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수양의 선택, 세종의 선택 (3)
“긴 역사에서 보면 아바마마도 또 나도 지나가는 인물이 아니겠냐고 하셨어요. 그 역사에서 당신께선 최고의 성군으로 존경을 받는다지만 뒤에 일어났던 비극을 짚어보실 때 자신의 업적은 조부 태종께서 공고하게 깔아놓으신 판 위에서 꿈 같은 이상을 펼쳤던 것에 불과하다시며,”
홍위와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짚어 경회루까지 한 바퀴 돌고 돌아온 후에도 한참 있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이향은 협경당으로 돌아왔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에 손을 씻은 후, 깊게 잠든 소아의 뺨에 한참 입술을 대었던 이향이 도포를 벗어 건네며 세종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후대를 위해서 지속 가능한 제도를 만들고 정착하게 하는 데 힘을 다하라고 하셨지요. 미래 지식을 알고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머문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직과 백성에 죄를 짓는 것이라시면서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훌륭한 명군인 두 분이 마주 앉아 더 잘하자고 다짐하는 광경이 훤하게 그려졌다.
그러자 뿌듯하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윤서는 또 지나치게 과로하는 두 분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종의 과로는 요새 곁에서 모시는 혜빈께서 챙기실 것이니.
“여기 누우세요. 누워서 눈을 감아요.”
윤서는 침의로 갈아입은 이향을 요 위에 눕게 하고, 말린 국화꽃을 띄운 물에 수건을 적셔 얼굴에 짙게 묻어 있는 피로를 닦아주었다.
“홍위가 무어라 하던가요?”
이향이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저를 ‘엄마’라고 불렀어요. ···엄마라고 부르며 이제 다 컸으니 그렇게 애달픈 눈으로 보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부모한테 자식은 늘 아이잖아요. 홍위가 당신만큼 나이가 먹어서 흰머리가 희끗 희끗 해도 제겐 늘 안쓰럽고 짠한 아이 같을 거예요.”
“···부인.”
이향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며 윤서를 당겨 안았다.
졸지에 위에 엎어진 불편한 모양이 되어 꼬물꼬물 움직여 옆으로 파고들자, 팔베개를 해주며 이향이 말하였다.
“내가 부인에게 얼마나 크나큰 고마움을 느끼는지는, 하늘만이 아실 것이오.”
윤서는 이향의 팔에 편히 머리를 놓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저도 알아요. 전하께서 내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계시다는 거. 그리고 저도 감사하고 있어요. 시대의 한계를 넘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저를 사랑해주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렇게 해주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하.”
“···음. 그렇지. 그건 쉬운 것만은 아니오.”
으응!?
“하지만 노력한 것보다 더 큰 결실이 오니까.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들지, 부인은.”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윤서에게 이향도, 홍위도 그러한 존재였다.
함께 협경당에 모여 전골 요리를 끓여 먹으며 수다를 떨 때 선명하게 보인다.
서로 얼마나 더 잘해주고, 아껴주고 싶은지가.
이향이 없을 땐 홍위가 소아를 무릎에 앉히고 부드러운 이유식을 먹여주고,
희아는 늘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새벽이와 수학과 과학 이론을 토론하고,
금동이는 형과 누나와 동생들 틈에서 새로 발견한 귀중품의 빼어난 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다가 누구 하나가 그거 가지고 싶다고 말할라치면 “내가 구해 줄게.” 큰소리를 친다.
그렇지만 형제자매들도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놓고 어릴 적부터 서로 경쟁하는 존재이고, 객관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환경일지라도 그 내에서 어느 한 형제나 자매에게 부모의 사랑이 집중되는 편애가 있을 때 다른 형제들은 상처받고 서로 미워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윤서 자신은 외동이라서 그런 경험이 없지만, 심리학 공부에서도, 그리고 많은 상담 세션에서도 어릴 적 부모의 무관심이나 학대, 편애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내담자를 만나왔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배운 바대로 각각의 아이와 따로 오롯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시간을 안배했다.
