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수양 대군의 탄식 (2)
배에서 내린 수양 대군은 전과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가 이내 뿌듯해졌다.
자신이 먼저 배에서 내리고 이계전이 뒤이어 내려설 때였다.
포구 앞에 서 있던 취타대에서 박이 타악 연주의 시작을 알린 후 북이 둥둥 걷기 좋은 박자로 울리고 곧이어 태평소와 대금, 해금, 피리 등이 낯설면서도 경쾌한 운율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저 어마마마께서 부인과 함께 마중나와 계셨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취타대가 모두 나와 음악으로 환영하는 것은 먼 이방의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조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공을 세상이 인정하는 것이다!
“대군 자가, 먼 뱃길에 얼마나 노고가 크셨습니까? 계전, 자네도 잘 돌아왔네.”
수양 대군의 기쁨은 예조 판서 황보인과 예조 관원이 모두 나와 읍하며 예를 갖추었을 때 더욱 커졌다.
자꾸 올라가는 턱과 어깨를 끌어내리며 수양 대군은 공손하게 마주 읍하였다.
“이제 항해는 제법 익숙해져서 노고랄 것도 없습니다. 날도 아직 찬데 이리 마중을 나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분 좋은 환대에 감사 인사의 말을 끝마쳤을 때였다.
“아버님, 무사히 귀환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아버님, 내내 그리웠는데 이렇게 오시니 소녀 얼마나 기쁜지요.”
“아버님, 강넝하셨듭니까?”
청년티가 나도록 훌쩍 큰 장자 현동과, 점점 더 제 어미를 닮아가는 어여쁜 예분과, 아쉽게도 아기 티를 벌써 벗어버린 귀여운 막내아들을 보았을 때 귀환의 보람과 뿌듯함이 정점에 다다랐다.
그런데.
수양 대군은 자식들 어깨 너머를 살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마구 달려와 품에 덥석 뛰어들었어야 할 어린 부인이 보이지 않았다.
“현동아, 네 어머니는,”
“대군 자가,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께서 마중 나오셨습니다. 어서 문후를 여쭈시지요.”
황보인이 말을 자르고 언덕 위 용봉 차일을 위엄 있게 드리운 화려한 천막을 가리켜 보였다.
“부왕께서?!”
그래서 주악대가 나와 있었구나.
자신의 공을 인정해 형님 전하께서 악대를 보낸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왕 전하 행렬을 봉행하는 악대였다.
기대가 어긋나 조금 실망했던 수양 대군은 그러나 이내 다시 즐거운 기분을 되찾았다.
‘아바마마께서 몸소 마중을 오시다니!’
떠나기 전 “온 힘을 다해 금상과 조선을 섬기는 충정의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내려놓는다면 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매정하게 경고하셨던 그 아바마마께서!
수양 대군은 옆에서 기다리던 이계전과 함께 서둘러 용봉 차일이 내려진 천막으로 향했다.
걸음마다 박자가 착착 맞는 취타대 연주가 더욱 발걸음을 날래게 하였다.
새삼 자신이 여송에서 조선의 무역 근거지를 건설하는 일이 조선의 외교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수양 대군은 어깨를 쭉 펴고 화려한 천막 앞에 섰다.
상왕 전하를 호위하는 궁인과 금군 무리가 모두 읍하며 예를 표하는 가운데, 내관 하나가 안을 향해 공손히 외쳤다.
“상왕 전하, 대비마마. 수양 대군과 예조 참의 이계전 들었습니다.”
“들라 하라!”
수양 대군과 이계전이 안으로 들어섰다.
장엄하게 꾸며진 천막 안에는 상왕 전하 내외와 세자 홍위, 그리고 중전과 광평 대군이 앉아 있었다.
‘왕실 가족 환영회인데, 왜 부인은 없는 것이지?’
수양 대군이 의문을 느끼는 찰나, 광평 대군이 환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덥썩 잡았다.
“수양 형님, 예조 참의 영감,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정무에 바쁘시어 대신 저를 보내셨습니다. 형님과 참의 영감을 위해서 내일 궁중에서 연회를 베푸실 것이라 하옵니다.”
“그래, 너도 아바마마, 어마마마 모시고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대군 자가, 이리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가 끝나자 광평 대군은 옆으로 비켜섰다.
수양 대군은 이계전과 함께 허리를 깊게 숙이고 안으로 걸어들어가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를 향해 네 번의 절을 올렸다.
