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수양 대군과 항생제 (1)
소헌 대비가 명례궁에 도착했을 때,
먼저 불려온 어의 전순의가 벌겋게 부어오른 등을 조금 째고 누런 농을 채취하고 있었다.
“수술하는 것인가? 그럼 혜민국으로 옮겨서 해야 하지 않는가?”
방 안에 있던 모든 이가 엎드린 가운데 전순의도 예를 표하기 위해 엎드리려는 것을 손을 휘휘 저어 말린 대비께서 화급하게 물으셨다.
“송구하오나 대비마마, 농이 너무 넓게 퍼져 있는지라 당장 수술은 자칫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하여 제가 중전마마 명을 받아 만든 항생제가 이 감염을 일으킨 원인 세균을 죽일 수 있는지 먼저 배양하여 확인한 후, 해당 약제로 농의 크기를 줄인 후에 수술을 할 수,”
“하! 그 수수께끼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그래서 나을 수 있단 말이지? 신숙주를 수술한 후에 종기 정도는 무리 없이 치료하지 않는가 말일세.”
“···깊이는 얇으오나 등에 열 치도 넘게 퍼져 있는지라······. 하오나 맞는 항생제만 찾아내면 치료가 될 것이니 너무 심려 마옵소서! 소인은 이 농을 배양하러 약국에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의 김가가 남아 자가의 존체를 살필 것이옵니다.”
전순의가 농을 담은 작은 도자기 함을 손에 쥐고 물러났다.
소헌 대비는 열이 끓는 몸으로 엎드려 있는 아들 곁에 앉았다.
“유야, 유야.”
“······.”
수양 대군은 간혹 끙끙 신음만 낼 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이고, 얘야. 어미가 왔는데 왜 정신도 못 차리고 이렇게, 응!”
“저, 통증이 심하신지라 아까 전 의원이 진통 성분이 든 수면탕을 드시게 하였습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윤씨가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이야. 진작 어의를 청했어야지!”
소헌 대비가 며느리를 다그쳤다.
그러자 윤씨는 말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옆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발발 떨고 있는 여인에게 눈을 흘겼다.
“저것이 늘 우리 자가를 모셨던지라 저는 오늘 아침까지도 몰랐습니다!”
여인이란 말보다 소녀란 말이 더 잘 어울릴 듯한 그 앳된 여인은 경정 공주가 보내온 비파 가인(歌人)이었다.
“자, 자가께옵서 내색을 조금도 아니 하시어서······, 죽여주시옵소서!”
가인은 바닥에 이마를 댄 채 바들바들 떨었다.
“하아. 어찌 이리 미련했을꼬.”
불과 사흘 전에 수양 대군은 동생 임영 대군과 함께 왕실의 사냥터와 강무장이 있는 양주에 사냥을 나가 사슴이며 꿩을 잔뜩 잡았었다.
털까지 직접 손질한 꿩을 스물다섯 마리나 가지고 입궐하여서, 상왕 전하와 주상, 중전이랑 꼬물거리는 아이들까지 모두 꿩고기 육수를 낸 온면을 별미로 맛보았었는데, 이 지경이 된 등을 보니 그때도 이미 등창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 자명하였다.
‘대체 무엇이 그리 속이 상하여 몸에 이렇게 고름이 차는데도 말을 달리고 활을 쏘아 피를 보았단 말이냐. 유야, 대체, 너는, 왜!’
소헌 대비는 당장 부처님께 제를 올리고 용한 무당을 부르라 명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종기라면, 윤서가 잘 알지!’
주상 몸에 작은 종기라도 생길까 봐 윤서가 몸소 목욕 시중을 들고 비누를 칠해가며 몸 구석구석 살피고 또 혹여나 생겨날지 모를 종기를 치유하기 위해 아까 전순의가 말한 항생제인지 뭔지 하는 것도 만들게 하였으렷다!
평소에는 좀 유난스럽다고, 후궁과 주상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 별스럽게 구는 것이라고 저 깊은 마음속에선 윤서를 좀 고깝게 여겼던 소헌 대비는 불현듯 둘째 며느리가 더욱 야속해졌다.
‘평소 윤서처럼 목욕 시중이며 옷시중을 들며 몸을 꼼꼼히 살폈으면 아무리 기첩에 빠져 있기로서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을까!’
하지만 손주 도원군과 손주며느리까지 있는 자리이다.
