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격변의 3월 (2)
“···당장의 보상안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대감. 권력만 있으면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곧 만회하고도 남을 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을요.”
이십 대 후반 한창 패기만만한 나이에 이재까지 탁월한 부마 윤사로가 손을 내저었다.
“공납이 폐지되면 방납으로 큰 부를 쌓아온 저와 같은 이들이 모두 몰락할 것이라 고소해들 했지요. 허나 제가 몰락했습니까? 궐과 관에서 필요한 물품은 동일하고 누군가는 그걸 공급해야 하는데요. 결국 공물을 대납하던 방납 업자가 궐에 물품을 공급하는 중간 상단으로 바뀐 것뿐이고, 그 중간 상단의 선정을 누가 합니까?”
궁궐에서든 관청에서든 모든 물품을 직접 구입할 수 없으니 중간 업자를 통해야 하고, 그 중간 업자는 결국 자신과 같이 권력을 가진 자들과 결탁해야만 납품을 할 수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노비 세습이 폐지된다고 해도 노비가 하던 일이 없어지겠습니까?”
노비들이 해오던 노동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결국 권력층과 또 권력과 두터운 줄을 가진 자들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자신만만한 공언이었다.
한확은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풍성한 수염을 쓸어 비웃음을 감췄다.
‘왕의 사위가 되어서도 시중 잡배들처럼 장리를 놓아 원금의 몇 배씩을 가렴주구하는 자답게 오로지 제 이득의 관점에서만 논하는군. 시시때때로 내려오는 현물 요구에 토지를 버리고 도망칠 정도로 혹독했던 공납이 폐지되면서 백성의 부담이 훨씬 경감된 것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어쨌거나 한확은 한성부를 책임진 현직 한성부윤이고,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두 누이 덕분이라고는 하나 오랫동안 여러 요직을 맡아온 조정 관료였다.
그래서 왕실과 관청이 요구할 할 때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현물을 구해 바쳐야 했던 공납 체제 자체가 양민들에게 크나큰 부담이었고, 또 납부 과정에서 수령이나 방납 업자의 농간이 끼어들기 쉬운 부패의 취약 지대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자신도 지방관으로 나가 있을 때 중간에서 많이 착복해 여러 곳에 두루두루 선심을 썼고, 또 자신도 다른 지방관이 착복해 바치는 공물을 선물로 많이 받았던 과거는 떠올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수려한 얼굴 뒤에 숨긴 경멸을 알아채지 못하고 윤사로가 계속 야심차게 방문의 목적을 설명하였다.
“허니 대감, 지금 시급한 사항은 수양 대군이 영구히 해외의 개척지를 다스리게 될 것인지, 아니면 관찰사처럼 일정 기간 담당하다 다시 귀국하게 될 것인지 여부입니다. 그것을 알고자 대감을 찾아뵌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왔군. 낸들 알 리가. 사위 계양군은 요 몇 년 상왕 전하께도 주상 전하께도 쓰임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변방에 내쳐져 있었고, 나 또한 물의가 있었던지라 감히 상왕 전하와 주상 전하의 어심을 가늠할 처지가 되지 못하네. 한성부윤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도 성은이 망극할 일일세.”
“······!”
한때 궁녀를 강간했는데도 왕께서 아무 책망도 못하실 만큼 그렇게 대단하게 위세를 부려댔던 자가 이리 겸손해지다니.
윤사로는 놀라 눈을 껌벅거렸다.
정말로 한확은 이 출간된 후 계속되는 정치적 좌절에 신중해져 있었다.
‘명나라에서 달단이 물러가고 포로로 잡혀간 황제가 돌아오면 다시 세력을 도모할 기회가 오겠지. 공신 부인 누이가 의 내용을 토대로 황태자의 양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하니.’
누이의 돌봄 속에 자라난 황태자가 무사히 황위에 오르기만 하면 여비 누이 때보다 더욱 큰 영화를 누릴 수 있고, 조선 왕실과 또 왕족과 계속 든든한 혼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한확은 ‘총독’이란 미심쩍은 작위를 받아 해외에 나가는 수양 대군과 사돈을 맺지 않게 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당장 닥친 노비의 상실을 더 근심하고 있었다.
명나라의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누이가 황태자를 잘 보필하며 황궁 내 세력을 키워가려면 당분간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런 때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노비를 잃어야 한다니!
하아.
“···저, 대감. 그리 말씀하시니 차라리 솔직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전과 달리 자꾸 거리를 두려는 한확에게 윤사로는 솔직하게 용건을 꺼내 놓았다.
