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세종과 홍위의 성균관 개혁 (2)
“전하께서 내려주신 마차가 있지 않습니까?”
어명을 받고 천추전에 든 황희는 노구 이끌고 새파란 유생들 찾아다니느라 수고가 많다는 세종의 말씀에 되려 손사래를 쳤다.
“전에 평교자를 타고 다닐 땐 구사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썩들썩 흔들려서 골이 울렸는데, 폭신폭신 솜 두툼하게 넣은 의자에 편히 앉아 다니니 하나도 수고롭지 않습니다.”
칭송이 길었다.
완전히 새하얀 머리카락을 한 노신하가 허리를 굽히고 길게 바치는 칭송 속에는 세심한 충성이 스며 있었다.
세종의 시대는 황희와 함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유학자보다 더 투철하게 유교 의식에 맞춰 조선의 제도를 확립하는 데 재위 기간을 쏟아부은 군주가 이제 상왕으로 물러나 스스로 세운 그 근간을 뿌리부터 바꾸려 하신다.
그것은 군주로서 자신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고도 결연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세우고 이제 함께 허물고 있는 이 늙은 신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비애이기도 하다는 것을 긴 칭송 속에서 읽어낸 윤서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영상 대감, 어서 앉으시지요. 천 상궁.”
그러자 아까부터 목을 쭉 빼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천 상궁이 은 쟁반을 높이 들고 와 황희 대감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산삼차를 내려놓았다.
“삼십 년 넘은 산삼에 대추 듬뿍 넣고 끓인 약차입니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윤서가 말하자, 황희 대감은 활짝 웃으며 또 허리를 굽혔다.
“마차 의자를 감싼 푹신한 솜 방석도 중전마마께서 친히 명하여 내려주셨다지요. 차까지 이리 세심하게 챙겨두시니 신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일평생을 한결같은 자세로 조정 일에 임하신다고 아바마마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어마마마께서 각별하게 준비하라 명하신 차이옵니다.”
역사서에 이래저래 조선 시대 정승의 전형으로 존경받는 황희 대감을 이렇게 책상을 마주하고 가까이는 처음 뵙는 윤서와 달리 벌써 천추전에서 여러 번 뵈었던 홍위가 친근하게 말했다.
“아이고, 늙은이가 자발 없이 물러나지도 않는다고 노엽지나 않으시면 다행인데요. 감사합니다, 세자 저하. 저하께서도 이만 좌정하시지요.”
긴 인사가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황희 대감은 홍위 옆쪽으로 끝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옥색 고운 찻잔을 감싸고 몸을 살짝 옆으로 돌린 채 차를 마시고, 홍위도 시원하게 내온 식혜를 호로록 마셨다.
“그래, 무어라고들 하던가?”
황희 대감이 불려오기까지 한 시진 동안 세종께선 윤서와 홍위와 함께 건너편 방에서 점심을 드셨다. 후추와 정향을 듬뿍 넣고 약한 불에 오래 삶아 얇게 저민 꿩고기 수육에 각종 버섯과 야채를 넣고 담백하게 끓여낸 메밀 온면을 한 그릇 드신 후이신지라 아까보단 퍽 부드러운 어조셨다.
“여전히 공관(空館)을 지속한다고들 하던가?”
“송구하오나, 재야 유학자들까지 뜻을 함께하는지라 쉬이 돌아오려 하지 않을 듯하옵니다.”
“그럼, 저들은 지금 두 분 전하의 치세가 무도(無道)하여 출사할 수 없다 하는 것입니까?”
아까 오전에 스스로 내렸던 논리를 들이대며 홍위가 입술을 비죽이며 물었다.
고작 여덟 살이어도 일찍부터 제왕 교육을 받아온 세자답게 자못 노여운 기세가 등등하였지만,
윤서는 그 모습마저 귀엽고 대견해 사안이 심각함에도 그만 고개를 숙이며 몰래 웃음을 지었다.
이럴 때 윤서는 자신이 아직도 완전히 조선의 중전이 되지 못했다고 느낀다.
