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도원군의 혼인 (2)
새벽이가 야단스럽게 부르자 희아는 해령 부부인과 시어머니 민씨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여 보이고 곧장 윤서 앞으로 왔다.
“어마마마! 많이 기다리셨어요? 새벽아, 누나한테 올래?”
“응! 나 눈님 옆에서 구경하고 싶어요, 어먼니!”
새벽이는 지난 며칠간 희아가 시누이 정연화를 위해 만드는 과학 기물에 열광해 있어 협경당에 돌아와서는 눈에 보이는 이마다 붙잡고 그 기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작은 헝님, 몸통을 조립해서 땅에 땅땅 박은 다음에, 손잡이를 꾹 눌러 내리면, 음, 몸통 안에 둥근 쇠뚜껑이 슉 올라오면서 물을 착 밖으로 뿜는 거야. 원리가 뭐냐면, 눈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지하수와 지상의 수압 차이를 이용하는 건데,”
그러면 수양 대군이 귀국할 때 수집해 온 여러 나라의 남방 도자기와 우리 도요에서 만드는 도자기의 색채와 문양을 비교하는 일에 며칠째 푹 빠져 있는 금동이는 새벽이가 혹시 도자기를 건드려 깨뜨릴까 봐 온몸으로 막으면서 중얼거렸다.
“원리는 어제도, 그제도 들었잖아. 다 외울 수 있어. 몸통의 물이 올라오면 지하수와 연결된 통 하단부 작은 쇳조각이 들리면서 지하수가 따라 올라온다면서. 근데, 내가 어제 잠깐 가서 보고 박 상궁 마마님이랑 말해봤는데, 그거 만들어서 팔기가 쉽지 않아.”
새벽이가 하도 위대하다고 매일 붙잡고 말해서, 만들어 팔만한 것 같으면 반드시 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금동이가 수복이와 군기시 분원에 가서 실물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일단 몸통이랑 그 둥그런 뚜껑이 딱 맞물리게 만들려면 철의 질이 아주 좋아야 해서, 풀무질을 많이 한 고급 철이어야 해. 그리구, 또 몸통도 돌려 끼워야 하는 식이어서 주물 단계가 복잡해요. 또 부품도 종류가 여러 개이지, 다 정교하게 딱딱 맞춰 조립해야 하는 것이어서 나사 못도 많이 필요해.”
금동이가 만들기 어려운 점만 줄줄 나열하자 새벽이가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그러나 돈 문제에 있어선 늘 냉철한 금동이는 동생이 울상을 짓는데도 냉정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만들기도 어렵고 재료비도 너무 많이 들어서 만든다고 해도 값이 비싸서 팔기가 쉽지 않단 말이야. 지금 단계에서는 돈이 안 될 것 같아, 유감스럽게도.”
“헐, 헝님은 맨날 돈돈만 하네. 세자 헝님! 작은 헝님은 맨날 돈돈하면서 눈님이 만든 중요한 기물을 무시해요!”
마침 성균관에서 배움을 마치고 계동이와 함께 들어오는 홍위를 향해 새벽이가 울먹거리며 서럽게 소리쳤다.
그러자 역시나 여러 번 설명을 듣고 제작 과정도 참관한 홍위는 일단 새벽이를 안아 달랬다.
“새벽이 네 말이 맞아. 물 긷는 일이 고되고, 또 깊은 우물에 아이들이 빠지는 사고도 많은데 그 모든 문제를 쉽게 해주는 것이니까 아주 중요하지. 그래서 누님이 지하수가 나는 도원군 형님 궁가에서 실험해 보면서 개선점을 찾으시려고 하는 거야.”
홍위가 인정해주자 새벽이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요. 눈님이 벌써 세 번째 고쳐 만들고 계세요.”
“그래, 새벽아. 누님은 벌써 탈곡기도 만들고 목화 씨앗 빼는 기물도 만드셔서 여염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잖니. 물 푸는 기물도 곧 만들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쉽게 개선되어 백성들에게 유용하게 보급할 수 있을 거다.”
“거 봐! 작은 헝님! 세자 헝님은 이렇게 백성들 먼저 생각하시잖아!”
그러자 안남에서 들여온 도자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던 금동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지! 우리 세자 형님은 장차 성군이 되실 것이니까! 나는 사업가가 될 거니까 질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어서 형님 백성에게도 팔고 해외에도 팔아야 하니까 돈돈 해야 해. 그런데 안남 청화 도자기는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랑 문양과 색채가 유사한데 좀 두껍게 구워졌네. 왜 두껍지?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안평 숙부께 여쭤봐야겠다.”
금동이는 다시 도자기 연구에 푹 빠졌다.
세 형제가 이렇게나 다른 것을 본 계동이가 살살 고개를 흔들었다.
“어째서 세자 저하와 대군 동생들은 맨날 함께 붙어 자라면서도 이렇게 서로 다를까. 하아, 신기해, 정말.”
“그건 우리 어머니가 각자 개성을 존중해주시기 때문이야. 그리고 왕가라서 마음껏 개성을 발휘할 환경이 되기 때문이고.”
