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한양의 이방 전사 (1)
“병판 김종서가 돌아와서 보고하길, 상처 치료에 효능이 좋기로 검증된 어성초, 오배자, 인동초 등을 가루로 내어 만든 금창약이 효과가 아주 좋았다고 하오. 부인이 가져온 항생제, 항염제, 항진균제라는 개념 용어가 존재하니 거기에 맞춘 약재를 결국 찾아내고 있더란 말이지요.”
소아의 등을 토닥거리며 이향이 부드럽게 말하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울리는지 소아는 고롱고롱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 정말로 어렵지 일단 떠올린 개념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여기서 살수록 실감하게 되는 건 사람의 지력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에요. 저는 그저 많은 지식이 쌓인 시대에 태어나 교육받은 이점을 누리는 것일 뿐, 상왕 전하나 전하, 희아의 천재성에는 못 따라가지요.”
“으응? 아니 부인, 이리 가까이 와봐요.”
이향이 한 손으로 윤서가 앉고 있는 방석을 잡아 쭉 끌어당겼다.
그리고 윤서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열도 아니 나고, 좀 수척해지긴 했지만 혈색도 좋은데. 부인, 고단하오?”
“으응? 아니요. 왜요?”
“부인이 석 달 사이에 너무 겸손해져서 고단한 일이 있었나, 아니면 기죽을 일이 있었나, 내 몹시 걱정이 됩니다.”
눈물이 핑 돌도록 다정한 말이다.
윤서는 이향의 한쪽 무릎에 얼굴을 묻고 웅얼웅얼 대답했다.
“전하께서 이렇게 오랫동안 떠나계신 적이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외로웠어요.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있고, 또 중전으로 해야 할 일이 매일 많아도 문득문득 몹시 외로웠어요. 그러다 보니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솔직하게 전부를 털어놓을 이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면 내 마음은 얼마나 갑갑하고 외로웠을까.”
머리에 이향의 손길이 느껴졌다.
한 손으로는 소아를 조심스럽게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윤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향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
“그래서 내가 미래에서 왔다고 잘나게 굴 일이 아니구나, 전하가 없으면 나는 시대와 불화하는 이방인에 지나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전하 돌아오시면 정말 잘해야지, 매일 밤 다짐했어요.”
“오호, 정말 잘해야지 매일 밤 다짐한 거, 확인해보고 싶은데. 마침 소아도 깊게 잠이 들었고.”
이향의 목소리에 능글능글 웃음이 배어 있다.
윤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천에서 길어온 온천물에 피부에 좋은 한약재 온침해 놓았어요. 목욕부터 하시지요, 전하.”
“부인이 씻겨줄 거잖소. 석 달 동안 홍 내관의 솥뚜껑 같은 손으로 목욕 시중을 받으려니 아주 불편했어요. 부인이 머리부터 좀 감겨줘요.”
윤서는 소아를 유모에게 보내 재우게 하고, 이향의 목욕 시중을 들었다.
그런데.
“이거······.”
이향의 등에 째었다가 꿰맨 듯한 흉터가 만져졌다.
흉터를 발견하기 전까지 사방을 은은하게 밝힌 불빛 아래 비누를 묻힌 부드러운 천으로 은근하게 몸을 닦아주던 윤서는 옆에 놓인 등롱을 들어 이향의 등을 상세히 살폈다.
엉덩이 뼈 위 척추 옆으로 지렁이처럼 불쑥 솟아오른 흉터가 있다.
“전하, 종기가!”
오전 내내 말을 타고 와 신료와 백성들의 환영 인사를 받는 고된 일정 끝에 부인의 부드러운 손길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향이 비몽사몽 눈을 떴다.
“여기 허리 위에 종기가 났었어요?”
“으응? 흉터가, 남았어? 전순의 그놈 돌아올 즈음엔 흉터 흔적도 없어질 거라 하더니.”
“···매일 서신을 쓰셨으면서 종기가 났다는 말은 하나도 안 적고, 이향!”
다른 것에는 대개 의연하나 종기에 관해서만은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윤서가 울먹이는 소리에 이향은 완전히 잠이 깼다.
“이렇게 걱정할까 봐 그랬지. 별거 아니었소. 칼로 가볍게 째고 염증 잡아주는 연고 바르고 탕약도 먹었더니 사흘 만에 가라앉았소.”
“···왜 자꾸 종기가 날까요. 목욕도 자주 하고 옷도 통풍 잘 되게 입으셨을 터인데.”
“······.”
뜨끔한 이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압록강 위를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너무 차고 옆에 살뜰하게 챙기는 부인도 없고 안아주어야 할 아이들도 없어서 목욕 대신 홍 내관에게 젖은 천으로 대충 몸을 닦으라고 하고 매일 늦게까지 일만 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향은 윤서를 안아서 앞에 앉히고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부드럽게 달랬다.
