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정종의 누이와 홍위의 왕비
윤서가 세종과 희아에게 가르친 수학에서 미지수는 현대에서 쓰던 대로 알파벳 x, y, z를 사용했다.
x, y, z와 함수도 f(x)를 사용해 표기하였는데, 세종께서 이를 다 한글 자음으로 대체하셨다.
미지수 x, y, z는 미음(ㅁ), 비읍(ㅂ), 시옷(ㅅ)으로, 함수의 f는 히읗(ㅎ)으로 표기하도록 정리하셨다.
수학에 쓰이는 기호란 결국 약속 기호이고, 유럽에서도 아직 기호가 제대로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니 우리는 우리 문자로 정해 쓰면 된다는 뜻이셨다.
그래서 이날 수업에서 일차 비례식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3:7=6:ㅁ]여기서 ‘ㅁ’을 구해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수월하게 구하고 이어 내준 두 자리수 비례식 [12:33=36:ㅁ] 등을 풀고 있었다.
금아는 개수는 이해하나 그것을 기호로 표기하고 비례식으로 늘어나는 비율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처에 돌아와서 늘상 연습하는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요. 하지만 뭐, 우리 금아 아기씨는 시를 잘 지으니까.”
학당 교실 뒤에서 윤서와 문 숙의, 정 소용 등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있던 유 소용은 수 개념이 약한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그저 금아가 수업 시간에 당황하지 않고 그래도 해보려고 저리 꼼지락거리는 것이 얼마나 기특하냐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양딸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태평할 일입니까? 옹주 재산 규모가 얼마인데.”
정작 문 숙의는 종조카인 금아가 뒤처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눈물까지 고인 눈으로 유 소용을 타박했다.
“이제 노비도 노비가 아니게 되어서 월봉 주고 잘 관리해야 하고. 재산 관리를 잘해야 짓고 싶은 시도 마음껏 짓고, 예쁜 옷도 마음껏 사 입고, 응, 부마한테도 무시 안 당하고.”
“누가 감히 우리 아기씨를 무시해요? 중전마마, 그런 개자식은 죽여주실 거죠?”
“쉿, 소저들 힐끔거리는 거, 안 보이시는가?”
윤서의 꾸중을 듣고서야 유 소용과 문 숙의는 입을 꾹 다물고 정연화가 사락사락 비단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며 금아에게 다가서는 것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둘 다 ‘우리 금아 무시하면 단매에 죽을 것이다’란 무시무시한 눈빛이었다.
중전과 내명부 후궁 여럿이 모두 몰려와 뒤에 앉아 참관하는데도 시종일관 차분하게 비례식의 개념을 설명했던 정연화는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두 여인의 눈빛에도 당황한 기색 없이 금아의 책상 옆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금아의 눈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옹주님, 손가락이 모자라시면 제가 만들어 드린 거 꺼내어 셈 하셔도 괜찮아요.”
“아! 그래도, 돼?”
“그럼요. 개념만 아시면, 계산이야 무얼 이용해도 괜찮아요.”
그러자 금아가 책상 서랍에서 주섬주섬 가죽집을 꺼냈다.
“저거, 산학 선생님이 우리 아기씨한테 만들어 주신 거. 겉에 고양이와 강아지 수가 귀여운데 안에 주머니가 세 개에요. 일의 자리, 십의 자리, 백의 자리 수의 막대기가 길이가 다르게 들어 있어서 우리 아기씨가 참 도움을 많이 받아.”
“선생이 특정 학생한테만 무얼 만들어 주는 거, 특혜 아닌가.”
정 소용이 나직하게 말하자 유 소용과 문 숙의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노려보았다.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위해 선생이 노력하는 것이 어째서 특혜입니까? 이렇게 몰인정하니 양 소용한테 학당 책임자 자리 빼앗기지.”
“쉿! 한 마디만 더하시면 다 교실 밖으로 내쫓길 줄 알아요!”