역사서에서 뵈었던 분들이 상석에 앉으시고 또 맞은편에 앉으셔서, 황희 정승은 구순이 가까워도 홍안의 백발에 눈빛은 젊은이처럼 형형하게 빛내면서 세자를 가르칠 때,
드라마를 시청하는 듯 한 발 뒤로 물러나 관찰자 모드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윤서는 홍위를 보며 살캉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홍위를 위해서라도 정신 바싹 차리고 여기 이 조선에 중전으로 두 발 딛고 서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황희 대감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아닙니다, 세자 저하. 저들이 어찌 감히 그리 생각하겠습니까? 두 분 전하의 치세가 만고에 없는 성군의 치(治)인 것은 백성의 살림살이가 날로 펴지는 데에서 확연한 것을요. 다만 저들도 부지런히 익혀 온 학문을 기준으로 불가함을 아뢸 뿐입니다.”
황희 대감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아뢰었다.
“세자 저하, 저들은 장차 금상 전하와 세자 저하의 치세를 도울 인재들입니다. 신하와 백성이 감히 전하의 뜻을 좇지 않으려 할 때에 어찌 노여움이 드시지 않겠습니까? 하오나 왜 따르려 하지 않는지 그 근본 원인을 먼저 고루 살피셔야만 인재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서는 슬쩍 상석에 앉아 계신 세종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세종께서도 윤서를 바라보셨다.
“······.”
“······!”
이제야 윤서는 세종께서 굳이 황희를 불러 성균관의 일을 논하시는 자리에 홍위는 물론 윤서까지 배석하게 하신 뜻을 깨달았다.
‘신하의 직언과 통찰을 어떻게 수용할지, 또 의견을 좇지 않으려는 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지 직접 보고 배우라는 뜻이시구나.’
상왕 세종과 노신 황희는 홍위에게, 그리고 혹여 수렴청정을 하게 될지도 모를 중전에게 삼십 년 가까이 군주와 신하로 맞춰온 합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계셨다.
“그럼, 영상이 보는 원인은 무엇인가?”
아마 이미 다 알고 계실 세종께서 홍위와 윤서를 위해 덤덤히 하문하셨다.
“불안이 아니겠습니까, 전하? 전하께서는 그 어떤 유학자보다 배어난 학자로서 지난 삼십 년간 우리 조선에 유교의 예법을 바로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해오셨습니다. 날로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는 국조오례의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정교한 절차를 따져 지킬 이도, 또 전하와 우리 세자 저하를 모시며 행할 이도 모두 조정 신료와 성균관 유생, 그리고 재야 유학자들입니다. 하온데 근자 들어 유학 외의 실용 지식을 가르치는 학당이 여기저기 늘어나고 게다가 상업과 공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황희도 거침없이 답을 올렸다.
“고위직을 독점해온 유학자들이 정책의 변화 속에서 기득권을 잃을까 불안해한다는 말을 영상은 참 길게도 하는구먼.”
“전하, 그 불안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갑사를 선발하는 데에 신분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등용하고 무기와 군복까지 지급하며 또한 적지 않은 월봉까지 지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머지않아 노비를 세습하는 일도 폐지될 것이라 하는 소문도 돌고 있지요. 저들의 재산 기반이 노비이온데, 신분의 우월성과 더불어 재산까지 이리저리 빼앗길 것 같은 불안과 물만이 공관으로 표출되었을 뿐입니다.”
“그럼, 경은 그 푹신한 마차를 타고 가서 고작 ‘너희들 불안은 타당하다’ 하고 돌아왔단 말인가?”
세종께서 역정을 내셨다.
그러자 신하에게, 그것도 아버지뻘의 나이 많은 신하에게 노엽게 말씀하시는 할바마마를 처음 본 홍위는 막 넓어지기 시작한 어깨를 잔뜩 굳힌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분을 번갈아 응시하였다.
“그럴 리가요, 전하. 소신이 어찌 그리 허랑하게 다녀왔겠습니까? 직제학 신숙주를 데리고 가 저들에게 일갈하게 하였습니다.”
