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이향과 정종의 귀환 (2)
아바마마와 정종이 귀환하는 날.
희아는 정종이 의주에 머물며 보낸 서신을 차례로 다시 읽다가 유독 한 서신에 오래 눈길을 주었다.
그 서신은 약 스무 날 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오전에 잠시 짬을 내어 강가로 사냥을 나갔었습니다.하류의 모래톱은 그제부터 내리는 눈으로 온통 새하얀데 커다란 재두루미 한 쌍이 부리로 눈을 헤집으며 먹이를 찾고 있었어요. 옆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끼 두 마리가 통통 튀는 걸음으로 오종종 쫓아다니고 있었답니다.
그림처럼 정다운 새 가족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되어 한참을 보고 있으려니, 무언가 이상했어요. 자세히 보니 어른 새 한 마리의 날개가 정상이 아닌 각도로 쳐져 있었답니다.
의주 성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하길, 다른 흑두루미 떼는 벌써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갔는데 저 새 가족은 한 마리가 날개를 다쳐 날아가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새끼들까지 두 마리 돌보며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나는지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이 말을 할 때 회색으로 낮게 가라앉은 하늘에서 아기 주먹만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부부 새는 새끼 두 마리를 가운데 넣고 서로 몸을 겹쳐 체온을 나누었어요.
몸이 성한 새가 다친 새의 날개를 덮어주는 것을 보자 멀리 계신 공주님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리 귀여운 아이들을 낳아 서로의 체온과 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우겠지요.
그러는 세월 동안 뜻하지 않게 우리 둘 중 누구 하나가 저렇게 어딘가가 불편해지더라도 서로 보듬어 아끼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자 추위 속 재두루미 가족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밀 한 줌을 구해 뿌려 주었답니다.]
섬세하게 다정한 정종의 서신은 희아에게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정종은 늘 자신의 편에 함께 서주리란 확신이었다.
“정종은 희아 너를 한결같이 애정할 것이다. 또 홍위에게 변함없이 충성할 것이고. 그래서 다소 이른 나이인데도 너와 정종을 혼인하게 한 것이야.”
언젠가 어머니가 하신 말씀처럼 정말로 정종은 좋은 것을 볼 때도, 안타까운 것을 볼 때도 늘 부인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희아는 정종에게 특별한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 것이나, 공주의 권위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정종이 보여주는 애정처럼 정성이 담긴 선물을.
그것이 무엇일까 고심하던 희아에게 꿩고기로 육수를 낸 궁중식 온면이 떠올랐다.
꿩과 인삼, 각종 약재를 넣고 삼계탕처럼 푹 고아내는 민간의 꿩고기 육수와 달리 궐에서는 잘 손질한 꿩을 살코기가 살짝 익을 정도로 익힌 뒤, 살은 모두 발라내고 뼈만 뭉근하게 졸여 육수를 낸다.
이렇게 담백하게 졸여낸 육수에 삶은 국수를 여러 번 토렴한 온면을 정종은 가장 좋아했다.
희아가 직접 꿩을 손질해 온면을 만들겠다고 하자, 유모 백씨와 궁인들까지 모두 난리가 났다.
“아니 공주님. 이제까지 밥도 한 번 지어보신 적 없으시면서요.”
밥도 지어본 적 없는 공주께서 생 꿩고기를 어떻게 손질하고 어떻게 삶아서 살을 발라낼 것이냐고, 택도 없는 말씀은 하지도 말고 그저 ‘궁중식 온면을 끓여내거라’ 명령만 내리시라고 아우성치는 말들을 무시하고,
어머니가 늘 손수 아바마마의 목욕을 살피는 것처럼 희아도 정종을 위해 꿩의 잔털을 직접 제거하고 팔팔 끓는 물에 꿩을 넣어 삶았다.
금동이와 새벽이가 궁으로 찾아온 때가 바로 삶은 꿩에서 살을 발라낼 때였다.
희아가 부엌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꿩을 손질하는 모습을 본 금동이는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저기 앉으신 여인이, 누님 맞아? 누님 탈을 쓴 여우, 안니야?”
“정말. 눈님, 저번에 계산 한 거. 사거리가 제일 길게 나가는 포신의 발사 각이, 머었지요?”
새벽이도 진지하게 발사 각도를 물어서 희아가 정말 희아인지, 아니면 희아 탈을 쓴 여우인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만큼이나 희아의 행동이 파격이었다.
희아가 정말로 희아인 것을 확인한 두 꼬마는 살을 바르는 것을 돕겠다고 나섰다.