학당 수업 책임자인 정의 공주가 눈을 무섭게 뜨고서야 유 소용도, 옆에서 같이 정 소용을 욕하던 문 숙의도 입을 꾹 다물었다.
학당 경영에 절대 간섭을 안 하시던 중전께서 다른 후궁까지 모두 이끌고 참관을 하러 오신다는 소식에 지난 이틀간 초긴장 상태에 있었던 양 소용은 유 소용의 말을 일종의 칭찬으로 해석하였다.
비로소 긴장을 푼 양 소용이 짙은 적색의 화려한 비단 장삼을 입은 어깨를 쭉 펴며,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모아놓으니 후궁들도 교실에서 선생 눈 피해 수다 떠는 여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어.’
자꾸 터지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윤서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이들도 실은 이렇게 또래끼리 모여 앉아서 함께 배우는 수업 경험에 목말라 있던 것이다.
배움과 또래와의 소통, 우정에 대한 욕구는 현대인이든 중세인이든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학당에서의 배움의 기회가 백성 모두에게 고루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였다.
‘이 세계에 와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리 홍위가 무사히 보위에 올라 세종처럼 성군의 치세를 펼치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머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중전으로 해야 할 일은 노비 세습제를 폐지하게 하는 것과 더불어 모든 백성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초 교육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리라.’
금아와 정연화, 그리고 송가의 여식을 보러 온 덕분에 이렇게 중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윤서는 금아 옆 열에서 한참 계산에 몰두해 있는 송가의 여식을 바라보았다.
치장도 행동도 야단스러운 고모 대방부부인 송씨와 달리 송가의 여식은 땋아 내린 머리에 작은 들꽃같이 조각한 백옥와 청옥, 홍옥 장식을 달았을 뿐 전체적으로 수수한 인상이었다.
물론 저 들꽃 장식은 겉으로만 수수해 보일 뿐, 얇은 은사로 고가의 보석을 꽃 모양으로 촘촘하게 엮어낸 것으로 은자 열 냥, 쌀로 따지면 다섯 섬이나 되는 고가의 장신구였다.
예서 상단의 장신구 점에서 파는 물품 중에 상당히 고가에 속하는 것인데, 송가 여식의 안목이 제법 높다고 윤서는 일차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오산군과 도원군을 비롯해 여러 대군과 군의 아들들이 막 혼인 적령기에 들어선 것을 의식해서인지 왕실 학당에 오는 소녀들은 한껏 치장한 차림이었다.
옷도 은실과 금실, 곱게 염색한 실 등을 섞어서 짠 최상급 비단에 안감은 토끼 털이나 흰 여우 털, 담비 털을 대어 만든 배자를 갖춰 입었고, 걸치고 있는 장신구도 다양하게 화려했다.
남방에서 들여온 화려하고 복잡한 금, 은, 산호 등의 보석 장신구를 머리에 화관처럼 장식한 소녀도 있었고, 명나라의 비취나 진주, 산호 등의 머리꽂이 장식을 귀 위쪽으로 꽂고 있는 소녀도 많았다.
또 양 소용이 낸 댕기 전문점에서 꽃과 나뭇잎, 덩굴손 등 복잡한 문양을 수 놓은 비단 끈을 드려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거의 다 왕족이거나, 왕실과 인척 관계이거나, 세도가의 여식이니.’
이 아이들이 홍위 시대에 폭넓은 지식을 갖춘 상류층 여인들이 될 것이다.
윤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차세대 꿈나무 소녀들의 뒷모습을 살필 때.
“닭을 수놓은 주머니 속 짧은 막대가 손가락하고 같은 일의 자리 숫자를 나타내고요. 여기 고양이가 그려진 주머니 막대가 십의 자리예요. 그리고 여기 송아지가 그려진 주머니 속 막대는 백의 자리에요. 비례식은 몇 배인지 알아내는 거에요. 자, 일의 자리수 막대기를 세 개와 일곱 개 무더기로 나눠 놓아보세요.”
