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세종과 홍위의 성균관 개혁 (3)
숨을 깊게 들이쉬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을 가늘고 길게 내쉬면 심장 박동이 느려진다.
윤서는 심장이 쿵쿵거리는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숨을 내쉰 후, 홍위에게 했던 말을 고하였다.
“인간은 모두 제각기 다른 처지와 입장이 있고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바를 추구하기 때문에 어떤 대의명분을 지닌 주장이든 그 밑에 깔린 의도와 이해관계를 살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홍위는 장차 만백성의 군주가 될 것이기에 여러 대립하는 주장의 본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
“···세자 저하께서 성균관 유생이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바를 위해서 새 학제를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게 된 것이 중전마마의 영향이시군요.”
세종은 침묵하시고, 황희 대감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그러자 세종은 눈빛을 빛내시며 노신하의 눈을 응시하시다가 불쑥 말씀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지 않느냐, 윤서야.”
“!!!”
“윤서 너는 불씨잡변에서부터 보이는 조선 성리학의 폐쇄성과 오만, 그리고 유학자 계층의 이익에만 복무하고자 하는 위선도 함께 홍위에게 말한 것이 아니더냐?”
세종의 옥음에 기이한 탄식이 섞여 있었다.
“아······!”
윤서는 엄격한 법도를 잊고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황희 대감을 불러들이신 이 자리는 단순히 홍위와 자신에게 신하의 직언과 통찰을 어떻게 수용할지, 또 의견을 좇지 않으려는 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지 직접 보고 배우라는 뜻만이 아니었다.
노신 황희에게도 와서 보라고 부르신 자리였다.
장차의 군주가 어떤 중전 밑에서 자라고 있는지.
중전에게 가르침을 받고 자란 홍위는 장차 어떤 군주가 될 것인지 똑똑히 보고 대비책을 마련한 후에라야 퇴직하라 부르신 자리였다.
“윤서야, 네가 말했었지. 성리학의 거두로 추앙받는 이는 후손에게 내린 분재기에서 짐승 새끼를 늘리듯 종을 양인과 짝지어서 재산을 늘리는 데 힘써야 한다고. 그러하였다 하오, 영상. 경은 출신이 한미하니 그 지경의 타락이 얼마나 엄중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는가.”
“저, 전하!”
홍안의 활기 있던 노신의 얼굴이 단번에 색을 잃고 창백해졌다.
황희 대감은 얼자로 어머니가 노비였다.
세종은 자신이 만든 최대 과오인 종모법을 손보고자 하셨다.
그래서 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탁월한 균형점을 맞춰온 노신하의 최대 약점을 사정없이 들쑤셔 행동하게 내모는 한편, 그 모든 개혁의 시발점이 중전임을 밝혀 중전의 지식이 얼마나 유용하며 동시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노신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군주란 얼마나 무자비한 존재인가.’
오전에 ‘윤서야’ 다정하게 부르셨던 세종은 냉막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윤서야’ 부르신다.
그것은 일종의 인정이자 징벌이었다.
네가 와서 일러준 덕분에 나는 수양을 경계하여 장차의 비극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치하와, 그러나 또 네가 와서 일러준 덕에 나는 내가 사랑하던 아들을 잃게 되었다는 분노의 마음이었다.
또한 스펀지처럼 윤서의 지식을 흡수하며 “내가 네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이냐.” 종종 탄식하는 세종은 그 미래인이 자신의 시대에 기반하여 십오 세기의 시대적 한계에 휘두르는 도덕적 우월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징벌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근심하고 계시다.
“아바마마께선 근심하고 계시었소. 부인이 대개의 경우 사람을 살리는 쪽에 한사코 서고자 하지만 마음먹고 나설 때엔 홍 승휘를 가차 없이 축출하고, 또 윤씨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오랫동안 아껴온 신빈에 대한 총애를 단박에 거두게 만드는 그 저력을, 근심하시는 것이오.”
신빈이 가진 위험성을 폭로하였던 날 이향이 협경당에 돌아와 한 말이었다.
이향이 덧붙이지 않은 말은 “그런 부인이 홍위가 아닌 자신의 자식을 위해 나설 땐 어찌될지, 아바마마께선 근심하시는 것이오.”라는 것을 윤서는 이해했다.
자신은 더 이상 힘없는 일개 나인이 아니라 후계 문제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전이었다.
