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격변의 3월 (1)
3월이 되자 도원군의 혼례 준비가 가시화되었다.
경혜 공주의 하가 이후 상왕 전하의 사내 왕손 중 처음 맺어지는 혼사였다.
게다가 도원군은 상왕과 대비마마께서 본래도 각별하게 어여뻐하신 손주에 그간의 여러 사정으로 이젠 아픈 손가락처럼 신경을 쓰시는 손주가 된지라 왕족 내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혼사였다.
이런 이유로 일본 대내전의 다다량포에서 대일 무역소를 책임지고 있는 한남군과 대만의 남부에서 커피와 차 재배를 감독하고 있는 평원 대군이 조카의 혼사에 참석하기 위해 2월 하순 경 배편으로 귀경하였다.
거제로 유배가 있던 계양군도 돌아왔다.
세종께서 깊은 고민 끝에 유배에서 풀어주고 다시 봉작을 돌려주셨기 때문이다.
군사 훈련에서 추문을 주동한 근본 책임이 양녕 대군에게 있고 계양군은 백부께서 권하시어 참여하여 즐긴 종범이란 점과 신빈 김씨가 마음고생 끝에 병석에 눕게 된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2월 말 한양에는 아직 달단과의 공성이 진행 중인 북경성의 사정 때문에 계속 명나라에 머물러 있는 금성 대군 외에 세종의 아들들이 모두 한양에 돌아오게 되었다.
3월 초하루.
돌아온 모든 왕자와 왕실 종친, 그리고 문무백관과 오도리 족, 골간 족 등의 여러 여진 추장, 한남군과 함께 온 대내전의 사절단, 대마도의 사절단까지 모두 참여한 대조회가 일렸다.
이 조회에서 금상 이향은 중차대한 교지를 내렸다.
[왕은 말하노라.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의 가호 아래 태조께서 조선국을 세우신 후 우리 조선은 통치의 강역을 꾸준히 넓혀 왔다.
특히 상왕 전하께서는 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우리 조선의 영토로 확정 지으셨고, 남으로는 대마도에서 왜구를 몰아내 만세의 근심을 제거하셨다.]
월대 위에 당당히 선 도승지 이사철이 이 대목까지 낭독하였을 때,
외국 사신 배정석에 서 있던 대마도의 사절은 움찔 몸을 떨며 종친석 맨 앞줄에 서 있는 한남군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한남군이 대내전에 일본과의 무역을 총괄하는 조선 무역소를 관장하기 시작한 후 대마도는 일본과 조선의 소통과 무역을 중개하던 지위를 잃고 생사의 존폐 위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아. 땅이 꺼질 듯 탄식하는 대마도 사절을 옆에 서 있는 대내전의 사절이 힐끗 바라보았다.
백제의 후예임을 내세워 조선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은 덕분에 구주 대륙이라 불리는 일본 동쪽 여러 번 중 최근 가장 강성한 세를 가지게 된 대내전의 사절은 울상이 된 대마도 사절에게 빙긋 웃어보임으로써 대마도의 가여운 운명을 조롱하였다.
월대 아래 서쪽 사절단 무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경전과 관계없이 도승지는 위엄 있게 교지를 읽어갔다.
[상왕 전하의 탁월한 치세를 이어받아 나 또한 조선의 국경을 교란하고 우리 백성과 주변 여진의 여러 부족을 괴롭힌 이만주와 동창 무리를 척결하여 환인 일대까지 우리 조선의 강역을 넓혔다.또한 바다 너머로 교류의 범위를 넓혀 구주 대내전의 영역과 저 먼 남방 여송에 조선의 무역소를 세워, 우리 백성뿐 아니라 그 일대에 사는 해외의 이웃까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종친석에 서 있던 평원 대군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왜 대만의 고지대에서 커피와 차를 재배하고 있는 나의 공은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거칠고 사나운 토착 세력에게 차와 커피 재배법을 보급해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조선과 그들이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맺게 된 나와 이양 대감의 공은 왜 빼놓으신 것인가!’
그러나 평원 대군은 이내 표정을 도로 폈다.
드디어 수확하게 된 커피 콩을 들고 귀국하였을 때 아바마마께서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기뻐하시고, 형님 전하께선 석회와 모래를 섞어 굳히는 시멘트로 한양의 궁 못지않게 화려한 궁을 현지에 지어주시겠다고 약조하셨던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귀국하게 된 것은 조카의 혼례에 참석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부인과 함께 차와 커피를 마시며 풍류를 즐길 어여쁜 노비들, 아니지, 이제 조선에서 노비는 없어지게 될 것이라니 어여쁜 시비를 데려가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아침이면 푸르른 산골짜기를 타고 운무가 신령스럽게 피어오르는 곳에서 어여쁜 시비와 시를 짓고 비파와 거문고, 새로 개량한 칠음계의 목금 연주를 감상할 생각에 흐뭇하게 수염을 쓸던 평원 대군이 귀에 들리는 새로운 내용에 놀라 월대 위를 바라보았다.
