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수양 대군과 항생제 (2)
“이것이 수양 대군 자가와 비슷한 증상의 환자 등창에서 채취한 접시이고, 이것은 머리 부스럼에서 채취한 접시, 이것은 발의 무좀에서 채취한 접시, 이것은 화류병의 종창에서 채취한 병균을 배양하고 있는 접시이옵니다.”
창호지 문으로 단단히 닫혀 있는 안쪽 병균 배양실에서 연구에 종사하는 의원이 가져온 접시를 차례로 가리켜 보이며 전순의가 설명하였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우묵한 도자기 재질 접시에는 한천(우뭇가사리 묵)이 얇게 깔려 있고 그 위에 병균이 색색으로 자라고 있다.
여기 약국 실험 연구실에 올 때마다 윤서는 과학 분야에서 발전은 처음 발견이 어렵지 일단 개념이 정립되면 그 이후의 발전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전순의를 비롯한 왕실 어의와 혜민국의 의원, 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세균’의 개념을 믿지 못하던 이들은 오 년 전 조선 전역에 두창(마마, 천연두) 예방침 시술을 시행하며 병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두창은 역신이 퍼트리는 질병인지라 마을마다 장승을 세워 역신의 출입을 막고, 용한 무당을 부러 병굿을 하고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이런 질병을 말의 두창에서 농포를 채취하여 인간에게 옮겨 미리 가볍게 앓고 넘어가게 하면서 면역이 생기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창 침 접종으로 확인하였을 때.
그리고 일단 걸렸을 경우 월경혈이나 대변, 두더지 진액 등 구구한 요법으로 치료를 해도 거의 절반 가까이 죽어 나가던 두창 자체에도 예방 침이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때.
조선의 모든 의원들은 전율하며 병균의 존재와 그 예방법, 치료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인체 면역의 불균형 등 내재적 원인으로 생겨나는 병까지 모두 병균의 탓으로 돌리는 부작용이 생기긴 했지만, 병균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해 물을 끓여 마시고 육류와 생선은 익혀 먹고 손발을 씻고 목욕을 자주 하고, 감기나 기침 등 호흡기 질환 때엔 촘촘하게 짠 광목천으로 입 가리개를 하는 등 위생 관념이 상당히 높아지면서 사망률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그리고 윤서는 문종, 정조 등 조선 왕의 단골 사인인 등창(종기)을 치료할 항생제 개발을 목표로 여기 약 공장의 실험실에서 푸른곰팡이에서 배양한 항생균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해 왔다.
원래 역사에서처럼 이향이 종기에 걸릴 경우와 후대의 왕들을 위해서였다.
십오 세기든 이십일 세기든 의학자,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과 사명감은 다르지 않았다.
특히나 공명심이 대단한 (그래서 수양 대군과 은밀하게 손을 잡고 문종의 옥체에 손을 댄 것이 틀림 없었으리라고 윤서를 확신하게 만든) 전순의는 모든 균이 곰팡이처럼 따뜻하고 습하고 축축한 환경에서 잘 자라난다는 사실을 윤서에게 들은 후 적당한 배양물을 만들기 위해 궁중 음식 중 힘줄 등을 푹 고아 만든 전약이나, 도토리와 상수리 묵 등 갖가지 음식 재료로 실험하다가 우뭇가사리로 만든 한천이 병균 배양에 탁월하다는 사실까지 알아내었다.
그 한천에서 배양된 병균의 한쪽 귀퉁이가 지금 비어 있다.
“여기 이 부분이 푸른곰팡이 추출물을 떨어뜨린 곳인가?”
“예, 중전마마. 동백유와 증류수에 푸른곰팡이 추출물을 섞어 걸러낸 약물을 백 분의 일로 희석하여 떨어뜨린 부분입니다.”
“인체와 동물에 대해 적용 가능한 희석 농도 실험은 어찌 진행되고 있는가?”
“예, 저기 도봉산 밑의 실험실에서 암컷 쥐를 대상으로 십 분의 일, 이십 분의 일에서 백 분의 일, 이백 분의 일, 삼백 분의 일까지 농도를 조절하여 도포해보고 있습니다.”
“수양 대군 경우처럼 큰 종기라면 도포하는 것만으로 안 되지 않는가? 탕약처럼 복용해야 몸 전체에 혈액을 타고 흐르는 염증을 잡을 수 있을 것인데.”
“예, 그래서 도포용 쥐와 음용 쥐를 구분해서 실험 중이온데, 곧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때마침 수양 자가께서 심한 등창에 걸리셨으니 실험을 하기가 아주 적당······!”
