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노비 세습제 폐지 (4)
“현대에서는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가려는 이들이 줄어들고, 또 저축을 많이 하여 시중의 돈이 은행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화폐의 발행과 유통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은행이 설립되는 단계에서 현대의 정책은 큰 쓰임이 무용할 것입니다.”
“그래, 지금 은행의 설립은 오히려 국가 차원에서 여러 분야의 투자를 이끌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또 윤서 네가 말한 그 메디치 가문의 금융 지배를 우리 조선에서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냐. 하지만 성삼문과 박팽년이 우려했던 바도 타당하다. 작년에도 저 북쪽에서 굶주림이 심해 유민이 발행하지 않았더냐?”
성삼문과 박팽년을 말하는 세종의 얼굴에 부드러운 애정과 신뢰가 어렸다.
지난 겨울 자꾸 감기에 걸리시는 소헌 대비를 위해 이천에 조성한 온천으로 요양을 떠나실 때 세종께선 성삼문, 박팽년, 최항, 이개, 김기문 등을 대동하셨다. 신숙주는 금성 대군의 외교를 돕기 위해 북경에 가 있어 제외되었다.
요양지에서까지 늘 가까이 두고 지식과 정책을 토론할 만큼 이들의 역량과 품성을 굳게 믿으시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끝까지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서는 부러 최항 등의 이름을 입 밖으로 뱉지 않았다.
그리고 동향이라 한층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성삼문을 생각하였다.
홍위의 스승이라서 여러 번 뵌 적 있는 성삼문은 사석에서는 농을 잘하고 안평 대군과 가까이 지내며 시도 곧잘 짓는 풍류남아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아까 편전에서 보인 것처럼 날카롭고 엄정했다.
‘그래, 그렇게 신념이 강한 분들이니 시대를 이끌 신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게 되면 장차 황희 대감이나 맹사성, 김종서 대감처럼 엄청난 업적과 헌신으로 이향을 보좌하겠지.’
“예, 금상 전하께서 짐승의 배설물 외에 바다에서 잡았다가 버려지는 생선과 해초 등을 이용해서 비료 만드는 법 등을 적극 강구 중이시니 조만간 시비법에 큰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번 노비 보상안도 농업 생산량 증대에 크게 기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노비 보상안에 황무지와 저 북방 영토 개간권을 주고 농법을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으니.”
“헌데, 전하. 제가 들어보니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자본주의 기본 이념, ‘인간은 이기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한 듯합니다. 학문적으로 그 전제를 수용하면 실제로 상공업 발전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되고, 소유권을 적극 보장할 수 있는 정책과 법률에 적극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런지요?”
“···으흠.”
윤서가 느낀 바를 조심스럽게 고하자 세종께서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고 잠시 눈을 감고 그 향과 맛을 음미하신 후 답을 주셨다.
“그래, 그렇겠구나.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느냐가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잘 보았구나. 성리학에선 인간의 심성을 욕(欲), 경(敬), 성(誠)의 세 단계로 본다. 욕(欲)은 욕망에 휘둘리는 범인의 상태이고, 경(敬)은 군자가 수양하는 단계이고, 군자가 수양에 성공해 하늘의 크기와 같이 위대한 상태가 되는 것, 즉 성인여천동대(聖人與天同大)의 경지에 이른 것이 성(誠)이니라. 심(心)에 생득적으로 내재된 리(理)를 드러내 성(誠)의 경지를 이루는 것,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주 어릴 적부터 근면하게 학문을 익히고 몸과 마음을 수련해온, 그러니까 경(敬)을 실천해온 이들에게 ‘인간은 본래부터 이기적인 존재이고, 그 이기적 욕망을 마음껏 추구해도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이 작용해 모두의 이익을 만들 것이다.’란 자본주의 이론을 설득하는 것은, 윤서야, 종교를 바꾸라는 개종 요구와도 같이 혹독하고 무자비할 수 있단다.”
“···아!”
“천리를 깨우쳐 하늘과 같이 광대한 경지에서 하늘의 이치를 이 세상에 구현해낸다! 이것이 저들이 꿈꿔온 이상이니라. 그러니 윤서야, 이 시대 학자의 관점에서 네가 당연하다 수용하는 그 지식 체계와 믿음이 오히려 야만적인 오만과 나태로 보일 수 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느냐?”
처음으로 듣는 따스한 가르침이었다.
