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수양 대군을 바라보는 세종의 시선 (2)
“사시사철 더운 나라인 천축국의 항해를 통해,”
상왕께서 하문하신 바를 고하던 수양 대군이 한순간 머뭇거렸다.
온기 하나 없이 싸늘한 부왕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단어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소신’은 항해를 통해 이 세상에는 명나라 외에도 강한 나라가 더 있고, 또한 나라를 이끄는 국시가 반드시 유학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수양 대군은 ‘소자’와 ‘소신’ 중 신하의 위치를 강조하는 ‘소신’을, 그리고 조선이 세워지며 성균관 교육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산술 등이 다시 채택될 것이란 소식에 의거하여 국시를 거론하며, 남방의 뜨거운 태양과 바다의 거친 바람에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그 덕에 가지게 된 구리빛 진한 얼굴색이 속을 꿰뚫듯 날카로운 부왕의 눈빛으로부터 이 복잡한 심정을 감춰줄 것이기 때문이다.
전날 궐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어마마마는 짙게 그을린 손을 안타까운 듯 쓰다듬으시며 거듭 타이르셨다.
“유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상왕 전하와 형님 전하께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몸을 보존할 수 있어. 상왕 전하의 안색과 눈빛이······.”
차마 말씀을 잇지 못하고 깊게 한숨을 쉬신 어마마마는, 탄식과 함께 무서운 경고를 내리셨다.
“그 기막힌 일이 있던 때 선대 왕께서 보이셨던 눈빛과 유사하시다. 그러니 유야. 부디 행동을 삼가다오. 죽은 현동 어미처럼 되어서는 아니 된다, 유야. 부디 이 어미를 봐서라도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을 품어서는 아니 된다! 응!
어마마마 말씀이 옳았다.
신하들이 배석한 공식 석상에서야 군신간의 예를 철저히 지킨다고 해도 사적인 왕실 모임에서는 양녕 숙부가 아바마마께 예를 갖출 때 세자 시절 형님은 일어나 살짝 몸을 돌려 절을 사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바마마께선 열 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덩치가 커진 세자를 무릎에 앉힌 채로 네 번의 절을 다 받으셨다.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 빈틈없이 예를 갖추던 어린 조카도 불편한 기색 없이 앉아 있다가 자신이 꿇어앉아 고하기 시작한 후에야 “할바마마, 소손 이제 아이가 아닌지라 무겁사옵니다.” 애교 넘치게 고하며 옆으로 비켜앉았다.
평소 같으면 모욕을 받은 듯 발끈한 마음이 들련만,
이날 수양 대군은 그 심기를 표현할 엄두를 감히 내지 못했다.
부왕의 경고를 읽었기 때문이다.
네가 섬겨야 할 미래의 군주가 여기 내 무릎에 앉아 있노니.
네가 살아 누리는 모든 것이 금상과 세자의 자비에 달려 있느니라!
그래서 수양 대군은 납작 몸을 낮추고 단 한 순간도 공손한 자세를 늦추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
살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천축국에서는 초석이 고드름처럼 땅에 묻혀 있습니다. 순도가 아주 좋아서 화약으로 만들기에 최상급의 재료가 된다고 하는데, 과연 어제 형님 전하께서 미리 실어 보낸 천축국의 초석으로 만든 화약의 파괴력이 이전보다 세 배나 더 증가했다고 말씀하시니, 소신 아주 보람된 기쁨을 느꼈나이다.”
세종은 아예 자신을 ‘소신’이라 칭하여 오로지 신하 된 자의 마음가짐이 있을 뿐 다른 마음은 하나도 없음을 호소하는 둘째 아들을 삐두룸히 응시하다 다시 하문하였다.
“그리고 또, 무엇을 배웠더냐?”
늘 인자하셨던 옥음에 살기가 느껴지는 것은 나의 착각인가!
수양 대군은 한층 더 낮게 고개를 조아린 채 고하였다.
“또한 나라의 부는 절약에 있지 않고 생산과 무역에 있음을 소신 깨쳤습니다. 자금 우리 조선에서는 여러 남방의 왕국뿐 아니라 명나라에조차 없는 기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신이 첫 번째 항해에서 구해온 회회청 가루로 무늬를 그려 구워낸 도자기, 또 형님 전하께서 만들어 내신 정교한 은제 나침반, 먼 곳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망원경 등은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도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저들이 반기니, 이들을 팔아 초석과 목화 솜 등을 구해오면 서로에게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수양 대군의 직감은 옳았다.
