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도원군과 부부인 윤씨 (3)
‘정말로 한도산이 아니라 다른 소녀를 마음에 두었다고!’
이 혼사가 마음에 드느냐 물었을 때 대답을 얼버무리던 도원군의 어두운 표정이 떠올랐다.
훗날의 인수대비였던 한도산을 도원군의 짝으로 용인한 것은 정치적 필요와 더불어 원 역사에 도원군과 인수대비가 꽤 금슬이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도원군은 그 도원군이 아니지.’
정치적 야심이 컸던 친모 윤씨가 굳건하게 곁을 지키고, 수양 대군이 지극히 사랑하는 장자였으니 고귀하게만 살아온 도원군에게 도도하고 어여쁘고 야심 많은 명문가 소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처소의 궁인들조차 계모의 간자일 정도로 사방에 마음 둘 이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라면.’
포근하게 감싸줄 이를 찾게 된다.
본능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어머니처럼 애정으로 자신을 보듬어 주고 아껴줄 것 같은 여인을.
그런 소녀가 도원군의 주변에 있었던가.
정치적인 안배만 기준으로 둔다면 원래대로 한확의 여식을 도원군의 짝으로 맺어주는 것이 제일 낫다.
한양에 머무르게 될 도원군과 한확과, 여송과 호주를 개척할 수양 대군과 한명회와 대립 구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서는 저승길을 앞에 두고 자신을 보길 청했던 윤씨와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제 손으로 금아를 해치고, 또 종조카 홍 승휘의 불임을 획책했으면서도 저승길 앞에 선 윤씨는 엎드려 애원했었다.
“배 아파 아이를 낳았으니, 어미 된 내 심정을, 아시지 않소? 눈 감고 죽을 수 있게 한 마디만, 한마디만 해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그 도도하던 자존심도 다 버리고 더럽고 차가운 감옥의 바닥에 이마를 대고 도원군을 지켜달라 애원하던 윤씨에게 윤서는 약속했었다.
“···그대의 부군이 역모를 일으키지 않는 한, 우리 홍위를 해하려 하지 않는 한, 그 아이는 천수를 누릴 것이오. 그러니 속죄하며 먼 길, 잘 가시게.”
망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대비마마, 도원군의 혼사에 관련한 일을 중전인 제가 처결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윤서는 뒤로 물러서 계시다고는 하나 여전히 내명부의 최고 수장인 소헌 대비께 먼저 허락을 구하였다.
“그리하시오, 중전. 도원군이 한강에 빠져 숨이 멈췄을 때 숨결을 불어 넣어 살려낸 이가 중전이니, 중전은 도원군의 안위든, 혼사든 그 일신에 관해 대모 자격으로 주관할 자격이 충분하오!”
도원군의 안위뿐 아니라 다른 왕족 아이들의 안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를 단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중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해온 소헌 대비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윤서는 엎드려 발발 떨고 있는 윤씨에게 물었다.
“연서를 썼다가 찢은 종이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가?”
“예, 중전마마. 당장, 당장 가져와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여봐라, 구 상궁!”
윤씨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문이 활짝 열리고 명례궁에서 윤씨를 모시고 있는 구 상궁이 허리를 깊게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침전 병풍 뒤에 보면 반닫이 장이 있어. 그 안에 은제 사각함이 있는데 그 안에 보면 빨간 비단 주머니가 있어. 발 빠른 말을 타고 가 당장 그걸,”
“멈추세요, 부부인.”
윤서는 필시 기밀 문서를 많이 숨겨두었을 장소를 줄줄 읊는 윤씨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주, 중전마마!” 당황해서 부르는 윤씨를 무시하고 밖을 향해 외쳤다.
“조 상궁, 게 있는가.”
“예, 중전마마. 소아 아기씨는 유모가 와서 협경당으로 모셨습니다.”
“들어오라.”
조 상궁이 들어와 어서 명을 내리기만 하시라는 자세로 읍하고 섰다.
“내사옥 관원을 이끌고 명례궁으로 가게.”
“주, 중전마마! 안 됩니다! 그 반닫이 장 안에는 저, 저의 개인적인 서신도! 대비마마, 아무리 중전마마시라도 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명례궁으로 가 도원군의 처소에서 수발드는 궁인과 허드렛일 하는 노비까지 싹 다 잡아다 내사옥에 구금하라.”
“주, 중전마마!”
“죄목은 무엇이라 고지할까요?”