윤서는 이제야 세종이 자신을 믿고 이끌어줄 수 있는 신하 중 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훅 치솟으면서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런 것이 군주의 신뢰를 받을 때 신하가 느끼는 감동이구나.’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게 하면서 동시에 주군께 더욱 충성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은 너무 부족해만 보여 새로운 지식과 헌신으로 주군의 조선을 더욱 빛나게 하고 싶은 목마름 같은 갈망이기도 하였다.
이는 서로에 대한 연심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몸과 마음 모두 굳게 맺어져 있는 이향이 불러일이키는 것과 다른 종류의 감동이자 기쁨이었다.
윤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답을 올렸다.
“예, 전하. 시대라는 거인의 어깨에 서게 된 행운에 오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이십일 세기 인간에게까지 이렇게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내시는 세종이시니, 집현전의 그 충신들도 곧 새 지식을 수용하고 더욱 창조적으로 변용할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윤서가 흐뭇하게 안도할 때였다.
“그래, 윤서야. 잘 이해했구나. 하지만 또 정치는 그 드높은 이상을 현실에 구현해내는 고단한 일이니. 은행을 위해서는 지급 보증을 할 수 있는 은이 많이 필요하지 않느냐? 한남군을 불러야겠다! 윤서 너는 은행 출자금을 댈 가문의 여인들을 만난다고 하였지?”
“···예, 전하.”
윤서는 세종이 어떻게 신하들과 아들들을 부려왔는지 알게 되었다.
너를 신뢰한다는 말씀으로 크나큰 감동을 주어 헌신의 욕구를 한껏 자극하신 후 다시 새로운 과업을 훅 던지시는 것이다.
지금 하시는 것처럼.
“그리고 참, 인삼 재배가 본격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김포 농장의 이각주가 씨앗의 채취부터 어린 싹을 내기까지 경험이 아주 노련하니 인삼 재배에 적합한 궁방지의 책임자들을 소집해 배워 재배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윤서처럼 스스로 할 일을 더 찾아내 더욱 큰 헌신을 맹세하게 되는 것이다.
하아, 성군은 괜히 성군이 아니시다.
“그래! 장하구나! 인삼이야 중국이든 일본이든 어디서나 귀하게 구입하고자 하는 약재니, 내수사 재정이 아주 넉넉해지겠어!”
헌신의 각오가 더욱 불타오르도록 기름을 부으시는 칭찬의 말씀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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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의 예측은 옳았다.
“화폐의 발행과 유통을 감독하는 은행을 세워 화폐 발행과 저축, 지급 보증 등으로 확보한 재원을 이용하여 농지의 개간, 개량 수차, 탈곡기 등 새 농기구 등을 적극 지원하실 계획안을 읽고 신 이해를 깊게 넓혔습니다.”
닷새 후.
편전에서 다시 열린 경연에서 김종서 대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세종께서는 윤서와 독대가 끝난 후 바로 경연에 참가했던 신료들에게 광평 대군을 보내셔서 경제학의 기본인 수요와 공급 곡선의 가격 결정론에서부터 국제 무역이 가져오는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 그리고 안정된 금융 체제에서 금리로 화폐량을 조절할 수 있는 원리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게 하셨다.
실은 윤서도 새로 볶은 커피와 함께 상세하게 정리한 경제학 이론서를 김종서 대감께 보내드렸던 차였다. 물론 경제 교과서 수준의 낮은 이해도를 가진 내용에 그나마도 듬성듬성 어설픈 내용이었지만 그러하기에 십오 세기 지식인 관료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보낸 응원이었다.
“그간 북방은 산악 지대에 겨울이 혹독하게 춥고 길어서 모두가 기피하는 천역의 땅이었습니다만, 금상 전하께서 계획하시는 지원책이라면 기꺼이 살고자 하는 선망의 땅으로 바뀔 것입니다. 특히 노비에서 속량되었으나 변변한 호구지책이 없는 막막한 자들은 기꺼이 새 가업 개척의 터전으로 북방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여 신은 향후 오 년간 새로이 우리 조선의 강토로 편입된 압록강 이북 환인까지 그리고 두만강 이북 공험진 유역까지를 번듯한 농공업지로 개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병조 판서 김종서가 비장하게 결의를 밝혔다.
한다면 하시는 분에다 최근 확연히 달라진 태도로 젊은 신료들의 신망까지 얻기 시작하셨다니 반드시 그리될 것이다!
윤서는 산미 진한 풍미를 낼 수 있게 약하게 볶은 커피콩을 보내드린 보람이 있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집현전에서도 따로 연구한 것으로 아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이향이 하문하였다.
