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총포 시대와 왕족의 의무 (2)
“오라버니가 자꾸 달달의 와랄야선과 명이 전면전을 벌일 것이니 주의 깊게 황궁 동태를 살펴 알려달라 할 때에 내 내심 비웃음을 금치 못했었다.”
북경 자금성의 깊은 내궁.
조선의 공녀로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던 한씨가 나른한 표정으로 조카 한치유에게 말했다.
한확의 아들이나 서자인 까닭에 북경에 머물며 명 황실의 여인인 고모를 보필 중인 한치유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은 채 귀한 과실 여지의 껍질을 벗기는 데에 집중했다. 고모님 말씀이 딱히 들으란 의도보다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공신 부인 한씨는 조카가 말끔하게 까놓은 여지 한 알을 입에 오물거리고는, 머리에 화려한 장신구를 막 꽂아준 시종 시월이에게 조선인 여의 분이에게 사람을 보내라 명하였다.
“분이에게 서두르라 명하거라. 내가 미열이 있어 황자를 뵈옵지 못한 지 사흘이나 되었어.”
“예, 마마님.”
상황의 후궁으로 황손도 생산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접도 받지 못한 조선 여인에게 황후를 도와 황자를 보살피는 기회는 목숨줄과도 같은 일이란 것을 잘 아는 시월이는 종종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마침내 색색의 비단이 화려하게 휘장을 내린 전각에 조카와 둘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황궁에는 벽에도 귀가 있는 법.
한씨는 시월이가 완전히 멀어진 후에도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저 아이가 중전의 사람인 것을 아느냐?”
“예?!”
“저 아이도, 여의(女醫) 분이도 모두 중전 권씨의 사람이다. 내 행하는 바와 명 황실에서 일어나는 굵직굵직한 일을 조선의 중전은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아니, 아시면서 왜 그냥 두시는 것입니까?”
한계란이 의아한 듯 묻는 조카 한치의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묘했다.
“···설마, 저까지 의심하십니까?”
“흥. 누굴 믿어야 한다면 그나마 조카인 네가 아니겠느냐. 조선의 중전도 마찬가지야. 저 아이를 보낸 덕에 내 타고난 미모가 쇠하질 않고, 그래서 황상의 여인들이 미모의 비결을 얻기 위해 이것저것 뇌물을 들고 내 처소에 오는 것이 아니냐. 여의도 마찬가지야. 분이의 탁월한 의술 덕에 내 황궁 내 입지가 강해지지 않느냐? 그래서 나는 조선의 왕비가 마음에 든다.”
한계란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황손 하나 잉태하지 못했고, 선황의 총애를 받는 여인도 아니었던 조선 출신의 후궁으로서 거대 제국의 황실에서 그나마 존재감을 발휘하려면 출신국 조선 내에서 친정의 존재감이라도 커야 한다.
그래서 조카를 세자빈으로 만들려고 했다가 뜻밖에도 이란 이야기 때문에 되려 친정은 몰락의 위기에 놓였었다.
한계란도 조카를 통해 정음을 배운 후 을 읽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친언니의 사연인데도 읽는 내내 눈가가 짓물도록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이 탁월한 이야기를 한어로 번역해 북경에 유통시키겠다는 조카를 극구 만류하였었다. 언니 여비에 이어 자신도 공녀도 바쳐진 것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한어로 번역된 을 읽은 명나라 사람들은 언니 여비를 옛날 흉노의 선우(왕)에게 바쳐진 한나라의 미녀 왕소군과 비슷한 처지라며 동정적으로 열광하였고, 덕분에 자신도 비운의 조선 미녀로 덩달아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한계란은 조카의 출판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조선의 작가 세우(細雨)의 다른 작품을 몸소 한어로 번역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나마 자신의 학문적 식견을 높이 사준 장태황태후께서 승하하신 후 존재감 없이 밀려나던 자신이 내궁에서 위치를 다지는데 중전이 보내준 꾸밈 시종 시월이와, 여의 분희의 도움이 컸다.
그러니 위상이 예전보다 못한 친정 한씨 가문보다 조선의 중전이 더 고마운 은인이기도 하였다. 중전에게 여기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아니, 그 정도 철두철미한 중전이 조선에 버티고 있으니 돌보고 있는 황자에게 행여 불행한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순장을 당하지 않을 거란 안심이 오히려 들 정도로 한씨는 서늘하고 영민한 미인이라는 조선의 중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명나라에서 조선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것은 새해 사신단의 접견 순서만 봐도 실감이 나지 않니? 저 북쪽 위구르나 동쪽 회회국, 남쪽 천축국에서 온 사신들보다 훨씬 뒤 순서로 밀렸던 조선의 사신이 올해부터는 앞 순서에서 황제께 알현 예를 올리고 있어. 덕분에 내게 황실 예법을 묻는 이들도 더 많아지고, 황후도 더욱 빈번하게 황자의 양육을 내게 맡기고 있지 않니.”
