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한양의 이방 전사 (2)
가 보는 이의 찬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완성도 높은 공연이 된 것엔 영응 대군의 부인 송씨의 공이 지대하였다.
송씨가 열성적으로 연극 만들기에 임하게 된 계기는 이혼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부부인이 여러 사찰에서 하도 요란하게 놀이를 하신 이유로, 상왕 전하께서 부부인을 내치실지 여부를 고민하고 계십니다. 전하께서 미흡한 며느리를 내치신 일이 이미 있었음은 부부인도 잘 알 것입니다.”
담백하게 상왕 전하의 노여움을 전하는 중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씨는 왈칵 눈물을 터트렸었다.
며느리를 여럿 내친 상왕 전하도 두려웠지만, 손을 보고자 마음먹으면 반드시 폐서인 시키거나 아예 죽거나 하게 만든다고 왕실 내에 은밀하게 소문이 떠도는 중전은 더욱 무서웠기 때문이다.
“사, 살 방도를 일러주십시오, 중전마마.”
“에유, 왜 이렇게 몸을 떠십니까, 부부인. 내 부부인의 활달함을 평소 좋아했던지라, 그렇지 않아도 전하께서 근심하실 때에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오.”
중전은 아예 판을 크게 깔고 제대로 노는 것이 부부인이 영응 대군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도라 일러주었다.
시시하게 머리 빡빡 깎은 중이나 도깨비처럼 분칠 진한 기생들 불러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는 것 말고, 조선의 공연 문화 역량을 크게 키울 수 있는 놀이를 만들면 상왕 전하께서 노여움을 푸시리란 것이 중전의 요지였다.
그래서 송씨는 목숨도 구하고 흥 많은 끼도 제대로 발산할 수 있는 이 연극에 모든 열의를 쏟아부었다.
일만 명의 노비 중 얼굴이 반반한 것들만 골라 일일이 얼굴과 몸매를 확인한 후, 가장 탁월한 미모를 지닌 남노(男奴)와 여비(女婢)에게 남주인공 사롱개 역과 여주인공 연화 역을 배정하였다.
그리고 다른 역할도 멀끔한 노비들을 뽑아 배정하였다.
그렇지만 제대로 놀이판을 까는 일은 은자 몇 냥 던져주고 사찰의 중에게 기생을 데려와 놀이판을 벌이라 명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여주인공 연화 역과 남주인공 사롱개 역을 맡은 노비는 둘이 벌써 정분이 나 대사도 안 외우고 어디 으슥한 곳만 찾아 내빼기 일쑤였다.
다른 역의 노비들은 자신들의 미모가 주연 배우에 비교해 별로 못하지도 않은데 천한 몸종이나 노비, 비겁한 오랑캐 역할이나 한다고, 이래서는 저기 저잣거리의 화척인들이 주로 하는 광대 짓보다도 못하다고 골을 내며 대충 하는 시늉만 냈다.
속이 타 똑바로 하라고 매를 흠씬 때렸더니 이제는 연기를 하긴 하는데 또 맞을까 봐 두려워서 대사는 책 읽듯 어색하고 몸놀림은 부러진 사지에 부목을 대어놓은 것처럼 뻣뻣하기만 했다.
“아유, 저 빌어먹을 노비 근성!”
이대로는 다 망치게 된다.
왕실에서 내쫓겨도 우리 자가께선 상왕 전하 눈을 피해 찾아와서 아이를 가지게 해주시겠다고 굳게 약조하셨지만, 부부인이란 고귀한 신분 없이 전처럼 마음껏 놀 수 없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
“때려도 듣질 않고 어색하기만 하니, 흐윽, 중전마마. 저는 기어이 비참하게 이혼당하려나 보옵니다.”
다급해진 송씨는 유 소용에게 세우 작가의 각색 대본을 받고 배우를 뽑아 연습시킨 지 이레 만에 궐에 들어 중전께 사정하였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노비로 험하게 살다가 연극을 하게 되면 기뻐하면서 열의를 다하리라 생각했던 것은 순진한 기대였다.
