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수양 대군의 탄식 (1)
“조 상궁. 그 향신료 범벅 요리, 모두 한 솥에서, 같은 고기로 요리한 것이라던가?”
“!”
윤서의 질문이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기민하게 알아챈 조 상궁은 두꺼운 심문 기록을 다시 꼼꼼하게 검토한 후 고하였다.
“그 부분에서는 모두 증언이 일치합니다, 중전마마. 부부인께서는 종종 도원군이 남긴 몫까지 싹싹 드시고 ‘나는 이렇게 입이 탈 듯이 얼얼해도 우리 자가 생각해서 남기질 않는데, 너는 어째서 그리 까탈스럽게 구는 것이냐. 이 모두 다 네 효심이 부족해서이다!’ 하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
윤씨는 생각보다 치밀했다.
종종이 매번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두 번 향신료에 범벅이 된 상한 고기를 먹고 탈이 났다면 ‘음식의 조건화’에 따라 조금 상한 고기나 향신료가 소량 들어간 음식만 먹어도 심하게 탈이 나도록 몸이 변한다.
윤서가 생굴 먹고 한 번 탈이 났다가 그 이후 생굴 한두 개만 먹어도 여지없이 복통과 설사로 밤새 고생하는 몸이 되었던 것처럼.
현대에서도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학대는 외부에서 밝혀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윤서는 청소년 쉼터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무기력한 눈망울을 아프게 떠올렸다.
“대비마마, 도원군과 예분 향주의 거처에 제가 의원과 숙수를 보내 따로 음식을 보살피고 치료도 병행하게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잘 치료해야 소량의 향신료나 상한 듯한 고기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체질로 굳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아이고! 윤서야!”
윤서의 말속에서 뒤늦게야 사정을 유추하신 소헌 대비께서 왈칵 울음을 터트리시며 윤서의 손을 꽉 잡으셨다.
“어찌 그리 모질꼬. 어찌 그리 모질어.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리 흉악할꼬.”
흐느끼시는 대비의 앙상한 어깨를 안아 위로하며, 윤서는 조 상궁에게 이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
조 상궁이 물러난 후에도 한참을 눈물만 흘리신 대비께서 이윽고 뭔가를 결심하신 듯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원래는 유가 돌아온 후 현동이 혼사를 확정 지으려고 하였는데, 안 되겠다. 현동이를 당장 혼인시켜서 따로 궁가를 내주어야겠어. 예분이도 그리로 보내고.”
“···정 소저와 말씀입니까?”
“그래. 그 애가 고모를 닮아 인품이 훌륭하니 도원군을 잘 섬길 것이다. 한가 여식은 도도하고 야심이 많아. 권력에 탐욕스러운 것들, 아주 지긋지긋하다.”
전날 정연화는 수업 참관 후 따로 대면한 자리에서 도원군에 대해 묻자 얼굴을 붉히면서도 당당하게 제 의견을 밝혔었다.
“아직 어리시긴 하지만 저를 아껴주시는 마음이 애틋하시니, 저도 도원군 자가를 은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전마마.”
아직 자신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세 살이나 어린지라 사내로 보이지는 않지만 혼인 상대로 사랑하게 될 만한 이라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윤서도 정 소저에게 부탁했었다.
“정 붙여 의지할 이가 절실하니, 따뜻하게 보듬고 많이 많이 사랑해주길 바란다.”
윤서와 소헌 대비는 관상감에서 길일을 잡는 대로 도원군과 정연화의 혼사를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도원군이 살림을 낼 궁가는 일단 도성 내에 번듯한 집을 사들이고, 가을에 수양 대군이 기반을 완전히 여송으로 옮기면 명례궁을 도원군에게 주도록 조율하기로 하였다.
“부부인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찌하면, 좋겠느냐?”
“고의로 상한 음식을 먹게 하였을 거란 증거를 지금 밝히긴 어렵습니다만, 심증은 뚜렷합니다. 또한 도원군을 성적으로 문란하게 타락시키려 한 정황도 확실하니, 유폐 정도로 끝낼 수 없습니다.”
“그래, 유폐만으로 끝낼 수 없지. 마음 같아서는.”
마음 같아서는 폐서인하여 내치고 싶으실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신중해야 했다.
오래 전 일이긴 하나 이향도 이미 두 번이나 빈을 내쳤는데, 둘째 대군 수양마저 두 부인 다 내쳐 죽게 만들면 아무리 지엄한 왕실이라고 해도 위신이 서질 않는다.
소헌 대비의 고민도, 또 이를 전해 들으신 세종과 이향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왕실 입장이 이해가 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자꾸 ‘제가(齊家)’가 되지 않는 왕실이 어찌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중전으로서 윤서는 겉보기에 무리가 없으면서 윤씨에게 확실한 응징이 되고, 또 일의 내막을 아는 이들에게 경고가 될 방책을 고하였다.
