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도원군의 혼인 (1)
“고려사를 집필하면서 보니 고려의 성종이 철전을 주조하여 유통하려다 실패하였고, 또 태상왕 전하와 상왕 전하께서도 저화를 유통하려 부단히 애쓰셨는데도 실패하였었는데 이제는 원활하게 유통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시장이 점점 활성화되어서라는 것은 이해하는데 말입니다, 대감. 하아.”
열여섯 살에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고금의 문헌과 경서에 출중하고, 빼어난 실무 능력으로 줄곧 상왕 전하와 금상 전하의 신임을 굳세게 받아온 김종서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슨 말이 이어질지 짐작이 뻔히 갔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게지.
황희는 벙싯 웃으며 빼어난 문관이자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무관이기까지 해 그만큼 오만했던 김종서의 입에서 처음으로 ‘부족하다’는 겸양의 고백이 흘러나오길 기다렸다.
“화폐의 통화량을 조절하여 물가를 조절한다는 정인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나라에서 화폐를 제조해 유통하는 일이 어떻게 재정적 이익을 확보할 방편이 된다는 것인지 아무리 들어도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여러 분야의 이론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 상왕 전하의 총애를 다투는 경쟁자이지만 백성을 상대로 고리대인 장리를 놓아 부를 탐하고 실무에서 걸핏하면 실수를 해대는 정인지를 김종서는 내심 경멸해왔다.
그런 정인지가 상왕 전하의 뜻을 받잡아 새로운 조선의 가장 중요한 개혁 정책인 화폐와 경제 이론을 말할 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김종서에겐 크나큰 충격이자 치욕이었다.
‘하아 종을 대신 매질하며 깨우치려 해도 영 고쳐지지 않던 오만과 독선이 결국 자신의 무지에 직면해서야 고쳐지는구나.’
체구는 작아도 북방에서 군사를 이끌며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 육십 후반에도 창창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니 자신처럼 이십 년은 더 너끈히 전하를 보필할 수 있으리라.
하아.
마음 놓고 은퇴해도 되겠어, 정말로.
흐뭇해진 황희가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잘 모르네. 아무래도 상왕 전하께 우리 신하들이 배움을 청해야 할 듯하이.”
“···‘그것 하나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머리로 무슨 조정 일을 주관하는가.’ 하고 면박을 주실 터인데요.”
“괜찮아. 면박을 주시면서도 또 상세히 잘 가르쳐주실 것일세.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여 무능한 신하로 죄를 짓는 것보단 퉁박을 받아가면서도 배워서 유능한 신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충(忠)이 아니겠는가.”
황희는 조만간 의정부의 세 정승과 육조의 여섯 판서, 그리고 실무를 추진하는 참의까지 모두 모여 상왕 전하, 금상 전하와 함께 국가 경제 시책 결정의 근본 원리를 배우고 논하는 경연 자리를 만들리라 다짐하였다.
*
*
*
“우리 연화가 살림을 지휘할 안채와 부엌이 좀 좁은 듯한데 말이지요.”
정종의 누이 정연화와 도원군의 혼례가 열흘 남짓 남은 3월 중순.
효령 대군의 부인 해령 부부인 정씨와 정종의 어머니 숙부인 민씨, 수양 대군의 부인 윤씨, 그리고 도원군의 대모 격으로 혼사를 주관 중인 윤서가 동별궁 옆에 위치한 서른 칸짜리 작은 기와집을 둘러보고 있다.
남편이 일찍 죽은 후 홀로 딸과 아들을 키우는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던 민씨였다.
그런데 아들 정종이 경혜 공주와 혼인한 데 이어 딸이 도원군과 혼인하게 되었다. 거듭되는 행운에 자만하기보단 삼가고 조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숙부인 민씨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여기저기 손으로 쓸어보고 콩콩 두드려보기만 했다.
구석구석 살펴 미흡한 점을 지적하는 이는 효령 대군의 부인 정씨였다.