공을 세우게 된 기쁨에 흥분해서 빠르게 고하던 전순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윤서의 눈빛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소, 소인은 다른 뜻이 아니오라, 그리 갑자기 넓게 퍼진 등창은, 단순 도포로는 치료가 어려울 수 있고, 그, 그래서, 음용으로 온몸에 퍼지게 약효를 내야 한다는 뜻으로, 중전마마, 그러니까, 소인이 감히 대, 대군 자가의 존체를 실험 대상으로 쓰겠다는 뜻이, 아니옵, 고 그러니까 마침 이만큼이라도 진, 전이 된 약물이 있, 어서 다행이, 아이고, 중전마마. 죽여주시옵소서.”
심하게 더듬거리며 변명을 이어가던 전순의가 넙죽 바닥에 엎드려 정신없이 사죄하였다.
휘하 연구 의원도 덩달아 엎드려 “죽여주시옵소서”를 외쳤다.
중전마마가 평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 살리기에 얼마나 진지하고 엄격하게 임하시는지 익히 듣고 보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유혹에 시달렸던 것도 모르고.’
불쑥불쑥 드는 검은 유혹을 다시 잘라내고 어서 몸을 일으키라 손짓하며 윤서는 항생제의 적당 희석 농도를 모르는 것이 너무 답답하였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아버지도 한문학 교수에 어머니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으니 기왕이면 의술에 빼어난 후손이 있었으면 하고 현덕 빈께서 얼마나 아쉬우셨을꼬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일단 추출한 것이 중요하다.
“수용성까지 확인해 불순물을 걸러내었으면 다른 불순 성분 정제는 어찌 되는가?”
“염기는 그 말처럼 짠 성분이 아니겠습니까? 고온으로 구운 소금을 엷게 탄 물과, 또 감식초 희석한 물에 각각 추출물을 넣어 걸렀더니 식초 물에서 나온 것이 효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성입니다, 중전마마.”
“좋아요. 그럼 어서 쥐를 대상으로 임상을 하고, 또 수양 대군보다 훨씬 작은 종기와 등창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한 후 수양 대군에게 음용과 도포를 병행해야 할 터인데, 시일이 아주 촉박하지 않겠는가?”
“예, 염증이 온몸에 퍼지면 순식간에 위험해지는 것이 등창인지라, 어의 박가가 곁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중전마마.”
“서두르세요! 수양 대군 자가의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이것은 운명이다.
문종처럼 급격하게 진행되는 등창 앞에서 수양 대군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것, 거울처럼 서로 입장이 달라진 이 현실은 역사가 진실로 변화하고 있는 증거이다.
그래서 윤서는 기필코 수양 대군을 살려 이향이 종기에 걸리더라도 무사히 나을 미래를 확실히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전 첨정, 질병은 심리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지 않는가? 대군 자가께서 갑자기 저리 악화 되시게 된 이유를 혹여 말씀하시던가?”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로 인한 인체 면역력 저하나 호르몬 불균형이라고 믿는 윤서는 의원들에게 평소 병의 치료와 더불어 심리적 요인도 함께 짚어보라 조언해왔다.
이는 특히 혜민국에서 진료하는 여성 환자에게서 큰 효험을 보여, 요새 조선에서는 마음의 울화와 고민을 들어주는 의원이 많아지고 있다.
“소인에게 구체적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여러모로 심기가 편치 않았다는 말씀은 하셨습니다.”
임영 대군 사이에서 뭔가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서로 무예에 관심이 많고 마음이 맞아 형제 중 가장 친하게 지내던 사이이니 수양 대군이 뭔가를 제안하거나 부탁했는데 임영 대군이 거절하면서 울화가 치밀었음에 틀림 없다.
“이번에 항생제 치료에 성공하면 여러 염증 치료에 신기원을 여는 것이네. 수도 없이 많은 인명의 목숨을 구할 위대한 기회니, 모쪼록 최선을 다해주시게. 필요한 바가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고.”
윤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양 대군에게 적용 가능한 약물의 농도를 확인해내라 지시하고 약 공장의 실험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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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약이 곧 마련될 것이라고? 하아,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협경당에 돌아오니 얼마나 근심이 되셨는지 대비마마께서 몸소 행차하시어 소아를 품에 안고 계셨다.
윤서에게서 상황을 확인하고서야 소헌 대비는 비로소 한시름 덜어내시고 소아의 재롱을 볼 여유를 내셨다.