“저의 외재종조부님과 평소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신다지요? 저야 한참 멀어진 인척에 항렬이 워낙 높으신지라 평소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윤사로의 외재종조부란 한명회를 말한다.
증조할아버님의 후처로 들어오신 분이 한명회의 고모님이셨지만 자신은 그 후처에서 내려온 소생이 아니었고, 또 한명회가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한량과 왈패 무리와 어울려 팔도를 떠도는 기인이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한량이 수양 대군을 따라 해외에 나간 후 대단한 수완을 보이고 있다!
‘세상일이 어찌 돌아갈지 모르고 돈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으니, 두루두루 관계를 맺어 두어야 계속 권세와 재물을 쌓아나갈 수 있다!’
파평 윤씨 가문은 고려 때부터 명문으로 조선 건국 후에도 윤규와 윤곤 등 학문에 현달한 조상이 많고 또 미색이 빼어나고 총명한 여식이 많았다.
이를 바탕으로 왕실과 혼사를 거듭 맺어 최고 명문가로 부상하려던 야심을 품고, 금상 전하께서 세자이시던 시절 후손을 보지 못할 때 세제 격인 수양 대군을 전폭 지원했다.
하지만 불미스럽게도 수양 대군의 첫 부인 윤씨가 감히 왕손을 해하려 한 사실이 탄로나 죽임을 당하면서 가문의 평판에 금이 갔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부인마저 도원군을 해하려 했단 추문에 휩싸이며 자칫하면 더 이상 왕실과 혼맥을 맺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가문 내에 팽배하다.
‘수양 대군이 해외에서 총독으로 영구 집권하면 계속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 후손과 거듭 혼맥을 맺어야 하고, 수양 대군이 밀려나고 도원군이 그 총독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경우라면 생모와의 인연을 들어 도원군을 지원해야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아예 여식들을 왕실에 밀어 넣을 욕심을 접고 학문에 빼어난 기량을 보이는 사촌 윤필상, 육촌 윤은로 등이 조정에서 요직을 차지할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명회가 수양 대군의 둘째 아들과 자신의 딸을 장차 혼인 시키기로 이미 약조하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왜인 상단과 화인 상단이 차지하고 있던 무역을 무섭게 치고 들어가고 있을 수완이면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벌일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넌지시 한명회와 다리를 놓아달라 부탁하기 위해 한확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확은 피곤하다는 듯 손을 내어젔다.
“명회는 구촌 조카라고는 하나 뜻과 포부가 너무 황당할 때가 많아 깊게 교류하지 않네. 명회와 수양 대군의 앞날이 어찌될지 궁금하다면 궐에 수시로 들어 중전마마를 뵙는다는 옹주 자가를 통하심이 더욱 확실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이렇게 묻지 말고 돌아가 상왕 전하의 따님인 자네 부인을 통해 알아보란 핀잔이자 이만 돌아가 보란 노골적인 축객령이었다.
‘하, 자신이 아직도 명나라 황제의 대단한 인척인줄 아나.’
윤사로는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부를 위해서 두루두루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거부답게 노련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노비 문제는 너무 심려 마옵소서, 대감. 두 분 전하께서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고 계시지 않습니까? 단언컨대 노비 부려 농사짓거나 대신 내세워 겨우 시전의 조그만 이문이나 탐하던 시대보다 오히려 더 큰 이문을 만들어 낼 시대가 올 것입니다.”
윤사로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오며,
어서 부인 정현 옹주를 궐에 보내 미래 동향을 살피게 하는 한편,
자신도 조만간 명례궁을 방문해 처남 수양 대군이 앞날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지, 한명회와 정말로 혼약을 한 것인지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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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로나 한확처럼 국왕의 결정을 개인의 이익을 기준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상왕 전하 치세 말기에서 금상 전하의 치세로 이어지는 동안 급변해온 여러 제도의 함의를 제대로 이해한 후 노비제 폐지의 파급 여파를 미리 예단해 대비하고자 하는 뜻깊은 신하는 더욱 많았다.
그 대표 주자가 이번 노비 세습제의 폐지와 보상안까지 마무리 짓고 은퇴하길 원하는 영의정 황희였다.
민생과 군무, 외교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최고로 유능한 신료였다고 모두 칭송하지만.
정작 노 정승 자신은 화폐 제조와 유통을 시작할 때부터 국왕께서 펴시는 경제 정책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전하의 정책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마저 그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이 조정 관료와 사족(士族), 나아가 백성에게 큰 설득력을 가지고 제대로 행해질까가 근심이기도 하였다.
