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노비 세습제 폐지 (1)
서로 술을 나눠마시며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동뢰가 끝이 난 후.
신랑과 신부가 신랑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현구고례(見舅姑禮)가 시작되었다.
신부가 시부모님께 준비해온 선물을 바치는 것을 폐백이라고 하고, 이때 부모님께 첫인사를 올리는 것을 현구고례라 하였다.
조선 초 현구고례의 예법은 주자가례에 따라 먼저 아버님 어머님께 각각 따로 인사를 올린 후, 부모님이 신랑, 신부를 데리고 조부모님께 인사 올리러 가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정연화는 폐백을 드릴 때 입는 활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수모 손에 이끌려 가면서, 고개를 돌려 신랑 석에 서 있는 도원군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키가 본격적으로 크기 시작하는 도원군의 어깨는 아직 왜소하고, 그래서 고립된 섬처럼 외로워 보였다.
“왜 표정이 그래? 좋은 날에.”
활옷과 화관이 준비된 방에 들어서 예복을 갈아입기 시작했을 때, 신부를 보러온 경혜 공주 희아가 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물었다.
둘은 종전 시누이와 작은 오라범댁의 관계였는데, 이제 연화가 도원군의 처가 되면서 희아가 시누이가 되고, 연화는 작은 오라범댁으로 처지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열 살 무렵부터 서로 친우로 지내온 두 사람은 어른들이 안 계실 땐 서로 편하게 말을 놓고 격의 없이 지냈다.
수모 둘과 나인 넷이 온갖 상서로운 무늬가 정교하게 수 놓인 활옷을 입혀주느라 분주한 가운데 양팔을 벌리고 서 옷시중을 받고 있는 연화는 지금 말하기 곤란하단 의미로 살짝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늘 유모와 시중드는 나인을 붙이고 살아온 왕족은 옆에서 시중드는 이들이 없는 것처럼 말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염에서 자란 연화는 몸종 곱단이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 여럿이 이렇게 분주하게 시중드는 것이 어색하고 그 와중에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더욱 불편했다.
“할마마마께선 무척 다정하시니 좋은 말씀만 내려주실 거야. 그리고 할바마마께선 요새 경제 체제에 대해 대신들과 깊게 숙고하시느라 며느리들에 대해 신경 쓰실 겨를이 없으셔. 그러니까 손주며느리는 그저 어여뻐만 하실 거야.”
여러 며느리에 대해 유독 엄격하셨던 상왕 전하를 뵙게 되어 긴장한 거라 생각한 희아가 슬그머니 시누이이자 이제 사촌 오라범댁이 된 연화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연화는 왕실 최고 어른을 뵙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 자신과 혼인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도원군은 수려한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땅을 내려다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열여섯 살 성숙한 소녀에게 열세 살의 소년은 어리게만 보인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고통으로 어깨를 옹송그린 아이가 가여워 연화가 살그머니 손을 잡아주었을 때 도원군이 말했다.
“실은 나, 어렸을 적에 세자 저하께 못되게 굴었어요. 그땐 원손 따위도 별 거 아니게 보일 정도로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어.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갑자기 목숨까지 위태로운 고아가 되어버린 느낌이에요. 근데 여기 누님 궁에 오면 밝고 안전한 느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명례궁에서 느꼈던 그 평온이 느껴져요. 그래서 나는 소저랑 혼인하고 싶어요.”
“···그건, 우리 정종과 공주 자가께서 빚어내는 분위기가 아닌가요?”
“아니요. 누님은 원래 이렇게까지 밝은 분은 아니었어요. 영양위와 소저가 다정하고 심지가 굳으니 누님도 덩달아 밝아지신 것이겠지요. ···그래서 소저가 좋아요.”
남동생처럼 심지가 굳고 다정할 것 같아 좋다는 말이 좀 어색했지만, 연화는 도원군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갈망, 권력 추구의 위태로운 길에 뛰어들었다가 허망하도록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는 달리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평온한 삶을 갖고 싶은 도원군의 바람을 자신이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아 혼인을 결심했다.
‘하지만 떨린다. 아버님과 새어머님을 뵙는 것이.’
정릉 본가에서 출발하기 전 도원군이 당부했었다.
“아버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마음에 담지 말아요. 제게 많이 실망하셔서 부인에게도 다정한 덕담을 해주시기 어려워하실 수 있어요. 그래도 마음 깊이는 저를 많이 아끼시니, 우리가 잘 살면 언젠가는 부인에게도 잘 대해 주실 거에요.”
부부인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새어머니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혼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너 번 뵈었던 부부인은 뜻밖에 다정하고 세심하였던지라, 도원군이 당한 일을 몰랐다면 홀딱 넘어갈 정도였다.