수양 대군이 더욱 공손이 고개를 숙이면 숙일수록 세종의 분노와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저리 꿀을 바른 듯한 혀와 거짓 겸손으로 향이를 속여넘겼겠지.’
조부 태상왕께서 선친 태종을 두 번이나 격살하려 하셨단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부를 이해하지 못하였었다.
나라를 창업하신 군주께서 어찌 사사로운 분노를 못 이기시고 조선을 반석에 올릴 다음 군주를 죽이려 하셨단 말인가.
그리 생각하였는데, 오늘 내 그 노여움이 무엇인지 알겠구나!
일평생 모든 것을 걸어 나라를 세웠더니, 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이 자식들의 골육상잔이었다면! 자신을 따랐던 백성에게 부끄러워 태상왕께선 야음을 틈타 도적 떼처럼 개성의 궁궐로 환궁하셨다더니!
유, 네놈이!
왕가에 깃든 핏자국을 지워내고 성군의 치를 실현하기 위해 내 온 평생을 노력하였거늘!
네놈이, 네놈이!
공손히 고하는 말이 점점 더 조롱으로 들려 세종이 몸을 부들부들 떨 때였다.
“수양 숙부, 말씀을 끊어 송구합니다.”
홍위가 낭랑한 목소리로 수양의 말을 끊고, 할바마마의 손에 작은 손을 올려놓았다.
“할바마마, 차를, 아니 커피를 들여오라 이를까요? 어마마마께서 수양 숙부께서 새로 가져오신 커피 알갱이를 새벽에 볶아 가져오셨습니다.”
어린 세자의 손의 온기가 지금 여기,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을 지금의 조선으로 세종으로 데려왔다.
어린 손주는 자신의 동요를 알아차리고 위로를 보내고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와, 김종서 등이 정리한 고려사와, 윤서가 개략한 서양의 역사를 함께 강독하면서 무수히 반복되는 왕실의 권력 찬탈에서 무엇을 느끼느냐 천추전에서 물었을 때,
홍위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싱긋싱긋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요새 제가 여러 왕조의 흥망사를 배우고 있다고 하였더니 아바마마께서 ’홍위야, 군주는 경계를 늦춰서도 아니 되지만 두려움에 휘둘려서도 아니 된다. 그러니 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되, 홍위 너는 이제 겨우 여덟 살임을 명심하거라. 배움보다 매일 즐겁게 지내는 데 더 힘써야 할 나이니라. 아비는 훌륭한 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보낸 어린 시절이 후회되더구나.‘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소손은 할바마마께 열심히 배우면서 또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홍위는 늦은 오후가 되면 금동이와 계동이, 수복이, 새벽이까지 우르르 끌고 경회루 앞 공터에서 말을 타거나 활을 쏘고 때로 또 교태전 앞뜰에서 목검으로 대련하기, 제기차기, 땅따먹기, ’척이매야‘ 하는 도깨비 물리치기 등 또래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왁자지껄하게 즐기다가 “할마마마, 소손 목이 마르옵니다!” 외치며 대비전으로 우르르 들어가 주전부리를 얻어먹었다.
천추전까지 들썩거리게 만드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모든 비극은 그저 저쪽 윤서가 떠나온 세계의 역사일 뿐, 여기서는 다른 역사가 기록될 것임을 선언하는 것과 같아 세종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도 영민한 홍위는 왜 자신을 불러 무릎에 앉히고 숙부의 절을 받게 하였는지 이미 알고 있구나.‘
그래서 ’경계하시는 노여움을 부디 푸시옵소서‘ 고하는 무언의 위로로 손을 잡아 위로하고 있다.
“···중전도 함께 오셨더냐?”
세종께서 드디어 평소의 어조로 물으셨다.
“예, 소손이 할바마마 부름을 받았음을 아시고, 새로 갈아 신선한 향이 나는 커피를 올리고 싶다고 함께 오셨어요. 아마 퇴선간에서 손수 커피 내리시고 계실 것이옵니다.”
홍위는 부러 긴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어리광 부리듯 말하였다.
홍위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밖에서 궁인이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왕 전하, 중전께서 다례(茶禮) 상을 준비하였사옵니다.”
“들이거라.”
문이 열리고 상궁과 나인이 다과상 세 개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중전은 어디 계시느냐?”