대개의 인간은 ‘노비’일 땐 그저 노비로서 시키는 일이나 대충 때우려고 하는 수동성을 벗어나지 못하니.
송씨도 마찬가지다.
놀고자 하는 열의를 넘어 품질 높은 ‘문화’를 만들어 내려면 지금보다 더 큰 열의와 목표를 가지고 매진해야 한다.
그래서 윤서는 송씨에게 물었다.
“해보니, 어떠합니까? 배우들이 부부인 뜻대로 따라만 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까?”
“!”
중전의 물음에 송씨는 연화의 몸종 향단이 역할을 맡은 사월이를 떠올렸다.
사월이는 다른 종과 달리 처음부터 연기에 열의가 넘쳐 정말로 야만족을 마음에 담게 된 상전 아기씨를 말리기 위해 눈물까지 펑펑 쏟았다.
그 눈물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져서 따라 울고 말았으니.
“잘하는 장면이 나올 땐 주먹을 꽉 쥐고 흔들며 응원하게 됩니다. 모두 다 제대로 정말인 것처럼 잘 해내는 것을 보게 된다면, 이화주를 안 먹고 장구 가락에 춤을 안 춰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다.
송씨가 음주가무를 끊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 떠돌 정도인 당사자가 그 좋아하는 술까지 마다할 정도라니.
“이미 매를 때려 채찍을 휘둘렀는데 효과가 없었으니, 이제 당근을 줄 차례입니다.”
“어떻게 당근을 주어야 할지요. 신첩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노비 근성이 문제라면, 노비가 아니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어차피 노비 세습제는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궁으로 돌아온 송씨는 배우 노비 무리를 불러 선언하였다.
“나는 장차 ‘송가 인생 극단’을 세울 예정이다. 너희 중 정말로 나의 극단에서 제대로 연기를 할 마음이 드는 자가 있다면, 내 그를 양인으로 속량하고 월봉을 줄 것이다. 있느냐?”
“!”
“!”
제일 먼저 손을 든 두 사람은 주연을 맡은 두 노비였다.
벌써 눈이 맞은 두 노비는 양민이 되어 혼인을 하고 양민 아이를 낳고 싶었다.
다른 노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극단이 흥해야지만 자신들이 월봉을 받아 생계를 꾸려갈 수 있기에 혼신을 다해 연기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연극 연습이 제대로 자리 잡자, 이제 공연할 장소가 문제가 되었다.
송씨가 또 윤서를 찾아와 호소하였다.
“동별궁의 공터가 넓어 무대로 꾸미기에 적합하나 문제는 소리입니다, 중전마마. 배에서부터 끌어내는 흉성으로 발음하게 하여 가까이서는 선명하게 들리나, 조금만 멀어지면 웅웅거리는 소음밖에 되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것은 윤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송씨의 극단은 를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차례로 공연하는 질 높은 왕실 극단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연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윤서는 예술에 안목이 아주 높아 왕실 도요의 도자기 책임자로 있으면서 자신의 궁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 무희를 키워내 공연을 즐기는 안평 대군을 불렀다.
“자가, 원래 대규모 공연을 야외에서 할 경우에는 이렇게, 푹 파인 언덕 지형을 이용해 소리가 천연으로 울리게 합니다.”
윤서는 대학 때 여행했던 그리스 에피다우로스 노천 극장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대를 아예 건물로 지으면 이렇게 아래에 무대를 두고 관람석은 층층이 배열하지요.”
셰익스피어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 본 극장의 모습도 그려 보였다.
“하오나 지금 동별궁은 언덕도 아니고, 또 궁 안에 극장을 짓기는 곤란하지요. 그래도 국초 행사의 중요성을 감안해 지금부터 전용 극장을 짓기 시작한다고 해도, 연초까지 완공이 무리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지붕까지 다 갖춘 공연장은 무리에요. 하지만 이 실내 극장 도면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중전마마. 여기서 간단하게 음료와 주류를 팔면 배우들 월봉 정도는 쉽게 벌겠어요.”