[천축국과 남방 지역과의 무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여송에 세우는 조선 무역소는 그곳을 기반으로 그 남쪽, 아직 문명의 개화가 닿지 못한 큰 섬으로 조선의 강역을 넓히는 향후 백년지대계의 전진 기지로 작용할 것이다.이를 위해 그간 남방 개척을 책임져 온 수양 대군을 여송 조선 무역소의 총독으로 임명하여 주변국과의 외교와 무역 교섭을 전담하게 할 것이다. 또한 여송에 나가 있는 우리 조선의 신민과 상단을 보호할 군병 운영 책임자인 부총독으로는 유응부를 임명한다.]
‘총독’이라니!
수양 대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이사철을 노려보았다.
번국의 왕으로 봉하거나, 왕이 부담스러우면 공작이나 아니면 후작 등 봉지를 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제후로 책봉할 줄 알았는데,
총독이라니!
대체 총독은 무슨 작위인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작위인 ‘총독’ ‘부총독’에 의아한 이는 수양 대군이나 평원 대군뿐만이 아니었다.
월대 아래 서 있는 모두가 방금 들은 ‘총독’이 번왕이나 공작, 후작처럼 독립적인 영토와 통치 권한을 하사받는 것인지, 원래 ‘총독’이 중국의 지방 성의 한 관직인 것처럼 임기가 한정된 임명직에 불과한지 서로 수군거릴 때.
달라진 체제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회 체제를 가져야만 효율적으로 존속하고 발전할 수 있음은 역사가 증명해 온 바.
상왕 전하께서는 일찍이 해외 무역, 외교 개척지의 토착 거주인을 우리가 지배해야 할 피지배 계층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번영을 누릴 협력 세력으로 규정하고 대우하라 명하셨고 이에 따라 대우해 왔다.
이제 우리 조선의 강역 안에서도 지배와 피지배로 양분된 신분 체제를 재고할 시기가 되었다.
하여 조선의 다섯 번째 국왕인 나 이향은 석 달 뒤 6월 초하루부터 조선의 백성은 오로지 양인으로만 존재할 것이며, 아비가 노비이든 어미가 노비이든 외방의 기생이든 관계없이 모두 천역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임을 선포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노비의 처우와 처리에 대해서는 별도의 교지로 그 보상안을 논할 것이다!]
순간 근정전 앞뜰은 깊은 물 속처럼 고요해졌다.
조선의 노비 팔 할 이상을 소유한 자들이 충격과 경악으로 침묵하는 가운데 이따금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상왕 전하와 금상 전하께서 노비 세습을 없애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로 흘러나와, 이 자리에 설 정도의 관직과 작위를 가진 자라면 누구나 조만간 노비제가 없어지리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산의 중요 비중을 차지하는 노비를 양민으로 속량시킬 때 그에 대한 보상은 무엇일지, 만일 노비 속량안에 따르지 않을 때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없이 덜컥,
초하루 대조회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삼 개월 후 시행을 공표하시다니!
발 빠르게 해외 무역에 한 발 걸쳐 원래 있던 부에 더욱더 막대한 부를 쌓아가고 있는 국중 거부 박종우와 윤사로마저 놀라 입을 떡 벌릴 교지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소리 내어 놀람도 불만도 토로하지 못했다.
근정전을 둘러싼 금군의 기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도 있게 위압적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지원 요청이 오기 전부터 조선의 금군과 갑사는 신분에 관계없이 빼어난 무예 실력만으로 선발되어 무구와 갑옷 일체와 함께 월봉을 지급받는다.
나라에서 녹을 받는 정식 관원이 된 이들은 금상 전하께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고 있으니, 공연히 불만을 제기하였다가 언월도에 베이든지, 아니면 맨 뒷줄에 화승총을 세워 들고 서 있는 총병의 총탄에 목숨이 날아가든지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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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온데 어찌하여 천역 세습 폐지에 따른 보상안을 오늘 공표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까? 정인지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이미 세부 실행안을 여러 번 검토하여 확정 짓지 않으셨습니까?”
대조회가 끝난 후.
홍위는 조회에 참석하지 않으신 상왕 전하께 아침에 올리지 못한 문후를 여쭐 겸 또 조회의 분위기도 전할 겸 겸사겸사 천추전에 들었다.
세자의 자리에 서서 조선 대격변을 예고하는 교지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었던 홍위는, 세부 시행안은 나중에 공표될 것이란 말에 희게 질리던 얼굴들을 떠올리고 궁금하던 점을 상왕 전하께 여쭈었다.
먼저 노비 신분 폐지안을 기습적으로 공표한 후 보상 세부안은 추후 공표하기로 결정하신 분이 할바마마시기 때문이다.
“참, 그리고 또 ‘총독’이 정확하게 어떤 직책인지도 공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들 너무 궁금해서 지금쯤 한양의 기생집이며 또 사랑채가 총독이 과연 어떤 직책인지 추측하는 말소리로 들썩들썩할 것입니다.”
홍위의 물음에 세종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예고 없이 파격적인 교지를 낭독하게 할 수 있는 힘은 강력한 왕권에서 나온다. 그리고 군주가 자신이 가진 힘의 기반에 한치의 의심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주상이 가진 그 확신을 세종은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정치는 심리라는 말, 들어보았느냐?”
