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토목보의 변과 건주 여진 공략 (1)
김종서의 비밀 장계가 한양에 도착했을 때.
윤서는 마침 고대하던 딸을 낳고 약 사십 일간의 산후조리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자신의 이목구비를 많이 닮은 딸아이 아명을 ‘처음’이란 태명 그대로 부르자고 이향은 주장했지만 윤서가 강력하게 반대한 덕분에 꼬마 공주는 소아(笑兒)란 아명을 가지게 되었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안들리는 생후 초기부터 유난히 방싯거리고 잘 웃는 아기라서 ‘웃을 소(笑)’ 자를 쓴 아명이었다.
윤서가 ‘처음’이란 이름을 반대한 것은 새벽이 때문이다.
새벽이가,
“금동 형아는 황금 똥 싸는 아가라서 금동이면, 왜 저는 새벽이에요?”
하고 묻는데, 차마 ‘새벽에 네가 생겼단다.’ 말할 수 없어서
“응, 엄마가 너 가질 때 즈음 유난히 새벽별이 밝게 빛나는 태몽을 꾸었거든.”
하고 둘러댄 일이 있다.
그러니 처음이라고 지으면 왜 ‘처음’인지 새벽이나 금동이가 반드시 물어볼 것이고, 그러면 뭐라 설명하기가 난감할 뿐이다.
‘응, 엄마가 처음 만날 때 입었던 나인복을 입고 아바마마를 유혹한 밤에 아기가 생겨났거든.’ 하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물론 실제 생긴 것은 그 이후였지만.
셋이면 이제 중전이 지고 있는 출산 의무의 기본은 완수했다고 생각하는 윤서는 이번 산후조리에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어의 전순의가 산모와 아이 모두 몸을 보할 수 있는 약재를 듬뿍 넣어 탕약을 지어주었고, 의원 순덕은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안마와 체조, 피부 회복 특수 화장품 등을 책임져 주었다.
내명부 일은 문 숙의에게, 상단과 공장 관련 일은 모두 박 상궁에게 맡기고 아기와 함께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한 여유로운 사십 일을 보냈더니,
이렇게 여유작작한 팔자는 당신의 것일 리가 없다는 듯 명나라의 일이 터진 것이다.
김종서가 보낸 급보가 도착한 것은 이미 성문이 닫힌 늦은 저녁.
‘정말로 명의 황제가 달단의 야선에게 포로로 잡히는 일이 생길 것인가.’
반신반의하던 일이 정말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한 세종은, 바로 그 다음 날 이른 아침 윤서와 이향을 천추전으로 호출하셨다.
이향이 추진하는 북방의 군사 작전이 결국 윤서의 역사 속에 있었던 ‘명 황제가 포로로 잡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윤서야,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금상은 무엇을 하고?”
세종은 이 일이 벌어졌을 때 원래 역사에서 자신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부터 물으셨다.
실망스럽게도 아무 일도 안 하신 거 아닌가.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과 아빠께 들었던 내용 모두를 세밀히 짚어본 후 윤서는 조심스레 고했다.
“실록을 안 읽어봐서 정확하게 잘은 모르지만, 별다른 대응을 안 하신 것 같습니다. 역사책에는 4군 6진 북방 개척과 대마도 정벌만 상세하게 나왔습니다. 아, 그리고.”
실시간으로 깊게 실망하시는 세종의 표정을 보던 윤서는 문득 홍위와 관련되어 읽었던 기록을 생각해냈다.
“이때 즈음에 아마, 상왕 전하께서도 편찮으시고 또 금상 전하께서도 종기가 크게 나서 잘 못 움직이셨을 거예요. 두 분 전하께서 모두 아프시고, 우리 홍위는 아직 어리고 해서 수양 대군이 이 일을 알리러 온 중국 사신을 대신 맞이했다는 기록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수양 대군이 정계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
수양 대군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말을 듣자 세종은 못 들을 이야기라도 들은 양 얼굴을 굳히셨다.
그러다가 불쑥 이향에게 역정을 내셨다.
“아니 너는! 대체 새파랗게 젊어서는, 왜!”
갑자기 노여움의 대상이 된 이향은 눈썹을 쑥 치켜올렸다.
그러더니 “아바마마.”하고 위로하듯 세종을 불렀다.
“그래서 부인이 제 몸을 각별하게 살피며 자주 비누로 목욕하게 하고, 또 내의원과 혜민국으로 하여금 종기 수술법과 곪지 않게 하는 고약을 이미 만들게 하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니, 현안에 집중하시지요.”
“······.”
