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한양의 이방 전사 (3)
묻다 보니 흥분이 더해졌는지 동 추장은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다시 물었다.
“저 애기래 저케 좋다는데 말이우, 대감!”
그러자 주변의 여진족 추장과 사절도 눈을 부리부리 뜨고 황희 대감을 주시하였다. 잘 못 말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릴 듯 모두 아랫입술을 꽉 앙다문 기세가 살벌하기 짝이 없다.
이날 연극은 외국의 사절단을 위해 여진어와 왜어로 번역된 대본집을 미리 배부한 상태였다.
또 태조 대왕과 고려 말부터 긴밀했던 여진의 추장 일족은 함경도 말에 능통한 경우가 많았고 일본 사절단에는 조선어에 능통한 통변자가 따라와 있기에 까막눈이라도 연극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객석에서 소란이 일자 무대 위에서 열연하던 배우들은 당장 넙죽 엎드렸다.
“이거, 뭐냐?”
“괜히 우덜만 좆되는 거 아녀?”
“적당히 하라니께. 너무 실감 나서 이 사단이 생긴 거 아녀!”
엎드린 채 서로 탓하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강한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로 자신들의 연기가 대단했다는 자부심과, 또 천한 노비니 일이 터지면 자신들만 죽어 나갈 것이란 두려움으로 아드레날린이 뿜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황희 대감은 옆자리 좌의정 하연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동가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동 추장, 저리 훌륭한 사내가 변변치 않은 우리 아이를 좋다고 하는데 내 어찌 거절할 마음이 들겠소? 그러나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남녀가 합해지는 것은 아무리 영의정이라도 사사로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저 어여쁜 아이들의 연정이 이루어질지는 우리 전하와 저 사내의 추장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시선이 조선의 국왕 이향에게 쏠렸다.
이향은 일어서는 대신 고개만 돌려 동 추장을 바라보았다.
동 추장과 여진의 부족장들이 일제히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고 고개를 숙였다.
이향은 동 추장을 향해 몸을 일으키라 손짓하고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말하였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로 삼도천을 다시 건너오게 하고, 시공간을 넘어서 찾아오게까지 하오. 이 이야기 속 저들이 기어코 사랑을 이루고자 마음먹는다면 천지신명조차도 막지 못하실 것이오.”
“!”
“!”
갑자기 삼도천이 나오고, 또 시공간을 넘어서고 하는 말이 나오자 잠시 고요했던 간이 극장 안이 갑자기 세찬 함성에 휩싸였다.
“와아아아! 그러니끼니, 전하, 허락하신다는 말씀 아니우까?”
“뭣들 허는가? 어서 일어나서, 응, 사랑을 허란 말이다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외치는 무리에 조선의 관료와 그 가족들까지도 합세했다.
앞에 앉은 유 소용이 감동의 눈물을 훔치는 것이 보였다.
윤서는 몸을 굽혀 유 소용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위대한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네.”
“제가 중전마마 진심으로 연모하는 거, 아시지요?”
“!”
유 소용의 말에 윤서 옆에 앉아 계신 세종께서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지붕처럼 위를 덮은 차일이 들썩이도록 함성이 커지자, 엎드려 있던 배우들이 휘둥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주춤주춤 일어났다.
사롱개 역을 맞은 배우는 갑자기 그 잘생긴 얼굴을 우그리며 울 듯 찡그리더니 두 팔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우리, 천지신명께서도 감동할 정도로 뜨겁게 사랑할 터이니, 부디 실내를 정숙해 주십시오!”
그러자 실내는 이내 흥분한 숨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아주 고요해졌다.
[“무엇이라! 너는 이 나라 최고 재상의 딸이란 말이다!”“그이가 이방인이라 허락하지 못하신다면, 저도 그이의 땅에 이방인이 되겠어요.”
영의정의 반대에 부딪친 연화는 흑흑 예쁘게 흐느껴 울며 사랑채를 뛰쳐나오고,
그날 밤.
연화는 사월이와 돌석의 도움을 받아 야반 도주를 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이고, 대감. 그깟 재상직이 무엇이라고 천금처럼 귀한 딸 아이를 잃게 한단 말이오. 내 딸을, 연화를 돌려내요.”
“어허! 부인이 이 지경이니 연화가 그리 천지 구분을 못하고 경솔한 것이 아니오!”