“윗전을 제대로 보필하지 않은 죄. 윗전의 내밀한 일을 함부로 밖에 누설한 죄. 그리고 윗전의 서신을 밖으로 빼돌린 죄!”
“예, 중전마마. 지엄하신 명 받자와 감히 그 더러운 짓을 한 자들을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중전마마!”
윤씨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조 상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깊게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 후 단호한 자세로 교태전을 나갔다.
“중전마마!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이러시는 것은,”
“하나는, 하셨어야지요, 부부인.”
“무, 무엇을 말입니까?”
“도원군이 힘 있는 가문의 소녀와 맺어지는 것이 그리 싫었으면 최소한 좋아하는 이와는 맺어지게 힘쓰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곧 혼인할 장성한 의붓자식에게 사람을 붙여 일일이 감시하며 연서까지 훔쳐내 보관할 정성은 있었으면서!”
“그, 그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한가의 여식을 반대한 것입니다!”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부부인. 정말로 도원군을 위할 마음이었으면 처음에 다른 이가 있다고 말을 했겠지요.”
정곡을 찔린 윤씨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물러서면 형신이 혹독하기로 이름 높은 내사옥에서 자신이 심어둔 자들이 어디까지 자백할지 모른다.
중전이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손을 쓸 수 없었다.
윤씨가 택한 방법은 그래서 내막을 알지 못하면 알아차리기 힘든 종류였다.
옷 시중과 소세 시중을 드는 최측근 궁인을 자신의 심복으로 교체하여 도원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게 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 다음에는 도원군의 전각에 있는 기존 궁인을 적당한 구실을 대어 하나씩 쳐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풋풋하게 아름다운 아이,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와 가슴이 크고 농염한 여인, 그리고 낭창하게 예쁜 사내아이까지, 도원군을 방탕한 색욕에 빠지도록 유혹할 수 있는 갖은 종류의 인간들로 채워나갔다.
자가께선 여색을 탐하는 자들을 경멸하시니 방탕한 아들이라면 학을 떼실 것이라 계산하여 취한 조처였다.
이따금 오래된 고기에 자가께서 보내온 후추, 정향, 육두구, 강황 등 향신료를 듬뿍 넣어서 “아버지께서 너를 위해 보내오신 것이다. 먹고 힘내서 열심히 학문을 닦거라.” 하며 내주기도 했다.
‘상한 고기를 내어줄 땐 다른 고기에 같은 향신료를 써서 요리해 올리게 하였으니, 숙수 범일이 외엔 알지 못해. 범일은 친정에서 데려온 자로 도원군 거처의 노비가 아니니. 요리에 손을 쓴 것은 밝혀내지 못한다.’
독을 쓰지 않았고, 도원군을 유혹해 타락시키라고 직접 명을 내린 적도 없으니 결정적 물증은 밝혀낼 수 없다!
서신 훔쳐내 보고한 것이야 어지간한 세도가에서도 늘 있는 일이니 곤장 몇 대로 끝날 일이다. 노비 엉덩이 터져나가 반신불수 되는 것이야 제 팔자가 사나워서 그러한 것을.
내 비록 누군지 밝혀내진 못했지만 중전마마 측에서도 우리 명례궁에 몇 사람 심어두고 동향을 살핀다는 것을 내 안다.
‘자가께선 여전히 나를 아끼시고, 또 무엇보다 곧 오셨다가 이제 영구히 여송으로 떠나야 하시니,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고 해도 그간 이주를 준비해온 공을 봐서라도 내치진 못한다.’
여기까지 계산을 마친 윤씨는 엎드려 흐느끼며 마지막으로 변명하였다.
“송구하옵니다, 대비마마, 중전마마. 저는 그저, 저를 어미로 대접하지 않는 도원군이 답답해서 속마음을 알아보려고 서신을 훔쳐보았습니다.”
“끝까지 도원군 탓으로 돌리다니. 못돼 처먹은 썅년이네, 진짜!”
“!”
“!”
중전의 입에서 튀어나온 거친 쌍욕에 당사자 윤씨는 물론 정의 공주까지 놀란 눈으로 윤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헌 대비는 속이 뻥 뚫리듯 통쾌하였다.
자신도 아까부터 저 ‘못돼 처먹은 썅년’에게 무어라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아는 욕이 없어서 참고만 있던 차였다.
