 주었고, 좀 더 크면서부터는 온갖 진귀한 왕실 세공품을 보여주며 귀중품에 대한 안목과 갈망을 함께 높였다.
그리고 요새는 해류를 타고 도달할 수 있는 신대륙의 황금과 은광, 그리고 또 향신료로 동서양의 무역 중심이 되는 여송과 천축국, 아프리카를 넘어 도달할 수 있는 서유럽의 찬란한 문명과 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황금색 똥을 변기가 넘치도록 싸는 아기의 태몽을 꾸고 낳은 아이답게 금동이는 태어난 직후부터 까마귀처럼 온갖 반짝이는 귀금속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 관심이 오늘날 거의 전문가처럼 예술품을 감정하는 안목으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분명히 윤서의 반복적인 이야기가 큰 역할을 하였다.
“······.”
요 몇 년 사이 농본상말(農本商末)의 기조를 버리고 상업과 공업 발전을 장려하는 쪽으로 국시가 변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상공업은 신분이 귀한 자가 대놓고 나설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왕족과 조선의 상류층이 중전인 윤서를 비난하고자 할 때 제일 먼저 들고 나오는 것이 한미한 궁녀 출신이라서 체신 없이 직접 상단과 공장을 운영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귀한 신분의 대군에게 거대 상단을 이끈 장사치의 길로 유도하는 것을 세종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윤서는 가늠이 되지 않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윤서의 침묵을 긍정으로 확인한 세종께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꾸짖는 것이 아니다. 정치 외에 다른 것을 크게 이룰 수 있다면 마땅히 그리 해야지.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되지 못한다고 늘 계집 끼고 술이나 마시고, 풍류와 예술만 즐기고 후원하면서 한량으로 살아야겠느냐. 그런 것보다는 비록 강제로 내보내졌다만 수양 대군처럼, 평원 대군처럼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옳다.”
그 말씀을 끝으로 세종은 윤서에게 이만 나가보라 이르셨다.
열흘 후.
양녕 대군 이제는 폐서인되어 제주도에 안치되었다. 죽을 때까지 신분의 회복 없을 것이며, 또한 제주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엄명과 함께였다.
양녕 대군의 세 아들과 계양군 이증은 작첩을 회수당하고 각각 전주, 평안도 영변, 강원도 평창에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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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고, 북방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요동도 지휘사가 파견한 사신이 의주에서 한양까지 쉬지 않고 달려, 급보를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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