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이향과 정종의 귀환 (1)
“천지의 신명과 일월의 성신이 밝게 비추사, 우리 전하께서는 변방의 무뢰배 이만주와 그 동류를 처단하여 백성의 터전을 더욱 평안케 하셨습니다. 또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명의 사직을 의리로써 구원하셨습니다.”
명나라를 ‘구원’했다 함은 지나친 표현이지만, 이만주와 동창을 죽여 여진족의 호란에서 우리 백성을 구원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도승지 강맹경이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축문을 들으며, 이향은 윤서의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 낸 성과가 참으로 뿌듯한 일이라고 자평하였다.
엎드려 경의를 표하는 대신과 백성들을 굽어보던 이향의 시선에 맨 앞에 홀로 엎드린 홍위의 작은 등이 들어왔다.
‘홍위야, 들었느냐. 너를 가여운 운명으로 몰아넣었던 나의 과오를 비틀어 오늘의 조선을 이룩했느니. 장성한 네게 나는 장차 부유하고 강대한 조선을 물려줄 것이다.’
아비가 보내는 마음의 음성을 듣기라도 한 듯 홍위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부자의 다정한 시선이 서로를 눈에 담았다.
‘아바마마의 다정한 가르침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금동이도, 새벽이도, 모두 매일 아바마마의 귀환을 기다렸어요.
강인한 모습을 보이시지만 늘 아바마마를 그리워하시는 어머니도요.
눈으로 속삭인 후 홍위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설을 닷새 앞두고도 겨울바람은 뼈가 시릴 정도로 사납기만 하다.
그런데도 국왕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백성의 수는 빈 벌판을 빼곡하게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섣달그믐께의 강추위에도 한강 이남의 백성들까지 이십 리, 삼십 리 길을 걸어 몰려온 것은 부락마다 생겨난 장시 어귀에 붙은 방 때문이었다.
상왕 전하께서 백성을 위해 정음을 만들어 반포하신 후.
승정원에서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음으로 적은 방을 왕래 많은 곳에 게시한다.
기초 학당에서 새 문자를 익힌 이들은 승정원이 알리는 주요 소식을 놓치지 않고 숙독했다.
전하의 승전보를 게시한 이번 방은 이러하였다.
[우리 임금께서 북방의 우리 백성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오랑캐 이만주 족속을 처단하시고, 그곳을 우리 조선 강역으로 삼으셨다. 또한 황제께서 오랑캐의 무리에 사로잡힌 대명에 지원군을 파견하시어, 대명의 사직을 능히 보존하게 하셨다.]이 글자가 적힌 방의 하단에 란 글자를 단 그림도 삽입되었다.
누에처럼 길고 우뚝 솟은 갈색 바위산 하나, 그 밑에 유유히 흐르는 푸른색 강줄기, 그리고 강 주변의 초록색 비옥한 땅이 그려진 색 판화 그림이었다.
상왕 전하께서 북방을 개척하신 후 그곳으로 옮겨진 이들 여럿이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는 풍문을 접해본 이들마저도 “오호!” 하고 관심을 가져 볼 만하게 살기 좋아 보이는 그림이었다.
군사로 정복한 땅이라도 우리 백성이 들어가 기존의 여진족과 어울려 살아야지만 온전한 조선의 국토가 된다.
이 사안을 잘 알아 4군과 6진 지역에 백성을 거하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오신 세종은 윤서에게 ‘대중 심리’를 바탕으로 북방에 대한 백성의 호감과 기대를 높일 방안을 찾으라 명하셨다.
윤서는 빼어난 화가 안견을 섭외하여 오녀산과 그 이남 일대를 풍요로운 땅처럼 보이도록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색 판화 기법으로 방 밑에 곁들이게 하였다.
장차 행해질 북방 이주 정책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공작 및 홍보였다.
그 의도가 제대로 성공했다.
방을 접한 백성들은 신기한 산과 비옥한 벌판을 조선의 땅으로 만들고 돌아오신 전하의 용안을 먼발치에서나마 뵙기 위해 모화관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 것이다.
조정 백관, 그리고 백성들까지 모두 엎드려 저 높이 옥좌에 앉으신 전하의 업적을 낭독하는 도승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세자 형님을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짓는 아바마마와, 그 미소를 더 환한 웃음으로 돌려드리는 세자 형님을 본 금동이가 옆에 엎드린 새벽이에게 속삭였다.
“아바마마와 헝님이 서로 웃으셨떠. 아까 매금이가 무등 태워 줬을 때 손 열씸히 흔드었더니, 아바마마께서 나 보고도 웃어주셨떠. 세자 헝님도 우리 쪽 보고 손 흔드었는데, 새벽이 너도 봤떠?”
“응. 봤떠요. 근데, 장병들 얼굴은 괜찮은데 아바마마 용안이 해쓱해 지셨떠요. 어먼니 속땅하시겠다.”