이제 오십 인의 배우에게 매달 주어야 할 월봉과, 거기에 무대 의상과 무대 장치의 비용도 마련해야 해서 갑자기 예리한 경제 관념을 가지게 된 송씨가 말했다.
그러자 뭔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기는 듯한 자리에는 기필코 따라오는 금동이가 부부인 치마를 당기며 말했다.
“부부인, 배우가 입은 에쁜 옷도 팔고요. 그이고 또 음, 배우들 인형 만들어서 팔면, 돈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떠요. 제 생각은 그언데, 부부인 생각은 어떠세요?”
“어머나, 아기씨! 정말로 그러합니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 인형 만들어서 극 중 복식까지 입혀 팔면 다들 얼마나 사고 싶어 할까요? 이번 연극부터 만들어 팔겠습니다.”
그러자 금동이가 윤서에게 입술에 손가락을 대었다가 손짓했다.
뭔가 귓속말로 할 말이 있다는 뜻이어서, 윤서가 허리를 굽혀 귀를 대었더니, 금동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먼니, 새벽이가, 참나무에 구멍 뚜어서 버섯 키우는 거 알려주고 생각 값 일 할 달라고 했는데요. 저도 부부인한테 인형 생각 값 일 할 달라고 하면, 안 돼까요?”
어조가 너무 간절해서 윤서는 그만 하핫,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송씨는 깔깔 웃으며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기씨, 그럼 이렇게 해요. 아기씨가 벌써 박 상궁이랑 여러 공장 가지신 거 아는데요. 그 공장에서 우리 연극 복식 만들어 주시고요, 인형도 만들어서 납품해주세요. 옷값은 넉넉하게 드리고, 인형은 판매가의 육 할을 드릴게요.”
그러자 금동이는 미간을 모으고 한참 생각하더니 서둘러 말했다.
“그건, 만드 때 원가가 엄마나 드어가는지 먼저 따져보고, 그이구 나서 비유르 정해야 해요. 그애서, 지금 말뜸 드리 뚜 없떠요.”
(그런, 만들 때 원가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먼저 따져보고, 그리고 나서 비율을 정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 말씀 드릴 수 없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제법 이문이 많이 남을 것 같은지, 금동이는 한창 또박거리며 말하던 발음을 아주 엉망으로 대답했다.
“어허, 우리 금동이는 대체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이러는 게야?”
안평 대군이 금동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슥슥 이번 무대의 설계도를 그려보였다.
“일단 이번 연극은 내용상 연못이 꼭 필요하니, 원래 계획대로 동별궁 뜰에 무대를 만들되, 이 야외 극장처럼 관객석을 층층으로 만들고, 위에 기름 종이로 만든 차일을 쳐서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 일종의 간이 극장이 되겠네요. 좋습니다! 대신 상설 극장도 이 실내 극장처럼 제대로 지어야겠어요.”
송씨가 안심해서 말했다.
윤서는 홀로 생각했다.
‘이번에 지어지면 최초의 왕실 극장 건물로 후대에 문화재로 보존될 거야. 그러려면 정말 잘 지어야 한다. 그래야 경복궁, 창덕궁,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을 터이니.’
윤서는 안평 대군을 바라보았다.
“자가, 자가께서 정분 대감과 함께 우리 왕실 극장 건물을 하나 제대로 지으시지요. 소리의 울림이 관객석까지 잘 도달하고, 사방에서 무대가 잘 보여야 하는 기술적인 측면 외에도 주변과 외관이 잘 어우러지는 예술성도 빼어났으면 합니다.”
“오, 중전마마. 정말로 심혈을 기울여 짓도록 하겠습니다. 소리 측면은 박연 대감에게도 부탁을 해서 너무 울리지도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게 잘 해 보이겠습니다. 외관은 또 제가 제 미적 감각을 살려, 기와부터 벽면, 입구까지 극장다운 미려한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게 하겠습니다.”
다른 대군들은 형님 전하 밑에서 굵직굵직한 임무를 맡아 행하는데 자신만 중전마마의 명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내심 불만이던 안평 대군이었다.
