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수양의 선택, 세종의 선택 (2)
“처음엔 그저 우리 세자 앞날에 혹시 걸림돌이 될지 모를 잠재적 위험을 멀찌감치 치워둘 의도와, 또 늘 부족한 궁각과 염초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의도였다.”
대비마마 침수 드시는 것을 보고 돌아온 이향과, 막 잠이 들려는 찰나 불려온 홍위까지 모두 모였을 때.
윤서를 불안한 침묵 속에 앉혀둔 채 다시 깊게 생각에 잠기셨던 세종께서 왜 수양 대군을 저 먼 여송에 보냈는지 진짜 의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부터 약 오십 년 후 콜럼버스란 서역인이 바다를 건너 새 땅을 발견한다는 소식에 경도된 것도 맞다.”
이 말에 홍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세종께서 껄껄 웃으셨다.
“그래. 출처가 중전이다, 홍위야. 네 어머니는 미래를 알지.”
“아바마마.”
이향이 부드럽게 세종을 만류하였다.
막연히 짐작하는 것과 말로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은 다르다.
윤서가 이 세계에 온 것이 홍위의 비극 때문이었으니, 어린 홍위에게 그 비극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또한 윤서의 역사에서 있었던 비극이 이 세계에서 재현되는 것을 막고야 말겠다는 다짐이자,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이향의 말에 고개를 흔드셨다.
“수양의 선택을 들으며 내가 아직도 선왕께서 가지셨던 그 냉철한 지인지감((知人之鑑)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홍위야.”
세종께서 홍위를 향해 두 손을 내미셨다.
“이리 오너라, 이리.”
“할바마마!”
영민한 홍위는 수양 숙부의 야심을 할바마마조차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수양 숙부와 부부인의 선 넘는 야심에서 아기였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까지 하셨는지 잘 알기에 상왕 전하 앞으로 다가앉았다.
“무릎에 앉히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 홍위가 너무 커버렸어. 그러니 이 할아비 옆에 앉거라.”
세종은 홍위를 당겨 옆에 앉히시고 이향과 윤서를 차례로 바라보셨다.
“역사에서 나라의 영토 확장은 인접한 곳을 통해 이루어졌다. 내가 조선의 강토로 확정지은 4군 6진 지역이나, 금상이 근자 확장한 환인과 두만강 이북 강역도 모두 기존의 강토와 맞닿은 곳이 아니더냐. 하지만 여송과, 그리고 또 장차 개척할 호주는 다르다. 우리에게만 다른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경우야. 그렇지 않느냐, 윤서야. 제국주의는 서구의 열강이 먼 이방의 땅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간 첫 사례가 아니냐?”
세종께서 윤서에게 물으셨을 때 살짝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경청하던 홍위가 고개를 들어 윤서를 바라보았다.
영민하게 빛나는 눈동자에 담긴 것은 놀라움이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윤서가 장차 도래할 세계에 대한 확고한 지식, 무당이나 신통한 능력을 지닌 자의 단편적인 예지가 아니라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모두 모여 진지하게 경청할 만큼 체계적인 미래 지식을 가졌음을 확인하게 된 놀라움이 홍위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예, 첫 사례입니다. 원나라를 세운 칭기스 칸이 저 먼 유럽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그것은 인접한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해나간 경우이고, 제국주의 치하에서 서양의 열강은 배를 타고 다른 대륙에 진출해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니 먼 이방의 땅에 세력을 건설한 첫 사례가 맞을 것입니다.”
“···어머니. 그 ‘제국주의’란 국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지요?”
어머니.
홍위가 ‘어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윤서는 조류의 ‘각인’을 떠올린다.
태어나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라고 각인하고 죽어라 따라다니는 조류처럼, 윤서에게 홍위는 이 세계에 와 처음 본 ‘가여운 운명의 아이, 단종’으로 각인되어 있고, 그래서 문득문득 가슴 미어지는 연민에 사로잡히도록 각인된 존재라는 것을 절감한다.
“응. 서양력으로 1492년, 지금으로부터 약 사십 년 후 콜럼버스라는 서양인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엄마의 세계에서 남미라 부르던 대륙을 발견하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되게 돼. 그 이후 지도에 유럽이라 표기된 서양의 열강은 북미, 남미 대륙뿐 아니라 저 동쪽 끝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여송이 속한 아시아까지 진출해 무력으로 식민지를 삼아 세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지. 그들의 우위는 그 이후 거의 오백 년 동안 이어지게 된다.”
“···오, 오백 년, 동안이요?”
“그래, 홍위야. 네 어머니만 알던 그 오백 년의 미래는 할바마마께서 상세히 정리하셔서 왕실의 비밀 서고에 보관 중이시다. 세계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미래의 지식이 담겨 있기에 장차 왕과 세자만 열람할 수 있도록 정하신 비밀 서고 말이다.”
아바마마의 말씀을 들으며 홍위가 윤서를 바라보았다.
윤서도 홍위를 바라보았다.
맞물린 시선 속에서 홍위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아직은 앳된 얼굴을 구기더니, 할아버지 세종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할바마마, 저 어머니 곁에 가서 있고 싶어요.”
