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노비 세습제 폐지 (2)
세자와 함께 중전마마께서도 경연에 참석한다는 소식은 궐 안팎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두 분 전하께서 강녕하신 상황에서 어린 세자가 경연에 참석하는 것도 예외적인 일인데, 하물며 젊은 중전께서!
하지만 조정 대신 중에 놀라움이나 거부감을 대놓고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상왕 전하께서 미리 “중전은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우리 조선의 상공업 발전을 일궈낸 경험 지식을 증언할 것이다.” 하고 경연에서 중전의 쓰임을 미리 제한하셨기 때문이다.
중전이 상공업에 빼어난 수완을 보여 내수사의 재정에까지 깊게 관여하고 있는 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최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여러 과학 기술에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단 사실도 알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건 건국 이래 최고로 강성한 왕권을 행사하고 계신 금상 전하께서 깊게 신뢰하는 중전마마시다.
그러니 조선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 중전과 세자, 그리고 해외 개척을 맡을 수양 대군이 참석하는 것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희아와 홍위는 생각이 달랐다.
윤서가 경연의 첫 참석을 하루 앞둔 4월 9일 오후.
희아가 외조모 해령 부부인께서 아주 실한 꽃게를 보내오셨다면서 저녁에 모두 함께 쪄먹고 싶다고 연통을 해왔다.
마침 상왕 전하 내외께선 영응 대군의 동별궁에 가 계셨다.
그래서 상왕 전하와 저녁 수라를 함께 하던 이향도 오랜만에 협경당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수라간에서 먹기 좋게 손질한 게 서른 마리와 곁들여 먹을 온면과 여러 해물 요리를 내온 저녁 시간.
윤서는 가족끼리 모여 식사할 때면 늘 그러하듯 기미를 본 상궁과 식사 시중드는 나인 무리까지 모두 물렸다.
“자, 우리 희아와 영양위가 가져온 게다. 외조모님 해령 부부인께서 보내신 것이니 모두 감사 서신을 써서 보내드리거라. 먹자.”
소아를 무릎에 앉힌 이향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으음, 입 안에서 바다가 톡톡 터지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한 입 먹어본 금동이가 희아에게 엄지를 쑥 들어 보이며 좋아하였다.
홍위는 가장 긴 다리 살에서 꼼꼼히 껍질을 다 제거한 후 소아에게 쑥 내밀었다.
“소아야, 이거 손에 쥐고 조금씩 빨아먹어.”
그러자 이향이 발라준 게살을 우물거리던 소아는 “옵빠!” 외치며 게살을 받아 이향의 입에 가져다 대며 아까 오빠에게 배운 대로 “개! 개!”를 외쳤다.
“아이쿠, 아버진 한 입만 먹겠다. 큰 오빠가 우리 소아 위해 발라준 것이니 이제 소아가 먹거라.”
“옵빠, 개! 개!”
“응, 소아야. 맛있어? 오빠가 또 발라줄까?”
“홍위, 소아 그만 챙기고 어서 식기 전에 먹어.”
윤서는 발라놓은 살 한 덩이를 홍위 입에 쑥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향 입에도 넣어주고, 또 금동이와 새벽이 입에도 넣어주면서 틈틈이 실하게 맛난 살을 자신의 입에도 넣었다.
합덕 본가에 내려가 계신 해령 부부인이 서해안에서 갓 잡은 게를 톱밥과 얼음을 넣어서 배로 실어 보내온 것이라는데, 희아 말로는 사흘 만에 도착했는데도 게가 팔팔하게 살아 있었다고 하였다.
“영양위, 많이 먹게. 요새 여러 병법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예, 중전마마. 많이 먹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종은 발라낸 게살을 연신 희아와 새벽이 앞 접시에 올려놓느라 분주했다.
희아와 정종이 주는 게살을 조용조용 먹고 있던 새벽이가 문득 물었다.
“그언데, 아바마마. 함머니께서 제 편지도 좋아하시까요?”
해령 부부인 최씨가 돌아가신 현덕빈의 어머니시지 우리 엄마의 어머니는 아니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러자 이향이 윤서를 보고 눈을 찡긋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좋아하시지. 어머니는 어릴 적 부부인 댁에서 컸단다.”
“응, 새벽아. 해령 부부인도 그리고 병조 정랑 어르신도 엄마에겐 친어머니와 친오라버니같으신 분들이야. 그러니까 새벽이가 ‘게 보내주셔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편지를 써 보내면 정말로 기뻐하실 거야.”
“그래, 새벽아. 누나 외할머니면 당연히 우리 새벽이 외할머니도 되지. 이번 가을에 합덕에 함께 가기로 했지 않니. 아, 해!”
희아가 다정하게 새벽이 입에 게 살을 넣어주며 말했다.
희아가 말한 것처럼 윤서는 돌아오는 가을 벼르고 별렀던 고향을 방문할 예정이다.