궁인들 틈에 섞여 엎드린 금동이와 새벽이가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두 꼬맹이는 궐에서 얌전하게 아바마마의 귀환을 기다리라는 어머니의 엄명을 어기고 매금이와 호위 내관 셋과 몰래 구경을 나온 참이었다.
”태조 대왕께서 왕업의 기초를 만드신 후 태종 대왕께서 사직을 반석에 올리셨고, 상왕 전하께서 예가 바로 서고 내외가 평안한 치세를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금상 전하께서 백성과 강토가 강건하게 널리 뻗어나가는 치세를 실현하시니, 아아, 신 등은 모두 엎드려 전하의 큰 업적을 가슴 벅차게 앙망합니다.”
감동에 찬 도승지의 축문 낭독이 끝났다.
통찬 내관이 앞으로 나와 우렁우렁 외쳤다.
“산호(山呼)!”
조정 신료와 종친 모두 두 팔을 모아 앞으로 올리며 “천세”를 외쳤다.
새벽이도 짧은 팔로 열심히 따라하며 금동이에게 물었다.
“헝님, 나중에는 ‘천세’ 대신 ‘만세’ 하겠지?”
“···으응? 몰라.”
“헝님은 너무 무식한 경향이 있떠요. 우린 공부 많이 해서 세자 헝님 도와야 하는데.”
“필요한 건 다 배우고 있떠. 방에 그려진 푸른 강물 봤떠? 그 강에 진주조개를 키울 수 있따고 차인 노산대가 말해줬어. 그래서 나도 진주조개 키우는 거 배우고 있다고!”
“쉿!”
무식하다는 새벽이의 말에 금동이가 큰 소리로 반박하자, 옆에서 매금이가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천세를 외치며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 국궁 사배까지 음악에 맞춰 올린 후.
이윽고 악공과 깃발을 앞세운 왕의 장엄한 귀환 행렬이 돈의문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금동이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새벽이의 허리띠 잠금쇠를 당겨 자신의 허리띠에 채웠다.
“이어케 하면 사람들한테 아무리 떠밀려도 서로 잃어버이지 않아!”
“힝, 어먼니한테 드키면, 어떡하지?”
금동이의 손을 꽉 잡으며 새벽이가 뒤늦게 겁을 내었다.
그러자 늘 수복이와 온갖 곳을 헤집고 다니는 금동이가 씨익, 짓궂게 웃었다.
“어먼니는 아바마마 마중하시는데 온통 마음이 가 계셔서, 우리가 도망 나온 거 모으시(모르실) 꺼야. 그이고(그리고) 이힛, 샛길을 알지롱. 그 길로 가먼, 아바마마보다 훠얼씬 더 빨리 궐에 갈 뚜 있떠.”
“그엄, 누님한테 가요. 누님이 계속 같이 있었다고 말씀해 주시 꺼야.”
“그것 참 쓰모(쓸모) 많은 생각이다! 뛰어!”
금동이는 한 손으로는 새벽이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매금이의 손을 단단히 잡고 사람을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광화문으로 통하는 샛길로 뛰기 시작했다.
그 시각.
원래 경복궁 안에서 금상의 알현을 기다려야 하는 세종이 붉은 연을 타고 광화문을 나서고 있었다.
상왕의 행렬 또한 악공과 여러 깃발 부대와 호위군, 여러 궁인을 거느린 화려한 행렬이어야 하나, 세종은 그저 호위군과 내관 등 궁인 서른 명만 따르라 명하셨다.
“오늘은 마땅히 금상의 업적이 빛나야 하는 날이다. 이 취지에 맞게 나 또한 궁 안에서 조용히 기다렸다가 문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비로서 그리움이 사무쳐 먼 길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을 나가고자 하는 것이니, 음악을 앞세워 번거롭게 하지 말라.”
실은 매일 새벽 궐 안의 내불당에서 부처를 향해 백팔 배를 올리며 아들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해 온 대비에게 큰아들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소헌 대비도 연을 타고 뒤따르게 하고, 또 대비 못지않게 마음 졸이며 아들을 기다려왔을 윤서도 연을 타고 뒤따르게 하였다.
광화문을 나서자 멀리서부터 왕의 행차를 알리는 풍악 소리와 함께 “와아아아,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등의 백성의 함성이 점점 가까워졌다.
윤서는 품에 꼭 안고 있는 소아의 귀에 속삭였다.
“소아야, 들려? 이제 곧 무수한 깃발이 먼저 보이고 그 뒤로 말을 타신 아바마마께서 금빛 갑옷을 입고 나타나실 거야.”
“아바, 아바바~”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흥겨운 음악 소리에 신이 난 것인지 소아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토끼 털장갑을 낀 손을 휘적였다.
천천히 육조 거리를 나아가던 세 대의 연이 멈춰 섰다.