그리고 이향은 함께 살 부대끼며 애정을 나누는 배우자이기에 자신을 굳게 믿고 신뢰할 수 있고, 홍위 또한 비극적인 운명을 가졌던 아이를 늘 애달파 하는 모정을 일상에서 절절이 느끼기에 윤서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지만.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있는 상왕으로서 세종은 윤서로 인해 알게 된 후대의 비극이 바로 그 윤서에 의해 행해질 수도 있음을 의심하고 계셨다.
이해한다.
이것은 홍위가 무사히 보위에 올라 굳건한 통치력을 행사할 때까지 윤서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숙명의 업보 같은 의심이었다.
세종에게, 사랑하는 이향에게, 늘 애달픈 우리 홍위에게조차.
그리고 늘 발발거리고 사방을 쏘다니며 이재에 대한 식견을 키워가는 금동이에게, 그리고 윤서가 넘긴 짧은 지식을 더 깊은 이해로 풀어내는 희아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 지식을 흡수하고 있는 새벽이에게조차.
그것은 중전이란 자리가 만들어 내는 어두운 그림자였다.
윤서는 눈을 들어 세종을 바라보았다.
세종도 윤서를 바라보셨다.
“······.”
“······.”
맞물린 시선 속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찬탄과 연민과 이해와 믿음과 불신과, 윤서의 일방적인 두려움이 오고 갔다.
윤서는 문득 이제는 한참 지난 첫 대면에서, 여기 이 천추전에서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필사적으로 안았던 그 동작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윤서는 반사적으로 올라가는 두 팔을 내려 덩달아 긴장했을 뱃속 아가를 감싸며 앞에 앉은 홍위에게 시선을 맞췄다.
엄마는 강해야 한다. 자식 앞에서 두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설사 이 위대하고도 교묘하고도 무자비한 십오 세기의 명군 ‘세종 대왕’ 앞일지라도.
“······?”
역사를 듣지 못한 홍위는 단번에 무거워진 천추전 안의 공기가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힘주어 응시하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늘 아바마마께서 근심하시는 할바마마의 그 ‘노여움’이 다시 또 어머니에게도 향한 것은 바로 눈치채었다.
“어마마마, 커피 드시고 싶으십니까? 할바마마, 어마마마께서 커피를 드시고 싶으신 것 같아요. 천 상궁에게 커피 한 잔 내리라고 말할까요?”
그 커피는 할바마마, 어마마마께서 가져오게 하신 것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할바마마께 좋은 것만 드리려고 하는데, 할바마마는 어째서 그렇게 우리 어머니를 무섭게 하십니까.
애써 밝은 어조로 종알거리는 목소리에는 감히 할아버지에 대한 타박이 숨어 있었다.
세종은 조금 컸다고 제 ‘의붓어미’를 위해 나서는 손주를 바라보았다.
좀 전 그 때처럼 제 몸을 껴안아 자신이 행사하는 공포의 위력에서 벗어나려던 윤서가 대신 배를 감싸며 제 ‘의붓아들’에게 시선을 맞춰 한사코 두려움을 참아내던 모습과, 그런 어미의 시선 속에서 두려움을 읽어낼 줄 아는 손주의 모습은,
많은 것들이 무위(無爲)로 돌아갔단 자책에 시달리는 늙은 왕에게 기이한 안도감을 주었다.
저 아이들이 서로를 저리 지극히 아끼니.
어쩌면 내 경계는 윤서가 아니라 저리 서로의 존재를 위안으로 삼는 관계를 비틀고자 할 무리에게 향해야 마땅할지니.
“그렇게 하자, 홍위야. 천 상궁, 커피 새로 내리거라.”
숨을 쉴 수 없게 두려웠던 분위기가 커피의 구수한 향내 속에 옅게 흩어졌다.
천 상궁이 새로 내려 내온 커피를 윤서는 한 모금만 입에 머금었다.
임신 중 커피 한 잔은 태아에 무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간 참았던 커피였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 한 잔을 비운 황희 대감은 다시 홍조의 찬찬한 안색을 회복하였다.
노비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상왕 전하의 뜻은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당면한 현안이 아니고, 당장은 성균관의 학제 개편과 유생의 공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개혁안이 중전에게서 나왔으니 해결 방안도 중전께 던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 노신하는 찻잔을 내려놓다 문득 잔에 달린 손잡이를 보았다.
“중전마마께서 찻잔에 이렇게 손잡이를 다는 것을 고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늙어서 손 가죽이 얇아져서 뜨거운 잔 들기가 불편하였는데, 참으로 편리합니다.”
상왕 전하께서 무엇 때문에 중전마마를 근심하시는지 잘 알지만, 왕가의 후계 문제는 왕가 내의 문제, 신하로서 신은 그저 현안을 해결할 뿐입니다.
