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경혜 공주와 정종의 애틋한 그리움
“눈님은, 눈님은, 세상을 바꿔요.”
“응? 누님이 세상을 바꾸다니?”
무슨 의미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홍위는 물었다.
기회가 나는 대로 따라다니며 쉴 새 없이 종알대는 금동이와 달리 새벽이는 옹알이도 거의 하지 않아 말을 못 하는 아기일까 봐 무척 걱정하게 만든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눈님은 목화씨 빼는 것도 만들고, 또, 응, 모든 성능을 더 낫게 하는 걸 숫자로 계산할 수 있떠요.”
“그래서 새벽이는 늘 누님한테 배우길 즐기는구나. 누님처럼 빼어난 기물을 만들기 위해서?”
“네에.”
“기특하다, 우리 새벽이.”
홍위가 알록달록한 색동 건을 쓴 새벽이의 머리통을 쓰다듬자, 금동이가 손뼉을 탁쳤다.
“새벽이는, 그, 왜, 다섯 살 때 우리 하바마마 앞에서 시를 지은 그 천재 같아. 헝님, 허조 대감한테 ‘노목개화심불로(老木開花心不老),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그 마음 늙지 않았네.’라고 노(老)를 넣어 시 지어준 동자, 있잖아요.”
“김시습? 할바마마께서 ‘동자지학백학무청공지말(童子之學白鶴舞靑空之末), 동자의 학문은 백학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을 추는 것 같구나.’에서 운을 받아 댓구를 지으라 명하셨더니, ‘성주지덕황용번벽해지중(聖主之德黃龍翻碧海之中), 성군의 덕은 황룡이 푸른 바다 가운데 나는 것 같구나.’라 답한, 그 김시습을 말하는 거지?”
“응! 그 김시습. 우리 새벽이가 그 김시습처염 천재 같아. 노역(노력)하는 천재”
“에이, 부끄여워요.”
세자 형님과 금동 형님이 자신을 칭찬하니, 새벽이는 얼굴을 붉히며 누님이 계신 연구실 안으로 달아났다.
“······!”
“······?!”
계동이와 수복이가 서로를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계동이는 큰형님 오산군과 세자와 금동, 새벽이처럼 살갑게 서로 칭찬하는 형제까진 아니었고, 장남인 수복이는 이제 동생이 어머님 뱃속에 들어 있다.
“게동 헝님, 홧(활) 솜찌(솜씨)가 대단하십니다!”
“그래, 수복아. 너도 말 솜씨가 대단하다.”
임영 대군의 둘째 계동과 광평 대군의 첫째 수복은 그렇게 서로를 칭찬하다가 으으 고개를 흔들었다.
“아우, 닭달! 대체 왜 이어케 서로 칭찬을 하지?”
(아우, 닭살! 대체 왜 이렇게 서로 칭찬을 하지?)
“그러게 말이야. 아우, 살 떨린다.”
계동과 수복이는 징그럽다는 듯 홍위와 금동을 보며 몸을 떨었다.
*
*
*
새벽이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경혜 공주 희아는 영양위 정종에게서 온 서찰을 읽고 있었다.
[평복 차림으로 잠행을 하시는 전하를 모시고 닷새마다 열리는 여연의 개시(開市)에 갔었습니다.억양이 둔탁해서 주의를 쫑긋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 함길도 사투리와, 격음이 많아 거칠게 들리는 여진의 말, 목구멍 깊숙이에서 긁어내는 듯한 몽골말 등이 뒤섞인 시장은 시끌벅적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여진인과 몽골인은 건장한 말과 약재, 모피, 은과 옥 등을 가지고 와 면포, 소금과 비상약, 쌀과 곡식, 그리고 비단과 비누, 화장품 등을 사 가지고 가요. 특이하게도 우리 정음으로 쓰인 이야기 책도 많이 사 가는데, 특히 세우(細雨) 작가의 연정 소설책은 아침나절이면 다 팔린답니다. 우리 말로 된 것을 어떻게 읽느냐 물었더니, 상왕 전하께서 만드신 우리 글자를 배운 자들이 책을 보며 자신들의 말로 이야기해준다고 해요.
여진인들이 파는 것 중에 새카만 흑요석으로 만든 빗이 있어서, 공주를 위해 하나 사 보냅니다.
이곳에 와 전하를 모시고 장차 조선을 위해 할 일을 배우는 것이 무척 즐겁고 보람되지만, 저녁이 되어 우리가 서로 머리를 빗겨주던 시간이 오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아려옵니다.