“중전의 표현이 옳다. 어미 노릇도 하지 않으면서 어미 대접만 바라고, 끝까지 자신의 간악함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가여운 현동이만 탓하다니. 너는 도 읽어보지 아니한 것이냐?”
준엄하게 호통을 친 소헌 대비께서 대비전의 최고 상궁 최 상궁을 불러들였다.
“최 상궁! 대비전의 궁인 중 착실하고 차분한 이들로만 골라 도원군과 예분 향주의 거처에 보내 둘을 제대로 보필하게 하라.”
“예, 대비마마. 신속히 조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명례궁의 부부인을 궁으로 모신 후, 별도 명이 있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거처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라.”
“예, 대비마마,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부부인, 가시지요.”
“대비마마! 소첩이, 소첩이 잘못하였습니다.”
“이제 알았느냐? 가서 통렬히 반성하거라, 이, 이! 아이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부디 우리 왕실을 굽어살피소서.”
‘못돼 쳐먹은 썅년!’이란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중전처럼 찰지게 말씀하실 자신이 없어 소헌 대비는 마지막 말은 꿀꺽 삼키고 대신 부처님께 왕실의 안위를 빌었다.
“또 이혼을 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윤씨가 끌려 나간 후.
허탈한 속을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은 달달한 커피로 마음을 달래는 소헌 대비께 정의 공주가 조심스럽게 고하였다.
“도원군과 예분 향주는 한양에 남고 은동이 어미와 은동이만 유와 함께 여송으로 옮겨가게 하면 됩니다. 유는 은동이 어미를 제법 아끼는 듯하니, 또 내쳤다가는 원망을 품을 것입니다, 어마마마. 사내들은 결국 자식보단 안사람을 택하지 않습니까?”
수양 대군을 잘 아는 정의 공주의 말에 소헌 대비는 침울한 안색으로 윤서를 바라보셨다. 중전의 의견은 어떠냐는 물음이셨다.
“궁인을 조사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비마마.”
독살을 시도하거나 목숨을 해하려 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다면 윤씨 곁에 붙여둔 자들이 이미 알아내 보고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윤씨가 궁인을 시켜 행한 술수의 수위가 크게 처벌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극악한 수단을 썼다는 사실이 나오면 수양 대군과 완전히 척을 지는 한이 있어도 윤씨를 그냥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사악한 짓을 저지르는 분위기는 전염병과 같습니다, 대비마마. 부부인이 흉악한 짓을 저질렀는데도 대군 자가를 보아 여송으로 보내는 정도로 넘어가면, 의붓자식을 둔 다른 왕실 여인이나 세도가 부인들도 암암리에 ‘대비마마께서 이 정도는 용인하시는구나.’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손대는 것들은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대비마마.”
“그래. 중전 말이 옳소.”
고개를 끄덕이신 대비께선 이내 한숨을 쉬며 한탄하셨다.
“하아, 유는 어째서 그렇게 내자 복이 없는 것이냐. 정말로 명례궁에 큰 굿이라도 하든지 해야지, 원. 어째서 하나같이!”
“······.”
윤서는 씁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어디 윤씨만의 책임인가.
수양 대군이 내 자식이고 남의 자식이고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누누이 못을 박았더라면 죽은 윤씨도 산 윤씨도 저리 악독하게 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과 소헌 대비 치하에서 세종의 아들들이 하나도 미심쩍게 죽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소헌 대비는 아들만큼은 한사코 믿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시고, 그래서 그 탓을 결국 며느리로 돌릴 수밖에 없는 시어머니셨다.
아들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아들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살아갈 기력을 놓아버릴 한 많은 여인의 삶에 연민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윤서에게 대비께서 물으셨다.
“도원군의 혼사는 어찌 한다니?”
“일단 한양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을 보았으니, 혼사는 차차 논하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중전께선 현동이가 마음에 둔 이가 짐작이 가십니까? 현동이가 중전을 무척 따르던데.”
정의 공주가 물었다.
“글쎄요.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누가 되었든 저는 도원군의 선택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래요? 어쩌면 나는 알 것도 같은데.”
정의 공주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누구냐? 어느 가문의 소저냐? 어미 잃은 우리 가여운 현동이가 마음에 둔 소저가 누구야?”
“현동이가 요새 여달이더러 부쩍 영양위 궁에 놀러 가자는 말을 많이 하였다지요. 현동이와 영양위가 고작 한 살 터울이라 친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영양위 누이, 정연화!”
하, 이번 역사에서 인연은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을 엮으며 흘러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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