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수양의 선택, 세종의 선택 (1)
“자가, 부디 만수무강하시어, 바라시는 바, 모든 뜻을, 이루소서.”
부부인 윤씨가 눈물을 흘리며 칼을 집어들 때 수양 대군은 아내의 말속에 든 교묘한 거짓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용서할 수 있는가.
나의 장자를 해하려 한 것으로도 모자라 성적으로 타락하게 하려 한 여인을, 용서해야 하는가.
그러나 아직도 앳된 얼굴에 저리 절절한 애정을 담고 있는 아내를 또 잃고 삶의 허전함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격렬한 갈등 속에 얼어붙어 있는 수양 대군의 귀에 여송을 떠나오기 전 거듭거듭 당부하던 한명회의 말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대군 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부부인을 또 잃어서는 아니 됩니다. 인재 많은 파평 윤문과 끈을 놓고서는 바라시는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가! 자가께 필요한 여인은 격랑의 세월을 함께 헤쳐갈 굳센 의지를 가진 여인입니다. 이기는 것이 선이고, 성공하는 것이 명분입니다!”
둘째 은동이와의 혼약으로 운명 공동체가 된 자의 말이 채찍처럼 수양 대군의 다리를 후려쳤다.
“안 돼!”
수양 대군은 아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두 번이나 중전에게 아내를 잃는다면 이제 다시는 그 누구에게 미래를 함께 도모하자 입도 벙긋할 수 없으리란 위기감이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게 하였다.
칼날은 아내의 목 대신 수양 대군의 손등을 스쳤다.
혈관을 스친 상처에서 금세 흥건하게 피가 솟았다.
“자가, 지혈을! 피가, 피가 너무 많이 납니다.”
부부인이 치맛자락으로 상처를 감싸며 울먹였다.
수양 대군은 아내의 손에 손을 겹치고, 어느새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노비들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부부인이 겉에 걸칠 것을 내오고, 마차를 대령하라. 경복궁으로 갈 것이다.”
“자가, 머리카락도 젖어 계시옵고, 궐 문을 닫을 시간도 멀지 않습니다.”
“상관없소, 부인. 오히려 나의 간절함과 의지를 증명할 징표가 될 것이오.”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다.
상왕께서 분명히 선언하셨다.
“명례궁에 가서 네 눈으로 직접 보거라. 네 그 알량한 부인이란 것이 네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하였는지. 네 눈으로 직접 보고도 결론이 같다면!”
너 같은 아들은 없는 것으로 치겠다!
그러니 당장 가서 보고 들은 것을 고하고 오해를 당한 아내를 버려야 하는 수모를 감내할 바엔 이 칼을 물고 엎어져 죽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조선과 긴밀한 관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조선 임금의 지지가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힘을 키운다고 해도 떼를 지어 바다 위를 떠도는 상인 무리, 혹은 왜구 무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지위로는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세력과 동맹을 맺을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한명회는 조선 밖에 나와서야 천하가 넓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넓은 세상에서 충분한 힘과 권력을 가진 세력으로 커가려면, 그리하여 가슴 깊이 품고 있는 ‘그 대업’을 이루려면 명나라와 깊은 결속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주변 세력에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조선 국왕의 지지가 필수적이라 하였다.
아내의 말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아내는 목숨을 걸고 뜻을 관철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지녔고, 먼 이국에서 힘을 키우려면 이 정도 치밀한 강단을 지는 여인이 필요하다.
더 현명했고 조금 덜 치밀했던 여인을 잃어본 경험이 그리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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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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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대군과 부부인을 물리신 후 나를 부르신 것이라고?”
“예, 중전마마. 하옵고,”
조 상궁이 윤서의 귀에 대고 명례궁과 교태전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하였다.
“죽어 속죄하겠다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 수양 대군께서 ‘안 돼!’ 외치며 손등으로 칼날을 막으셨다고 하옵니다. 처음부터 보여줄 목적이었던지라 상처는 그닥 깊지 않아 마침 도원군에게 침 치료하기 위해 가 있던 의원이 명주실로 봉합하고 상처 아무는 가루를 뿌리고 붕대를 감았다지요. 그 이후 두 분은 함께 궐에 들어 오해임을 죽음으로 증명하겠다고 울며 고하시고는,”
“부부인과 은동이와 함께 여송으로 떠나 따로 부름이 있기 전에는 조선 땅에 발을 딛지 않겠다고 하였겠지.”
조 상궁이 입을 떡 벌렸다.
“···이미 예상하셨던 것입니까? 그래서 침의로 갈아입지 않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까?”
“응. 전하께서 아직 강녕전에 계시기도 하고.”
“과연!”
감탄하는 조 상궁에게 밖에서 기다리라 명한 후.