아이들 있는 자리에서 며느리에게 무어라 하기는 곤란하고, 또 둘째가 대답을 못하는 것이 수면탕에 취해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좀 안도가 되기도 하여, 소헌 대비는 끙, 몸을 일으켰다.
도원군과 그의 새색시가 재빨리 소헌 대비를 부축했다.
“중전이 종기에 대해 아주 잘 아니, 내 궐에 돌아가 물어봐야겠다. 길게 정양해야 할 것으로 보이니 서로 번갈아서들 구완하거라!”
“대비마마, 소첩 허벅지 살이라도 베어 우리 자가를 살릴 것이니, 심려마옵소서!”
“어허! 아직 약도 제대로 써보기 전이거늘!”
얘는 뭘 이리 유별스럽게 호들갑인지, 원!
열이 펄펄 끓는 둘째의 상태가 그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슴이 무너지게 아픈 맏딸 정소 공주의 죽음을 생각나게 하여, 소헌 대비는 손주와 손주며느리의 부축을 받아 서둘러 명례궁을 빠져나왔다.
*
*
*
그 시각 윤서는 수양 대군의 등창 소식을 듣고 이미 경복궁 북쪽에 있는 약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벌써 수양 대군에게 등창이 나타난 것인가.’
세조가 심한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죽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피고름이 나도록 온몸이 헐고 악취까지 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 조상님 현덕 빈이 침을 뱉으며 저주하여 문둥병에 걸린 것이라는 야사가 있을 정도였다.
한센병이라면 전염력이 있을 것인데, 어느 정도 전염이 되는 것인가.
치료제는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역사에 비추어 여러 가지를 고심하고 있는 윤서를 바로 한 발 뒤에서 따라오며 조 상궁이 고하였다.
“전순의가 반 시진 전에 표본을 채취하러 갔다 하옵니다. 또 소식을 들으신 대비마마께서 최 상궁과 나인 셋만 데리고 화급히 마차로 명례궁에 가셨다고 하옵니다.”
벌써 명례궁의 사정을 파악하였구나.
“병변이 어떠하다든가? 혹시 한쪽에만 수포가 집중적으로 나지 않았다던가?”
귀국한 직후부터 수양 대군은 도원군 일부터 시작하여 총독 임명에 이르기까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정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았다.
또 사흘 전 임영 대군과 양주에 사냥까지 다녀왔으니 상태가 급속하게 악화된 것이어서, 윤서는 수양 대군이 대상포진에 걸린 것은 아니가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 돌아가신 직후 윤서도 대상포진에 걸렸었다.
제대로 먹지도 않으며 일을 하고 또 달리고 하던 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오른쪽 팔 하단에서 수포가 몇 개 돋아나더니 다음 날엔 옆구리에 또 몇 개, 그리고 그 다음 날엔 오른쪽 옆구리와 등 팔까지 오른쪽 몸 전체를 수포가 다 돋아났었다.
그런데 통증이 거의 없었다.
진료한 의사는 평소 마라톤 등 격한 운동을 해 통각이 무뎌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였지만, 윤서는 부모님을 잃은 고통이 너무 커 다른 신체 통증을 감지할 여력이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아서라고 짐작했었다.
‘대상포진은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스트레스나 항암치료 등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발병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항바이러스 약물을 따로 만들 수 있을까.’
윤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세균 배양 장면을 떠올려 전순의에게 설명해 주자, 전순의는 휘하 의원들과 함께 밀기울에서 키운 푸른곰팡이를 채취해 쌀뜨물 등의 곡물 액체에 배양시켰다.
또 환자의 종기에서 농포를 채취해 쌀뜨물에 병균을 증식시킨 후, 점도 높은 끈적한 액체에 배양하고, 여기에 푸른곰팡이 배양액을 섞어 세균이 죽는지까지 확인하였다.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이 곰팡이 추출 항생제에서 다른 성분을 걸러내지 못하여 아직 불순물이 섞여 있고, 또 그대로 쓰기에는 너무 독하였다.
전순의가 여러 방법으로 실험하고 있고, 지금 단계에서도 치료한 사례가 있으니.
머릿속으로 현황을 점검 중인 윤서에게 조 상궁이 답을 올렸다.
“한쪽에만 난 것이 아니옵고 등 전체가 벌겋게 부어올라 피부 밑에 농이 차 있다고 하옵니다. 그 부위가 열 치가량 되어 당장 수술은 어려울 듯하다 하옵니다.”