공장이나 시장에 나갈 때는 늘 금동이와 손을 잡고 동행하며 물품을 만드는 원리, 현대의 금융 시스템, 대항해 시대의 해외 무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왕실에서 짓는 건물, 군기시에서 새로 만드는 발명품을 보러 갈 때는 새벽이와 손을 잡고 알고 있는 모든 과학 기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희아에겐 이제 정종이 있어 전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지만 때때로 혼인 생활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부모의 사랑이 자신에게 오롯하게 쏟아지는 순간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신도 형, 누나, 동생 못지않게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감 속에서 서로를 더 아낄 마음의 여유를 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노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윤서가 엄마여서 본능적으로 가진 모성애 외에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윤서는 얼굴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벌써 가볍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든 이향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란 작가가 쓴 어귀가 있어요, 전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말이에요. 제가 상담 세션을 진행하면서 배운 것은 상대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어긋났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하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전하. 감사해요. 우리 가족 모두 서로의 존재에게 고마워하고, 그래서 또 서로를 위해 힘껏 노력하고 있어서, 그리고 그 사실을 당신이 알아주고 또 노력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 가운데 가족의 행복이 싹튼다면, 수양 대군은 그 반대의 경우여서 더할 나위 없이 불행했다.
도원군이 한확의 여식이 아니라 영양위 정종의 누이 정연화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때.
“네가, 네가, 감히, 어떻게!”
도원군에게 소리친 수양 대군은 곧바로 입궐하여 소헌 대비를 뵈었다.
거센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피부에, 최근 받은 심적 타격으로 몹시 야윈 아들의 얼굴은 대비마마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하였다.
소헌 대비는 최 상궁을 불러 명하였다.
“유가 가져온 약재, 내의원에 가지고 가서 유의 체질에 맞게 탕약과 환약으로 서둘러 만들라고 명하거라.”
“예, 대비마마.”
“어, 어마마마! 그 약재들은 어마마마를 위해서 가져온 것입니다. 옆에서 모시지도 못하여 늘 죄송한데, 제발, 어마마마께서 달여 드십시오.”
“거울을 좀 봐라. 네 안색이 몹시 상하여 이 어미 마음이 무척 안 좋다. 건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효의 첫 번째야.”
최근 일어났던 일에 대해 아무런 꾸짖음이 없이 다정하게 챙겨주신다.
수양 대군은 어디에서도 터놓지 못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제게만 이리 세상이 가혹한 것입니까, 어머니. 소자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여서 아들도 제 뜻을 어기고 혼사를 결정하고, 저도 자식인데 아바마마께선 저를 불신만 하시니. 소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겠습니다, 어마마마.”
“하아. 유야, 유야. 이리 오너라.”
소헌 대비는 통곡하는 아들을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 구릿빛으로 변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위로하였다.
“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괴로울 것을 내가 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크다시피한 조강지처를 잃고 낯선 땅에서 고생하다 돌아왔더니 새 부인이 아들을 해치려고 했으니,”
“어머니! 그건 오해라고,”
“유야!”
얼굴을 쓸던 손을 멈춘 소헌 대비의 음성이 엄격해졌다.
“이 어미에게까지 네 마음을 속일 필요는 없다. 지나가는 개도 알만한 것을 영민한 네가 모를 수가 있겠느냐.”
“···어마마마.”
“안다고 해도 내칠 수 없는 그 마음도 내 알아. 그래서 현동이를 정씨 가문 소녀와 맺어준 것이다.”
“그, 그게!?”
“현동이가 한확의 여식과 혼인하게 되면 너와 현동이 모두 상왕 전하와 주상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치적 기반이 훨씬 약한 정가가 현동이의 장래를 위해 훨씬 낫다!”
수양의 눈물이 대번에 사그라들었다.
“어, 어마마마. 왜 어마마마까지 제게, 제게 이렇게 가혹하게 하십니까.”
“가혹이라니, 세상의 가혹함을 논하자면 이 어미만큼 논할 수 있는 자가 또 있느냐? 유야, 네 정말로 모르겠어?”
“무엇을, 말씀입니까?”
“왕가에서 왕을 제외한 그 누구도 감히 야망을 품어서는 아니 된다!”
“!”
“어미의 가문과 할마마마의 가문이 풍비박산으로 멸문이 되었던 것을 보고도, 이 사실을 아직도 몰라!”
피를 토하듯 소헌 대비의 음성이 애통하게 절절 끓었다.
“너는 네 형님이 화려하게만 세자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느냐? 그 애는 죽어라 노력했다. 완벽한 세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교체당할 수 있는 처지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매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거든. 폐위된 세자의 처지가 양녕 대군만큼 운이 좋겠느냐? 너는, 네가 아바마마처럼 택현의 명분으로 뽑혀 세자가 되고 왕이 되었으면, 네 형님을 살려두었겠느냐?”
