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세종과 홍위의 성균관 개혁 (1)
[신 등이 삼가 아뢰옵니다.요순으로부터 도학이 시작하여 공자께서 융성하게 널리 펼치셨고, 맹자 이후 천 년 동안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송대에 이르러서야 유자 주렴계가 비로소 진전의 실마리를 얻은 후 주자께서 비로소 도학을 완성하셨습니다.
천지와 우주의 생성 원리와 인륜의 바른 지향을 밝힌 주자의 유술이 우리 동방에 전해지면서 불씨를 숭배하던 고려의 광망한 정치를 뒤엎고 성현의 가르침을 국시로 하는 조선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중략)]
닭털과 오리털로 속을 채운 겨울 군복을 대량 생산하는 일로 수표교 건너 군포 공장에 나가 있다가 세종의 부름을 받고 천추전에 들었던 윤서는 수북히 쌓인 상소 중 맨 위의 것 하나를 후루룩 읽고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홍위가 조금 지친 표정으로 코를 찡긋해 보였다.
이 많은 상소를 벌써 다 읽었는지 눈이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홍위가 굳이 성균관에 입학을 해야 할까.’
유려하게 한자로 쓰인 상소의 내용은 미래에서 온 윤서의 눈에는 우아한 헛소리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시대는 각 시대의 이념과 진리를 가지고 있는 법이고, 그 시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씩의 진보를 이루어내는 것이니.
윤서는 조선의 학제 결정권을 가지고 계신 세종께 공손하게 시선을 돌렸다.
“전하, 추석을 쇤다는 명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던 유생들이 복귀하지 않고 이런 상소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하다.”
침중하실 줄 알았는데 세종은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셨다.
상소에서 제기된 사안을 토론함에 있어 고금 지식에 통달하신 세종을 이길 신하가 없다더니, 이제 미래 지식까지 장착한 논리로 유생들을 자근자근 밟아놓으실 생각에 즐거우신 것인가.
요새 국정 전반은 이향이 다 주관하고 있고, 그래서 세종이 유일하게 전권을 행사하시는 분야가 교육 분야이다.
정무를 모두 이향에게 넘기고 홍위와 함께 격구를 하시면서 고기만큼 채소도 드셔서인지, 처음 조선에 와서 뵈었을 때보다 신수가 오히려 더 훤해지셨다.
“홍위야, 이 할아비가 막 생각을 굴려야 할 땐 중전을 그냥 ‘윤서야’라고 부른단다. 그래야 생각이 잘 나거든.”
평소에도 미래의 미래 학문을 배우실 땐 ‘권가야’ ‘윤서야’ 하고 부르시는 일이 잦으신데, 오늘은 홍위가 있으니 미리 호칭에 대해 양해를 구하셨다.
“할바마마, 저도 어마마마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훨씬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져서 그러합니다.”
“그래? 그럼 나도 할아버지라고 편히 불러. 왜 전에 그렇게 부르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할바마마인 것이야?”
“아, 그건. 소손도 이제 성균관에 입학할 것이니 더욱 예를 갖출 줄 알아야 할 것만 같아서······.”
“하아. 그것이 문제로구나.”
한숨을 쉬신 세종께서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시고 윤서를 바라보셨다.
“왜 그 정교분리 있지 않니? 윤서 네가 저 먼 서역에서 일어났다고 가르쳐 준 종교 개혁과 정교분리 말이다.”
“!”
아니, 전하.
우리 홍위가 있는데 제가 미래에서 온 영혼이라는 것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밝히셔도 되옵니까.
당황한 윤서가 입을 꽉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세종은 흥흥 웃으며 홍위에게 말씀하셨다.
“중전이 기이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 세자도 잘 알지. 아니 그러하냐, 홍위야?”
“예, 할아버지. 저도 잘 알아요. 제가 어머니께 들은 신기한 이야기를 동무들한테 해주면, 한치례가 명나라에도 그런 이야기 책은 없다고 부러워했어요.”