성품이 수더분하고 부드럽기로 유명한 정씨가 조카의 신혼집에 말을 보태는 이유는 창백한 얼굴로 뒤따르고 있는 부부인 윤씨를 의식해서였다.
‘시어머니랍시고 우리 조카를 함부로 대했다간, 알지!’
경고의 의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일부러 이것저것 지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령 부부인이 뭐라 경고하기 전에도 윤씨는 바싹 엎드려 신중해져 있었다.
대비마마를 뵙고 명례궁으로 돌아온 수양 대군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어마마마께선 몹시 가여우신 분이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이오. 그러니 나는 한양을 떠나기 전까지는 어마마마의 뜻에 절대 순종할 것이오. 부인도 자중자애하고, 결코 물의를 일으켜서는 아니 되오.”
그 후 자가께선 ‘총독’이란 근본 없는 직책을 받을 예정임에도 다른 때처럼 울분을 터트리지 않고 명례궁 총괄 내관 한이조와 노비 임어을운과 함께 낮에는 강령포 남쪽에 지어진 조선소에 나가 선박을 건조하는 일을 감독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하아.
이제 스물한 살, 은동이를 낳은 후 윤씨는 소녀의 풋풋함을 벗고 여인의 농염함을 입어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자가는 윤씨 곁에서 밤을 보내는 대신 대비마마의 명에 따라 여러 첩실과 밤을 보냈다.
어두운 밤이 이슬 맞은 축축한 새벽으로 변할 때까지 명례궁의 외궁, 자가의 거처에서는 경정 공주가 보내온 악비의 비파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고른 미인들의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때로 화려한 비파의 선율에 자가의 황홀한 옥피리의 선율이 희롱하듯 은근하게 섞여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궁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는 윤씨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질투로 방바닥을 뒹굴며 이를 갈았다.
‘다 완벽했는데!’
도원군이 평소 향신료에 배앓이를 심하게 하는데도 기어이 여송에 보내 결국 그곳에서 쇠약해져 죽게 되고, 그만큼 동생에게도 조카에게도 매정하셨던 주상 전하가 사과의 의미로 더 큰 권한을 자가께 하사하시게 하는 것이 윤씨의 복안이었다.
그를 바탕으로 자가는 더 큰 대업을 이루실 터이고, 그 대업을 훗날 은동이가 이어받도록 예정한 그 치밀했던 복안이 다 중전 때문에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윤씨는 중전에 대한 원한을 차곡차곡 마음 깊숙한 곳에 쌓아갔다.
그래도 겉으로는 처음 혼인했을 때처럼 눈빛을 맑게 하고 대비마마께서 행하신 바대로 자신도 자가께서 특히 어여뻐하는 비파 측실에게 옥 비녀를 선물하는 등 친절하게 대하였다.
파평 윤씨 가문에서 엄하게 경고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파평 윤문은 전조 고려 때부터 왕족과 혼인할 수 있는 재상시종(宰相之宗) 가문 중 하나였고,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왕실과 거듭 혼맥을 이어오고 있는 명문가 중 명문가이다. 한데 너는 그 더러운 행위를 들켜 가문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고 장차 왕실과의 혼사의 가능성을 다 어그러뜨릴 뻔하였다. 그리 들키고도 너의 종고모님 꼴이 되지 않은 것만도 성상의 은혜이니, 허튼 생각 버리고 오로지 대군 자가 보필하는 일과 도원군의 혼사를 잘 치르는 것에만 전념하거라.”
여기서 더 무리한 짓을 벌이면 가문 차원에서 단죄할 것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윤씨는 거처의 협소함을 지적하는 부부인 정씨께 공손히 고하였다.
“다행히 우리 도원군이 지낼 바깥 사랑채는 뜰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가을이 되어 우리 자가와 제가 여송으로 떠나고 나면 바로 명례궁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니, 당장 마음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두 분께선 당분간만 참아 주시어요, 부부인, 숙부인.”
“···우리 도원군이라. 표현이 좀, 과하네.”
“아, 아니, 저는······.”
해령 부부인의 조소에 윤씨는 얼굴을 붉히며 우물거렸다.