금상 전하께서는 오랜 세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왕권과 군권을 행사하며 조선의 변화를 빠르게 이끌고 계시지만, 그러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전하의 정책을 이해하고 뒷받침할 신하가 조정에 필요하다.
당장 토지 여덟 결을 기준으로 돌아가며 현물로 바치는 공납을 전격 폐지하고 일 년에 한 번 기존 전세에 일 결당 곡식 다섯 두, 은화로 한 냥을 추가로 거둬들이도록 정한 세수 개혁안은 백성의 고통을 상당 부분 줄여주었지만 그만큼 땅을 많이 가진 토지주의 불만을 샀다.
또 궐에서 여는 각 행사와 관청에서 소모하는 물품을 구입하기에 거둬들인 세수만으로 충분치 않아 부족분을 내수사에서 따로 보충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저어, 대감 마님!”
국왕 개인의 재산인 내수사와 호조의 세수가 서로 섞여 집행되는 것이 관행화 되면, 훗날 탐욕스러운 왕이 내수사의 몫을 국가 예산에서 빼버릴 경우는 어찌 될 것인가,
장차 올 임금이 지금의 전하들처럼 애민 정신과 자기 절제가 투철하리란 보장이 없으니 처음부터 국가 세수와 임금의 개인 재산이 섞이지 않고 호조가 거둬들이는 세수 내에서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일이 정착되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어떤 세목으로 어떻게 수취해야 하는가.
조만간 노비 세습제 폐지의 보상안으로 시행하신다는 정책은 정말 실효를 가질 수 있을까.
여러 우려에 잠겨 있는 황희에게 밖에서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감 마님, 병판 대감께서 오셨습니다.”
“으응?”
황희는 귀를 의심했다.
병판이라니, 김종서가!
김종서는 자신이 키운 후배였지만, 그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때로 종까지 대신 매질해가며 혹독하게 조련했고 그 결과 김종서는 자신을 몹시 어려워했다.
공무에서야 깍듯하게 대하고 조정 일에서는 빈틈없이 협업하지만 사석에서는 영 긴장하여 제대로 시선도 마주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런 종서가 먼저 집으로 찾아오다니.
오늘 해가 동쪽으로 진 것인가!
“······.”
사랑채에 들어온 김종서는 절을 올리고 내준 방석 위에 단정히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허옇게 센 조정의 대신이 무릎을 꿇고 앉아 뭔가 중한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내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딱해, 황희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다구를 들여오너라!”
여종이 다구 일체와 보글보글 물이 끓는 화로까지 들여놓고 나가자, 김종서가 주섬주섬 도포 소매에서 꽁꽁 묶은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중전마마께서 볶아 보내주신 햇커피이옵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한잔 내려드리겠습니다.”
“하앗, 평생 호사라고는 모르던 늙은이가 커피 다구를 품에 넣어 다니며 내려 마신다니.”
놀리는데도 김종서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찻물 식히는 종지에 물을 따라 한 김 식히고, 밑이 좁은 도자기에 거친 종이를 올린 후 구수한 향이 물씬 풍기는 갈색의 가루를 털어 넣고, 천천히 물을 붓기 시작했다.
갈색 가루가 팽팽 부풀어올랐다.
“중전께 배운 솜씨인가?”
“예, 중전마마께서 커피 내리는 다구와 종이까지 일체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중전께서 김종서에게 정기적으로 커피 콩을 볶아 보내시는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김종서가 군사를 이끌고 요양 성 일대에 나가 있을 때도 군량미 수레에 볶은 커피 꾸러미를 실어 보내신 일은 아주 유명하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커피에 중독된 상왕 전하와 중전마마가 커피 재배지인 대만에서 북부의 사나운 토착 세력과 충돌이 날 경우 군무에 빼어난 김종서를 보내 반드시 경작지를 지켜내기 위해 부러 김종서를 커피에 중독시키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정도이다.
매사 청렴한 김종서도 커피 앞에서는 미약에 중독된 것처럼 맥을 못 추고, 매사 무리가 없는 중전께서도 세간에서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김종서에게만 따로 커피를 보내는 것이 자못 기묘한 일이라고 황희가 흥흥 웃었다.
“대감, 제가 경제를 모릅니다.”
첫맛은 쓰고 뒷맛이 구수한 커피를 절반 정도 비운 후에야 김종서가 오늘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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