“···어, 어마마마!”
“무엇이 그렇게 너만 억울한 게야, 무엇이! 현동 어미가 죄가 없이 죽었느냐?”
“하오나 뚜렷한 증좌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 약재들이 그런 효과를 낸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하아, 유야. 유야! 내 아버님은 증좌가 있어서 참혹한 고신 끝에 돌아가셨다더냐?”
“!”
늘 자애롭고 평온한 모습만 보이시고, 왕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실 것 같으면 침전 문을 걸어 닫고 칩거하시던 어마마마께서 처음 보이는 격렬한 모습이었다.
놀랍고 두려워진 수양 대군은 흠칫 몸을 물렸다.
“왕이란 그런 존재다. 의심만으로 누구든 죽게 할 수 있는 존재. 현동 어미가 죽을 때 너까지 죽지 않게 된 것만도 주상의 큰 은혜라는 것을, 아직도 몰라!”
“···그럼, 아무 생각도 가지지 말고 살란 말씀입니까? 쓰임을 받으면 나아가 일하고, 내치시면 그대로 물러나 숨만 쉬고 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살게 할 바엔, 대체.”
왜 낳으신 것입니까.
왜 낳아서 형님 전하 못지않은 교육을 받게 하셨습니까!
그러나 수양 대군은 차마 ‘왜 낳으셨냐’고까지 말하지 못하였다.
어머니에게 그 정도 불효자는 아니었다.
수양 대군은 입을 꾹 다물어 뒷말을 삼켰다.
목울대만 일렁이며 쓴 심정을 삼키는 아들의 모습에 소헌 대비는 한층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이번에 네가 은동이와 떠나면 다시는 못 보게 될 터이지. 네가 돌아오기 전에 내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미는 네게 모진 말을 할 수밖에 없구나. 내가 죽고 나면 누가 네게 이런 말을 해주겠니.”
“어마마마!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장수하시는데, 왜.”
“그 기세등등하시던 할마마마께서도 오십 중반에 돌아가셨다. 다른 후궁들은 아직도 쌩쌩하게 잘살고 있는데. 이 자리가 그런 자리니라. 왕의 자리가, 왕비란 자리가 겉으로만 대단하지 실상은 이래. 온갖 것에 마음 끓이고, 내키지 않아도 사람을 죽이고, 또 등용하고. 잘난 자식들 목숨 위태로울까 노심초사하는. 그러니, 유야. 이 어미 말 좀, 제발 들어.”
정말로 그러하였다.
한때 할바마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의빈 권씨도 아직 쌩쌩하게 살아 있고 다른 후궁들도 평안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할마마마는 친정의 멸문과 큰아들의 폐세자 일로 마음을 끓이시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어마마마.”
마음이 저미듯 아파진 수양 대군은 다시 소헌 대비의 곁에 가까이 다가앉아 손을 잡고 간곡히 고하였다.
“어마마마, 소자 잘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음 끓이지 마시고 부디 건강에만 전념하옵소서. 오 년 동안만 돌아오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소자 틀림없이 오 년 후에 돌아와 어마마마를 뵈올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게 소자를 기다리옵소서.”
“그래, 유야. 그러니 내 말을 명심하거라.”
소헌 대비는 자신이 오 년을 더 살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간곡히 다시 한 번 당부하였다.
“너는 중전을 원망한다만, 정작 중전은 제가 낳은 아들들을 아주 어릴 적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키우고 있는 것을 아느냐?”
“!”
“그 아이는 왕가에서 왕이 되지 못할 자들의 운명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래서 그렇게 조심을 하는 거다. 너나 현동 어미나 은동 어미나, 그런 신중함과 절제가 있었느냐?”
“······.”
“명심하거라, 유야. 아무리 대군이라도 왕명에 따라 살고, 왕명에 따라 죽어야 한다는 것을. 여송에 가서도 이 사실을 잊지 말거라. 죽기 전 이 어미가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예, 어마마마.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굳게 약속을 하고 교태전을 나왔지만, 모든 일은 수양 대군의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도원군이 수양 대군의 뜻과 다르게 정씨 가문의 여식과 혼인을 하게 되고, 수양 대군은 부부인 윤씨와 함께 장차 여송으로 떠날 것이란 소식이 한양의 세도가에 퍼지자,
서로 다른 세력이 서로를 가늠하여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새로이 무리를 짓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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