육조 거리 남쪽 끝에서 드디어 왕의 행렬이 그 선두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세종과 소헌 대비가 궁인의 부축을 받아 먼저 연에서 내리시고, 윤서도 조 상궁과 박 상궁의 부축을 받아 연에서 내렸다.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 중전마마의 행차를 발견한 취타대는 풍악을 멈추고 좌우로 갈라져 길을 낸 후 땅에 엎드렸다.
그리고 깃발을 든 병사들도 좌우로 갈라졌다.
화려한 깃발 사이로 황금빛 찬란한 갑옷을 입은 이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바마마야, 소아야. 아바마마께서 돌아오셨어.”
가슴에 꼭 안은 소아의 귀에 속삭이며 윤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석 달 만의 귀환.
중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빈틈없이 해내며 아이들과 함께 의연하게 이향의 부재를 견뎠지만, 매일처럼 보내오는 긴긴 서신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참을 수 없이 커져만 가던 겨울의 끝.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아이 셋을 낳고도 문득 느껴지는 시대의 이질감을 전적으로 이해해주는 유일한 동반자가, 조금은 야위고 그래서 더 근엄한 제왕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를 본 이향도 말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어왔다.
내관 조창의의 부축을 받으며 세종도, 최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소헌 대비도 앞으로 나아갔다.
뒤따라오던 병사와 호위군, 세자와 조정의 대신도 또 길가를 가득 메운 배성들도 모두 엎드려 두 분 임금께 예를 표하는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상왕 내외분과 금상 전하, 그리고 추위에 볼이 귀엽게 달아오른 공주 아기씨를 안은 중전마마뿐이었다.
윤서는 아들을 향해 다가가시는 세종과 대비마마의 구부정한 뒷모습과, 두 분의 어깨 너머로 자신과 소아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인 이향을 보며 예감했다.
가슴 옥죄는 기다림과 그 기다림 끝의 가슴 설레는 재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임을.
이렇게 두 분 뒤에서 이향을 기다리던 자신도 미래 어느 날부터는 소헌 대비처럼 이향과 나란히 홍위를 향해 마주 걸어갈 것임을.
그리고 소헌 대비가 매일 행하시는 것처럼 윤서도 또한 새로운 영토를 시찰 나간 홍위와 먼바다를 항해하는 금동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매일 새벽 불상과 현덕 빈의 신위 앞에 몸을 낮춰 기도할 것임을,
윤서는 예감했다.
그것은 가슴 벅찬 설렘이자, 또한 어쩔 수 없이 가슴 저미는 기다림이기도 할 것이다.
이향이 부모님께 귀환 인사를 올렸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소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잘 오시었소, 잘 오시었소, 주상.”
소헌 대비는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감추셨다.
세종은 엎드린 아들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이따 종묘에서 선왕께 자랑스레 아뢸 수 있게 되었다. 양녕을 폐하고 나를 세자로 세우신 덕분에 향이 네가 보위를 이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 조선이 강대하게 뻗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또 태상왕께도 고할 수 있게 되었구나. 선왕의 냉철한 선택이 결국 종사의 큰 효로 이어진 것을, 말이다.”
말씀하실수록 상왕의 어조가 점점 촉촉한 물기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향이 너도, 오늘 내가 이러하듯 변경에서 돌아온 홍위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함께 종묘에 가 선대 왕들의 신위에 홍위 너의 공을 자랑스럽게 고할 것이라 말하겠지.”
아들이 세운 업적을 치하하는 동시에 먼 미래의 손주까지 당부하는 부왕의 말음을 모르지 않는 이향은, 아바마마를 부축하며 다짐하였다.
“예, 아바마마. 홍위와 또 홍위의 아들을 데리고 종묘에 들어 홍위의 치적을 아바마마께 자랑스럽게 고하겠습니다.”
*
*
*
“공주님!”
국왕께서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 그리고 중전마마와 함께 경복궁 안으로 환궁하신 후.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리운 얼굴 하나를 찾지 못해 마음이 급해진 정종은 입궐하여 문후를 여쭙는 대신 의통방의 궁가로 달려갔다.
높게 솟은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정종을 맞이한 것은 입에 침이 확 돌게 하는 꿩고기 육수 냄새였다. 두 살이 되기 전의 암꿩을 푹 고아낸 육수에 국수를 말아먹는 온면이 정종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몹시도 그리운 공주의 앞에서 음식의 향도, 몹시 주린 배도 신경이 가지 않았다.
‘공주! 어째서 마중나오지 않으신 것입니까. 내가 그리워했던 밤에 공주 또한 나를 그리워했다는 짤막한 서신은 모두 그저 하신 말씀입니까!’
사춘기, 사내의 사랑에 눈을 뜬 정종은 떠나 있는 사이 어른처럼 굵어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부인을 불렀다.
“공주님! 어디 계십니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