“열 치나?!”
열 치라니.
한 치가 대충 삼 센티미터가 조금 넘어 보였으니, 열 치면 삼십 센티미터가 넘는다는 소리다.
역사에서 문종께서 돌아가실 때 등창이 그 정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그 때 문종을 치료한 자도 전순의였지.
중간에서 순조롭게 회복되고 계시다며 대신들의 접견도 막고, 또 명나라 사신에게 연회도 베풀게 하고 또 활쏘기 시범도 참관하게 하여 문종이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죽게 만든 자가 바로 전순의였다.
‘꿩고기도 먹게 하였다고 하였지!’
기름진 음식이라 종기에 금기가 되는 대표적인 음식인 꿩고기를 전순의가 문종에게 올렸다더란 역사를 떠올리자 사흘 전 수양 대군이 꿩을 사냥해 와 대비마마께 올린 사실도 떠올랐다.
‘어째서 그때와 거울처럼 닮아 있는 것인가.’
죽음의 신이 이향 대신 수양 대군을 데려가기로 작정한 것인가.
그냥 두면 수양 대군은 죽는 것인가.
“중전마마!”
무서운 생각이 들자마자 우뚝 발걸음을 멈춰선 윤서를 조 상궁이 불렀다.
어느새 여러 가지 실험적 약제를 만들고 있는 약 공장 앞이었다.
“중전마마!”
이번엔 전순의가 뒤에 의원 넷을 달고 달려와 머리를 허리까지 조아렸다.
“수양 대군 자가 때문에 오셨군요. 소인이 이미 농양을 채취해 왔습니다. 종기가 너무 커서 지금은 수술할 수 없습니다. 해서 항생약으로 먼저 치료를 해 크기를 줄인 후 종근을 빼내는 수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순의는 아주 의욕적이었다.
혹시 이향이 종기에 걸릴지 몰라 윤서가 보름마다 직접 들러 항생제 개발 현황을 보고 받고 점검하였으니, 이 기회에 수양 대군을 고쳐 공을 세울 생각에 신이 난 것이다.
“···몸의 상태는 어떠하신가?”
“평소 사냥 등으로 단련하신지라 잘 버티실 것이옵니다, 중전마마. 농포를 일으킨 세균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여 약을 쓰면 되옵니다. 도성 내 거지들을 대상으로 혜민국에서 희석약을 이용해 치료해 본 적이 이미 있지 않습니까?”
“······.”
여기서 효과가 있다고 하고 실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으로 치료하는 척을 하라고 은밀하게 명을 내리면 수양 대군은 이대로 죽게 되겠지.
그 잔혹한 명을 직접 내릴 필요도 없다.
약간의 암시만 주어도 조 상궁이 알아서 전순의와 감쪽같이 처리할 것이다.
항생제의 개념을 명확히 아는 자는 아직 전순의와 저 의원 넷 그리고 윤서 자신뿐이니 의혹을 살 가능성도 거의 없다······.
“중전마마! 중전마마께서 산성, 염기성, 수용성, 지용성 등에 대해 가르쳐 주셔서 소인과 우리 의원들이 밤낮없이 푸른곰팡이의 약 성분을 순수하게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실험해 본 결과 수용성이라는 것은 이미 알아내 보고드렸습지요. 지금은 곰팡이와 같은 약효를 낼 수 있는 여러 한약재도 다양하게 실험 중이온데, 벌꿀, 인동초 등 몇 가지는 벌써,”
“들어가세. 들어가서 듣겠네.”
윤서는 장황하게 자신이 그간 세운 업적을 홍보하는 전순의의 말을 자르며 순간적으로 들었던 무서운 유혹도 함께 잘라내었다.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지 어떤 경우이든 죽이는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수양 대군은 아직 죽을 만큼의 죄를 짓지 않았다.
짓지 않은 죄는 징치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조선을 이끌고 있는 이향과, 두 분 전하 못지않은 성군의 자질을 이미 확연히 보이고 있는 우리 홍위의 앞날에 오점을 남겨서는 아니 된다.
무엇보다 수많은 비극을 겪으신 끝에 말년에서야 마음의 평화를 겨우 누리고 계신 소헌 대비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서는 아니 된다!
‘잔혹한 수를 쓰지 않아도 이향의 치세는 이미 굳건하고, 또 내가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니.’
윤서는 약 공장 입구에서 촘촘한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가리는 벙벙한 광목옷을 걸친 후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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