“전순의가 이번 부상병들 치료에 부인이 말한 그 푸른 곰팡이를 이용한 항생제 약효 실험해 본다고, 약 공장에서 밀가루 찐 떡에 키운 곰팡이를 가져간 거 부인도 알지 않소. 종기가 작게 잡혔다고 기별하자 내 종기에서 고름과 농을 채취해 며칠 실험하며 치료 약물을 만들었어요. 조금 커진 종기를 째 고름 주머니 제거한 후에 그 약물 바르자마자 금세 나았고요. 그러니 앞으로 또 종기가 나도 괜찮을 거야. 부인 시대에 종기는 감기보다도 쉬운 질병이라면서. 응? 그러니까, 종기 그만 걱정하고, 부인.”
이향은 재빨리 부인의 관심사를 종기가 아닌 데로 돌렸다.
“나 돌아오면 정말 잘해주기로 한 거, 매일 밤 갈고 닦은 거, 보여주어야지. 긴긴 겨울밤 홀로 독수공방하며 얼마나 많이 참았는데. 응, 윤서야.”
이런 의도로 한 말이 결코 아니건만.
하지만 윤서는 몇 마디 말을 교묘하게 바꿔 유혹하는 이향의 말에 못이기는 척 결국 뜨겁게 안겨들었다.
홀로 잠드는 긴 겨울밤이 힘들었던 것은 이향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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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새해가 밝았다.
이전까지 정월 초하루 조선의 국왕의 행보는 원유관에 강사포 차림으로 경복궁 인정전 옥좌에 앉아 문무백관과 여진의 여러 추장, 일본 여러 번에서 온 사절의 조현(朝見)을 받은 후 연회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나라에 원조군을 보내고, 압록강 이북 환인과 오녀산성 일대까지 국토를 넓히면서 그 일대 건주 여진 부족과 두만강 이북 야인 여진 부족의 부락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이해부터는 연초의 조회의 규모가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그간 조선에 입조하지 않았던 여진 부족에서조차 한양에 입조하여 국왕을 뵙고 신하의 예를 표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진족 추장이 자제와 수하를 이끌고 한양 동대문 근처 북평관에 들어 있었다.
이들은 가져온 물품을 시전과 난전 상인에게 팔고 면포와 소금, 비단과 도자기, 장신구 등의 사치품, 쇠로 만든 농기구, 각종 의학 서적과 농업 서적을 구입하는데 열심이었다.
이에 따라 이들이 머물고 있는 동대문 일대에 임시 장이 크게 서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대마도와 대내전, 소내전 등과 구주 일대 번의 도주가 모두 새해 입조 사절을 파견했다.
남산 근처 동평관에 머물게 된 이들 일본 사절은 유황과 단목, 백반, 소목, 후추 등을 가져와 팔기를 원했고, 조선의 도자기와 면포, 인삼 등의 약재와 피부 외용 연고, 화장품, 그리고 가능하다면 괘종시계를 사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이에 따라 남대문 일대에도 큰 장이 서게 되었다.
특히 옷감을 붉은색으로 염색하는 데 쓰는 소목을 구하기 위해 면포와 비단을 만드는 조선 상단이 가장 적극적으로 일본 사절단을 찾았다.
이들을 정식으로 근정전에서 만나기 전날,
이향은 급하게 의정부의 삼 정승과 육조의 판서들을 편전으로 불러들였다.
“지금 북평관과 동평관에 머무는 여진의 추장과 일본의 사절이 오도리 족과 골간 족, 대마도의 종씨 자제처럼 자신들의 빼어난 인재도 우리 왕실 학당에서 수학할 기회를 허락해 달라는 외교 문서를 가지고 있다오 하오. 내일 나를 알현할 때 방물을 바치면서 함께 문서를 바칠 것이라 하기에, 내 경들과 먼저 논하고자 합니다.”
이향이 말이 끝나자, 좌의정 하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우리 학당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명나라에서조차 가르치지 않은 획기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비록 저들이 전하를 뵙고 신하가 되기를 청한다고 하나, 저들이 유학을 와 신지식을 배워 돌아간 후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장차 우리 조선에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할까, 신은 그것이 염려됩니다.”
“으흠,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오. 허나 학문은 늘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신지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법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 조선에서는 어제의 지식이 벌써 쓸모없이 되며 끊임없이 신지식이 쏟아져나오는 형편이오. 이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신 공조 판서 정분 아룁니다. 신이 재작년 우리 직공들을 이끌고 북경과 남경에 가 다리 축조술을 배워온 후 느낀 바가 있습니다. 지식을 배우는 것과 그것을 바탕으로 새 지식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전하께서 우리 강토에 도로와 다리를 만들어 육로로 물품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밝히시고 그에 필요한 물품과 인력을 확고하게 제공하신 후에야 여러 강에 다리가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정분은 저들 부락과 나라에 과연 우리 전하처럼 큰 안목을 가지고 백성을 위해 장기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면 우리 왕실 학당에서 아무리 기이한 지식을 배워간다고 해도 무용지물일 것임을 지적하였다.