인사를 받은 상왕께서 옆에 서 있는 내관에게 명하셨다.
“먼 뱃길에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여봐라, 수양 대군과 예조 참의에게 어주를 내리거라.”
그러자 내관이 나전 쟁반에 어주 두 잔을 받쳐 수양 대군과 이계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수양 대군은 나무 덩굴 무늬가 정교한 청화 백자 술잔을 들어 몸을 옆으로 빗겨 어주를 마셨다.
색채가 투명한 술은 향이 아주 좋고 목 넘김도 담백하고 달콤했다.
‘이거, 남방에서도 제법 팔리겠는걸.’
강한 향신료 음식의 맛을 부드럽게 중화시키기에 적당한 술이라고 생각하던 수양 대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재에 비상한 한명회와 지내다 보니 어느새 장사치가 다 되어 있구나.
자신이 조선에 머무는 동안 한명회는 수양 대군의 가족과 시중들 식솔, 그리고 한명회 자신의 식솔, 조선의 관원과 무역 상인의 가족까지 머물 조선인 거주지의 기반을 확고하게 닦아놓기로 하였다.
그간 복건, 영파 등 명나라 출신의 상인과 회회인 상인들이 주로 장악하고 있던 여송 일대 중계 무역에 최근 조선 상인의 활약이 커지면서 보이지 않는 긴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잔을 비우자, 부왕께서 세자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시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 앉아 계신 어마마마께선 벌써 눈 밑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
중전의 손에 몸을 의지한 채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어마마마의 도타운 정을 느끼자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수양 대군은 정체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이렇게 성대하게 환영을 해 주시는 자리에 왜 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
유구에 잠시 들렀을 때 어린 부인이 보낸 서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기후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씨앗들도 겨우내 기름 종이 씌운 온실에서 싹 틔워가며 모두 기록해 두었고요.낯선 풍토와 음식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가께서 보내주신 향신료로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음식을 해 먹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입맛에 맞지 않아 힘겨웠지만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며 근자에는 꽤 맛나게도 느껴져요.
아무리 덥고 습한 기후라고 해도 자가와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조선의 청명한 가을 날씨보다 제겐 더 극락 같은 곳일 것입니다.]
이렇게 절절하게 그리움을 표한 부인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영 불안한 수양 대군에게 부왕께서 말씀하셨다.
“유와 계전, 너희 둘 다 먼 이방의 땅에서 조선 무역 기지의 기반을 닦느라 수고가 많았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행해야 할 일에 대한 상세 계획을 세우고, 여러 부처와 조율하면서 이주해 갈 인원의 규모와 구성도 정하는 등 당장 내일부터 할 일이 산더미이니, 오늘은 일찍 돌아가 쉬거라”
상왕 전하의 공식 치하의 말씀이 끝나자 이계전은 다시 절을 올린 후 먼저 물러났다.
왕실 직계만이 있어야 할 분위기라고 눈치채고 기민하게 움직인 것이다.
“유야, 이리 오거라. 어미가 얼굴 한 번 만져보자.”
이계전이 나가고, 시중을 드는 내관들까지 물러간 후에야 소헌 대비께서 수양 대군을 부르셨다.
“어마마마, 어째서 이렇게 수척해지셨습니까? 제가 보내드린 노회(알로에)와 오서(검은 코뿔소의 뿔), 혈갈(기린갈의 수지), 녹용, 웅황 등을 달여 드시지 않으신 것입니까?”
“내의원에서 다른 약재와 잘 배합하여 달여주었다. 덕분에 이번 겨울 맹추위에도 크게 앓지 않고 잘 지나갔어.”
세종은 남방의 뜨거운 햇살에 검어진 아들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대비와, 어머니의 손길에 얼굴을 내맡긴 채 어리광을 부리듯 안부를 묻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조 관원이 모두 나와 환영의 예를 표하게 하고, 서양에서 쓴다는 칠음계와 네 박자로 행군하기 좋게 새로이 만든 곡을 취타대에게 연주하게 한 것은 모두 수양에게 일러주기 위해서였다.
‘네가 하는 일은 모두 다 조선 내치와 외교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북방에 새로 확장한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나가 있는 다른 신하들처럼 네가 여송과 그 아래 미지의 대륙을 조선의 영토로 개척한다면 지금처럼 성대한 개선의 환영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올가을에 떠나면 몇 년 후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것을 장담하지 못하기에 미리 환영의 전례를 만들어 두려 한 것임을.