“응, 왜?”
“···알 것 같아요. 왜 어머니가 가끔 절 보실 때 몰래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지. 왜 그렇게 저를,”
“!”
“!”
“!”
“어머니, 제가, 제가, 혹시.”
“홍위야, 이리 와. 이리 와서 엄마 옆에 앉아.”
윤서는 홍위의 말을 엄하게 막았다.
영민한 홍위는 윤서가 미래를 정확하게 안다는 사실과, 그런 분이 어릴 적부터 자신을 지나치리만치 애달게 바라보았다는 사실에서 어른들은 알고 자신만 모르는 진실의 조각을 읽어내었다.
“홍위 너는 할바마마와 아바마마의 보호 속에서 멋지게 커서 두 분처럼 멋진 왕이 될 것이니까. 이리 와서 앉자.”
말에는 힘이 깃든다.
윤서는 홍위가 그 역사의 조각을, 이미 폐기 처분된 조각을 입에 담게 두지 않았다.
“그래, 홍위야. 이리 와 어머니 곁에 앉거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두고 이 세계의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면 된다.”
이향도 사무치는 마음으로 아들을 불렀다.
홍위는 일어나 윤서에게 왔다.
기골이 장대하셨다는 태조 대왕을 닮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는 홍위가 그 옛날 아이 때처럼 윤서의 앞에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 무릎에 앉고 싶지만 덩치가 커진지라 대신 앞에 앉는 정도로 타협한 것이다.
복잡한 마음에 홍위가 아이처럼 구는 것을 이해하는 윤서도 예를 내려놓고 뒤에서 홍위를 안았다.
“허헛, 참.”
너무 격의 없는 모자의 모습에 세종은 헛웃음을 짓다가 문득 가슴이 미어지는 회한에 눈을 꾹 감았다.
왜 그때는, 왜 윤서의 역사에서는 그토록 수양을 믿었던가.
절대복종하는 공손한 모습 뒤 숨기고 있던 그 잔혹하고 치밀한 야망을 분명 알아차렸을 터인데도 왜 한사코 외면했던가.
명례궁에서 벌어진 일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윤서와 홍위의 모습에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리던 이향은 부왕의 패인 미간에 담긴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오늘 밤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바마마께서 오늘 소자와 모두를 부르신 것은 해외 개척지 운영을 주나라 분봉 제도를 참고하여 수양을 분봉 제후로 책봉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시고자 함이 아니십니까?”
“그러하다!”
그 일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 두지 않을 것이다!
평정심을 회복한 세종께서 눈을 번쩍 뜨고 금상과 세자를 바라보셨다.
“원래는 그곳을 분봉지로 정하고 수양에게 영구 통치할 권한을 줄 계획이었다. 허나 수양이 내리는 판단을 보니 그렇게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윤서야, 제국주의에서는 임기가 제한된 총독을 파견했다고?”
“예. 영국도 네덜란드도 ‘동인도 회사’라는 무역 기반의 조직을 세웠다가 본국에서 파견하는 총독 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에 여러 총독을 임기제로 파견해서 다스렸습니다.”
“어머니!”
“그래, 홍위야. 어머니의 역사에서는 일본이 백오십 년 뒤, 서양력 1594년에 쳐들어왔었고, 그리고 또 1910년에는 합병을 했었다. 지금 왜놈이라고 무시하는 일본은 여러 개의 번으로 분열되어 면포 하나를 제대로 못 만드는 수준이지만 우리보다 먼저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고 전국을 통일한 여세를 몰아 우리 조선을 침입했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홍위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며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세종께서 빙긋 웃으며 홍위를 달래셨다.
“자자! 그런 일은 이번 역사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현안에 집중하자. 그래서 그 총독은 몇 년 기한이었다고?”
“···그것까진 잘 모릅니다.”
윤서는 또 미리 공부해 두지 않은 자신의 한정된 관심사를 반성하며 부끄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세종께서 손을 저으셨다.
“하긴, 뭐, 그런 것까진 몰라도 된다. 정하기 나름이니. 군권은 어찌했더냐?”
“···그것도 잘 모르지만, 최소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군권은 주되 중요 일에 있어서는 본국에서 군사를 파견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래! 내 짐작도 그러하다. 군권을 완전히 맡기면 그 큰 권한을 내려놓고 본국으로 돌아오려 하겠느냐?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향아.”
“예, 아바마마. 처음부터 그래서 군권을 유응부에게 맡겨 보냈던 것입니다.”
“그래. 이원화하고, 임기는 십 년으로 하자. 십 년이 지나면 우리 홍위도 충분히 장성하였을 터이고, 주상도 한창 원숙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있을 터이니 딱 좋을 시기다.”
그렇게 결론을 지으신 세종께서 잠시 무언가 생각하시더니 느릿느릿 말을 더 이으셨다.
“수양 대신 다른 이를 총독으로 보낼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오, 주상.”