윤서는 어느새 이부자리 가장자리로 뒹굴어나가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들어 있는 소아를 들여다보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흰 뺨에 긴 속눈썹이 새카맣게 짙은 아이가 엄마의 따스한 숨결을 느끼고 잠결에도 꼬물꼬물 웃었다.
새벽이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몹시 귀여워하면서도 이향은 밤에는 윤서와 둘이서만 오붓하게 있고 싶어 하였는데.
소아는 협경당에 있는 시간 동안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손수 기저귀까지 갈고 목욕까지 시킨다.
한 손으로 소아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서툴게 머리를 감기는 이향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점차 군주로 냉철해지는 가운데 인간적인 면을 놓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읽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한없이 귀하게도, 한없이 초라하게도, 심지어 죽은 자로도 만들 수 있는 자리.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다른 이들이 제 모든 힘을 다하여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개미 무리가 꼬물거리는 것을 지켜보듯 무감해지기 쉽다.
권력을 가지게 되면 뇌와 신체 호르몬 자체가 변화한다는 뇌 신경 과학과 심리 연구의 결과가 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거울 뉴런의 활동이 점차 적어지고, 감정의 절제를 담당하는 뇌의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처럼 자신의 행위가 사회, 도덕적 맥락에서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무감하게 된다.
또한 남녀 모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하고, 목표와 보상에 열중하는 좌뇌 전두엽이 더욱 활달해지고, 잠재 위협 요소나 자신의 객관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우뇌 전두엽은 둔화되게 된다.
권력을 쥐고 나면 인간의 뇌와 몸이 정말로 질적인 변이를 이루는 것이다.
그 변화를 윤서는 자신에게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원칙이 중요하다.‘
권력자가 되어서도 끝까지 지켜내야 할 원칙, 그 원칙이 있어야만 권력이 주는 달콤한 유혹에 잠식당하지 않고 건전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중전마마!”
밖에서 들려온 조 상궁의 재촉이 넝쿨처럼 뻗어가는 ‘권력을 쥘 때 일어나는 심리 변화’에 대한 고찰을 중지시켰다.
“곧 나가네.”
답하고 윤서는 이향에게도 그러하듯 자신에게도 ‘중전 권씨’가 아니라 ‘인간 권윤서’로 땅에 발 딛고 살게 하는 존재인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소아야, 엄마 교태전에 다녀올게. 깨었다가 엄마 아빠 없다고 울지 말고, 코 잘 자고 기다리고 있어.”
소아는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서너 번 빨다가 툭 떨어뜨리며 다시 깊고도 평온한 잠의 세계로 복귀하였다.
윤서는 소아를 안아 다시 요 위에 뉘인 다음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 몇 개를 떼어 정돈해주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자네만 따르시게.”
부엉이가 호옹 호옹 구슬프게 우는 한밤중인데도 대낮처럼 엄정한 규율을 갖추고 뒤따를 준비가 된 상궁과 내관, 나인 열 명을 모두 물리고 윤서는 조 상궁만 등롱을 들고 따르게 하였다.
“그대로 두실 것입니까?”
묻는 조 상궁에게 윤서는 기습적으로 되물었다.
“명례궁에서 일어나는 일 중 몇 개는 부러 보고를 아니 한 것인가?”
빈틈없이 윤서의 발 앞을 비추던 등롱의 둥근 불빛이 한 박자 느려지며 붉은 비단 치마 끝 금박 봉황 무늬가 찬란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조 상궁은 이내 윤서의 보폭에 불빛을 맞추고, 여느 때처럼 공손하게 답을 올렸다.
“중전마마께서 제게 거의 모든 일에 재량권을 주시되, 아이들은 건드리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향신료 건은 몰랐고, 미인을 집어넣는 것은 알았습니다. 미인은 목숨과 관계된 것이 아니기에 모른 척하였습니다.”
“······.”
“도원군이 미인을 지나치게 탐하여 몸이 상하는 지경이 될 것 같았다면 틀림없이 보고 올렸을 것입니다.”
조 상궁은 자신이 가진 재량 하에서 도원군의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묵인하였다. 평판을 잃는다고 죽지는 않기에.
도원군의 평판이 낮아지는 것이 세자 저하를 위해 좋은 일이고, 세자 저하를 위해 좋은 일은 중전마마를 위해 더욱 좋은 일이 되는 것이 중궁전의 이치이다.
조 상궁은 그렇게 믿어왔고, 그 믿음대로 윤씨의 미인계는 함구하기로 판단하였단 뜻이다.
“······.”
“······.”
윤서는 보폭을 흩트리지 않았고, 조 상궁도 윤서의 붉은 비단 당혜 코끝이 둥근 불빛의 가장자리를 딛게 하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휘영청 밝은 만월의 달빛 아래 사락사락 비단 치마 스치는 소리와 저 멀리 처연하게 우는 부엉이 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을 대신했다.