“중전마마께오선 전하께 올릴 커피를 내리신 후 혜빈 자가의 처소에 거동하셨습니다. 혜빈 자가께서 미리부터 퇴선간에 오셔 기다리고 계시다가 간곡하게 따로 뵙기를 청하셨사옵니다.”
“···그래, 알았다. 물러들 가거라.”
다과 상위에는 구수하게 내린 커피와 더불어 말린 포도알을 올려 구운 밀가루 정과와 여러 가지 과일 정과가 올려져 있었다.
“할바마마, 어마마마께서 말씀하시길 커피에는 이 건포도 정과가 어울리는데, 이것은 고운 밀가루에 계란을 풀어 넣고 또 우유로 만든 수유(버터)를 녹여서 넣어 반죽하여 만든 것이옵니다. 할바마마께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소손과 금동이가 같이 빚어 수라간에서 굽게 하였사오니 커피에 곁들어 드시옵소서. 수양 숙부, 숙부님께선 곶감과 잣을 띄운 수정과를 맛보세요. 오랜 타향 생활에 조선의 음료가 그리우셨지요?”
“······!”
통통 튀듯 밝게 종알거리는 세자의 말에 수양 대군은 앞에 놓인 다과상을 내려다보았다.
계피 향이 강한 갈색의 수정과에 침울하게 눈을 내리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숨결에 따라 가볍게 일렁이는 표면이 자신의 처지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수양 대군은 수정과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주발을 내려놓고 아바마마와 조카를 바라보았다.
커피의 짙은 향을 음미하는 아바마마의 시선은 어린 조카를 향해 부드럽게 빛이 나고, 대전이 촛대가 부러지는 불길한 징조와 함께 태어났던 꼬맹이는 어느새 늠름하게 자라 살갑게 웃으며 건포도 정과를 상왕께 건네고 있다.
하늘의 징조가 변하였다더니.
마침내 아바마마께서도 변하셨구나.
탄식하는 수양 대군에게 세자가 또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말하였다.
“숙부님, 비현각에 오셔서 대마도와 유구국, 그리고 천축국의 캘리컷에 대해 들려주세요. 오산군도, 도원군도 또 계동이와 금동이, 수복이도 함께 이국의 풍습과 제도에 대해 함께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금상 전하와 숙부님의 뒤를 이어 이 조선의 장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아니옵니까?”
부드러운 청이었으나 그것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세자의 명‘이었다.
수양 대군은 이제야 적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자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저 당당한 태생적 지위를 흔들기 위해서는 전 부인이 행했던 뒷구멍 술수 따위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하여 수양 대군은 형형한 눈빛으로 감히 세자의 명에 네 어찌하나 보자 주시하시는 상왕 전하의 눈빛 아래 천천히 고개를 조아렸다.
“신 이유, 세자 저하의 명을 받잡아 부르시는 대로 비현각에 들겠습니다.”
“좋아요, 숙부님. 실무 외교를 담당한 신숙주도 함께 부를 터이니, 오셔서 실제 항해에서 보시고 배우신 모든 지식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 전하의 비호와 중전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어린 세자는 날로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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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가 세종과 함께 수양 대군을 친견한다는 말을 듣고 윤서는 함께 창덕궁으로 향하였다.
세종께 새로 볶아낸 신선한 커피를 드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어릴 적 수양 대군을 두려워했던 홍위에게 암암리에 힘을 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중전마마, 이것이 얼마만입니까?”
희정당에 딸린 퇴선간에서 커피를 갈아 내리고 있었더니, 혜빈 양씨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이제 막 사십이 된 혜빈 양씨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피어나 있었다.
함께 처소에 들어 커피와 차, 다과를 나누며 어떻게 이렇게 얼굴이 좋아지셨냐고 물었더니 혜빈은 입꼬리를 쑥 올리며 온 얼굴로 웃었다.
“좋은 일만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 세자 저하 날이 갈수록 늠름해지시지요, 중전마마 굳건하게 전하의 총애를 받으시고, 두 분 대군 아기씨도 귀엽게 건강하시지요, 공주 자가 금슬 좋으시단 소문이 파다하지요, 우리 한남군도 왜에서 제법 제 몫을 해내고 있지요, 또,”
좋은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던 혜빈이 눈을 찡긋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무엇보다 상왕 전하께서 경복궁에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상왕 전하 모시기를 좋아하신 것이 아니었어요?”
윤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혜빈이 ’이리 눈치가 없으실 수가‘ 하는 표정으로 가볍게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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