물론 도자기에 정교하고 복잡한 문양을 회회청 푸른 염료로 우아하게 새겨 넣는 것, 그리고 곡선의 고아한 아름다움을 살려 모양을 설계하는 재미가 크고, 그렇게 자신이 설계에 관여해 만든 관요 생산 도자기가 일본과 여진, 그리고 저 유국과 여송에까지 팔려나가 국부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보람찬 일이긴 했지만.
자신도 다른 형제들처럼 백성들이 보고 와아 감탄할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컸던 안평 대군은 드디어 커다란 건물을 만들게 되었단 기쁨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런 안평 대군의 도포 자락을 금동이가 또 슬슬 잡아당겼다.
“응? 우리 대군 아기씨는 또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가?”
아까 중전께서 몸을 굽혀 들어주던 것을 보았던 안평 대군이 몸을 굽히고 물었다.
금동이는 까치발을 서서 안평 대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기, 안펑 숙부님. 우이 새벽이가 건축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그어니까 극장 만드시 때, 우이 새벽이 좀 데이고 다녀 주데요.”
“와하하. 그래. 그렇게 하자. 중전마마, 세자 저하와 대군 아기씨들 우애가 이렇게나 도타우니 참 든든하시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월 초하루.
동별궁 연못가에는 장면이 바뀔 때 천이 내려오고 뒤에서 무대가 바뀌는 무대에, 관람석은 층층으로 높게 반원으로 쌓았고, 그 위로 추위를 막아주는 동시에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차일이 드리운 공연장이 마련되었다.
무대를 보기 좋은 중앙열 중간 높이의 좌석에 상왕 전하 내외분과 금상 전하 내외, 그리고 세자와 대군들이 함께 앉고, 그 뒤로 고위 대신들이 앉았다.
왕실 종친은 상왕 전하 아래쪽에 모여 앉고,
정3품부터는 오른쪽과 왼쪽에 벌려 앉고 중간에 여진족과 일본 사절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날 공연하는 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외조모님을 뵈러 가다가 호랑이 밥이 될 뻔한 자신을 구해준 이방인(여진족 외양을 하였으나 정확하게 어느 부족이라고 나오진 않았다) 전사에게 첫눈에 반한 영의정 댁 소저 연화는 노비 돌석이와 사월이의 도움을 받아 은혜를 갚는다는 구실로 반촌에서 하숙하는 사롱개를 찾아간다.
왕실 학당에 유학 온 사롱개도 억센 고향 처녀와 달리 볼이 뽀얗게 하얗고 행동거지가 우아한 하연을 좋아하게 되지만, 돌아가 부족의 추장 직위를 물려받고 이웃 부족의 정혼녀와 혼인을 해야 하는 까닭에 하연을 밀어낸다.
[“아기씨와 나는 사슴과 곰(사롱개 부족 신이 곰이다) 만큼이나 다른 존재요. 하니 공연히 은혜 운운하며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마시오. 확, 잡아먹으면 어쩌시려고.”“잡아먹혀도, 좋아요. 그것이 사롱개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하아, 일국의 최고 재상의 따님이 어찌 이리 철이 없다는 말인가.”
“하아, 장차 부족을 이끄실 분께서 어찌 이리 담력이 작으시단 말인가. 저를 보세요, 사롱개. 제가 당신에게 부족한 여인인가요?”
(방백)
“넘쳐서 탈이란 말이오! 내 부족도 버리고, 학당에 입학하게 허가해주신 조선 국왕의 은혜도 저버리고 소저를 데리고 저 먼 대만이나 여송으로 도망치고 싶을 만큼, 그대가 내 마음에 넘쳐서!”
(다시 싸늘한 얼굴로 사롱개가 하연에게 말한다)
“부족하오. 그대는 내게 너무 부족한 여인이고 위험한 존재요. 날 찾아오신 것을 영의정 대감께서 아시는 날, 나와 내 부족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오도리 족의 추장 동가가 불쑥 조선의 영의정 황희를 향해 살벌한 어조로 외쳤다.
“정말로, 황 대감 어르신, 사롱개의 부족을 멸하실 것이오? 정말로, 그러실 것이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