말없이 걷는 윤서의 머릿속에서 여러 개의 감정이 비죽비죽 떠올랐다.
원래 역사에서 선친 문종의 상중임을 들어 강력하게 거부하는데도 수양 대군의 강요에 의해 중전은 물론 후궁까지 강제로 맞이해야 했던 단종의 처지와 맞춘 듯 닮아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한 승리감과,
육욕을 풀어내기엔 아직 육체가 다 여물지 않은 아이에게 여러 명의 미인을 들이민 행위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중전과 세자의 입지를 공고히 해 자신의 권력 기반도 빈틈없이 다져가는 조 상궁의 치밀한,
“잘, 알았네.”
판단력까지 짚었을 때.
윤서와 조 상궁은 교태전 뜰로 들어섰다.
만월의 달빛은 휘영청 밝았지만 횃불을 든 금군의 수는 적었다.
몇몇 내관이 작은 섬처럼 동그랗게 불을 밝히는 등롱을 들고 허리를 굽혀 윤서를 맞이할 뿐이다.
‘금군과 내관의 수가 적다는 것은 두 분께서 수양 대군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셨다는 뜻이겠지.’
이 또한 예상했던 일이다.
소헌 대비가 살아 계신 한 세종께선 수양 대군을 완전히 내칠 수 없고, 두 분이 살아 계신 한 이향은 수양 대군을 죽일 수 없다.
윤서가 윗전의 결론을 짐작하였을 때, 허리를 굽히고 있는 홍 내관이 눈에 들어왔다.
“전하께서도 안에 계신가?”
“예, 중전마마. 상왕 전하의 부름을 받으시고 조금 전 오셨습니다.”
안마루에 들어서니, 최 상궁이 안을 향해 고하였다.
“중전마마 드셨습니다.”
“뫼셔라.”
세종 대왕의 음성이 장지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안에 들어서자 솜을 누빈 붉은색 도포를 입은 이향의 널찍한 등이 먼저 보였다.
노비 세습제를 폐지하였을 때 양민에 편입될 인구의 수를 정확하게 산정하기 위해 최근 한양과 경기 일대부터 호구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에 관한 보고를 받고, 노비에서 양민으로 속량 될 이들의 호구지책을 나라 차원에서 어떻게 마련해주어야 하는가를 고심하고 있다고 하였다.
국가의 대계를 걸머진 등이 안쓰럽게 고단하였다.
“중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을 것이지?”
이향 곁에 가 앉자 소헌 대비께서 물으셨다.
대비마마의 음성이 어둡지 않았다.
옆에 앉으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기신 세종께서도 평온한 얼굴이셨다.
윤서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이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빙긋 웃으며 눈을 맞춰오는 이향의 얼굴빛 또한 차분하였다.
“예상한 바여서 놀랍지도 않았지?”
“···예.”
다들 이미 예상하고 계셨던 것이다.
윤씨가 어떻게 나올지, 그에 따라 수양 대군이 어떻게 반응할지.
도원군의 혼사가 수양 대군의 뜻과 다르게 이루어진 지금, 세종과 소헌 대비는 결단을 내리신 것이었다.
“여기서 또 그 아이를 내치면 은동이가 도원군 처지가 될 것이니 유가 알면서도 속아줄 밖에. 다행히 곧 현동이와 예분이는 따로 나와서 살게 될 것이고, 그 아이들은 멀리 떠날 것이니 말이다.”
“예, 대비마마.”
“그래, 이렇게 되니 차라리 홀가분하다. 제 새끼는 해치지 않을 것이니 모두 무사하게 되었잖니.”
그리 말씀하신 소헌 대비께서 끄응, 몸을 일으키셨다.
이향이 서둘러 몸을 일으켜 소헌 대비를 부축하였다.
“신첩은 고단해서 건너가 쉬려 합니다, 전하. 정치에 관한 것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 주상과 중전과 논의해 결정하시어요.”
세종께서 이 밤중에 이향과 윤서를 부르신 것이 더 큰 정치의 틀에서 수양 대군과 윤씨의 일을 논하고자 하심을 소헌 대비는 스스로 자리를 피하셨다.
무슨 일이 있든 수양 대군과 도원군, 은동이는 무사하리란 확신이 있기에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이향이 대비마마를 모시고 동온돌로 건너간 후.
계속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던 세종께서 뜻밖의 질문을 하셨다.
“제국주의 시대, 어명을 받아 해외 영토 개척을 담당했던 자들은 어떤 소양을 지녔더냐?”
“!”
“마상득지 마상치지(馬上得之 馬上治之)란 말을 들어보았느냐?”
“···예. 말을 타고 천하를 얻었으나 말을 타고 천하를 다스릴 순 없다는 말로 알고 있습니다.”
세종께서, 설마!
“여봐라. 자선당에 가 세자를 불러오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