비누를 쓰고 손을 자주 씻고, 물과 음식은 익혀 먹고 하는 등의 기초 위생법의 보급 후 확연히 줄어든 종기 발병률과, 또 태운 송진을 주 성분으로 하는 고약이 초기 종기는 무난하게 치료하고, 더 심한 종기도 칼로 째서 뿌리까지 도려낸 다음 항염 성분이 강한 탕제와 약제로 치료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린 세종이 굳어졌던 얼굴을 펴셨다.
“···그래. 하아,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나는구나, 정말로. 지금은 이렇게 정보가 많아 사태를 조선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그때의 나는 어째서 그리 조선의 좁은 울타리에만 갇혀 있었던고.”
한탄하며 세종은 책상 가득 놓인 보고서를 훑었다.
회의용 책상 위에는 요동 전역에서 상인과 사냥꾼 심마니 등으로 분장하고 정보를 모아들이는 체탐인이 김종서에게 올린 보고서, 북경에 나가 있는 윤서의 예서 상단에서 보낸 보고서, 또 명 황실 공신 부인의 조카 한치의가 보낸 명 황실 내부 동향 보고서 등이 한가득 쌓여 있다.
어젯밤 김종서의 보고가 도착하자마자 세종이 모두 가져오게 하여 면밀하게 검토한 보고서였다.
“그래, 과거의 역사는 묻어두고. 주상은 그래서 어떻게 할 계획이오?”
“부인의 말에 따르자면 황제가 포로로 잡힌 지 얼마 안 되어 북경에서 새 황제를 옹립하고 전투를 지속한다고 합니다. 하여 우리 조선이 토목보 일대까지 가 황제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윤서에게 세계사를 배운 이향은 앞으로 조선은 해양 진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런 의미에서 명나라와의 관계는 지금보다 조금 더 먼 협력 관계 정도가 적당하다.
“개입을 최소화하자, 그런 말인가?”
“예, 전하. 지리적인 거리도 고려한 결정입니다.”
이향은 일어서서 세종의 집무용 책상 옆으로 길게 걸려 있는 지도 옆에 가 섰다.
지도에는 우리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 몽골, 러시아, 남쪽으로 일본과 유구, 대만, 여송과 천축국까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향은 북경에서 서북쪽에 표시되어 있는 토목보를 짚어 보이며 말하였다.
“토목보는 북경에서도 서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 군사는 명 중앙이나 요동 도사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아야 압록강을 넘어갈 수 있고, 또 가는 도중 이만주 세력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니 주요 격전지인 토목보나 여기 대통 성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이미 북경에서 새 황제가 옹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이향은 명나라 황제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건주 여진의 이만주 세력을 제거하고 압록강 북쪽 오녀 산성에 우리 조선의 근거지를 세우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하였다.
군사의 일은 모두 이향에게 위임한 상왕 세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달단이 잡은 황제를 구해낸다고 해도 이미 새로 황제가 된 자와 그를 옹립한 신하들은 헌 황제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또 포로를 빼앗긴 달단은 우리 조선을 원수 삼아서 올량합과 함께 요동으로 밀고 내려올 수도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전하. 요양 유역의 해서 여진 무리는 본래 우리 조선과 많이 친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완충 세력이 아니 될 것이고, 건주 여진 잔당은 오히려 반색하며 힘을 합쳐 조선으로 내려오겠지요. 그러니 이득 없는 것에 우리 조선의 용력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역사에서도 명나라의 그 어리석은 황제는 또 달단의 포로가 되겠구나.
환관의 사특한 꾐에 넘어가다니, 어찌 그리 멍청할 수가!
윤서가 탄식할 때였다.
“윤서 너도 같은 견해였지? 백오십 년 후에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명의 황제가 이여송 등 장수와 군사를 보내준 덕에 우리 조선이 왜를 물리칠 수 있었는데, 그때 쓴 전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명나라는 여진족에게 망한 일이 있으니, 우리 조선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세종은 윤서가 전에 고했던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다시 말씀하셨다.
“예, 맞습니다. 명나라에서조차 그닥 고마워하지 않을 일에 우리 귀한 백성의 목숨을 희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윤서도 다시 한번 토목보까지 군사를 보내는 일에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럼 이만주 세력을 정리하고도 명나라와 충돌하지 않을 명분은 어떻게 얻을 셈이냐? 지원 요청을 받은 후 여기 요양까지만 가는 척하다가 ‘아이고 벌써 끝이 났네’ 하고 돌아올 셈이냐? 그러면 명나라에서 훗날에 반드시 문제를 삼을 것인데.”
“제가 이미 세워둔 방안이 있습니다.”
이향이 다시 지휘봉을 들고 명나라와 조선을 오가는 사신들의 사행로를 짚었다.