공주의 부드러운 머리칼, 그리고 촛불 아래 희게 빛나는 목덜미, 붓과 연필을 잡아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까지, 모두 몹시 그립습니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는 밤이 될 때 공주께서도 저를 떠올리시는지요.]
서로 머리를 빗겨주며 낮에 있었던 이야기하던 시간이 오면 자신을 생각하는지 묻는 서신과 함께 흰여우 털로 조심스럽게 포장한 선물 뭉치가 왔다.
풀어보니 새카맣게 윤이 나는 흑요석을 깎아 만든 빗이었다.
희아는 손바닥에 착 감겨드는 빗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검게 반사하는 환영 속에 아직 소녀티가 다 가시지 않은 여인이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기이한 지식을 많이 알고 계신 새어머니께서 천생연분이라며 짝을 지어주신 낭군이기에 아바마마와 새어머니가 평소 서로에게 하시는 모습을 흉내 내어 서로 머리를 빗겨주고, 서로를 무척 위하였지만.
따스하고 듬직하게 느껴지던 낭군의 존재가 가슴이 아프도록 그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는 늘 가슴이 턱 막히도록 압도적인 슬픔이 목이 메는데, 북방에 가 있는 낭군을 생각할 때엔 슬프면서도 달콤한 그리움이 시야를 흐리게 한다는 사실을 열네 살의 가을이 되어서야 희아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눈물방울이 후두둑 검은 빗 위에 이슬처럼 떨어졌다.
“눈님, 울어요?”
집중해 있을 때 누님은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듣지 못한다.
그래서 형님들이 자신을 할바마마께서도 칭찬한 김시습 같은 천재라고 칭찬했다고 자랑하기 위해 뛰어왔던 새벽이는 서신을 읽고 빗을 들여다보는 누님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런데 누님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신다!
“왜, 울어요? 울지 말아요, 누님 울면 제가, 속땅해요.”
새벽이가 누님 무릎을 파고들며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희아는 꼬물꼬물 품을 파고드는 어린 동생을 껴안았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새벽아, 머리 빗겨줄까?”
“응? 왜요?”
“그냥. 머리를 빗겨주면 기분이 좋잖아. 마침 아주 좋은 빗이 생겼어. 봐봐. 흑요석으로 세공한 거야. 촉감이 차갑고 서늘해서, 빗으면 머리가 아주 시원할 거야.”
이향과 윤서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이 서로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겨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손길을 통해 서로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머리를 빗어주는 행위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래서 새벽이는 누님의 눈물을 위로하기 위해 몸을 돌려 앉았다.
희아가 색동 건을 벗기고, 땋은 머리를 풀어준 다음, 천천히 머리를 빗겨주었다.
정말로 머리통에 와 닿는 돌의 감촉이 시원하고 부드러워서, 금세 잠이 올 것만 같았다.
이만하면 누님 마음도 풀어졌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린 새벽이는 벼르던 자랑거리를 풀어놓았다.
“세자 헝님이랑 금동 헝님이 제가 천재래요. 누님한테 배워서 그런 건데.”
“우리 새벽이 천재 맞아. 벌써 비례식도 알고,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관성과 운동의 힘의 원리도 알잖아. 새벽이도 이다음에 나처럼 대포를 쏠 때의 최적화 발사 각도 등을 연구할 거니?”
“안니에요. 저는 건축이 더 좋아요. 튼튼하고 높은 성이랑 건물을 짓는 거.”
“그럼, 재료에 따라 건축물의 무게를 잘 안배할 수 있는 계산식이 필요하겠네.”
“예에. 근데, 눈님, 왜 울었떠요?”
“너도 크면 알게 돼. 생각하면 행복한데, 그만큼 또 눈물 나게 그리운 거.”
“···매형이 빨리 와야겠네······.”
영양위 정종이 돌아오면 지금처럼 매일 같이 시간을 못 보내겠지만. 누님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낫다고 어린 새벽이는 생각했다.
*
*
*
이 시각 윤서는 교태전에 들어 있었다.
이만주에 이어 동창까지 제거하고, 이만주의 훌리가이 족 영토에 우리 조선군 오백 명이 거하면서 부락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있다는 장계를 받고 무척 기분이 좋았던 세종은, 막내 영응 대군의 일로 심기가 몹시 불편해져 있었다.