정연화의 말에 따라 금아가 가장 짧은 막대기를 각각 세 개와 일곱 개 무리로 나눠놓았다.
“이것이 옹주 아기씨와 옆자리 송가 아기씨가 서로 나눠 가진, 음,”
“자두! 난, 자두가 좋아!”
“좋아요, 자두 개수에요. 아기씨가 일곱 개 가지고 있고,”
“안니야. 선(善)이가 일곱 개, 내가 세 개.”
송선이 송가 여식의 이름이었다.
금아가 자두 일곱 개를 자신의 몫으로 돌리자,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던 송선이 금아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좋아요. 옹주 아기씨가 세 개, 그리고 선이 일곱 개. 그런데 자두가 또 생긴 거예요.”
“자두 말고, ···금귤! 저번에 아바마마께서 소매 속에서 꺼내주셨는데, 와아, 졸려서 감기던 눈이 번쩍 떠지게 맛있었어. 아, 침이 퐁퐁 솟는다.”
금아의 이 말에 유 소용과 문 숙의가 슬쩍 윤서의 눈치를 살폈다.
윤서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발달이 느린 딸에게 먹이고 싶어서 연회 상에서 금귤 하나 집어 소매 속에 넣었다가 가져다준 이향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공납이 폐지된 후 마포 가이내 상단 등 몇몇 상인들로부터 궐의 필요 용품을 사들이는데, 작년에는 제주에 태풍이 많아 귤 나무의 낙과가 많았다는 소릴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게다가 명나라 원군 파병에 후방에서 군량미 지원하는 일에 윤서도 내수사도, 사옹원 관원도 모두 전념에 있어 왕실에 들여놓아야 할 지역 특산물 챙기는 것에 소홀했다.
“사옹원에 금귤 있나 알아봐서, 있으면 영화당으로 보내주겠네. 없으면 마포 상단에 명해서 제주에서 사 오게 하고.”
“아잉, 중전마마. 제가 중전마마 사랑하는 거 아시죠?”
“어허, 참.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니까, 유 소용! 누구처럼 쫓겨나고 싶어요?”
“하아, 어떻게 학생들보다 더 떠들죠?”
문 숙의가 질색을 하고, 양 소용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그럼 금귤이 또 한 무더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아기씨는 금귤을 여섯 개 가졌고, 또 자두와 같은 비율로 선이에게 금귤을 나눠주고 싶어요. 그럼 선이에게 몇 개 주어야 할까요?”
“다 줘. 난 또 아바마마께 달라고 하면 되니까.”
“아니, 그러지 말고, 비율에 맞춰서.”
“그럴 필요 없다구. 난 선이가, 좋아!”
“······.”
“······.”
“······.”
역시 금아에게 비례식은 아직 무리인가 보다.
정연화가 살풋 웃으면서 무릎을 펴는데, 옆자리 송선이 책상을 금아 옆으로 붙였다.
“선생님, 옹주님이랑 제가 함께 계산할게요. 다른 학생들 도움 주세요.”
“그래, 선이가 그럼 우리 옹주님하고 어떻게 금귤을 나눠야 하는지 잘 따져보렴.”
“선이야, 다 가지라니까. 엄청나게 맛있어. 아아, 또 먹고 싶다.”
유 소용이 어깨가 떨리도록 웃음을 참으며 속삭였다.
“하긴, 옹주가 계산이 뭐 필요해. 전하께나 늘 봄날의 햇살 같다고 칭송하는 세자 오라버니께 말씀드리면 뭐든 다 주실걸. 우리 금아 아기씨, 똑똑하기도 하지.”
“아니, 양어머니가 이러면 어떻게 해요. 하, 진짜, 우리 망아(忘我) 스님 사리 쌓이겠네!”