“전하, 큰 틀은 정해졌으니 중전과 세자는 먼저 보내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파견할 인물의 적합성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홍위의 비극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향은 아직 어린 아들이 비정하고 잔혹했던 역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갑작스레 진실을 확인하게 된 아들과, 그 아들을 몹시 사랑하여 혹시 이전과 관계가 달라질까 두려워하고 있을 부인에게 둘만의 시간을 주고도 싶었다.
“···그래. 중전과 세자는 먼저 돌아가 보거라.”
“홍위야, 어머니 협경당에 모셔다 드리거라.”
“예, 저는 어머니 모시고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할바마마.”
“대전 내관에게 약차와 야참 올리라 명하겠습니다.”
윤서와 홍위는 예를 갖춰 인사 올린 후 교태전에서 물러 나왔다.
닫히는 문 사이로,
“개척 초기 낯설고 불안정한 환경과 비협조적이고 적대적일 수 있는 토착 세력의 알력을 이기고 조선의 개척지를 확보하려면 수양이나 한명회처럼 집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돌진할 자들이 필요하다고 소자도 생각하옵니다.”
차분히 고하는 이향의 말소리가 들렸다.
*
*
*
교태전에 내려섰을 때, 대조전 월대 위 세워진 괘종시계가 쟁쟁 맑은 소리로 해시 반각 (밤 10시)을 알렸다.
머리 위로 높게 떠오른 보름달은 아까 교태전으로 올 때보다 더욱 밝게 사방을 비추고, 발밑에서는 서리가 싸락 싸락 소리를 내었다.
윤서는 뒤따르는 궁인을 멀찌감치 물리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홍위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윤서는 홍위가 자신이 미래에서 온 영혼이란 사실을 언젠가부터 짐작했을 것이라 짐작하며, 한때는 아주 작고 부드러웠던 손이 이렇게 듬직한 청년의 손으로 자라난 것에 감동하고,
홍위는 짐작했던 대로 미래에서 온 영혼인 어머니가 필시 위태로웠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제대로 키우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오신 일들을 되짚고 있었다.
그 끝에 아까 엄한 어조로 “이리 와서 엄마 옆에 앉아!” 했던 말을 떠올리고, ‘엄마’란 친근한 두 마디가 가지는 울림을 음미하다가 불쑥 물었다.
“어머니의 시대에서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어요?”
“응. 엄마라고 부르고, 아버지는 ‘아빠’라고 친근하게 부르지. 엄마랑 아빠가, 몹시 보고 싶구나.”
정말이지, 몹시 그리웠다.
두 분이 이향과 홍위, 희아, 그리고 아명이 금동이와 새벽이와 소아인 손주들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칠월 초하루에 지내는 제사가 두 분 제사예요?”
“응. 눈치챘구나.”
“귀양 가 계신 분들 함자와 항렬이 달라서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윤서는 칠월 초하루에 협경당 서재 방에서 부모님 제사를 지냈다.
이향과 희아, 홍위, 금동이 새벽이도 함께 지내는 제사였다.
몇 가지 손수 부친 전과 제철의 과일, 특히 부모님께서 좋아하신 딱딱한 백도 복숭아도 올리는 제사상에 아빠의 함자인 권현수(權泫遂)와 엄마 함자인 이선아(李仙雅)의 신위가 올려져 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권가 나인은 내 영혼이 오던 날인 4월 7일, 독이 든 다식을 먹고 죽었어.”
“그래서 4월 6일마다 반송방 박 상궁 집에 나가셨군요. 권가 나인 제사를 지내주기 위해서.”
투박하고 의리가 있지만 힘만 세고 어리석었던 권가가 어느 날인가부터 영민해지고 다정해져서 자신을 맹렬하게 아끼던 세 살 무렵의 봄이 생각났다.
그때였구나. 어머니가 오신 것이.
그래서 날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보내셨다고 속삭이신 것이었구나.
막연히 짐작했던 것들이 선명한 사실로 드러나면서 마음이 따스하게 채워진다.
이제 자신은 어머니가 그리도 보호하려고 애를 쓰시던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머니의 시대에서 애처롭고 연약하게 기록되어 있을 그 가여운 운명의 아이는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긴다고 해도 자신도, 용상도, 그리고 어머니와 금동이 새벽이, 희아 누님과 소아까지 든든히 지켜낼 자신이 있는 세자로 자라났다.
홍위는 한때 자신의 손을 포근하게 덮어주었던 어머니의 작아진 손을 꼭 잡고 속삭였다.
“이제 저는 어린아이가 더 이상 아니에요. 그러니까 때때로 그렇게 눈물에 젖어가는 눈으로 저를 애달프게 보지 마세요, ···엄마.”
엄마.
“···그래.”
네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내 마음속에서 홍위 너는 언제나 “안아줘” 손을 뻗던 외롭고 가여운 아이로 안쓰럽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알까.
이렇게 ‘엄마’라고 수줍게 부를 때.
잘 자란 네가 기특하고 뿌듯해서 더욱 눈물이 난다는 것을.
그런 것이 기른 정이라는 것을.
“그래, 홍위야.”
서린 내린 땅 위에 달빛은 찬란히 은빛으로 빛이 나는데.
시공간을 넘어 모자의 인연으로 만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나누는 밤의 대화가 두런두런 길게 이어졌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