명목은 홍위와 희아의 외가, 이 몸 권가 나인의 친척인 해령 부부인 댁을 방문한 후 서천에 조성한 내수사 염전을 시찰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합덕과 서천 사이에 있는 홍성 고향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먼 훗날에 살았으니 고향 집의 흔적을 당연히 찾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릴 적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던 동네와 또 두 분의 산소를 모신 곳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나날이 커졌다.
“염전에 소금이 눈처럼 쌓여 있대. 나도 이다음에 염전 많이 지을 거야. 바닥에는 도자기 재질로 구은 흙을 깔면 더 좋을까.”
“소금은 뜨거운 햇빛에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남는 거야. 그어니까 바닥에 뭐 까느냐보다 입지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맞지요, 눈님?”
“응,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아주 큰 곳이 염전에 적당해. 그래서 염전은 주로 서해안에 생기는 거야.”
“염전의 소금을 관염으로 한다고 했어요. 노비 속량되면 일자리를 주어야 해서 내수사에서도 많이 짓고 있대, 염전. 그렇지요, 어머니?”
“응, 맞아. 그래서 엄 상전이 서해와 남해 일대 섬을 돌아보면서 염전 짓기 적당한 곳을 물색 중이야.”
“아바마마, 소금을 관에서 주도해서 나라에서 만들어 팔면 세수가 많이 증가하겠지요?”
“그래, 홍위야. 소금은 여염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라서 일자리 만들기도 좋고 또 팔아서 재정 확보하기에도 아주 좋단다. 지금 어머니 소유 염전에서 하듯 소금을 대나무 통에 넣고 구워 만든 죽염이 해외에서 아주 좋아하는 고급 수출품이기도 하고. 아이쿠, 우리 소아도 말하고 싶어요?”
“압빠! 엄마! 옵빠! 엉니!”
“와아! 우리 소아 조금 있으면 돌이 되려니까 이제 말이 막 터졌네.”
“소아야, 소금! 해봐, 소금! 소아야, 소금이 아주 돈이 많이 되니까 되게 중요해. 그러니까, 소금! 오빠 따라서, 소금!”
게 살을 발라 먹으면서 다들 즐겁게 바다와 관련한 수다를 떤 후.
금동이와 새벽이는 검술을 배울 겸 매금이와 놀러 나가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놀았던 소아는 기분 좋게 배가 불러 이향의 품에서 고양이처럼 졸고 있었다.
윤서는 시원한 냉차를 내오게 해 홍위와 희아, 영양위 앞에 놓아주고,
이향과 자신을 위해서는 몸을 보하는 약차를 내린 후.
희아에게 물었다.
“이제, 말해도 돼.”
윤서는 희아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아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금동이가 아무리 같이 놀자고 해도 누님 곁에 딱 붙어 있을 새벽이가 희아가 뭐라고 속삭이자 고분고분 형님 손 잡고 매금이에게 놀러 갔기 때문이다.
“아바마마, 전 어머니가 경연에 참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물은 것은 희아에게였는데, 답한 것은 홍위였다.
“아주 예전 일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아직 승휘로 계실 때 소자와 함께 편전에 나가신 일이 있었잖아요.”
“아!”
윤서는 홍위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향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구설수에 오를까 걱정되는 것이냐?”
“예, 아바마마. 세자와 저는, 그리고 영양위도, 저희 모두는 지금 아바마마께서 펼치시는 정책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불만이 혹여 어머니께 향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세간에서 중전마마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
“······.”
이향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윤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
너희를 지키러 온 나의 안위를 걱정할만큼.
윤서는 팔을 뻗어 소아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이고 있는 이향의 손에 손을 겹쳤다.
‘제가 아이들에게 말할게요.’
손짓으로 속삭인 윤서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는 아이들에게 입을 열었다.
“전에는 그런 의도가 없지 않으셨지만 지금은 아니셔. 내가 상왕 전하를 무척 존경하는데, 그건 물론 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자를 만드신 것이 크지만 다른 면도 많아. 특히 이번에 엄마를 경연에 참석하라 명하신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단다.”
윤서는 상왕 세종께서 지난 삼십 년간 쌓아올리신 업적을 스스로의 손으로 허물어 다시 세우고 계심을 설명하였다.
왕이 되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부단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고, 그럴 수 있는 왕이시기에 후대에까지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존경받는다는 것을 설명한 후,
윤서는 그간 생각했던 바를 덧붙였다.
“정말이지 우리 조선은 가난했단다. 세계는 날로 변화하는데 심지어 일본마저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날로 발전하는데 우리는 우물 속 개구리처럼 정체되어 있던 이유 중 하나가 교조화된 주자학에 사회의 활력을 불가능하게 하는 노비제였어. 여기 조선에 와보니 알겠더라.”
노비의 수발을 받아 왕처럼 일상의 우위를 즐기는 자들은 삶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중전이 된 윤서가 엄격한 왕실 예법에도 협경당에서 일반 가족처럼 서로 부대끼는 삶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중전으로 떠받들어지는 삶에 익숙해지면 자유와 평등이 상식이었던 이십일 세기 뿌리를 잃고 십오 세기 조선의 삶에 안주하게 된다.