“왕실에서는 진의를 읽어내기가 어렵단다. 모두 탈 서너 개씩은 기본으로 쓰고 있지. 그러니 분수를 넘어서는 것에 눈길을 주지 말고 그저 도원군에게 네 마음을 다하는 것에만 집중하렴. 그러면 밖에서 몰아치는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주변의 호의의 탈을 쓴 적의에도 너만의 보금자리를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효령 대군의 부인인 고모님이 해주신 말씀이었다.
“인사 올려야 할 왕실 웃어른이 하도 많아서 절 올리느라 고생하겠네. 수모, 우리 작은 오라범댁 힘들지 않게 옆에서 잘 보필해 주게.”
무뚝뚝한 편이지만 정종과 살면서 점점 더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가는 공주의 당부를 뒤로 하고,
연화는 수모의 부축을 받아 별당을 나서 수양 대군이 계신 곳으로 갔다.
화려한 외궁의 대청마루에 올랐을 때, 도원군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합문이 옆으로 열리고,
아들과 며느리가 각각 두 번과 네 번의 절을 올린 후, 연화가 본가에서 따라온 청지기를 시켜 폐백 선물인 밤과 대추를 올렸을 때.
“우리 현동이가 무척 마음에 들어한다 하여 내 궁금했는데, 과연 영민하고 아름답구나. 여러 일을 겪으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신랑이니 며늘아기 네가 따스하게 보듬어 잘 보필해 주기 바란다. 또 우리 예분이도 잘 부탁한다.”
도원군의 우려와 달리 수양 대군은 너털 웃으며 따스한 덕담을 건넸다.
대청마루 건너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부부인도 마찬가지였다.
폐백 선물로 바친 소고기 육포와 닭 구이, 그리고 더운 나라에서 입으시기 좋은 능라 비단을 바쳤을 때 부부인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선물을 칭찬하였다.
“육포 빛깔이 아주 곱구나. 숙부인께서 정말 정성을 많이 들이셨어. 이 비단은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하늘 투명하면서도 은색 실 무늬가 은은하고 고급스러우니 너희 아버님 도포 감으로 아주 제격이다.”
그리고 잠시 침묵한 부부인은 절을 올린 후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맞추지 않는 도원군을 불렀다.
“도원군, 이 어미가 부족하였어요. 낯선 남방에 잘 적응하게 돕고 싶단 의욕이 앞서 몸 상태를 살피지 않고 무리하게 강요하였어요. 그래서 참으로 미안합니다. 이제 몇 달 뒤 떠나면 아주 오랜 후에나 보겠지요. 그때까지 우리 자가의 뒤를 든든히 이을 자손을 많이 낳고 다복하게 살고 있길 이 어미가 늘 부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덕담이었다.
어차피 다른 거처에 신혼집을 정하였기에 서로 부딪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연화는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고 깊게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올렸다.
윤씨는 수모의 부축을 받아 절을 올리는 정연화와 찬바람을 폴폴 풍기며 눈도 마주치지 않는 도원군을 보며 속으로 의기양양 미소를 지었다.
중전에 의해 계획이 탄로난 후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 했지만 자가의 발 빠른 노비 속량 선언과 또 자신의 보시와 희사 덕분에 무사히 도원군의 혼사를 치를 정도의 명망은 되찾았다.
지나고 보니 이 사태가 나쁘지 않았다.
자가는 큰아들에게 깊게 실망하였고, 도원군은 아비의 애정을 의심하게 되었다.
부자의 사이가 벌어졌으니 도원군을 어렵사리 제거하지 않더라도 여송과 새 땅에서 자가가 쌓아 올릴 기반은 자연스럽게 우리 은동이의 차지가 될 것이다.
손을 대지 않고도 바라던 결과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앞날에 방해물이 되지 않을 의붓아들과 그 며느리는 어여뻤다.
절을 올리는 뒤통수가 진심으로 예뻐 보일 정도로.
“자, 이제 할바마마와 할마마마께 인사 올리러 가자꾸나.”
윤씨가 흐뭇하게 웃음을 짓는데 밖에서 수양 대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양 대군 내외가 새신랑, 새신부를 데리고 세종과 소헌 대비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들었을 때.
도원군이 요절했다는 역사를 윤서에게 들었던 세종은 절을 받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리셨다.
“서로 아끼며 오래오래, 다복하게 살거라.”
덕담을 내리시는 음성마저 가볍게 떨릴 정도였다.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계신 세종과 달리 소헌 대비는 그저 도원군이 기특하고 이 혼사가 흡족하기만 했다.