장차 황태자가 될지 모를 황자의 양육을 담당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걸, 한계란은 명심하고 있었다.
“내 그래서 부러 조선의 중전께서 시월이와 분이를 내게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황태후께도, 황후께도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 나를 이리 귀히 여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러니 고마운 중전께 나도 보답을 해야지.
한계란은 조카에게 여지를 내려놓고 가까이 오라 손짓하였다.
한치의는 비단 천에 과즙을 닦아낸 후 무릎걸음으로 고모님께 다가앉았다.
“한양의 오라버니께 신속하게 전하거라.”
한계란은 조카의 귀에 대고 최근 벌어진 명 황실의 내밀한 일을 속삭였다.
한치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그, 그럼, 정말로 조선에서 예측했는 것처럼 명나라와 달달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란 말씀입니까??”
“그렇대도. 사례감의 우두머리 왕진이 달달의 야선에게 야선의 아들과 우리 명나라의 공주를 혼인시켜주겠다고 공언하면서 수많은 뇌물을 받아 챙겼단다. 그런데 본래 공주의 혼사는 황태후의 소관이 아니냐. 황상이 스승이라 부르는 왕진을 위해 그리 부탁드려도 태후께서 머리 벅벅 밀고 다니는 오랑캐 놈들에게 공주가 가당키나 하냐며 완고히 거절하시니 그 국혼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야.”
몽골 전체를 통일했으면서도 칭키스칸 직계의 황금 씨족이 아닌 관계로 그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달달의 와랄야선은 태생의 부족함을 명나라 공주와 후계자를 혼인시켜 보완하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 은밀히 명 황제의 절대적인 총애를 독점하고 있는 태감 왕진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쳤는데, 평소 왕진의 말은 무조건 신뢰하는 황제도 황태후의 말에 따라 와랄야선과 공주와의 혼인은 불가하다고 최근 공언한 것이 한씨가 알아낸 황실의 은밀한 동정이었다.
“그런데 왕진이 받아먹은 뇌물도 안 내놓고 여전히 거만하게 구니 분노한 야선이 연말에 직접 입조하여 황상께 왕진의 행태를 직접 고하겠다고 벼른다더구나. 왕진은 왕진대로 야선을 토벌해 입을 막을 생각이고. 그런데 생각할수록 신기하단 말이야, 정말.”
한계란은 여지가 올려진 은쟁반 위로 긴 손가락을 우아하게 뻗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조선에서는 이 둘의 사이가 틀어질 것을 어찌 예측하고 그 조짐이 보이면 알려달라 하였던 것인지.”
“나라를 망치는 간신의 행보란 뻔하지 않습니까? 환관 따위인 왕진이 조정의 상서까지 땡볕에 세워 탈수로 죽게 하니, 그런 자의 말로가 어찌,”
“쉿! 목소리를 낮추거라.”
한씨는 분개하는 조카를 꾸짖었다.
그리고 여지의 달콤한 과즙을 음미한 후, 문득 또 수려하게 웃었다.
“오랑캐에는 단호해도, 우리 조선은 다르지 않았느냐. 언니도 여비로 봉할 정도로. 내게 황자 교육을 맡길 정도로.”
“······?”
또 무슨 수를 쓰시는가.
지나치게 아름다우면서도 홀로 이국의 내궁에서 쓸쓸히 늙어가면서 날로 계략이 정교해지는 고모님을 한치의는 불안한 눈으로 응시했다.
“근자 황상께서 조선에서 온갖 빼어난 기물을 만들고 있는 것에 관심이 지대하시다. 황후도 조선의 화장품과 비누를 아주 귀히 여기며 사용하고.”
“···고모님, 설마?”
조선의 공주를 후궁으로 명 황실에 들이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와랄야선은 전조 원나라와 연결이 있고 늘 국경을 소란케 하니 결국 토벌해야 할 대상이지만, 조선은 유학을 신봉하며 사대를 해왔고, 또 최근 명나라의 원군 요청까지 받는 긴밀한 관계가 아니냐?”
“하오나 일찍이 공주를 이국에 보낸 예는······.”
“얘가! 누가 조선의 공주를 공물로 바치라 한다고 하더냐? 조선에 다녀온 칙사의 입을 통해서 어린 세자가 영특하고 영민하다고 지금 황실에까지 소문이 났느니라.”
“그, 그럼 명의 공주를, 세자빈으로, 말씀입니까?”
“그래. 달달의 야선도 꺼내는 말을 우리 조선이라고 못 꺼낼 이유가 있느냐.”
아니, 고모님!
지난번 지금 보위에 오르신 전하의 세자 시절, 조카를 세자빈으로 만들려고 수를 쓰시다가 아버님께서 유배를 가시게 되셨던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러나 황후를 도와 황자를 양육하면서 점점 더 크게 야심을 키워가는 한계란에겐 조카의 우려가 보이지 않았다.