그것은 홍위의 조선을 위해서, 그리고 금동이와 새벽이, 소아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나, 그리고 무엇보다 윤서 자신을 위해서 결코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일이었다.
“상왕 전하께서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공고하게 굳어지는 데 본의 아니게 일조하신 면이 있어. 그 부분을 당신 손으로 깨뜨려서 새로운 질서의 기틀을 놓으시려는 거야. 그 변화를 위해서 시대의 이방인인 엄마의 눈과 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것이란다. 정말로 존경스러운 일이지 않니? 그리고 중전으로서 나 또한 그 변화를 도울 책임이 있고.”
실은 내일부터 열릴 아침 경연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참혹한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홍위에 대한 충절을 거두지 않은 집현전 출신 학사와, 또 허후 대감을 가까이서 뵐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서가 가까이서 뵌 이는 성삼문과 박팽년, 유응부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변화에 가장 완고하게 우려를 표하고 있는 분들도 그분들이었다.
홍위를 위해 애쓴 이들 다수가 집현전 학사 출신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계신 세종께서는 집현전 출신 젊은 신료들 다수가 신지식을 이해하고 익히는 데 큰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하셨다.
그에 대해 윤서는 잠시 생각한 후에 고한 적이 있다.
“전하께서 성리학의 가르침에 맞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데 그분들을 활용해오셨습니다. 전하의 뜻에 따라 학문적, 정치적 신념을 성실하게 다져왔고, 그러했기에 역사에서도 끝까지 절의를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 세종은 “하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제껏 닦아온 학문적 신념을 지키려는 완고한 태도가 다른 상황에서는 어린 왕을 지켜달라는 선왕의 유조를 목숨 걸고 지키려는 절의로 발현되었겠구나.” 하고 수긍하셨다.
그렇게 수긍하신 후 한참을 되짚어보시더니 또 문득 고개를 흔드셨다.
“그래도 진심으로 군주를 생각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자라면 더 나은 지식을 접했을 때 자신의 신념을 바꿀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그들과 함께 새로운 법률과 제도를 만들 책임이 있어. 그러니 윤서 네가 그들을 잘 지켜 보고 그들의 완고함을 깨트릴 수 있는 방안을 나와 주상에게 말해다오.”
윤서가 만나본 사육신은 성삼문과 유응부, 그리고 잠깐 스치듯 몇 마디 나눠본 박팽년이 전부였다. 모두 이향보다 서너 살 아래로 젊고, 그래서 그만큼 패기와 절기가 넘쳤다.
인품이 고아하고 증조부 이색을 닮아 시를 아주 잘 짓는다는 이개는 어떤 분일지, 나이가 좀 많으신 분으로 한창 고려사 편수를 감수중인 하위지는 어떤 분일지 아주 기대가 컸다.
윤서의 말이 끝나자, 이향이 말을 이었다.
“그래, 어머니 말이 옳다. 할바마마께선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야. 결코 원망의 방패막이로 세우시려는 것이 아니니라. 그리고 또 하나.”
이향은 살며시 올려놓은 윤서의 손을 꽉 잡았다.
“너희는 이 아비가 너희 어머니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냐?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으냐?”
감히, 나의 조선에서!
이향의 목소리가 엄격해졌다.
그러자 홍위와 희아, 정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늘 다정하신 부왕께서 보이시는 노여운 음성에 셋은 그대로 엎드렸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그런 것이 아니오라 소자는 그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서······.”
“저희는 그저 어머니가 혹여 이 일로 마음을 다치실까 염려가 되었을 뿐이온데, 생각이 부족하였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희아와 홍위, 정종이 어쩔 줄 모르며 거듭 사죄를 올리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향이 빙그레 웃었다.
“모두 몸을 일으키거라. 너희가 어머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아비로서 기쁘구나. 하지만 명심하거라.”
“예, 아바마마.”
“내가 어머니뿐 아니라 너희 모두를 지킬 것이니라. 그리고 중전 또한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조금 더 안심하고 조금 더 평온하게 오늘을 살려무나. 그리고 홍위야.”
“예, 아바마마.”
“나는 상왕 전하께서 다시 세우고자 하는 조선을 더욱 공고히 하여 네게 물려줄 것이니라. 그러니 너는 안심하고 네 할 바를 충실히 해나가면 된다.”
“예, 아바마마.”
“그래. 다들 기특하구나.”
이향은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윤서도 뿌듯한 마음이었다.
우려가 아니 되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자리였다.
그리고 다음날.
윤서는 홍위와 함께 나란히 경연이 열리는 편전에 들었다.
이향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희아는 아침 일찍 공주의 정복을 입고 협경당에 와 금동이와 새벽이의 손을 잡고 편전 앞까지 윤서를 호종하였다.
지금 편전에 드는 중전마마의 뒤에는 이 나라 공주와 또 세자와, 두 대군이 함께 서 있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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