수시로 명을 오가는 한확의 아들 한치례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윤서가 해주는 것이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워낙 신기한 지식을 많이 배워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래. 네 어머니의 지식을 참고해서 장차 성균관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할아비가 결정하려는 것이란다. 홍위 너는 장차 성균관에서 수학하면서 장차 네 신하가 될 유생들을 설득하고 또 때로 계도해야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서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고.”
조근조근 이르시는 세종의 음성에는 손주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윤서는 오후마다 세종께서 홍위에게 성균관 유학부에서 교재로 쓰고 있는 , , , 등의 사서와 , , , , 의 오경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천재 할아버지가 물론 그만큼 영민하나 아직 어린 손주를 직접 가르치신다기에, 역사 속 비극을 알게 되신 급한 마음에 너무 의욕만 앞세우셔서 혹시 홍위를 버겁게 만들지는 않으시는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배울 때처럼, 귀 쫑긋 세우고 귀담아 듣겠습니다.”
어리광까지 부리면서 밝게 답하는 홍위를 보니 저렇게 애정을 담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짚어주고 계신 것이리라.
물론 그만큼 홍위가 세종의 가르침을 잘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여서, 저절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럼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윤서야, 네가 보기에 이 상소 속의 논리가 그 서양 중세의 기독교와 정치가 합쳐졌을 때의 논리와 유사하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정교분리를 물은 것이다.”
“어! ‘중세’는 무엇입니까?”
세종은 윤서에게 고대와 중세, 근세, 현대로 나누는 시대 구분법을 배웠지만, 홍위는 약 15세기까지의 세계사만 배웠던지라, ‘중세’란 말이 낯선 것이다.
“···중세는,”
반사적으로 답을 내놓던 윤서는 세종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다 밝히려 하십니까.
눈으로 여쭙자, 세종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제야 윤서는 세종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세종은 새로이 정립하는 학제가 홍위 대까지 지속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홍위를 부른 것이었다.
이향은 당연히 세종의 유지를 이어갈 것이지만,
원래 역사에서처럼 이향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홍위가 일찍 보위에 오르더라도 여러 세력의 권력 다툼에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치세를 이어가라는 의미로 아직 어린 홍위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이었다.
그것은 손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군주로서 자신이 일군 조선이 경직되고 폐쇄적인 나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비이기도 하였다.
또한 윤서에게 내리는 명이기도 하였다.
너는 운명의 흐름에서 빗겨 있는 존재니,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든 홍위가 군주로서 오래도록 빛나는 치세를 이어갈 수 있게 해야만 한다!
네가 조선에 온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
‘왜, 벌써······. 이리 건강하시면서.’
원래 역사와 달리 소헌 대비도 살아 계시고, 광평 대군과 평원 대군도 죽지 않았는데 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하십니까.
가장 두렵지만 동시에 가장 존경하는 존재인 세종께서 보이시는 의외의 모습에 윤서의 눈이 촉촉해지자, 세종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인생에 그 무엇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은 윤서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니? 이만큼 살아보니 인생은 장자가 말한 것처럼 문틈으로 달려가는 백마를 보는 것처럼 짧기만 하구나.”
“···할아버지이, 제가 이담에 아들과 함께 추는 검무, 보신다면서요.”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를 홍위가 깼다.
“황희 대감도 아직 정정하게 의정부에 매일 등청하는데요. 안 되겠어요. 오늘부터 저랑 더 많이 격구도 하고 말도 타세요.”
“아핫핫. 그래, 그래. 황희가 요새 고생이 많아. 유생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다시 성균관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있다더구나.”
아니 여든여섯 살이나 된 영의정이 유생들 집을 찾아다닌다고!
윤서는 세종께서 왜 오히려 홀가분한 모습을 보이시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벽창호처럼 고집을 세우는 것들은 이 조선에 필요가 없다고 벌써 결단을 내리신 것인가.