유, 네가 알 것이냐.
네가 끝내 윤서의 역사 속에서 네가 저질렀다는 그 끔찍한 짓을 위해 네 권한을 사용하려 든다면, 또 네가 너의 그 어리석고도 잔혹한 것을 똑바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수양 대군을 바라보는 세종의 눈이 서늘한 한기를 발할 때였다.
“소자, 서각(코뿔소의 뿔)과 용연향, 해구신 등 천금을 주고도 얻기 어려운 귀한 약재를 많이 구해왔습니다. 은동 어미 시켜 정성스럽게 달여드릴 것이니 부디 건강만 하옵소서.”
“!”
“!”
“!”
세종과 소헌 대비, 그리고 소헌 대비 옆에서 그림처럼 앉아 있던 윤서의 시선이 바쁘게 서로 맞물렸다.
“···유야. 그에 대해, ···할 말이 있다.”
한순간에 창백해진 얼굴로 소헌 대비가 어렵게 입을 떼실 때였다.
세종이 손을 내저어 대비마마의 말씀을 막았다.
“대비, 내가 유에게 말할 것이오. 홍위야, 할마마마와 어마마마 모시고 먼저 어차에 가 있거라.”
마음 같아서는 필시 괴롭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울부짖을 아들의 꼴을 아예 보지 않게 먼저 환궁하시라 대비에게 말하고 싶지만.
왕가의 행렬은 겸사복장 등 고위 관원이 앞장을 서고, 취주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내병조와 금군이 어차의 앞뒤, 옆을 여러 겹으로 감싸 호위한 채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세종은 처음으로 번잡스러운 왕가의 행차 의례가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할마마마, 소손이 모시겠습니다. 어마마마와 소손 손을 잡으시어요.”
상황을 짐작한 홍위가 재빨리 일어나 소헌 대비를 부축했다.
“대비마마, 가시지요.”
세종께서는 여러 여인을 두루 사랑하셨지만, 그래도 소헌 대비께는 언제나 정중한 애정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음을 실감하며, 윤서는 잘게 떨고 계시는 소헌 대비의 손을 잡아 부축하고 천막을 나왔다.
그래도 우리 홍위가 서양 종소리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여기 돌부리가 있어요. 발밑 조심하세요, 할마마마. 힘드시면 제게 더 많이 기대세요. 아니, 업어드릴까요, 할마마마?”
걸음마다 다정하게 챙겨드린 덕분에, 천막 옆 공터에 세워진 마차 위에 오르실 때엔 소헌 대비도 제법 밝은 표정을 되찾으셨다.
*
*
*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부왕께서 은동 어미가 저지른 만행을 말씀하시는 내내 점점 핏기가 가시는 얼굴로 이를 악물었던 수양 대군은 그 혐의를 강하게 부정했다.
“향신료를 듬뿍 넣어 다양한 요리를 해 먹고 있다는 서신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곳의 기후가 덥고 습하여 음식이 쉽게 상하기에 음식 보존을 위해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려준 후였습니다.”
“···형님.”
부왕을 보필하기 위해 곁을 지키던 광평 대군이 수양 대군을 만류하였다.
말씀하시는 부왕의 표정이 너무 괴로우셨기에, 속 마음은 어떻든 일단 부왕을 환궁하시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양 대군은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필시 중전이 의혹을 제기했겠지요. 출처를 증명할 수 없는 그 기괴한 지식으로 중금속이니 세균이니 뭐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들먹이며 은동 어미가 우리 현동이를 해하려 했다고 오해를 조장했겠지요. 은동 어미가 안 먹었으면 모르나, 한 솥에서 조리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다는데, 탈이 난 것은 현동이의 체질 탓이지 그것이 어찌 은동 어미 탓입니까.”
“매번 탈이 나는데도 기어이 먹인 것에 어찌 의도가 없어!”
“그곳에 가서 살아야 하니 먹였겠지요. 그곳의 상황을 저만큼, 저에게 직접 여러 번 들은 은동 어미만큼 상세히 아는 이가, 있습니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바마마는 상상이나 하십니까? 사시사철 덥고 습하고 비가 오고, 모기와 해충이 들끓는 그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향만 풀풀 나는 음식을 매일처럼 먹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바마마는 상상이나 하십니까? 중전은, 상상이나 할까요? 대체, 왜! 왜! 중전은!”
수양 대군이 울부짖었다.
“대체 소자와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은동 어미마저 죽이려 하는 것입니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