그렇게 입장을 밝힌 황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중전마마께오선 이 난제를 어찌 풀면 좋겠습니까?”
윤서도 중전으로 돌아와 생각한 바를 밝혔다.
“바뀌는 시대에 대한 불안 요소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균관의 유생들은 빼어난 학습 능력을 이미 증명한 인재이고, 유학에 대한 깊은 소양은 명나라와 일본을 상대하는 외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항목입니다. 하여 지금처럼 유학 경전에서 과거 시험 문제를 내되, 실제 조정 업무에 필요한 산학, 율학, 지리학, 기초 외국어 등도 함께 시험을 치게 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이들 과목에서는 일정 점수만 넘으면 모두 통과하게 하고, 실질 석차는 지금처럼 유학 경전 시험의 성적으로 내면 어떠하올런지요?”
현대의 공무원 선발 제도를 참조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에서 정 다른 학부를 개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면, 그 과목들은 따로 전문 대학을 세워 해당 분야 전문가로 양성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기존 유학자 계층의 반발을 줄이면서 동시에 실용 지식을 가진 지식인 계층을 키워낼 수 있게 된다.
전문 대학에서 공부한 이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키워 하급 관료가 되거나 실제 현업에 뛰어들어 부를 축적할 것이고, 개선된 신분과 늘어난 재산을 바탕으로 서구의 부르조아 계층처럼 성장해 나가리란 것이 서양사를 배운 윤서의 예측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윤서의 말을 청취한 황희 대감이 세종께 여쭈었다.
“신은 이 절충안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판단합니다. 상왕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세종은 윤서 안이 썩 마음에 들었다.
역시 쿡 찌르면 제 시대의 지식에 근거해 해결책을 낸단 말이지.
여인인데도 저 정도 안을 척척 내놓게 하는 저 지식을 몽땅 기록하여 왕실 비밀 서고에 넣어놓고 후대 왕이 읽게 하면 오백 년 후에도 우리 조선이 일본에게 침략당하지 않고 만세(萬世)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은 자신이 배운 바를 모두 기록한 일차 원고를 광평 대군과 천 상궁이 정서하여 쌓아둔 종이 꾸러미를 힐끗 보시곤 우렁우렁 명하셨다.
“좋다! 그럼 그렇게 하지. 대신 이렇게까지 조율을 하였는데도 여전히 공관을 고집하는 무리가 있다면 모두 의금부에 내려 국문케 한 후 저 변방에 내쳐 종신토록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라!”
“어명 받잡습니다, 상왕 전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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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이다음에 빈을 맞이하면요.”
천추전을 나서 협경당으로 돌아오는 길.
의젓하던 홍위가 예전처럼 윤서 손을 잡고 비단 혜의 코끝으로 툭툭 땅을 차며 말하였다.
등어리가 축축하도록 긴장했던 마음을 홍위의 손이 주는 온기로 풀던 윤서는 눈을 반짝 떴다.
‘빈’이라니.
우리 홍위가, 벌써!
“응, 빈을 맞이하면?”
“아바마마께서 어머니를 아끼시듯 그렇게 저도 빈을 아낄 것이에요.”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서로 아끼고 신뢰해야 해. 궐은 너무 사람이 많고 또 여러 말이 도는 곳이니 오해가 생기기 쉽다. 그러니 함께 거하며 서로 대화하고 보듬어야 해.”
“예. 그래서 금동이처럼 귀여운 아들을 낳으면요.”
“으응? 금동이는 귀엽고, 새벽이는?”
윤서가 놀리듯 묻자, 홍위는 우뚝 멈춰서서 뒤를 따르는 상궁과 나인들이 듣지 못했는지 살폈다. 그리고 까치발을 서서 허리를 굽혀 준 윤서 귀에 속삭였다.
“새벽이도 물론 귀여운데요. 새벽이는 늘 누님만 따르는데 금동이는 늘 ‘우리 세자 헝님’ 하면서 좋은 건 다 저를 주려고 하잖아요. 손을 벌벌 떨면서. 그게 너무 귀여워요.”
“그래. 금동이가 우리 홍위를 무척 좋아하지. 그래서, 금동이처럼 우리 홍위 바라기를 할 귀여운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가 또 커서 빈을 맞이하면 저는 그 며느리를 무척 아낄 거에요. 다정한 말만 해줄 거예요.”
“!”
세상에.
우리 홍위는 할바마마 때문에 어머니가 손바닥이 축축해지도록 긴장했던 것이 속상한 것이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