“매헝이니까, 정성을 보태겠떠요.”
“나두, 나두!”
바르는 살보다 입에 쏙쏙 넣고 우물거리는 살이 더 많았지만, 귀여운 동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니 희아는 못 본 척하고 뼈를 가져다가 솥에 넣고, 정향과 후추 알갱이를 몇 알을 넣고 폭 고기 시작했다.
“좋아하먼 꿩 삶아주는 거야? 그엄, 나두 꿩 삶아주고 싶은 아이 있는데.”
“헝님은 공주앙 혼인한다면서. 신박두 모험에 나오는 공주.”
“좋아한다고 꼭 혼인하는 거, 안니야.”
“헐, 헝님은 좀 이상해.”
두 꼬마가 떠드는 말에 웃음을 참아가며 열심히 숯에 부채질을 하느라 희아는 정종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궁인들은 우리 공주님이 이렇게나 부마를 위해 애쓰시는 것을 정종이 직접 보게 할 요량으로 부러 공주 계신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부인을 찾아 궁 구석구석을 헤매면서도 정종은 쉽게 희아를 찾아내지 못했다.
“공주! 대체 어디 계신 것이오?”
내궁에 딸린 부엌 근처에서 공주를 보았다는 노복의 말에도 설마 공주가 부엌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정종이 안채 뜰에 서서 안타깝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귀가 밝은 금동이었다.
“매헝 목소이 같은데?”
금동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아는 부채를 팽개치고 문으로 내달렸다.
“정종, 나, 여기 있어.”
매일처럼 그려온 목소리가 뜻밖에도 등 뒤에서 났다.
급하게 고개를 돌린 정종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고, 공주님?”
“꿩고기로 육수를 낸 온면, 만들고 있었어.”
늘 당당하고 도도하던 공주께서 몸소 앞치마를 길게 두르고 부엌 문 앞에 서 계셨다!
백옥처럼 고운 뺨을 곱게 물들이고서. 그리고 오똑한 콧날 아래 단아한 인중에 검댕이 하나를 진하게 묻히고서.
북방으로 떠날 땐 비슷하던 키가 한 뼘은 더 되게 큰 정종이 보폭 큰 걸음으로 공주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물조차 손수 끓여본 적 없는 귀한 손으로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마련한 공주를 넓어진 품 안에 꼭 안았다.
“아잉, 부끄여워라!”
부엌 안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금동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새벽이는 도도도 걸어와 짧은 허리를 푹 숙였다.
“매헝, 돌아오셨떠요? 눈님이 엄청 기다리셨떠요.”
그러자 금동이도 어슬렁 걸어와 정종에게 허리를 살짝 굽혔다.
“매헝, 공주가 직접 끄인 온면은, 아무나 먹을 수 없떠요. 정말 정말 귀한 거여서 아무이 돈을 많이 줘도 살 뚜 없는 거니까, 아껴서 아껴서 먹어야 해요. 가자, 새벽아.”
“난 눈님 만드신 거 먹고 가 꺼야.”
“바보야! 가야 해. 두 분 안넝히 계세요.”
금동이가 새벽이의 손을 잡아끌고 안채를 나갔다.
그때까지도 정종은 품에서 부인을 놓지 않았다.
두 꼬맹이들이 손을 잡고 떠난 후.
정종도 희아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숯이 올려진 화롯불 위 앙증맞게 작은 무쇠 솥에선 육수가 보글보글 끓고, 금동이와 새벽이가 발라낸 고기도 수북했다.
정종은 희아를 의자에 앉혔다.
“이제부턴 내가 할게요. 공주님 손에 혹여 상처라도 생기면 저 많이 속상합니다.”
사냥을 나가 꿩고기 육수를 내어 만두를 넣어 먹는 것을 많이 해 본 정종은 능숙한 솜씨로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궜다.
희아는 턱을 괴고 의자에 앉아 자신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낭군을 바라보았다.
정종은 겉에 걸쳤던 모피 안감 도포만 벗어 놓았을 뿐 먼 길을 달려온 군복 차림 그대로였다.
서신에는 그토록 다정하고 세심하게 그리움을 담았으면서도, 막상 만나서는 오로지 부인 먹일 생각에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낭군을 보자,
정종이 떠나 있는 동안 마음 한구석 텅 비어 있던 쓸쓸함이 서서히 녹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채우는 사랑이, 그리고 처음 느끼는 구체적인 열망이 자리 잡았다.
“정종, 잠시만.”