“···아니요, 할바마마.”
어머니께 심리학을 전수받으신 후 걸핏하면 모든 일에 ‘심리’를 붙이시는 할바마마가 나름 귀여우시다고 생각하며 홍위가 벙싯 웃었다.
“심리다. 모든 것이 다 심리야. 민심은 천심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백성의 심리가 국가 대사의 성패까지 결정짓는다는 말이 아니더냐? 네 어머니가 내게 해준 이야기 중에 유대인이란 한 민족을 체계적으로 말살하려 한 미친 폭군이 저 유럽 어디에 있었는데, 그에겐 그 미친 짓을 할 만한 권력을 잡게 한 괴벨스란 민심 선동가가 있었다더구나. 그러니 홍위 너도 국정을 이끌 때 신하와 백성을 설득할 심리 술을 유념해야 하고, 또 백성의 마음을 그릇되게 홀리는 요설가와 군주의 마음을 쥐고 흔들려는 간신배를 늘 경계해야 하느니라.”
“예, 할바마마. 어머니가 제게 할바마마는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이시고, 또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깨치기 쉬운 문자를 만드신 천재라고도 하셨어요. 그런데 할바마마께서 심리에도 정통하시니, 소손 정말 감탄할 뿐입니다.”
“하이고, 네가 어머니한테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하는 심리 화술을 배웠구나.”
“아니에요. 어머니는 정말로 무지막지하게 할바마마를 존경하셔서, 그래서 할바마마께서 가끔 두렵게 하실 때조차도 소손에게 늘 할바마마의 애민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를 그리 지극하게 아끼는 어머니를 위해 저리 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윤서가 워낙 자신을 존경한다는 사실은 주상도 여러 번 고했던 적이 있던지라 세종은 흐뭇하게 홍홍 웃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최악을 가정한다고 한다. 진화적으로 그러하다고 하더구나. 최악을 대비해야 생존을 하여 후손을 남길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해. 그것이 진화 심리학이라던가. 하여간 그리하여 오늘 노비와 각종 천역의 신분을 없앨 것인데 그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지 공표하지 않으면 이를 들은 자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홍위 네가 유추해보거라.”
“아! ‘보상도 없이 그저 천역의 신분제를 폐지하기로 한 왕명에 무조건 따르거라.’ 하고 상상할 것이란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는데 기대하지 못했던 보상안이 공표되면 훨씬 더 자발적으로 수용할 마음 상태가 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니옵니까?”
역시.
“그러하다! 상당히 합리적인 보상안인데, 만일 그 안을 오늘 들었다면 그래도 노비를 잃게 되었다고 불만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허나 아무 것도 보상받을 수 없을지 모른단 비관에 한 달 넘게 마음을 졸인 후 합리적인 보상안을 듣게 되면 훨씬 더 기꺼이 수용하려 들겠지.”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쉽지 않은 폐지안이었단 말씀이지요? 수양 숙부를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시고요.
“그래! 그러하다. 마소처럼 재산으로 여겨온 노비를 잃게 되는 것을 어찌 쉽게 수용하겠느냐. 또 수양을 비롯하여 해외 무역에 관심이 큰 자들 모두 총독이 무엇일지, 어떻게 대비해야 이익을 극대화할지 지금쯤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하고 있겠지. 그러라고 던져준 것이니라.”
세종께서 예상하신 것처럼,
분경 금지에도 불구하고 당장 이날 밤부터 한양의 세도가와 대군의 집에서 연달아 은밀하게 모임이 열렸다.
노비를 양민으로 속량하는 데 따른 보상안이 무엇일지,
총독이 도원군에게까지 세습되는 작위인지 아니면 임기가 정해진 임명직인지,
전하께서 공표하신 대로 앞으로 더욱 늘어날 해외 진출에 한 발 걸치기 위해서는 누구의 줄을 잡아야 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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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야 그렇다 치고, 왜 수양 대군에게 번왕(藩王)도, 공작, 후작, 백작도 아니고 총독(總督)이란 낯선 직을 하사하신답니까? 대감께선 이에 대해 뭐,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계양군이 수양 대군의 재산 관리를 맡아볼 정도로 가까우니, 혹여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한때 왕도 어쩌지 못할 권세를 자랑하였던 한확의 집에 조선 최고의 거부 윤사로가 은밀하게 찾아들었다.
파평 윤씨 가문의 일원이자 세종의 서녀 정현 옹주의 남편인 윤사로는 수양 대군의 두 번째 부인인 윤씨 편에 서야 할지, 아니면 부친 수양 대군보다 오히려 중전과 더 가깝다는 도원군 편에 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한명회와 공통의 끈이 있는 한확을 찾아온 것이었다.
한명회는 윤사로와 내재종 관계이기도 하였다.
“나야말로 묻고 싶네. 그 보상안 말일세. 자넨 부마에다 한양의 재물 상당수를 쥐고 흔드니 뭔가 들은 바가 있지 않은가? 정인지에게 넌지시 물었는데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아. 하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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