“흥, 말씀 잘하셨어요. 연화가 날 닮은 덕분에 그 잘난 사내를 고른 것을 모르시겠어요? 내가 대감을 마음에 담았을 때 대감은, ···얼자가 아니셨소? 우리 태조 대왕께서 조선을 세우신 후 인재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신 덕에 얼자 출신 대감이 재상직에 오르신 것 아니오? 그럼, 지금 금상 전하께서 저 북방에 사는 이들을 우리 조선의 백성처름 보듬으시고 등용하시는 이 때에, 학당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둘 정도로 문무 모두 겸비한 데다, 큰 부족의 후계인 연화의 사내가 장차 무엇까지 될 줄 알고, 이리 홀대하신단 말입니까?”]
의도가 참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사였다.
정경부인 역의 배우도 그 의도를 정확히 알기에, 노비였던 자신의 처지에 더욱 감정 이입해 울컥울컥 감정을 끓이며 대사를 쳤다.
“!”
“!”
관객석에선 다들 황희 대감을 곁눈질했다.
“······.”
정작 영의정 역할의 표본인 황희 대감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허리춤에 달린 비단 주머니를 열어 볶은 콩 몇 알을 오도독 씹으실 뿐이다.
그러는 사이 극 중 배경을 바꾸기 위해 무대 앞으로 장막이 내렸다.
어른 관객들은
“이야, 황 대감의 인품이 참으로 일국의 최고 재상이시라 하실만하오.”
“반촌에 갔다가 사롱개가 이미 귀향길에 오른 걸 알면 연화 소저는 얼마나 실망할까요?”
“북방으로 따라가겠지. 헌데 저리 여린 몸으로 어찌 북방에서 버틸꼬.”
소곤거렸다.
앞쪽에 앉은 왕가 아이들은,
“장막에 비치는 그림자 움직임을 보니 무대가 돌아가게 되어 있나 보다.”
“큰 헝님, 아까 그 사농개 죽인다고 자객 나아들 때 위에서 줄 봤떠요? 어깨에 줄 매서, 슝 나아간 거야.”
“칼따움도 다 연습해서 맞춰 봤겠찌?”
“그럼. 검무 추듯 딱딱 맞잖아. 아마 수백 번도 더 연습했을 거다. 세자 저하, 저하랑 저도 저 정도 합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홍위와 새벽이와 금동이와 계동이, 수복이는 내용은 아랑곳없이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빼어난 몸놀림에만 관심을 두었다.
금동이가 한숨을 폭 쉬더니, 단짝 수복이에게 말했다.
“사옹개 팔 다이가 기어서 멋지다. 나도 이담에 저엏게 팔 다이가 기었으면 좋케따.”
“얼굴이 잘 땡겼으니까 팔 다이 아무여케나 휘적거여도 멋쪄 보이는 거야. 금동이, 당신은, 으응, 어굴이가, 아이고!”
“···너어는, 매을 버네. 세상에 벌 게 엄마나 많은데, 매을 버냐, 수복아! 하, 광펑 숙부님께서 근심이 아주 크지겠다, 수복아.”
일곱 살 꼬맹이 둘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윤서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 없이 웃으며, 새삼 이야기가 가지는 힘에 탄복했다.
‘고난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울림을 가진다.’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에 더 큰 울림을 낳는 것이다.
그리고 허구에서나마 인연을 맺는 것을 본 관객은 무의식에서부터 저 낭만적인 사랑의 결실을 긍정하게 될 것이고, 차차 의식의 변화까지 이루게 되겠지.
그것이 이 연극이 가지는 사회, 정치적 힘이다.
윤서가 흡족하게 구현된 정책 홍보의 효과에 만족할 때.
“윤서야.”
이제까지 아무 말씀도 없이 무대 위의 연극만 바라보시던 세종께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윤서를 부르셨다.
원래 ‘세종-소헌 대비-이향-윤서’ 순으로 마련된 최고 귀빈석의 자리 배치를 이향이 ‘소헌 대비-이향-세종-윤서’ 순으로 바꿔 착석하게 했다.
“아바마마께선 분명히 부인에게 하문하실 것이 많으실 거요.”
하고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세종께서 질문을 던지려 하시는 것이다.