희아는 일어나, 온실에서 가져온 고명용 파를 쫑쫑쫑 썰고 있는 정종에게 다가섰다.
“···정, 종.”
“잠시만요, 공주님, 파를 마저 썰······.”
정종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등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와, 훅 달려드는 침향 섞인 공주의 체취 때문이었다.
정종은 칼을 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비슷한 높이에 있던 공주의 빛나는 눈동자가 한 뼘 아래에 있다.
늘 영민하게 빛을 내는 눈동자가 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오늘은 그 밑, 곧게 뻗은 우아한 인중 옆의 검댕이가 더 눈길을 끌어서 정종은 파 냄새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손가락을 올렸다.
“여기, 검댕이가······.”
이번에도 정종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검댕이를 지워주는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겹친 공주님이 훅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눈, 감아, 정종.”
공주님이 명하셨다.
단 한 번도 공주님 말씀을 거역해 본 적 없는 정종은 서둘러 눈을 감았다.
두려운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쿵, 지난번 백두산 근처에서 호랑이를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 거세게 뛰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숨결이 먼저 목을 간지럽히고, 이어서.
“!”
입술에 말캉하고 부드러운 것이 와 닿았다.
부부가 된 이래 처음 나누는,
서툰 입맞춤이었다.
*
*
*
“아바바~!”
협경당은 8개월 아가의 옹알이로 시끄러웠다.
이향은 갑옷을 벗고 평복으로 갈아입고 손을 씻자마자 소아부터 안아 들었다.
평소 낯선 이를 만나면 입술을 비죽거리며 아앙 울음을 터트리는 소아는, 석 달 전까지 매일 보았던 아바마마 얼굴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향이 안아 들고 “우리 공주님, 잘 있었어요?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하고 묻자,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면서 작은 입술을 달싹거리던 소아가 “아바바!” 하고 소리쳤다.
“아이쿠, 어머니 닮아서 똘똘하기도 하지. 벌써 ‘아버지’하고 말도 하고, 우리 공주님.”
이향은 품에서 소아를 내려놓지 않고 저녁 수라를 받았다.
“우리 소아 이유식 시작했다지? 이거, 짜지 않게 삶은 고기 주면 어떨까? 아니야? 고기는, 아니야? 저기 주악을 달라고? 떡보다는 고기를 먹어야 쑥쑥 크지.”
무릎에 소아를 앉힌 채 쉴 새 없이 어린 딸과 대화를 나누는 이향을 보자, 홍위가 윤서를 바라보았다.
‘아바마마께서 원래 저렇게 말씀이 많으셨어요?’
홍위의 동그란 눈이 묻고 있었다.
‘홍위 네가 동생 바보인 것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아바마마를 닮았어!’
윤서도 눈으로 대답해주었다.
조용조용 눈으로 대화하는 윤서와 홍위와 달리, 금동이와 새벽이는 시끌벅적 투닥거렸다.
“눈님이 만든 온면, 이번 아니먼 언제 또 먹을지 모으는데! 왜 끌고 왔떠요? 속땅하네.”
“너어는! 똑똑한 척은 다 하먼서, 꼬맹이네, 꼬맹이.”
“똑똑한 거앙 온면이앙 무슨 상관이라고요?”
“꼬맹이는 몰라두 돼. 이거나, 먹어.”
금동이가 잡채를 한 젓가락 떠서 새벽이 앞 그릇에 놓아주었다.
“이번에 전투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면서 금창 치료에 성과가 많았다오.”
상을 물리고 아버지 무릎에서 내내 “아바바~” 종알거리느라 지친 소아도 이향 품에서 도로록 잠이 들었을 때.
이향은 비로소 윤서와 어른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인이 제안한 것처럼 전장에서 우리 의원들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인도주의적 치료’를 행하였지 않소? 우리 조선군이야 주로 성곽 위에서 총포와 화살로 응전해 부상이 거의 없었지만, 몽골 쪽에서는 심각한 창상이나 화살촉에 의한 금창이 생긴 자들이 많았는데, 전에는 이런 상처에는 곱돌가루, 쇳가루, 말발굽 등을 가루 내어서 치료를 했었소. 그런데 이번에 전순의와 순덕이 혜민국 약국에서 개발한 여러 약을 바르고, 농포가 잡히지 않게 하는 약을 먹여보았는데,”
전쟁은 많은 인명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학과 공학에서 빠른 발전을 이룩하게 하기도 한다.
건주 여진과 몽골족인 올량합과 벌인 이번 전투가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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