해령 부부인은 윤씨의 그런 모습을 싹 무시하듯 몸을 돌려 윤서에게 물었다.
“중전마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윤서는 새벽이의 손을 잡고 거처를 둘러보며 곧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희아와 연화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말씀하시지요.”
“우리 연화에게 제가 혼인할 때 친정에서 받은 노비 다섯 구를 나누어줄까 합니다. 하온데 조만간 노비제 자체가 금지될 것이라지요. 그럼 이 경우 어찌해야 할까요?”
“!”
“!”
“!”
부부인이 나직하게 물었는데도 온 사방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멀찌감치 서 있는 호종 궁인들은 물론 안뜰에서 우물을 파고 있던 사내 노비들까지 삽질을 멈추고 이쪽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과연 초미의 관심사였다.
보통 집에 거느리고 사는 솔거 노비의 경우 정해진 임금이 없이 그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것에 그친다.
주인에 따라 명절 등 특별한 경우에 철전이나 동전 몇 푼을 주는 경우도 있고 특별한 옷감이나 장신구를 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심성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다수를 차지하는 외거 노비의 경우 일 년에 사내 종 노(奴)는 면포 두 필 (쌀로는 열 말, 화폐로는 은화 두 냥)을 바치고 계집 종 비(婢)의 경우 면포 한 필 반을 바치게 되어 있다.
내수사에 속한 공노비도 이제까지 면포나 쌀, 은화와 동화로 신공을 바쳐왔고, 이것이 내수사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모두 양민으로 속량할 경우 줄어들 내수사의 수입을 어떻게 벌충할 것인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내수사 궁방전의 경우 얼마만큼의 세를 거두고 또 임금 노동자로 고용할 경우 얼마의 임금을 주고 얼마만큼 이윤을 일으킬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가가 요새 윤서가 골몰해 있는 과업이었다.
윤서가 노비제 폐지에 얽힌 복잡한 사정을 먼저 짚어보고 있으려니, 새벽이가 손을 당겼다.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윤서가 허리를 굽혀 키 높이를 맞추자 새벽이가 까치발을 들어 윤서의 귀에 입술을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먼니, 소자가 계산해 드일까요?”
윤서가 계산이 더뎌 답을 못하고 있는가 어린 마음에 걱정이 되어 묻는 말이었다.
그 조그마한 머리로 어머니를 위해 벌써 여러 경우의 숫자를 팽팽 굴리고 있는 막내아들이 귀여워, 윤서는 새벽이를 번쩍 안아 들고 귀에 뽀뽀를 하며 속삭였다.
“아니야. 다른 거 잠시 따져보느라고 생각하는 중이었어.”
“으히히, 네에, 어먼니.”
홍위는 이럴 때 목을 단단히 감아들고, 금동이는 기분이 좋아 입꼬리를 쑥 끌어 올리며 헤헤 웃는데, 새벽이는 귀가 간지럽다고 몸을 움츠리며 뒤로 뺀다.
아들이 셋뿐인데도 이렇게 반응이 다르다.
윤서는 뒤로 몸을 젖히는 새벽이의 등을 단단히 받치며 부부인에게 앞으로 바뀌게 될 사안을 설명했다.
“노비제가 없어진다고 해도 일자리는 여전하니 월봉을 지불하면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당분간 집에서 일을 보는 이들의 최저 임금을 성인 네 사람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식량으로 책정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보통 성인이 한 끼에 반 되를 먹으니, 하루에 두 되, 한 달이면 쌀 육십 되, 대략 여섯 말이 최저 임금이 되겠지요.”
“아, 알겠습니다, 중전마마. 두 끼는 너무 박하니 세 끼 먹는 걸로 따져 주라고 연화에게 말해야겠네요..”
노비에게 큰 아량을 베풀기로 유명한 해령 부부인이 호기롭게 말하였다.
“지금이야들 보통 반 되를 먹지만 차차 먹는 양들을 줄여가는 추세니 그닥 부족하지 않은 월봉이 될 것입니다.”