“여기 요양까지 가면서 건주 여진의 근거지를 없애고, 그리고 여기 요양에서 광녕성까지 가는 것입니다. 광녕성 북쪽이 지금 달단과 힘을 합쳐 명을 공격하고 있는 올량합의 세력권입니다. 그러니 명은 분명 서북에서 내려오는 달단 세력뿐 아니라 동북의 올량합 등 몽골 세력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들어올 것도 근심할 것입니다.”
“오호!”
세종은 이향의 안이 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 우린 북경 동쪽 방어에 참가하는 것인데, 실제 전투는 격렬하지 않을 것이고. 맞느냐?”
“예, 전투는 북경성 서북쪽에서 격렬할 것입니다. 또 우리 군병은 요동 도사와 함께 움직이니 후에 요동 도사가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기여를 더 부풀릴 것입니다. 게다가 보급 문제도 이쪽이 좋습니다. 우리 조선군은 그간 며칠 치의 군량만 가지고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 지역에 진출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파병은 최소 석 달은 걸릴 것인데, 백 일가량의 긴 기간 동안 군량을 어떻게 보급할지 미리 계획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보급이 제일 중요하지. 뱃길로 하자는 말이구나?”
지도만 보고도 세종은 이향의 계획을 단박에 이해하였다.
“예, 우리 조선은 항해술이 빼어나니, 여기 각화도나 사하역 항구로 군량을 실어 가면 될 것입니다.”
산해관과 광평성에 가까운 중국 항구로 군량미를 운송해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되겠느냐? 그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했다는 재조지은만큼의 정신 나간 규모의 지원은 아니라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좀, 너무 계산속이 빤하지 않느냐? 물론 우리가 이런 정보를 미리 아는 줄은 모르니, 의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만.”
세종은 이 정도만으로는 명나라에서 공식 관직을 받은 바 있는 이만주 일족을 먼저 제거하고 사후에 협상하는 외교안이 충분히 성립할까 여전히 근심하였다.
그러자 다시 윤서 곁에 와 앉은 이향이 고하였다.
“그것에 대해서도 이미 방안을 세워두었습니다. 윤서가 말한 ‘적십자 활동’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적십자? 서역에서 그 빨간색 십자 깃발을 들고 다니면서 적이든 아군이든 다 치료했다는, 그 인도주의적인 단체라는, 적십자 말이냐?”
“맞습니다, 아바마마.”
“에이, 그게 말은 참 고상하고 멋지다만, 그것이 어찌 가능한지 나는 모르겠다. 윤서야.”
삼십 년을 만인지상의 절대 권력자로 살아오면서 동일한 인물을 두고 총애와 의심을 동시에 하는 것에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는 세종께선 요사이, 특히 소아를 낳고 난 후에는 윤서를 전적으로 총애하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모드에 들어 계셨다.
“너를 여기로 데려온 가락지가 아직 있다고 했지? 그 가락지, 날 주려무나.”
“예?”
상상초월 시아버지 모드시기도 하다.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내가 끼워볼 것이다. 혹시 아느냐, 윤서 너를 여기로 데려온 것처럼 그 가락지가 나를 윤서 너의 시대로 데려갈지. 그럼 나는 거기에서 정말 원 없이 여러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
“!”
그저 하시는 농담인가 넘기려는데, 세종의 눈빛은 진지하시기만 하다.
하긴 저쪽 북쪽 벽을 가득 채운 종이 뭉치들이 모두 세종께서 윤서에게 들은 바를 분야별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배우는 내용마다 최대한 이해하고 통찰한 후 저렇게 글로 정리하는 세종의 끝없는 학구열은, 공부라면 꽤 즐기고 잘하는 윤서로서도 입을 떡 벌리고 찬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저를 데려온 것은 현덕 빈이시니. 지금부터라도 매일 현덕 빈의 위패 앞에서 제사라도 지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야 할까? 하아, 조창의를 보내 아침저녁으로 공양을 올리면 어떠할까.”
“아바마마! 윤서 시대는 엄격한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사회인지라, 여러 여인의 애정을 즐기시는 아바마마께서 지내시기에는 좀······.”
농담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이향이 슬쩍 웃으며 부왕의 다채로운 애정 생활을 지적하였다.
그러자 세종께서는 ‘요놈 보게!’ 하는 표정으로 아들을 흘겨 보셨다.
“하! 왕이 좋기는 좋구나. 향이 네가 내게 이리 불온한 말을 다 하는 것을 보니.”
“불온하다니요. 아닙니다, 아바마마. 공연히 가락지 끼셨다가 정말로 윤서 시대로 가버리실까 근심이 되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황희만큼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이향이 넉살 좋게 세종의 불퉁한 심기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가리키며 명나라 새 황제에게 조선의 은혜를 입힐 방안을 하나 더 제시하였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