“자고로 여자를 보내는 쪽이 약자이니라. 명의 공주가 조선에 세자빈으로 있게 되면 두 나라 황실과 왕실을 잇게 한 내 공은 그만큼 커질 것이니, 명 황실에서 시모 모시듯 나를 대할 것이고. 조선에서도 또한 시시때때로 내게 공물을 보내 치하할 것이다. 또 조선 내에서 우리 한씨 가문의 위상도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갈 것이고.”
두루두루 좋은 것이지.
그 정도는 되어야 꽃다운 나이에 이국에 보내져 황제 얼굴은 몇 번 보지도 못한 채 내궁에 갇혀 시들고 있는 내 삶도 보람이 충만할 것이 아니냐.
한계란이 아름다운 얼굴에 권력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우선은 와랄야선과 왕진이 틀어졌다는 소식만 하루빨리 아버님을 통해 조선의 조정에 전하겠습니다. 국혼 문제는 정말로 조선이 명의 청을 받아 출병하는 일이 일어난 이후에나 꺼내시지요.”
한치의가 이렇게 고모 한씨를 만류한 것은 명 황실의 오만한 거절을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혼례가 내궁의 주관인 것은 조선의 왕실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대비마마와 중전마마께서 명 공주를 세자 저하의 빈으로 들이는 것을 탐탁해 하실 것인가.’
몇 년 전 반송방의 상점가 다점(茶店)에서 상왕 전하를 모시고 잠행을 나온 남장 차림의 중전마마를 직접 뵌 적이 있다.
아주 잘생긴 청년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기세가 단호했던 중전마마는 명 황실을 등에 업고 함부로 위세를 부려대던 아버님 한확과 한씨 가문 전체를 단숨에 진창에 쳐 넣을 만큼 그 계책이 탁월했었다.
“그리고, 치의야. 당장 한양으로 달려가 오라버니께 또 전하거라. 수양 대군의 큰아들과 막내 조카와의 혼약은 없던 일로 하라고.”
한씨가 보기에 수양 대군은 이미 버려야 하는 패였다. 게다가 수양 대군에게는 또 다른 아내가 생겨서 아들을 보았다고 하지 않은가.
“수양 대군에게 앞날이 없어. 아니, 설사 기회가 생겨난다고 해도 지켜줄 어미도 없는 것을 어찌 믿고 함께 미래를 도모할까. 도원군은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니라.”
이것이 북경에 있는 한씨가 읽어내는 조선의 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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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田稅)를 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단 느낌이네.”
태종의 서장자인 경녕군 이비가 이복 동생인 신빈 소생의 함녕군 이인의 집에 찾아든 것은 통행금지를 알리는 파루의 종소리가 막 울리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근자 여러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진법 훈련을 지휘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던 함녕군은, 하는 수 없이 서장자 형님 경녕군을 사랑으로 모시는 수밖에 없었다.
상석에 앉자마자 경녕군은 바로 용건을 꺼냈다.
“자네는 못 느끼셨는가? 상왕 전하께서 우리 형제들을 대하시는 것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저는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동복형제를 비롯하여 왕족 전체를 보는 상왕 전하의 시선이 전에 없이 서늘해지신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녕군 이인은 일단 모르는 체 고개를 흔들었다.
“어허, 이 사람! 또 모르쇠! 한사코 감싸시던 양녕 형님을 폐서인하여 제주에서 사방 오 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유폐 시키신 것이야 워낙 뭐, 쌓인 죄가 많아서라고 치고. 갑자기 우리에게 세금을 내라니. 아니, 세금만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어허, 형님. 그런 말씀 하시려거든 그냥 주무십시오. 어여쁘게 노래 잘하는 계집종 하나 넣어드릴 터이니, 즐기시다 품고 주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내 말이! 앞으로 어여쁘게 노래 잘하는 계집종이 없어질 것 같단 말이세.”
“······?!”
“전농시 노비가 양민으로 속량되지 않았는가?”
“그거야 신농법 개발에 공이 큰 자들 고작 몇을,”
“자네, 상왕께서 그간은 노비 수를 줄이려고 과거의 시제로까지 내셨어도 하나라도 직접 속량하라 명하시는 것을 보았는가? 그런데 하필 그 계집들마저 수월하게 쏘는 총포를 요란하게 보이신 후 왕족의 궁방전에서 전세를 걷겠다고 하시는 것부터가, 응? 왜 하필 계집이고, 왜 하필 천한 거지새끼들이야.”
“말씀이 왜 이리 두서가 없으십니까? 이미 약주 조금 드신 것 같으니, 일단 주무시고 밝은 날 말씀하십시오.”
함녕군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노래와 음율을 제법 익힌 어린 여노비 하나를 주안상과 함께 들여보내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날의 대화는 다음 날, 조 상궁을 통해 윤서의 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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