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노비 세습제 폐지 (5)
지금까지 중전과 안평 대군은 상당히 좋은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일본에서 다도가 유행하면서 고급 찻잔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역사를 알고 있는 윤서는 미적 안목이 탁월한 안평 대군에게 수출용 관요의 감독을 맡겼다.
중국 황제의 찬탄을 살 정도로 서예에 탁월하고 그림과 시문에도 빼어난 예술가이자 세상의 온갖 고귀한 예술품 수집가인 안평 대군도 도자기를 통해 예술혼을 발휘하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도 이번 일본 방문에 가져갈 도자기의 무늬에 대해, 그리고 극도로 절제된 형식미를 선호하는 일본의 미의식에 대해 화기애애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전께서 한기가 서린 눈빛으로 쏘아보며 물으신 것이다.
“대군 자가, 대체 우리 금동이에게 평소 무엇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왕족과 궁인 사이에 은밀히 떠도는 말이 있다.
[중전마마 눈에 한기가 서리는 순간 바람 숭숭 든 무 인생 확정이다.]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성품이지만 일단 한번 화를 냈다 하면 숨통을 틀어쥐고 끝장을 낸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안평 대군은 여유로웠다.
“제가 금동이에게 무어라 하냐니요? 우린 늘 아름다운 것을 함께 즐기고 이야기할 뿐입니다. 금동이가 미에 대한 식견이 아주 탁월합니다, 중전마마. 이 잔을 좀 보세요.”
안평 대군이 아까 윤서가 눈여겨보았던 찻잔 하나를 보물을 다루듯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밀었다.
이 찻잔은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처럼 싱그러운 초록색 염료가 흘러내리듯 입혀진 잔으로, 비색의 청자 계열이나 푸른 회회청 무늬의 청화 백자 잔 속에서 홀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그저 잔에 초록의 염료를 흘린 후 유약을 발라 굽기만 한 것인데, 아주 과감하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정말 그러하다.
윤서가 훗날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소 수십억을 호가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청자와 백자, 청화 백자 도자기 중에서 이 작은 초록 찻잔에 눈길을 빼앗겼던 것도 초봄의 여린 풀잎을 보듯 마음이 설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색채 도안이······?”
“예, 금동이 솜씨입니다. 고아한 비색 위에 꽃이며 나비를 새긴 이 청자도 빼어나고, 또 가을 하늘빛처럼 짙푸른 회회청의 당초문 무늬 잔이나 도자기도 훌륭하지만, 어떻습니까? 본시 기교의 극(極)은 무위(無爲)라, 온갖 정교한 솜씨의 도자기 속에서 아이답게 발랄한 이 색채 하나가 정말 가슴까지 환하게 밝히지 않습니까?”
꿈보다 해몽일 정도로 과찬이었다.
하지만 윤서도 이 잔에 새해 처음 딴 명전차를 넣어 마시면 바탕의 초록색과 어우러져 차 맛이 한층 더 부드럽고도 그윽한 봄의 정취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그저 고아한 아름다움을 낼 줄 아는데, 금동이는 그걸 금전과도 연결시키지요. 보세요, 여기 이 정교한 자기들 속에 초록색 하나로 멋을 낸 이 잔 하나가 섞여 있으니 다른 잔들까지 더 생동감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잔 하나가 여기 있는 모든 도자기를 함께 가지고 싶게 만들지요.”
“!”
칭찬이 너무 과하다.
자식이 잘났다는 말에 저절로 광대로 치솟는 입꼬리를 다시 야무지게 끌어내리며 윤서가 일갈했다.
“자가! 우리 금동이를 그렇게 치켜세우셔도 소용없습니다. 대체 왜 어린아이를 여인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곳에 있게 하셨단 말입니까?”
“···엇, 그걸 어떻게······.”
당당하던 안평 대군이 처음으로 당황한 낯빛을 보이며 “하, 그놈! 절대 발설하지 말라 일렀거늘.” 하고 중얼거렸다.
“자가. 왕가의 자손은 전하와 왕실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이지 않습니까? 어릴 적부터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그게 그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저 보세요. 일찍이 저 깊은 산골에 무계 정사를 지어 산새 소리 계곡 물소리를 벗하며 시나 짓고 살고자 하는데도 재주 많고 학식 높은 사내들과 여인들이 모두 모여들지 않습니까? 식견과 재주가 탁월하고 신분이 귀하고 재물이 많으면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절제하는 법을 어릴 적부터 익혀야 하지요.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제가 문란하다는 말은 없지 않습니까?”