그러자 부제학 신숙주를 대신하여 집현전을 이끌고 있는 직제학 성삼문이 신중하게 고하였다.
“국제 무역의 비교우위론은 아직 국제 무역이 활발하지 않은 작금의 상황에서 당장 적용은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저희 결론입니다.”
“!”
윤서는 슬쩍 몸을 빼내 동편에 앉아 계신 세종의 안색을 살폈다.
노인네, 실망하시면 옥체에 안 좋으신데.
세종께서 광평 대군까지 여러 번 보내 기본 이론을 설명하게 하시고, 의문이 나는 사항은 직접 설명도 하셨다고 했는데.
또 그제는 일시 귀국해 있는 수양 대군을, 어제는 한남군을 집현전으로 초빙해 일본과 여송 등지의 해외 상황을 상세히 배웠다고도 들었는데.
그러고도 신지식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저들을 자식처럼 아껴온 세종께서는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배신자 정인지는 새 시대에 맞춰 저리 의기양양하게 벌써 은행 설립에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윤서가 세로로 눈을 치켜뜨고 정인지를 노려볼 때였다.
“하오나 요 몇 년 새 한양은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 어지러울 정도로 여기저기 난전이 서고, 그 난전에서 푸성귀라도 팔아 호구를 꾸리며 자손을 학당에 보내 새 삶을 꿈꾸는 백성이 구름처럼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저희가 기존의 도학만을 고집할 때는 아니라는 결론도 내렸습니다. 하여, 저희 집현전에서는 전하의 새 정책을 적극 뒷받침 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기로 다짐한 바,”
아아.
윤서는 이를 꽉 악물었다.
여기서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면 역시 여인이라 근엄하고 엄숙한 경연에서 체신 없이 절제를 못하더란 소문이 무성하겠지.
중전으로서 고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신이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과 사람을 내세워 상업과 공업을 이끄는 것 외에 아직 사회 진출이 자유롭지 않은 여성의 대표임을 잊지 않는 윤서는 감상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위해 혀를 씹었다.
“장차 활성화될 국제 무역에서 우리 조선이 주변국보다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물품의 생산을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여송으로 돌아가는 수양 대군,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한남군과 함께 집현전에서도 해외의 상공업과 문화, 권력 지배 체제를 체계적으로 조사할 연구원을 파견할 수 있길 청하옵니다.”
성삼문의 말을 이은 박팽년은 또 한남군에게서 들으니 새로 즉위한 일본의 쇼군이 제법 심미안이 깊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우리 도자기와 면포 수입을 많이 하고 우리 지식을 배울 유학생을 파견하길 소망하니 그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국가의 재정을 늘릴 방안을 찾겠다고도 고하였다.
역사의 충신들이 드디어 군자의 수양인 경(敬)이 국부를 크게 늘리는 적극적인 경제 경영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음을 믿게 된 것이다.
윤서는 저도 모르게 옆에 앉아 있는 홍위의 손을 찾아 슬그머니 쥐었다.
당집에 높이 앉아 있으니, 이 정도는 저들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누가 자신의 비극을 막기 위해 힘썼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면서도 홍위도 윤서의 손을 마주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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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쇼군을 만나보실 준비를 이렇게 철저히 하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견문을 넓히셔서 대일 수출품의 제작에도, 또 장차 우리 조선의 건축물 발전에도······.”
한남군이 대내전의 조선 무역소에 돌아갈 때 성삼문과 함께 일본의 사절로 파견되어 쇼군을 만나기로 결정된 안평 대군이 윤서를 찾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 즉위한 쇼군이 유난히 심미안이 깊다는 박팽년의 말에서 불현듯 금각사와 은각사를 떠올렸던 윤서는 금각사를 지은 쇼군이 정무를 팽개치고 온갖 화려한 건축물과 갖가지 수준 높은 문화에만 빠져 있었다더란 조각 지식을 떠올렸던 차였다.
그래서 일본 여행 중에서 보았던 금각사와 은각사, 교토의 여러 건축물과 도자기 등에 대해서 설명하며 안평 대군의 손짓이 상당히 고아한데 어째서인지 낯이 익다고 의아해하던 윤서는,
금동이가 남방의 여러 옥 세공품을 보여줄 때 짧고 토실한 손가락을 저 기다란 안평 대군의 손가락처럼 우아하게 놀려서 귀엽다고 웃었던 며칠 전의 일을 기억해 냈던 것이다!
“대군 자가, 대체 우리 금동이에게 평소 무엇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갑자기 살벌해진 윤서의 목소리가 집무실의 문풍지를 파르르 흔들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