“대비마마, 지난번 일은 왕통과 관련된 중차대한 범죄였기에 죽음으로 죄를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대군 자가의 집안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집안일이지. 현동이는 세자가 아니니.”
도원군은 세자가 아니다.
“그러니 대군 자가께서 돌아오시면 향신료에 관련된 일, 미인계에 관련된 일을 가감 없이 알려 대군께서 직접 부부인의 처분을 정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윤씨는 수양 대군을 지극히 연모하니, 의붓아들을 해하려 한 추악한 속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것이 가장 큰 형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수양 대군에게도 지독한 형벌이 되겠지. 아끼는 아들을 동지라고 믿고 있는 부인이 해치려 하였으니.’
역사에서 저지른 죄의 업보를 받는 것이다.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유가 여송에 갈 때 데려가지 않으면 그만이야.”
공식적으로는 몸이 약해 험한 바닷길을 견딜 수 없다든가 등의 적당한 구실을 내세워 사가에서 정양해야 한다고 친정으로 돌려보낸 후 잊혀지게 내버려 두면 된다.
내막을 아는 왕실의 족친들이야 죄로 인해 버림받은 줄을 뻔히 알게 될 것이고.
소헌 대비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과연, 수양 대군이 윤가를 버릴까.’
죽은 윤씨도 지금 윤씨도 ‘영혼의 동반자’라고 할 정도로 수양 대군의 내면과 닮아 있다.
수양 대군이 여전히 그 불온한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이미 몸과 마음을 섞어 아들까지 만든 든든한 지원자이자 영혼의 반려를 쉽게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첫 부인을 잃어봤으니, 자신을 진실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이를 잃는 그 상실감과 절망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양 대군은 장자를 위태롭게 만든 윤씨를 혐오하면서도 끝끝내 놓지 못하고 결국 은동이와 함께 데리고 가겠지.
그래서 윤서는 평소라면 내놓지 않을 안까지 넌지시 내놓았다.
“대비마마, 자가께서 낯선 이국에서 홀로 외롭고 적적할 것이라고 늘 근심하셨지 않습니까? 여송 체류가 이리 길어질 것을 알았더라면 미리 곁에서 수발들 측실을 들여 딸려 보낼 것을, 하고 안타까워하셨지요.”
“으응?!”
역사에서 박팽년의 딸로 잘못 알려진 세조의 후궁이 이번 역사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수양 대군이 해외를 떠돌고 있어 만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수양 대군에게는 첩이 하나도 없고, 이런 사정으로 소헌 대비께선 혈기 왕성한 젊은 아들이 먼 이국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부부인이 사들인 여인들이 참하고 어여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첩’의 존재를 부정하는 윤서이지만,
사특한 수를 쓴 윤가는 제가 낸 꾀에 제가 넘어가야 마땅하다.
소헌 대비는 윤서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리셨다.
“그래!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당장 방면하고 노비 신분에서 속량시켜 유의 측실로 들이면 되겠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신 소헌 대비께서 윤서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그 눈빛이 하도 의미심장하신지라, 윤서는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대, 대비마마? 왜 그런 눈으로 보시옵니까?”
“윤서 네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껴서, 참으로 다행이다.”
“···아!”
대부분의 아이들은 죄가 없다.
어른들이 만든 상황에서 그에 맞게 커나갈 뿐.
“네가 없었다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아이가 어디 한둘이냐. 현동이마저도 결국 네게 의지하게 되었지 않니. 그러니, 윤서야.”
“···예, 대비마마.”
“앞으로도 지금 이 마음 잃지 말고, 내 손주들 모두, 잘, 부탁한다.”
어쩐지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어서, 눈물이 났다.
*
*
*
도원군과 정연화의 혼례는 수양 대군이 돌아온 후 행해져야 한다는 세종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3월 24일로 정해졌다.
수양 대군은 2월 중순께 돌아온다.
윤서는 유폐된 윤씨를 대신해 도원군의 신혼 궁가를 물색하고 (동별궁 옆으로 기와집 다섯 채를 사서 급하게 수리에 들어갔다),
내수사 소유의 땅 중 적절한 땅을 골라 하사하고 (친모 윤씨가 죽으면서 몰수되었던 땅의 대부분을 도원군에게 물려 주기로 결정하였다. 정연화에게는 남쪽 곡창지 중 한 곳과 염전 등을 하사할 것이다.),
상의원에서 신랑, 신부를 위해 예복을 짓게 하는 등의 일로 분주하였다.
부부인 윤씨는 내궁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엄히 감시를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몸소 고르고 골라 선별한 미인 셋이 장차 수양 대군의 측실이 될 것이란 소식을 듣고 거의 식음을 전폐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공식적으로 명례궁의 부부인 윤씨는 병환이 짙어 거동을 못한다고 하였지만, 왕족과 세도가에는 그 진상이 은밀하게 퍼져나갔다.