“······.”
문란하다고 욕하진 않지만 부인과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인데 그게 다 노래며 악기에 빼어난 미인을 수도 없이 거느려서라고 수군댄다는 말을, 윤서는 차마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절제 없이 당대의 빼어난 인사와 교류하다가 역심을 품고 있다는 모함을 받아 죽게 되었다는 원래 역사도 말하지 못했다.
“무얼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염려 놓으세요. 금동이는 손에 쥐는 것 중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한 것은 늘 세자 형님 드려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 나라가 장차 누구의 것이 될 것인지,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저 또한 그러합니다, 중전마마.”
여인을 밝히는 것 외에도 그 많은 재물과 풍류로 사람을 모으려 든다고 세간의 오해를 받을까 걱정하여 미리 대비하려는 그 마음을 안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여인들 노는 곳에는 있게 하지 마세요. 자칫 여인을 즐거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될까 저어되기 때문입니다.”
“하핫! 저의 그 부분에 영향을 받을까 봐 근심하시는 것이로군요. 하지만 금동이는 형님 전하의 다정함을 그대로 닮았는데요. 그래도 앞으로 정말 조심하겠습니다.”
안평 대군에게 단단히 약조를 받고서야 윤서는 다시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대일 수출 품목에 대한 화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협경당으로 돌아온 윤서는 금동이를 호출하였다.
금동이가 색을 도안했다는 초록색 찻잔을 책상 위에 소중하게 놓아두고서였다.
건춘문 앞뜰에서 수복이와 함께 자치기를 하며 성균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는 세자 형님을 기다리고 있던 금동이는 윤서의 서재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니, 저 찻잔!”
“이리 와!”
의자에 앉아 있던 윤서는 크게 팔을 벌렸다.
“으흥!”
누구에게나 폭 안기기 좋아하는 금동이가 뛸 듯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이 특유의 체취가 땀 냄새와 함께 훅 끼쳤다.
윤서는 금동이를 꽉 안고 아이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신 후 물었다.
“뛰어놀았어?”
“응, 형님 기다리면서 수복이랑 자치기 했어요. 내가 세 번 이기고, 수복이가 두 번 이겼어.”
“이 잔, 네가 색을 도안했다고 들었어.”
“응! 그런데 어머니, 원래 이거 다른 색도 있어요.”
“으응? 안평 숙부가 이것만 보여주셨는데.”
“무지개 색이야. 빨주노초파남보. 근데 색이 더 깊게 나와야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건 아직 못 만들었어요. 한 벌 다 만들어서 선물하려고요.”
“응? 누구에게?”
물으면서도 짐작이 갔다.
금동이는 식구들 생일 선물을 오래 전부터 고심해서 준비한다.
지난 3월에 있던 희아의 생일에는 가지고 있던 옥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백옥을 정교하게 깎아 베개로 만들어 주었다. 늘 머리를 쓰는 누이가 밤에 시원하게 머리를 식히라는 뜻이 담긴 선물이었다.
도자기가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았다니 두 달도 안 남은 새벽이와 소아 생일 선물은 아니다. 아직 어린 아기들에게 찻잔은 또한 무용하고 깨질 경우 위험하기도 하다.
“세자 형님. 비현각에 늘 빈객이 들잖아요. 형님은 세자니까 다양한 빈객을 맞이하는데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고, 화나게 하는 사람도 있고. 기분이 무지개처럼 다양한데 마음대로 표현을 못 하니까. 대신 기분에 따라 차를 따라 마시면 속상할 때도 위로가 될 거예요.”
“우리 금동이, 참 멋지구나.”
“응, 나 멋져. 다들 멋지다고, 유치원 누이들이 막 노리개도 주고 향낭도 주고 편지도 써주고 그랬어요.”
올해부터 왕실 부속 유치원이 생겨서 일곱 살부터 입학을 하게 되었다.
금동이도 수복이와 내년에 입학을 하게 될 터인데, 거기 입학한 여자아이들이 금동이에게 선물을 한 모양이다.
“뭐어?! 어느 가문의 여식이?”
“응? 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 하는데. 저기 내 전각에 있는 옥함에 선물이랑 편지 다 모았는데. 가져오라고 할까요?”