“소아야, 너의 어머니가 미리미리 여러 약재를 실험하였으니 얼마나 장한 일이냐. 우리 소아, 소아도 어머니 닮아 이렇게 차분하고 어여쁘지.”
“함마마! 엄마마!”
“그래그래, 우리 소아. 이렇게 귀여우니 주상이 아까워서 어디 하가나 시키겠느냐?”
“아바, 아바!”
‘주상’이 이향을 가리키는 줄 용케 알아들은 소아가 배시시 웃으면서 아버지가 출입하는 문을 짱똥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소아야. 아버지는 이따 정무 보시고 오실 것이다. 그런데, 윤서야.”
소헌 대비께서 윤서에게 손짓하셨다.
무언가 은밀하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했다.
“예, 대비마마.”
윤서가 가까이 다가서자 소아가 안아달라고 팔을 쭉 내밀었다.
윤서는 대비마마께 소아를 받아안고 등을 토닥이며 소헌 대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구(璆, 임영 대군 휘)가 유에게 무엇이라 한 것 같다. 둘이서 그리 사이가 좋았는데 사냥을 다녀와서 유가 저리 아프게 된 것을 보면, 사냥에서 뭔가 안 좋은 말이 오간 것이야.”
수양 대군과 임영 대군은 둘 다 무예를 좋아해서 함께 호흡을 맞춰 마상 무예를 선보일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사냥을 다녀와 수양 대군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으니, 소헌 대비는 두 대군의 사이가 왜 틀어졌는지 답답하고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일반 여염의 형제가 아니고 조금씩 정치적 세력을 가지고 있는 대군들 간의 일인지라 누구에게 말하기 곤란하여 윤서에게 고민을 털어놓으시는 것이었다.
“내가 구를 불러서 왜 그런지 물어보고 유에게 가서 좀 수그리고 풀라고 할까? 마음이 풀려야 쉬이 낫지 않겠느냐?”
수양 대군이 저리 갑자기 몸 상태가 악화된 것은 은밀하게 품어온 정치적 야망이 내심 자신의 편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동생에게까지 부정당하면서 받은 충격일 가능성이 높았다.
“예, 대비마마. 그것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윤서는 일단 소헌 대비께 찬성의 말씀을 올렸다.
저리 속을 끓이시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시는 것이 건강에 좋고, 또 임영 대군도 어마마마께 근심을 드릴 사안은 걸러서 이야기할 정도의 효자였기 때문이다.
“그럼 윤서야. 내 최 상궁에게 구를 불러오라고 할 터이니, 이야기할 때 너도 있거라. 네가 사람 마음을 잘 알지 않니? 들어보고 우리 유 마음이 상한 것이 무엇일지 파악해서 네가 좀 풀어주라고 구에게 일러주렴. 네가 내 울화병도, 또 수성 부부인(양녕 대군의 부인)의 심병도 고쳤지 않느냐?”
“···예, 대비마마.”
대답은 하지만 강렬한 권력욕이 좌절되면서 생겨나는 마음의 절망이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조언으로 덜어질 수 있는 종류인지 자신은 없다.
“그래. 네가 그리해준다니 내가 아주 마음이 개운해진다. 소아야, 우리 소아는 지체 높고 야심 많은 가문 말고 소박하게 일상을 즐기는 가문의 후손과 혼인하거라. 네 오라비들처럼, 어려서부터 서로 더 아끼지 못해 안달인 그런 화목한 가정 말이다.”
“옵빠! 옵빠! 엉니! 엉니이!”
“···그래, 소아도 언니가 행복한 것을 아는구나. 우리 소아도 정종처럼 다정한 사내를 만나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거라. 할미가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해 줄 터이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소헌 대비도 수양 대군의 야망을 내심 짐작하고 계시면서 모르는 척 외면하고 계셨구나.
왕가에서 야망을 품은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친정의 멸문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노모의 노심초사를, 수양 대군이 부디 알고 마음을 고쳐먹길.
윤서는 진실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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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전하께 고해 달라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중전마마.”
소헌 대비 앞에서는 별일 없었다고,
그저 형님 새 첩의 비파 연주에 맞춰 평원 대군의 첩 초요갱의 춤사위나 함께 보자고, 형님이 평원 대군에게 말 좀 해보시라고 부탁했다가 작첩까지 빼앗긴 일이 있으면서 아직도 얼굴에 하얗게 분칠하는 것들을 그리 탐하느냐고 혼을 내기에 형님은 뭐 그리 떳떳하시냐고 팽 화를 내고 헤어진 일 외엔 없다고 딱 잡아떼었던 임영 대군이 나중에 윤서에게 따로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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