황희 대감은 학문의 깊이가 다방면에 남다른 신숙주로 하여금,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데 어째서 율학과 산학 등을 잡학이라 하여 무시하려 드는가? 지금 의주와 여연, 회령 등지의 국경 무역에서는 거래 대금의 몇 할을 무역 관세로 거두어야 상업도 더욱 활성화하면서 세수를 늘릴 것인지 서로 논의가 치열하고, 또 저 먼 여송에 무역관을 낼 때엔 그 나라 말에도 능통하고 국제 무역의 이문을 늘리기 위해서 어떤 상품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도 잘 파악하는 관리가 나가서 현지 세력으로부터 우리 백성을 보호하며 국익을 위해 애써야 하거늘. 앞날을 통찰하시는 임금께서 나라를 위해 일할 자들을 길러내는 성균관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게 하는 학과를 신설하시다는 데 앞서 배울 요령은 내지 않고 잡학이라 배척하려 든다니, 그대들이 과연 앞으로 조선의 동량이 되고자 하는 포부가 있는 자들인가?”
혼을 내게 하였다고 고하였다.
상왕 전하와 금상 전하의 총애가 깊고 병으로 쇠약해졌을 때 자청하여 일본에 서장관으로 다녀오며 계해약조를 맺어 왜구의 침탈을 막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또 이번에는 천축국에 다녀오며 매해 초석을 수입할 무역 계약까지 성공적으로 맺고 온 신숙주는, 그 와중에 각 섬에서 나는 특산물까지 상세히 조사해 보고서를 올렸다.
그 중 금상 이향의 비상한 관심을 끈 것은 정향과 후추, 설탕 등의 향신료가 여송 옆의 섬들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데, 향신료의 무역을 회회인들이 담당하여 중국과 인도에 가져다 팔아 큰 이문을 남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토대로 사역원에서 해당 지역의 말을 배울 자들을 선발하여 여송에 보내 직접 교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한양의 여러 상단에서도 회회인처럼 중계 무역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신숙주는 금상 전하에게 더욱 중한 쓰임을 받아 차세대 황희 정승이 될 것이란 호평이 자자하지.’
그런 이가 나서서 일갈하였으니,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유생들일 터였다.
“그래서 수긍하였습니까?”
윤서가 궁금한 것을 홍위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황희 대감에게 여쭸다.
“수긍하였다고 냉큼 오지는 못하는 것이 또한 저들의 입장이옵니다, 세자 저하.”
“왜요? 저들에게 입장이 있다지만 나날이 변화하는 조선에 새 지식을 가진 인재가 시급한 것이 사실인데요.”
“저들은 이 변화가 기껍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하. 불과 사오 년 전만 하여도 우리 조선은 검약을 숭앙하고 농사를 중요히 여기며 상공업은 인간의 탐심을 자극한다고 하여 배척하며 가난한 이들은 나라에서 구제하는 인도(仁道)를 중시하였습니다. 이 가르침으로 경전을 외워 생원이 되고 진사가 된 이들이 저들이온데, 어찌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학문과 가치관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실 정도로 늘 열려 있는 자세로 학문에 임하라 하셨습니다. 여러 변화가 더 많은 이들의 배를 불리고 있는데, 어찌 지난날의 학문적 자세만 고집한다는 말입니까?”
“많은 이들이 배를 불리고 있지만,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과 선도하는 자들 사이의 빈부격차 또한 심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들의 경제 기반이 농업과 노비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마마마께서 늘 알고 보면 모든 일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시더니,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기에 학제 변화를 거부하는 것 아니옵니까?”
“!”
“!”
세종과 황희의 시선이 일제히 윤서에게 향했다.
그러자 홍위가 화급히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어마마마 말씀은 신념에 진심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조차 결국······. 어머니, 뭐라고 하셨었지요?”
세종께 배운 유교 경전은 힘써 암기하였기에 술술 내놓을 수 있지만, 윤서가 하는 말은 주로 금동이와 새벽이와 배 깔고 엎드려서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처럼 편하게 듣는지라 정확한 워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우리 세자를 가르친 것이냐?”
세종의 어조는 모호하였다.
상왕 전하와 금상 전하께서 펼치는 새 정책이 실은 중전의 지식에서 시발한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는 황희 대감은 천하의 꼿꼿한 김종서 대감마저 주눅 들게 한다는 그 강렬한 눈빛으로 윤서의 말을 기다렸다.
하아.
천하의 세종과 황희 대감에게 이런 질문을 받다니.
심장이 벌렁거릴 노릇이지만,
윤서는 이제 조선의 중전이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