“일전에 염이의 내자와 왕실의 여러 여인의 행실이 부덕하여 벌을 세운 일이 있었지 않느냐?”
이년 전 추석 즈음 영응 대군의 부인 송씨 등이 불사를 구실로 절에서 승려와 무녀, 기생까지 불러 술을 마시고 떠들썩하게 놀았던 일로 구설수에 올라 창덕궁 희정당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반성문을 올린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윤서는 세종 옆에 앉아 계신 소헌 대비의 옥안에 근심이 깊은 것을 보고, 대방부부인 송씨에 대한 일임을 짐작하였다.
“그 후로 깊게 반성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온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요?”
“염이의 내자가 성질이 포악하고 광망하여 그냥 두고 보기가 민망하구나!”
“!”
조상님의 남편이었던 문종과 조상님의 아들이었던 단종에 대한 기록은 세세하게 읽고 아빠께도 여러 번 이야기를 들어 파삭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이들에 대한 역사는 대충 알고 있는 윤서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영응 대군이 송씨와 이혼하게 된 것이 이즈음인가.
“염이가 혼인한 지 벌써 네 해가 끝나가는데도, 후사가 없어. 그런데 그 내자는 후손을 얻기 위해 기도한다는 명복으로 늘상 절에 가서는. 후흠!”
세종은 더 입에 담기도 민망하다는 듯 언짢은 기침 소리만 내셨다.
대방부부인 송씨가 몹시 아름다우나 또한 성격이 드세고 자유분망하여 영응 대군을 휘어잡고 흔든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였다.
소헌 대비께서 여러 번 불러 타이르셔도 반성하겠다고 맹세한 후 송씨는 궁에 돌아가서는 영응 대군에게 울며불며 호소해, 중간에서 영응 대군만 난처해하는 모양새였다.
윤서의 역사를 들으신 후 한동안 영응 대군마저 멀리하시던 세종은 이향의 치세가 굳건하게 대외로 뻗어나가고 홍위가 성균관 유생들에게까지 강력한 지지를 받는 세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자 조금씩 안도하시며, 다시 영응 대군을 어여뻐하시는 중이었다.
부왕의 사랑을 되찾게 된 영응 대군도 만 명이나 되는 노비를 장차 양민 소작인으로 속량할 계획을 먼저 세종과 이향에게 밝히고, 성균관에서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는 등 처신에 상당히 조심하고 있었다.
“염이도 차차 대외 일을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려면 가정이 평화로워야 하는데, 후사도 못 보면서 행동이 칠칠하지 않은 내자 때문에 저리 발목을 잡혀 있어서야 되겠느냐?”
며느리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신 세종께서는 아이도 없으면서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막내며느리를 내치기로 이미 마음을 먹으신 듯하였다.
‘하지만 그리되면 송가의 여식은 어찌 되는 것인가.’
대방부부인은 역사 속에서 홍위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 송씨의 고모였다. 고모가 행동거지가 변변치 않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구실로 이혼을 당하게 되면, 송가의 여식이 세자빈으로 뽑히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리라.
원 역사에서 세종께서 승하하신 후 영응 대군이 이혼했던 송씨와 다시 결합하였단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세종께서 영응 대군의 새 부인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여식이 정종의 누이란 사실도 알고 있는 윤서로서는 무어라 말씀 올리기가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내년에 홍위가 열 살이 되니, 차차 국혼 이야기가 나올 것인데.’
홍위는 아직 송가 여식을 본 일이 없고 또 아직 또래 소녀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 보인 일도 없다.
“중전이 데리고 다니면서 타일러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그 아이가 막무가내로 고집이 세어도 중전은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약한 소헌 대비는 막내아들이 그리 어여뻐하는 며느리를 내칠 엄두가 나지 않으시는지, 슬그머니 윤서를 들이밀어 세종의 노여움을 풀려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중전이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한데 그런 덜떨어진 아이까지 건사할 여력이 되겠습니까?”
윤서가 내수사의 장무 내관, 상선 엄자치, 호조 정랑과 함께 올해 내수사 소유 궁방전에서 거둬들인 곡식 현황을 살피며 어느 지역의 것을 먼저 요동으로 실어갈지, 명나라에서 추가로 곡식을 지원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보낼지 논의하다가 불려 왔음을 세종은 지적하시는 것이었다.
“중전은 어찌 생각하느냐? 네 의견을 내놓거라.”
불성실한 막내며느리 하나 때문에 이 중차대한 시국의 일이 더 복잡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세종이 하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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