홍위가 의젓하게 왜 세 아이가 각기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려주었다.
*
*
이렇게 열광하며 기다려 왔으니, 새벽이는 윤서의 품에서 내려 희아의 손을 잡고 신이 나 발을 동동거렸다.
희아가 시누이 정연화의 혼인 선물로 만든 것은 물펌개, 윤서의 말로 펌프였다.
희아는 새벽이 손을 잡고 까치발을 들고 윤서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어머니 시대의 것처럼 잘 작동할지, 나무 모형으로 만들어 본 것은 잘 되던데 쇠로 만든 실물이 잘 작동할지, 하아, 기대 반 염려 반이에요.”
“우리 시대엔 이미 과거의 유물이었어. 그래서 나도 학교 운동장 폐쇄된 우물 옆에 세워진 거 몇 번 장난삼아 퍼 올려본 것이 다인데, 겉모양 설명만으로 이렇게 진짜 만들다니, 대단하다, 희아야.”
둘이서만 비밀스럽게 소곤거리게 된 것은 홍위가 진실을 알게 된 바로 그 다음 날 누이를 찾아가 그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제 운명이 과연 어떤 것이었길래 어마마마께서 후손의 영혼을 보내시고, 그렇게 오신 어머니는 그리 애달게 절 위해 애쓰셨는지, 누님.”
홍위는 누이를 잡고 뚝뚝 눈물을 흘렸다.
윤서에게 자라나며 풍부한 감성을 가지게 된 홍위와 달리, 희아는 후궁끼리 암투가 살벌했던 동궁의 내궁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어머니 현덕 빈을 잃고 사가에 나가 있는 혹독한 아동기를 보냈기 때문에 성품이 냉철하였다.
“네 운명이 무엇이었든 어머니가 오셨으니까 완전히 바뀐 거야.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어. 정종이랑 날 맺어주신 것도 그 역사의 인연이었을 것인데, 난 정종이 너무 좋아서 진짜 행복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홍위야.”
둘은 종묘에 가 모친 현덕 왕후의 신위 앞에서 절을 올리고, 저 먼 미래 시대의 후손을 보내면서까지 지켜주려 하신 어머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희아는 어머니가 가진 모든 지식을 흡수하여 여러 과학 기물을 만들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그 결단을 아바마마 이향에게도 말씀드렸다.
“아바마마께선 과학에 탁월한 이해를 가지고 계시지만 늘 정무에 분주하시고, 어마마마는 이미 만들어진 기물을 써오신지라 제작 원리까지는 모르세요. 하지만 그런 물건이 있고 대충 어떻게 작동한다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저는 거듭 실험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예요.”
중전마마에게 미래를 예견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퍼져 있는 소문이란 점도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가 미래에서 온 영혼이란 사실이 퍼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지요. 인간은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고. 지금 아바마마께서 추진하시는 많은 개혁에 반발이 일 때, 그 반발이 어머니를 향해서는 안 돼요, 아바마마.”
그래서 희아는 자신이 어머니 시대의 과학 지식과 기물을 지금 조선 시대의 지식과 기물로 변환하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물펌개였다.
노비가 폐지될 시대에 노동력을 아껴줄 기물이자, 또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을 집집마다 쉽게 퍼낼 수 있도록 해줄 수동 펌프 물펌개를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희아의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윤서와 희아가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을 본 해령부부인 정씨가 들으란 듯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경혜 공주께서 세심하게 우리 연화 조카의 혼사를 챙기시고 또 귀중한 과학 기물까지 신혼집에 설치해 주신다기에 그 고운 마음 씀씀이가 어디서부터 왔는고 했는데, 그게 다 중전마마께 배운 것이로군요. 모녀의 정이 이렇게 도탑게 깊으시니, 우리 공주나 또 우리 세자 저하께서 만민의 모범으로 성장하실 만도 합니다.”
의도가 과하게 노골적인 칭송이었다.
“······.”
부부인 윤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
*
연화와 도원군이 살 신혼집 우물가에 이날부터 물펌개 공사가 시작되었다.
희아가 군기시 야철 장인 등과 함께 공사를 감독하고, 새벽이도 희아 손을 잡고 눈을 빛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수를 담을 땅 밑 부분은 모래를 섞어 구워낸 벽돌로 마감하고, 그 위 몸통과 연결된 부분은 시멘트로 단단히 봉하고, 몸통과 손잡이를 조립하여 물펌개가 제 모습을 갖추었을 때.
드디어 3월 마지막 날.
그 어느 날보다 화창하게 해가 밝고, 새로이 싹을 낸 나뭇잎들이 연둣빛으로 꽃처럼 피어난 날.
도원군의 혼례가 진행되었다.
조선 중기까지도 혼인을 할 때 신랑이 신부 집에 가 기러기와 여러 예물을 바치는 전안례, 그 후 신랑과 신부가 서로 절을 하고 함께 술을 마시는 동뢰연을 행한 후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그대로 처가에서 혼인 생활을 이어가는 고려의 혼인 풍습이 절대 다수였다.