“아까 ‘중세’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홍위야. 서양에서는 백 년을 단위로 세기라고 부른다더구나. 지금은 십오 세기라고 한다. 중세는 대략 십 세기에서 지금까지를 말하는 듯하고. 윤서야, 맞지?”
“예, 맞습니다. 홍위야. 서양은 우리와 다른 시대 분류 체제를 가지는데, 예수란 사람이 탄생했을 때를 기준으로 세기를 정했어.”
윤서는 예수의 탄생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기독교가 서양에 어떻게 전래되었고 그 이후 중세까지 사회 전반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어머니. 지금 우리 조선에서 유학을 국시로 하여 사회 체제 전반을 만든 것이 서양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하여 다스리는 체제와 유사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중세 이후 서양이 기독교를 정치에서 분리한 것이 정교분리이고요.”
역시.
우리 홍위는 그간 배웠던 지식과 오늘 새로 듣는 지식을 합쳐 세종께서 ‘정교분리’를 왜 묻고자 하시는지까지 바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저는 하나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성균관의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는 ‘유소(儒疏)’를 넘어서서 아예 등교를 거부하는‘공관(空館)’까지 벌여 늙은 재상이 설득하기 위해 돌아다닐 정도라면, 다시 성균관에 돌아온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세종도 그걸 바라지 않으시기에 결단을 내리시기에 앞서 윤서와 홍위를 부르신 것이다.
“상소에 쓰인 것처럼 단순히 유학 외의 학과를 개설하는 것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종교 개혁도, 정교의 분리도 결국 기존 체제가 사회 변화를 감당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유생들과 유학자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조선의 변화가 두려운 것입니다. 성리학만이 중심이 되는 세계에서 자신들은 미래의 고위 관료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기반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 내 생각도 그러하다. 성균관에서 율학이나 산학을 배운 이들도 차자 고위 관료로 등용될 수밖에 없다. 홍위야, 네가 다스릴 즈음이면 우리 조선에 해외 개척지가 여러 곳 생기게 될 것이야. 게다가 지금 나날이 문물이 변화하고 있고, 학당에 유학 오는 이방인들 숫자도 날로 늘어갈 것이다. 달라진 시대에는 다른 제도가 필요하고, 그를 뒷받침할 전문 인력이 배출되어야 해.”
“예. 두만강 이북에서도 많이 오고 싶어 한다고 학당 동무들이 종종 서신을 보내옵니다.”
“그래도 유학은 필요하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중심이 되는 국시는 반드시 있어야 해.”
이 말씀을 하시며 세종은 윤서를 바라보셨다.
“너의 세상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국시이듯, 이 시대 우리 조선에는 유학의 가치가 여전히 타당한 국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지금처럼 다른 모든 것을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폐쇄적이고 사변적인 유학이 아니라, 원래 공자께서 나라 경영에 참여하고자 하는 인재들을 위해 가르치신 그 유학 말이다.”
그러자 홍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성균관에 돌아오길 거부하는 유생들에게 딱 맞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논어 술이 편에 ‘임금이 써주면 나아가 도리를 행하고, 임금이 외면하면 도리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숨어 지낼 줄 아는 것은 나와 안회뿐이로구나.’ 한 구절 말입니다!”
“오호라, 홍위야. 계속 말해보거라.”
세종이 뿌듯한 눈빛으로 손주를 바라보셨다.
오늘 홍위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가르침, 군주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는 신하와 유생을 어떤 논리로 격파할지를 홍위가 스스로 깨쳐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께선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능력을 발휘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조용히 물러나 수신에 힘써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저들이 성균관에 돌아오지 않는 것은 지금의 조선이 무도(無道)한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그래. 정녕 그러한 것이다. 나와 금상의 치세를 무도한 다스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굳이 불러다 밥 먹이고 재워주고 과거에서 특혜를 줄 것이 무엇이라더냐.”
그리하여 세종은 유생들을 설득하러 나가 있는 노구의 황희를 불러들이라 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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