“네가 좋아서 맞이한 신부니 내내 아껴줘야 한다. 연화 너도 너 좋아 마음 끓인 신랑 많이 사랑하고 많이 지지해주고.”
그렇게 말한 소헌 대비는 옆에 계신 세종께 속삭였다.
“연화가 복덩이인가 봅니다, 전하. 연화가 들어오면서 은동 어미도 사람이 확 달라졌어요. 그러니 그만 우세요. 이 좋은 날 어째서 이렇게 상왕께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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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군의 혼례가 무사히 마무리 지어지고,
세간의 관심은 다시 금상 전하의 노비제 폐지 보상안에 집중되었다.
보상안이 공표되기 전,
세종과 이향은 영의정 황희의 건의로 조정의 대신들이 새 정책의 근간이 되는 경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세종과 이향 자신은 워낙 다방면의 학문을 익힌 데다가, 새로운 지식이 이해되지 않거나 현실 적용이 어려울 것 같을 때마다 윤서를 붙들고 거듭 물을 수 있었다.
그러면 윤서는 논리정연하게 이론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해도, 성균관에 준한다는 최고의 교육 기관까지 장장 이십 년이 넘게 배우고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의문을 풀어주었다.
세종은 이렇게 이해한 바를 정인지와 광평 대군과 함께 체계적인 이론으로 다듬어 교재로 정리하게 하였다.
광평 대군은 세종이나 주상, 또 중전에게 시시때때로 물어 완벽히 이해하고, 정인지는 워낙 다방면에 탁월하고 특히 고리대를 놓아 재산을 엄청나게 불릴 만큼 이재에 빼어났기에 경제 이론을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 그 이론을 조선 현실에 맞게 적용할 줄도 알았다.
세종은 정인지가 이해할 정도면 그만큼 빼어난 김종서나, 오랫동안 실무를 책임져온 황희나 하연, 황보인, 민신 등은 모두 다 어렵지 않게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과 이향이 또 적극적으로 대신에게 신지식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십오 세기 군주다운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실무를 담당하는 여러 신하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집현전과 같은 연구 기관을 두어 여러 분야의 지식과 학문을 필요할 때마다 자문할 수 있게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최종 판단과 결정은 왕이 내린다.
그리고 왕이 내린 결정을 신하와 백성은 따라야 한다.
이것이 세종과 이향이 군주로서 가져온 근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런데 황희가 이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다.
“두 분 전하께서 광평 대군이나 정인지를 통해 만드시는 각종 이론 교재, 그리고 임영 대군이나 금성 대군, 또 우리 경혜 공주를 통해 만드시는 여러 과학 이론들은 너무 이질적으로 어렵습니다. 심지어 연구를 업으로 하는 집현전의 학사들조차 이해를 따라가지 못하여 신과 조정 대신이 무얼 물을 때마다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그저 어명에 따라 실행하면, 현실에서 생겨나는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백성들이 목숨만큼이나, 아니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는 재산과 재물에 관계되는 경제 정책만큼은 조정 대신 모두 기본은 완벽히 숙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윤서를 통해 새 지식이 전해지기 전,
자신이 집현전을 통해 만들고자 한 조선은 의료, 농업, 국방 등 백성을 위한 실용 학문이 활발하게 연구되면서 동시에 성리학에 기반한 예와 도덕이 정교한 의례로 확립되는 사회였다.
그런데 자신이 세운 성리학적 조선이 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졌기에 사후 삼 년이 되기도 전에 그 비극이 일어났다고 세종은 내심 반성하고 있었다.
이런 세종에게 황희의 건의는 진지하게 받아들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정인지로 하여금 성균관에서 유생과 집현전 학사들에게 새 경제 이론을 가르치게 하는 한편,
상왕과 금상이 함께 하는 아침과 저녁 경연에 의정부의 삼 정승과 육조의 판서, 참의, 그리고 집현전 출신으로 현직에 진출하기 시작한 젊은 신료들까지 참석하게 하였다.
“그리고 윤서야. 너도 홍위와 함께 경연에 참석하거라. 직접 와서 과연 이 시대의 대신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있는지 상세히 듣고 어떻게 너의 지식을 전달해야 이들이 시대의 한계를 쉽게 넘어설 수 있을지 방안을 제시하거라!”
이십일 세기의 지식이 십오 세기의 통치 전반에 효율적으로 녹아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와서 보고, 의견을 제시하란 명이었다.
해외에 새로운 개척지를 세울 임무를 받은 총독 수양 대군도 출국하기 전까지 경연에 참석하라는 명도 내려졌다.
바야흐로 더 나은 조선을 위한 총력전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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