윤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학당을 통해 펼치고 있는 ‘건강을 위한 소식’ 운동과 관련이 되어 있다.
조선에 와서 크게 놀란 사안 중 하나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고봉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현대의 밥그릇 세 배 정도가 될 크기에 한가득 담아 먹는 경우가 보통이라서, 권가 나인의 몸에 든 윤서가 전생의 버릇대로 밥그릇에 삼 분의 일 정도만 담아 먹자 세자 저하께서 월나라 서시처럼 호리호리한 여인을 좋아해 권가가 밥을 굶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대체 이렇게 한 끼에 많이 먹는 이유가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몰라 있을 때 한껏 먹어두려는 심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소화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건강을 위해서나, 쌀을 절약해 다른 용도로 써야 할 실용적인 이유에서나 고쳐져야 할 풍속 중 하나였다.
그래서 학당을 통해 ‘지금보다 절반으로 줄여 먹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윤서가 말을 끝내자 궁인과 노비들이 다시 제 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까 새참으로 나온 탁주를 몇 잔 걸쳐 불콰해진 사내 종들이 끝에 쇠를 댄 삽을 들어 땅을 파며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우리 중전마마께서 얼마라고 하셨는가?”
“내 귀가 아주 밝지 않은가. 월봉이 쌀 여섯 말이라고 하셨네.”
“여섯 말이믄 일 년이면 얼마여? 두 달이믄, 가만, 손가락 열 개에 두 개 더 접으니께, 열두 말이구, 석 달이믄,”
“하아! 돌석이 자네 아들래미 학당에 좀 보내라니께. 응, 우리 막개를 학당에 보냈더니 거기서 구구단이라는 것을 배워왔어야. 막개가 가르쳐줬는디, 곱하믄 되어. 육 곱하기 십이 하믄, 잉, 일흔둘이여, 그러니께 쌀 일곱 섬하고 두 되란 말이여.”
“아니 학당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주는가? 어허, 자넨 셈이 빨러서 속량되믄 막개랑 장사 허믄 딱이것구먼. 우덜같은 무지렁뱅이나 굼벵이처럼 땅 파고 살지.”
“장사는 땅 파서 허나. 돈이 있어야 허지. 그래두 우리 색시가 마님 덕분에 공장에 다니니께, 둘이 합쳐서 번 걸로 막개더러 저기 왕십리 미나리꽝에 가서 푸성귀 사 오라고 해서 팔러 다니라고 헐껴. 그렇게 돈 모아서 또 더 큰 거 허구 해야지.”
“어이구, 금방 부자 되것네. 막개 네는 똘똘한 아들 덕에 금방 부자 되것어!”
맨날 일을 해도 손에 쥐는 것 없이 살다가 일 년에 최소 쌀 일곱 섬이 넘게 쥐게 될 생각에 흥분한 자들이 중전마마 안전인 것도 잊고 커다랗게 떠들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새벽이가 윤서의 귀에 속삭였다.
“어먼니, 월봉이 너무 적어요. 다쳐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해요? 저 같은 아이들하고 또 소아 같은 아기도 있을 텐데.”
그것이 지금 전하와 호조 관원들의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란다.
공짜로 부리던 노비에게 일정 임금을 지불할 때 최저 임금을 너무 과하게 책정하면 일자리를 잃는 전직 노비들이 대거 나오게 되고, 너무 적게 책정하면 새벽이 네가 말한 것처럼 최저 생활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나 그런 것은 어른들이 궁리해 정할 일이지 다섯 살 꼬맹이가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아바마마께서 대신들과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계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윤서가 그렇게 새벽이에게 속삭일 때.
대문이 소란해지며 희아와 연화가 무거운 쇠철 덩이를 든 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중전마마, 고모님, 부부인 마님, 어머님! 집이 참 아담하게 예쁘지요?”
연화가 활달하게 인사를 올렸다.
“눈님! 아까부터 눈님이 가져오실 거 기다리느라, 새벽이 눈이 빠질 뻔했어요!”
새벽이가 윤서 품에서 버둥거리며 반갑게 소리쳤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