혼돈의 수업 참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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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례궁에서 도원군 자가의 거처에 전속된 궁인과 노비의 수가 모두 서른두 명이었습니다. 도원군께서 찢은 종이까지 모아다 부부인께 바친 이는 어산개란 여인으로 돌아가신 부부인께서 혼인할 때 데려온 종이었다고 합니다.”
도원군 거처의 노비들을 잡아들여 문초한 지 이틀 후.
조 상궁이 소헌 대비와 윤서 앞에서 조사한 바를 보고하였다.
어산개는 도원군의 잠자리, 소세, 목욕 수발을 드는 사십 초반의 노비로, 그 푸근한 인상과 달리 새어머니 윤씨에 회유되어 일거수일투족을 다 일러바치고 태우라고 명한 종이 조각까지 싹 다 모아다 윤씨에게 바쳤다고 한다.
“도원군의 거처에 궁인 수가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침전으로 쓰이는 전각, 공부하는 전각, 옷가지와 각종 취미 물품을 두는 전각, 간단히 식사 마련할 수 있는 부엌, 작은 정자 등을 관리한다고 해도 열 명이면 족할 것을, 어째서?”
“예, 중전마마. 소인도 그것이 이상해 살폈더니, 미인계였습니다.”
“미, 미인계라니? 우리 현동이 이제 고작 열세 살인데!”
소헌 대비께서 놀라 부르짖으셨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대비마마. 소인이 조사하니 원래 거처에서 일하는 노비는 수수한데 부부인께서 재작년부터 새로 들인 노비 중에 의복 시중, 글 쓰실 때 곁에서 먹 가는 일을 하는 노비 둘은 여염에서 보기 힘든 탁월한 미모를 지녔고, 신발 신겨드리고 말고삐 잡는 남종, 마당에서 비질하는 남종도 민망하게 수려하였습니다. 다양하게 수려한 미인 열다섯 정도가 꽃밭 가꾸기, 연못에 붕어와 잉어 먹이주기 등 아이들 장난 같은 업무를 맡아 도원군 자가께옵서 오가실 때 어여쁘게 차리고 얼쩡거리도록 어산개에게 지침을 받았다고 하옵니다.”
어산개가 도원군은 어릴 적부터 예쁘지 않은 것을 보시면 심하게 우시는 분이라는 구실을 둘러대었다 하였다.
다행히 도원군은 갑자기 늘어나는 미인들을 경계하며 친모의 측근이었던 어산개만 믿고 가까이 하였다고 하였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그 외 또 지나친 점이 있었는가?”
“부부인께서 후추나 육두구, 정향 등이 듬뿍 들어간 요리를 해 도원군을 부르시고는, ‘대군 자가께서 힘들게 개척한 해외 무역에서 오는 것이니라.’ 하시며 도원군으로 잡숫게 하였는데, 도원군 체질에 향신료가 맞지 않아 늘 고통스러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부부인이 자신의 몫은 싹 비우고 도원군을 부친의 은혜도 모르는 자식이라며 더욱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
“······.”
소헌 대비와 윤서는 서로 시선을 맞물렸다.
체질에 맞지 않는 향신료를 지나치게 먹인 것은 잔인한 일이나, 요새 한양과 조선의 상류층에서는 향신료를 듬뿍 넣은 음식으로 부를 과시하는 일이 유행이었다.
거기에 수양 대군의 공까지 거론하며 자신도 함께 향신료를 듬뿍 넣은 음식을 먹었다니, 적어도 명분은 갖춘 셈이었다.
“제 배로 낳은 자식이라면 그리했을까. 하아.”
소헌 대비께서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셨다.
서양에서 향신료 수요가 그토록 많았던 것이 냉장고가 없던 시절 상해가는 육류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이를 알고 있는 윤서는 윤씨가 그저 심술로 향신료를 듬뿍 넣은 음식을 도원군에게 주었을까, 의심이 더럭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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