마침 무대 위에서는 연화가 사내 의원 복장을 하고 (연화는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혜민국에서 의녀 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왔다) 사롱개를 찾아 북방으로 가는 장면이 공연 중이었다.
윤서는 걱정이 되었다.
세종께서 노골적으로 정치 의도를 내보이고, 또 사내 행세를 통해서라도 목표를 쟁취하는 여인을 내세우는 등 너무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을 지적하시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 대왕은 언제나 범인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선다.
“너의 시대에는 분명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한 공연장이 있겠지?”
세종께서 윤서 쪽으로 몸을 굽히시고 아주 작게 물으셨다.
“그 공연장에서는 소리 울림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장치를 하느냐? 아까 급박한 장면에서 무대 뒤에서 북이 둥둥 울리고 꽹과리가 챙챙 울릴 때, 두 개 악기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못하고 꽹과리 소리만 너무 튀었느니라. 네 시대에서는 서로 울림과 음역대가 다른 악기 음향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후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윤서는 팽팽 머리를 굴렸다.
“예, 전하. 악기 연주만 특화된 음악당이란 시설물이 있습니다. 구조는 여기 관객석처럼 관람객 석은 층층이 구성되고, 대개 나무로 전체 공간을 대어 소리의 울림을 흡수하고 조절하는 듯하였습니다.”
윤서는 예술의 전당부터 세종 문화 회관,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대학로 쪽에 새로 생겼던 작은 음악당, 잠실에 새로 생긴 큰 음악당, 뉴욕에서 가보았던 필 하모닉 연주회장,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학회에 갔다가 들렀던 음악당 등, 살면서 가보았던 모든 음악회를 떠올렸다.
“한 번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음악당에 지인의 연주회가 있어서 갔었는데요. 나무로 전체 판을 대었는데도 소리가 너무 쨍하게 울려대서 듣고 있기가 아주 괴로운 곳도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아주 빼어난 조율사는 수십 명의 악기 연주자 중에서 특정인 한 사람에게 작은 판을 딛고 서게 해서 전체 소리를 조율했다고 합니다.”
“그럴 것 같다. 네가 말한 그 진동이라는 거 말이다. 진동이 서로 다른 악기라면 높낮이를 조절해서, 소리의 파동을 상쇄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터이니.”
괴물이시다, 정말.
윤서는 시대를 아득히 넘어서시는 천재께 진심으로 사과를 올렸다.
“더 열심히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지 않아서 송구합니다, 전하. 그저 가끔 연주회에 가서 ‘소리가 너무 울린다, 천정이 너무 높아서인가 소리가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느낌이다, 음, 여긴 작아도 참 포근하게 악기 소리가 잘 어우러진다.’ 정도로 대충 들었던 과거의 제가 참으로 유감이옵니다, 전하. 그래도,”
과거에 게을렀던 자신의 과오를 벌충하기 위해 윤서는 서둘러 안평 대군을 끌어왔다.
“안평 대군 자가의 귀가 아주 정확한 듯하고, 우리 희아 공주의 귀도 상당히 예리하니 음악 연주회 전용 건물을 지을 때 여러 소리가 잘 어울어지는 구조를 잘 잡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세종은 윤서를 빤히 보셨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신단 뜻이었다.
‘아아, 이미 공부 안 하고 여기 와 버렸는데, 그리 보셔도, 전하. 소용이 없사옵니다!’
속으로 절규하던 윤서는 “아!!!” 역사 지식 하나를 불현듯 떠올렸다.
“아, 전하께서는 박연이 만든 편경의 알 하나가 깨져 미세하게 소리가 어그러진 것까지 알아내실 정도로 절대 음감을 지니셨으니, 전하께서 총괄하시면 되겠습니다!”
그제야 세종은 흡족하신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그래야겠구나. 연극당도 음악당도 모두 소리 울림이 조화롭게 지어져야 할 터이니, 소리 파동을 실험하며 맞춰봐야 할 것이다.”
“예, 전하. 소리 흡수를 잘 해야 하니, 나무 재질도 중요할 것입니다.”
윤서가 비로소 안도하며 말을 할 때.
이향 옆에 앉아 계시던 소헌 대비께서 한마디 하셨다.
“아이, 좀 조용히 하세요. 상왕 전하께서야 워낙 못 이룬 사랑이 없으시니 연극에 관심이 안 가시겠지만, 신첩은 아니 그러합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