“···금동아!”
너 그렇게 여러 아이에게 막 선물 받고 그러면 안 돼!
말하려던 윤서는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한참 어린 꼬맹이에게 과한 말이다.
“선물도 편지도 넙죽넙죽 받고 그러면 안 돼. 넌 왕자라서 함부로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단 말이다.”
“응, 그래서 매금이한테 부탁해서 선물값만큼 나가는 걸로 다 갚아줬어요.”
“······.”
이런 건 아버지가 엄히 가르쳐야 할 문제다.
윤서는 끙, 신음을 흘리며 그냥 금동이를 꽉 안아주었다.
*
*
*
노비 개혁 보상안이 공표되었다.
[속량할 노비 십 인당 일 결의 황무지 개간권을 허용한다.이 경우 황무지는 조선 강역 내의 영토로 한정한다. 유월까지 각 지역 관청을 통해 개간 가능한 황무지를 정해 공표할 것이며, 개간하여 소유할 수 있는 토지 결수는 일 가구 당 최대 이십 결로 제한한다.
속량할 노비 십 인당 일 결의 토지 개발권을 허용한다.
이 경우 토지는 새로이 조선의 강토로 편입된 압록강 이북 환인 지역과 전조 고려부터 우리 강역이었으나 우리 백성이 거하지 않는 두만강 이북 지역, 경원도호부에서 공험진에 이르는 두만강 북쪽 칠백 리, 선춘현에 이르는 두만강 동북쪽 칠백 리 중 여진인이 이미 토지로 개간하여 점유하지 않은 토지로 한정한다. 유월까지 경원도호부에서 소유 가능한 지역을 지도와 함께 게시할 것이며, 소유할 수 있는 토지 결수는 일 가구 당 최대 이십 결로 제한한다.
외거 노비를 거느려 농사를 짓고 있던 소유주는 양인으로 속량 된 전직 노비와 계약을 맺어 농업을 지속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토지를 빌려준 이는 고용인, 토지를 얻어 경작하는 이는 피고용인으로, 양쪽은 모두 동등한 양인으로 단지 계약으로 서로를 구속할 뿐이며, 최소 십 년의 계약 관계를 지속하여야 한다. 이 계약 관계는 십 년 이후 파기될 수 있고, 피고용인의 죽음으로 소멸하며, 피고용인의 자식에게 자동으로 상속되지 않는다.
솔거 노비를 거느려 주거지의 여러 일을 맡기고 있던 소유주는 양인으로 속량 된 전직 노비와 계약 관계를 맺어 일을 지속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전직 주인은 고용인, 전직 노비는 피고용인으로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최소 월봉 여섯 말을 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양쪽은 모두 동등한 양인으로 단지 계약으로 서로 구속할 뿐이며 최소 일 년의 계약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이후 계약 관계는 언제든 파기될 수 있고, 피고용인의 죽음으로 소멸하며, 피고용인의 자식에게 자동으로 상속되지 않는다.
6월 이후 불법으로 노비를 소유하다 적발된 자는 관직을 박탈당할 것이며, 본인 포함 직계 자손 삼 대까지 학당에 입학할 수 없으며 어떠한 관직에도 등용될 수 없다.]
보상안은 토지의 개간, 소유권이 주를 이뤘다.
이는 노비를 잃어 재산을 손해보게 된 이에 대한 재물적 보상이자, 날로 늘어나고 있는 인구에게 먹일 농지를 확보하는 안이기도 하였다.
한 달의 예고를 거쳐 드디어 보상안이 공표되었을 때.
노비를 많이 소유한 측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개간 가능한 황무지로 게시될 지역이 어디인지부터 물색하였다.
일부는 차인을 보내거나 직접 행낭을 꾸려 북방으로 향하는 이들도 많았다.
궁궐, 내수사와 관청에서 부리던 모든 공노비도 6월을 기해 양민으로 속량된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한 양민보다 처지가 좋았으므로 노비가 아닌 양인이 될 때 혹여 기존에 받던 월봉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온 나라가 아직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술렁이기만 할 때.
수양 대군이 심한 등창에 걸려 쓰러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귀국 후 연이어 벌어진 여러 일에 따른 심적인 부담이 몸의 질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 이를 어쩐다니? 어째서!”
소헌 대비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명례궁으로 마차를 달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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