상한 고기를 향신료로 감춰 도원군에게 먹이려 하였다는 의혹은 증거가 뚜렷하지 않아 쉬쉬하며 쑥덕거렸지만, 미인계를 써서 도원군을 타락시키려 한 일은 정황상 너무 뚜렷하였다.
그리고 이 일은 자식 가진 부인들의 크나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 대단하셨던 우리 모친 원경 왕후께옵서도 후궁의 자식을 어여쁘게 보호하셨는데. 하, 고작 후처가 되어서 감히 대군의 장자를 미인계로 꼬여 흔들려고 하다니. 측실 셋으로 되겠소? 우리 집에 유난히 비파를 잘 타는 여아가 하나 있는데, 보내주어야겠구먼.”
태종과 원경 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경정 공주는 아예 아들 조대림이 아끼는 악비(樂婢) 하나를 수양 대군에게 보내겠다고 공언하였다.
왕실 여인들이 모두 수양 대군이 과연 악독한 윤씨를 내칠 것인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그의 귀환을 기다릴 때.
한확의 집에서는 근심이 대단하였다.
“수양 대군이 중앙 정치에서 밀려 저 멀리 이방의 땅으로 가게 된지라 도원군과 혼사 맺기를 꺼렸던 것인데, 도원군이 한양에 계속 머물 것이라 하니. 하아, 이런 낭패가 있는가.”
남방과의 무역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장차 명례궁을 물려받을 도원군의 재산은 더욱 불어날 일만 남았다.
게다가 친족인 한명회에게 은밀히 소식을 듣자 하니 여송을 근거지로 천축국과 그 인근 섬에서 여러 향신료와 산호, 마노, 백은 등을 구입해 일본과 명나라 등지에 비싸게 파는 중계 무역까지 시작하였다고 하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원군과의 혼사가 무산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사위 계양군도 귀양을 가 있는데. 하아, 우리 막내를 누구에게 보낸단 말인가.”
“···세자 저하가 계시지 않습니까? 나이가 좀 차이 나기는 하나, 우리 도산이 미모가 워낙 출중하고 또 영민한지라.”
“하아! 돌아가는 물정을 이리 몰라서야!”
부인 홍씨의 말에 한확은 버럭 역정을 냈다.
자신이라고 어여쁜 막내딸을 세자빈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왜 아니 들겠는가.
출중한 왕재를 보이면서 동시에 도량이 넓고 자애롭기로 소문이 자자한 세자인데.
그렇지만 의 여파가 너무 컸다.
명 황실에 있는 누이동생이라도 힘을 써주면 좋겠지만, 지금 명 황실은 포로로 잡혀간 전대 황제 때문에 어수선하기만 하다.
오히려 조선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서 죽은 황제의 후궁 나부랭이가 감히 조선국 국본의 일에 말 한마디 보탤 상황이 아니었다.
희비와 탄식이 교차하는 가운데,
색색의 봄꽃이 겨우내 색을 잃었던 벌판을 다채롭게 물들이기 시작한 2월 중순.
수양 대군이 마포 나루로 귀환하였다.
이번에 귀환하여 여러 일을 조율한 후 가을에 떠나게 되면 몇 년 동안 다시 귀환할 일이 없을 예정인지라, 세종께선 몸소 마중을 나가기로 미리감치 결정을 내리셨다.
마포 나루 인근 공터마다 높은 차일이 내걸리고,
상왕의 행차를 인도해 온 악대가 경쾌하고 발랄한 사박자의 낯선 음률을 연주하는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높게 들이친 밀물을 타고 수양 대군이 탄 커다란 함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가, 너무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용봉 차일 아래 귀빈석에 앉아 계시는 소헌 대비가 윤서에게 속삭이셨다.
여전히 유폐된 처지인지라 이 자리에 마중 나오지도 못한 부인 윤씨의 일도 일이지만,
한확의 여식과 혼인하길 간절히 바랐던 도원군이 고모가 효령 대군의 부인이라는 점과, 남동생이 경혜 공주의 남편이라는 점 외에 별다른 정치 기반이 없는 과부의 딸과 혼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실망스러울 것이란 우려의 말씀이셨다.
‘여러모로 마음이 상하겠지요.’
윤서는 속으로 답하였다.
부인의 일로 연거푸 고난을 당하게 된 데다가, 장자 도원군이 자신을 따라 여송으로 가지 않고 한양에 머물러 있게 되니 세간의 눈에 장자와 계모 사이의 불화가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또 자신이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어 아들을 볼모로 두고 가야 하는 모양새도 연출된다.
과시하길 몹시 좋아하는 그 성품에 얼마나 부아가 치밀까.
역사에서 지은 대죄가 없다면 윤서마저 한가닥 연민을 느낄 처지라고 생각할 때.
드디어 수양 대군이 배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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