하지만 왕실에서는 성리학의 주자가례에 맞춰 신랑이 신부집에 가 예물과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를 행한 후, 신부를 데리고 본가에 돌아와 동뢰연을 행하는 친영례가 장려되었다.
이에 따라 희아도 자신의 궁에서 전안례를 행한 후 정종을 따라 정릉 시가에 가 동뢰연을 행하고 다시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는 절차를 거쳤다.
도원군은 이날 혼례를 주관하는 왕실 어른인 안평 대군과 함께 정연화의 정릉 본가에서 가 전안례를 행한 후, 신부와 함께 부친 수양 대군의 명례궁에 와 동뢰연을 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윤서는 정오가 지난 무렵 소헌 대비를 모시고 명례궁으로 향하였다.
홍위는 안평 대군과 함께 도원군의 혼례 행렬에 참가하였고, 희아는 시누이인 정연화를 곁에서 보살피기로 하였다.
그래서 마차 안에는 윤서와 소헌 대비, 그리고 금동이와 새벽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금동이와 새벽이는 이날 혼례를 위해서 새로 지은 옷을 입고 아주 기분이 좋았다.
색동이 알록달록한 저고리에 연한 하늘빛 긴 조끼를 입고, 허리에는 당초 무늬가 화려한 붉은 띠를 매고 머리에는 복(福) 자 무늬가 새겨진 아청색 건을 쓰고 있다.
허리 띠에 달린 남방의 산호를 아주 만족스럽게 쓸어보던 금동이가 대비마마께 여쭈었다.
“도원군 헝님은 열세 살인데 혼인하시니, 우리 세자 헝님도 곧 혼인하시겠네요. 헝님 혼인하실 때 저도 오늘 헝님처럼 혼례 행렬을 이끄는 것입니까?”
“홍위는 세자라서 혼례 행렬을 이끄는 것이고, 금동이는 아직 어려서 형님 저하 혼인 행렬은 못 이끌지.”
“히잉.”
금동이는 무척 서운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의기양양하게 새벽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 뚜 없지. 그럼, 새벽이 너 혼인할 때 내가 혼례 행렬을 이끌어 주께.”
“그래, 새벽이 혼사 땐 금동이 네가 형님으로서 이끌 수 있겠구나.”
“예, 할마마마. 새벽이 혼인할 때 정말 멋지게 차려 입고 맨 앞에서 말을 타고 가 꺼예요.”
동생 혼례 행렬을 멋지게 이끌 생각에 금동이가 히쭉 웃었다.
새벽이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혼인을 아주, 늦게 하 꺼에요. 스무 살이 넘어서 하고 싶어요.”
“응, 왜? 그렇게 늦게 하는 이가 왕실에서 누가 있다고? 난, 열다섯 살에는 혼인할 거야.”
“헐, 헝님, 그렇게 일찍 혼인해서 뭐 하게요?”
“뭐하긴. 새벽이 너처럼, 그리고 우리 소아처럼 예쁜 아이를 많이 낳아야지. 그리고, 또, 안평 숙부님처럼 시 잘 지어서 곱게 노래로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예쁜 가희(家嬉)도 많이 가질 거야.”
“!”
“!”
소헌 대비와 윤서는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윤서가 금동이를 꽉 안고 물었다.
“너, 가희가 무엇인지 알아?”
“응, 재주가 많은 여인들이에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헝님, 그거, 이상한 건데.”
“뭐가 이상해. 고운 옥을 모으듯, 잘 구워진 도자기 모으듯 그렇게 사람도 모으는 거야. 재주 많고 어여쁜 여인들 모아서 크게 극장을 만들어서 공연하면 또 얼마나 돈을 많이 벌겠어. 안평 숙부님이 앞으로 그런 문화 사업이 크게 될 거래. 우아하게 노는 그런 문화가.”
하아.
미적 안목이 탁월한 안평 대군이 일본과 해외에 수출할 도자기며 고급 장신구, 그리고 신기술을 접목한 건축을 책임지고 있다.
돈벌이에 관심이 많고 감식안이 빼어난 금동이가 숙부를 따라다니며 견문을 키우더니!
“음, 지금 세우 작가가 지은 이야기를 공연하는 극장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맞은 말이긴 한데. 그래도 금동아 그런 여인들까지 네가 직접 나서서 사업하는 것은 좀 신중하게 생각해보렴.”
윤서가 말하자, 소헌 대비가 윤서에게 몸을 기울이고 속삭이셨다.
“하아, 할아버지 피가 어째 금동이한테 많이 간 것 같다.”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싶자 새벽이가 애교스럽게 소헌 대비의 품에 안겨 말했다.
“함마마마, 제가 스무 살에 혼인할 때까지, 강녕하셔야 해요. 오늘처럼 제 혼사를 주관해 주서야 해요.”
“아이쿠, 우리 새벽이가 할미 오래 살라고 늦게 혼인하겠다는 거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할마마마, 오래오래 사세요! 소아가 혼인할 때까지, 오래오래!”
이렇게 다시 훈훈한 덕담을 주고받는 사이 마차는 명례궁 앞에 도착하였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