“신 병조판서 김종서 아뢰옵니다. 신은 이번 북방 경영을 이끌면서 느낀 바가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쉽게 승리하게 된 데에는 사전에 명나라 사정과 달단과 올량합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덕이 큽니다. 저들 유학생은 우리에게서 지식을 배워가는 입장이지만, 또한 우리도 저들에게서 저들 나라에 대해 상세하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김종서가 유연한 시각으로 유학 문호를 개방하는 것의 장점을 말하자 황희가 처음에는 놀란 눈으로, 그러다가 점점 실눈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흡족한 기색으로 귀를 기울였다.
“또 이번 이만주 일당을 처단하는 데 있어 다른 여진 부족의 협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듯, 우리 학당에서 배워간 자들은 장차 우리 조선에 우호적인 협력 인사로 기능할 것입니다. 외국의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외국에 아주 든든한 우군 인사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김종서의 말이 끝나자, 황희가 빙그레 웃으면서 의견을 덧붙였다.
“전하, 병조 판서의 의견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안이 있습니다. 교육과 학당, 의료 분야는 상왕 전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야입니다. 글자가 없어 지식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는 백성을 가엾게 여기시어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드신 상왕 전하가 아니십니까. 신이 감히 짐작하건데, 오도리 족과 골간 족, 대마도의 종씨 가문 인사에게 이미 학당 입학을 허가하신 바 있는 상왕 전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배움의 기회를 주길 소망하실 것입니다.”
황희의 의견은 늘 정확하게 상왕 전하의 의지를 반영한다.
그리하여 한 부족이나 번 당 세 명까지 서울의 왕실 학당 유학을 허용하기로 지침이 정해졌다.
가르쳐주는 것은 무상이나 한양 내의 거처와 생활은 본국에서 지원을 받는 것으로 조건을 달아서, 이들 유학생의 소비가 조선 경제에 도움이 될 점도 놓치지 않았다.
조선이 이민족과 이국의 세력에게 문물과 문호를 개방한다는 변화는 외국 사절의 조회 후 조선 국왕이 베푸는 연회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진과 일본의 사절단은 근정전에 들어 조선 국왕께 신년 하례를 올린 후 다시 북평관과 동평관 숙소로 돌아가 조선 임금이 내린 연회를 받았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올 때에는 지방마다 환영 연회를 베풀고 임금까지 돈의문 밖 모화관에 나가 직접 환영하고 도성 내 태평관은 물론 궐 안 경회루에서도 종종 연회를 베푸는 것과 확연히 다른 대접이었다.
물론 소규모 부족으로 산개해 있는 여진족이나 지방 권력인 일본의 번에서 보낸 사절을 대명의 사신과 같은 급으로 대접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그 점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조선은 이제까지 외부 세력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이향은 이들 사절도 조선의 문무백관과 함께 동별궁 연회에 참석하라 명하였다.
이전과 달리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명시적인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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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처럼 화려한 동별궁의 너른 뜰.
우아한 궁중 음악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엄격한 예에 따라 국왕이 내린 축하주가 몇 순배 돌아간 후.
연못가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 란 연극 공연이 펼쳐졌다.
주인공은 조선 최고의 재상 영의정의 여식과, 한양의 학당에 수학하러 온 이방인의 자제였다.
이 시대 연극은 줄타기, 접시 돌리기, 재주 넘기 등 광대의 잡기이거나, 어여쁜 여악이 나와 하늘거리는 춤을 추거나, 건장한 무사의 무예 대결이 거의 전부였다.
명나라에 색다른 연극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일상과 다른 분장과 높은 음조의 기이한 노래, 그리고 상징적인 손짓 연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척박한 문화의 시대에 진짜 사람처럼 복식을 한 선남선녀 배우의 등장에 외국 사절은 물론 조선의 왕족과 신료들까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무대 위에서 실제처럼 벌어지는 이야기에 넋을 놓았다.
“내 사랑이 그대를 불행하게 하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소!”
지체 높은 영의정의 여식이 이방인을 마음에 품은 것이 조선의 사회에 도저히 수용될 수 없을 것임을 지적하는 잘생긴 여진족 사내의 말에,
“하아, 저리 잘 생기고 재주 많은 사내가, 하아.”
“어째서 너는 이방인인 것이냐.”
여기저기서 탄식과 울분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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